이른바 ‘생계형 시사평론가’라고 했다. 평소 남 눈치 안 보고 입바른 소리를 해대는 탓에 몇 번 부당해고를 당하다 보니 ‘먹고 살기 위해서’ 시사평론을 시작했다. 자기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스펙과 학점경쟁에만 급급한 20대들에게 “늬들에겐 희망이 없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하고, 정규 라디오 방송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을 퍼붓기도 했다.
그 이후 20대들에겐 ‘꼰대’라 비난받고, 문제의 라디오 방송멘트는 삭제됐으며 그는 해고됐다. 지난 4월 27일 재·보궐선거 이후 첫 방송을 시작한〈나는 꼼수다〉는 팟캐스트 다운로드 세계 1위(정치부문)의 기염을 토하며 ‘각하 헌정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나는 꼼수다〉의 총괄 PD, 김용민 시사평론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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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역 근처에서 만나자기에 집이 이 근처인가보다 했다. 20여 분 가량 늦은 그는 “차가 막혀 미안하다” 했다. 용인에서 올라오는 길인데 차가 이렇게 막힐 줄은 몰랐다며.
그는 지금 서울 정릉에 위치한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교차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어차피 학교로 가는 길이니 서울로 올라오는 수고로움은 번거롭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공부와 일을 병행하다보니 너무 바빠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지난 6월 출간된《조국현상을 말한다》의 반응이 좋습니다.
“이제 5쇄 발간 준비 중입니다. 책을 펴낸 출판사에 마음의 ‘빚’을 담고 있었는데 갚을 수 있게 됐죠.《고민하는 청춘, 니들이 희망이다》라는 책을 지난해 여기서 펴냈는데 망했거든요(웃음).”
▶조국 교수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과 2012년에 진보가 집권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던데요, 사실 표면적으로 이런 논의가 나오면 “진보는 그렇게 자신이 없냐”는 비아냥을 듣기 일쑤죠. 어떤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2012년 대선에서 진보진영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어요. 우선 다음 정권은 이명박이 싼 ‘똥’을 치워야 하는데, 그 똥 치우다가 5년 다 갑니다. 김대중 정권 보세요. YS정권에서 싼 똥을 5년 내내 치우다가 시간 다 간 것 아닙니까? IT 붐이니, 카드대란같은 부작용도 낳았고요. 두 번째, 지금 진보진영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을 ‘심판’하게 되면 그것은 정치보복이 됩니다. 다만 박근혜가 한다면 자기쇄신이 될 수 있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아주 신랄하게 이명박 대통령을 심판할 것이 분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총선과 대선이 한꺼번에 치러지며 정치권력이 순식간에 교체되는 그 시기에 의회권력을 진보진영이 200석 이상 ‘장악’하게 되면 우선 진보라는 이름으로 같이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대통령이 제 멋대로 하려고 하면 의회권력이 그것을 막는 훈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 훈련을 토대로 2017년에 멋지게 정치권력을 잡자 그 얘깁니다.”
조국 교수는 차기 대선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인물 중 가장 ‘존재감’이 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 ‘검증’할 것들이 많다며 판단과 선택을 미루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아마 ‘강남좌파’ 논란일 것이다.
《조국현상을 말하다》본문 중 조국은 강남좌파 현상에 대해 “부유층의 진보 영토가 넓어지는 현상은 보수 정치권이 부유층의 눈높이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능력없는 보수 정치에 실망하고 특정 계층만 대변하는 현 정부에 낙담한 식견 높은 젊은 부유층들이 극심한 사회 양극화에 대한 일종의 계급적 자책을 느끼며 점차 진보적 색채를 강하게 띠어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포춘코리아》신기주 기자는《시사인》기고에서 “강남좌파는 소비의 욕망을 즐기면서도 소비의 쾌락은 경멸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강남 아파트 재개발을 꽁꽁 묶어버린 탓에 강남에는 틈새 원룸과 빌라만 늘어났으며 여기로 강남 이민자들이 흘러들어 새로운 여론층을 형성하게 됐다”고 말해 약간 핀트가 어긋난다.
특히 공희준 정치평론가는 책에서 “강남좌파는 사회적 근본을 건너뛰고 진보하자고 한다. 철저하게 미국식 패러다임이다. 강남좌파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들이 갖고 있는 펀드부터 팔아라. 조국은 머리가 좋지만 개념은 없다. 본인에게 강남좌파라고 하는 것은 욕인데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인다.”며 강도 높은 비난을 한 바 있다.
▶얼마 전 서울대 법대 학생이 학교 정문 탑에 올라가서 서울대 법인화 반대를 외치며 고공농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 조국 교수가 “악법도 법이니 우선 시행하고 보자”는 뉘앙스의 글을 썼죠. 이 부분이 젊은 유권자들, 대학생들에게 굉장히 실망스럽게 다가왔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국은 아주 조심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법인화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너희’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산다
김용민은 2009년 6월 충남대 학보에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 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오직 ‘불법집회’라는 이름으로 불편해 하는 학생들에게 그가 냉소 가득한 글을 남긴 것이다.
글 말미에 그는 이제 촛불집회를 주체적으로 주도했던 오늘의 10대들에게 희망을 걸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방 국립대의, 마이너 매체인 학보에 실린 한 편의 글이 또래 20대 누군가에겐 ‘경종’이 됐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비난’이 됐을 것이다. 이 글은 ‘88만원 세대론’ 이후 새로운 20대 세대담론을 촉발시켰다.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어요? 나 같은 ‘듣보잡’ 시사평론가가 쓴 글이 이렇게 큰 반응을 불러올지 말이에요. 그렇지만 그 때 이후로 20대들에게 늘 빚진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그 글을 쓰고 많이 느끼고 쇄신해서 지금의〈나는 꼼수다〉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운동하는 친구들이 재미있고 발랄하게 갈 필요가 있다고 느끼거든요. 〈나는 꼼수다〉보세요. 대놓고 희화하고 조롱하니까 이 권력자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잖아(웃음).
너무 엄숙해지면 안 돼요. 엄숙주의에 빠지면 변절이 쉽거든요. 신지호나 김문수 모두 과거 학생운동 사회에서 엄숙주의가 ‘쩌는’사람이었어요. 김문수는 민중당 창당할 때 ‘이래선 안 된다!’고 뛰쳐 나왔죠. 지금 그 사람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세요.
작년에《MB똥꾸 하이킥》(자리, 2010)을 쓰고 받은 인세를 중앙대 노영수 학생에게 전액 기부했어요. 노영수 학생의 경우 중앙대의 재단인 두산그룹이 경영학과 중심으로 학제개편하려는 것에 반대하며 절절하게 싸웠어요. 그는 자기 청춘을 걸고 투신한 거거든요. 그동안 우리가 싸워왔던 것은 정치권력이었는데 노영수 학생은 자본권력과 싸우고 있어요.
넉넉하지 못한 형편, 28세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중앙대를 졸업하면 그래도 두산에 취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이제 누가 노영수의 취업을 보장하겠어요. 어떤 기업이 노영수를 채용하겠냔 말이죠. ‘자퇴 선언’한 고려대 김예슬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절대 이 두 사람처럼 못합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경쟁’을 둘러싼 담론이 아주 첨예합니다. 출발선부터 다르게 시작되는 이 경쟁에 꽤 많은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기도 하고, 불과 이런 현상이 벌어진지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이런 체제에 쉽게 적응한 사람들도 있어요. 극단적인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고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동생인 김용범 씨가 오디션 프로그램〈슈퍼스타K〉시리즈의 책임 PD를 맡고 있잖아요.〈슈퍼스타K〉시리즈가 공중파 프로그램보다 훨씬 인기가 많아서인지 이에 대한 비판여론도 적지 않아요. 가장 주된 것이 ‘악마의 편집’ ‘우리 사회 경쟁을 부추긴다’ 등인데,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동생 편을 들어야 하나요(웃음)? 굳이 동생 편을 들지 않더라도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슈퍼스타K〉와 같은 경쟁이라면 나는 찬성이에요. 자기 실력 제대로 보여주고, 학벌, 집안 배경과 상관없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거잖아요. 요즘은 바빠서 잘 못 보는데 지난해 방영된 시즌 2에서 허각 씨가 우승하는 것 보고 ‘그’(허각으로 총칭되는)가 성공해야 시대가 변한다는 믿음을 품게 됐어요.”
그는 지난해 출판했다 ‘망’했다던《고민하는 청춘, 니들이 희망이다》에서 가수 허각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이력서 상 ‘중졸’, ‘배관공’으로는 알 수 없는 가치, 그래. 눈에 안 보이는 조건이지만 그걸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면 얼마나 살맛나겠냐. ‘간지’나는 이력서 한 줄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쓰는 우리의 친구들, 세상은 한 줄에 담을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있다고….’
상태 좋은 닭들의 ‘각하헌정’ 부흥회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MBC 라디오 같이 하다가 알게 됐어요. 근데 이 형 아주 제멋대로인 형인 거야(웃음). 그 방송 때 나한테 할당된 인터뷰 시간이 10분이었는데, 이 형이 다른 사람하고 7분동안 얘기하고 나한테 3분밖에 안주는 거야. 내가 정말 화가 나서 안 한다고 했는데…. 이후 방송을 계속 같이 하다 보니 친해졌어요.
곁에서 보는 김어준 총수는 아주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고민을 많이 하는만큼 자기 말에 대한 확신이 있죠. 오죽하면 ‘김어준 어록’이라는 게 생겼겠어요? 그 이야기가 최근 출간된 책 《닥치고 정치》에도 많이 나오는데요, 저는 이미 그 책에 나오는 얘기를 형한테 하도 많이 들어서…(웃음).”
MBC 노동조합은 10월 14일 오후 트위터를 통해 “MBC 라디오 윤도현, 김여진에 이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도 강제하차 된다. 24일 개편부터《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폐지 결정”을 알렸다. ‘색다른 상담소’는 김용민과 김어준이 처음 만나 연을 엮은 바로 그곳.
팟캐스트 순위에서 MBC 라디오의 장수 인기 프로그램〈손석희의 시선집중〉과 1등을 다툴 정도로 청취율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봄 개편을 통해 선보인 지 불과 6개월 만에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나는 꼼수다〉에서 김 총수가 현 정권을 거침없이 풍자, 비판해온 것에 대한 보복성 인사가 아니냐는 의혹도 이어졌다.
▶얼마 전〈나는 꼼수다〉17회 곽노현 편 방송 이후 진중권씨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닭장 속에서 닭들이 부흥회하는 분위기. 닭들의 컨디션은 좋아보입니다. ‘시사평론이니 정세분석이니 야매 말고 정품 쓰세요. 야매는 언뜻 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심각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입니다’라고요. 도대체〈나는 꼼수다〉팀과 진중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진중권 씨가 이렇게 독하게 달려드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나는 진중권 형하고 친해요(웃음). 그 형이 우리보고 ‘닭장 안 부흥회여는 격’이라고 했는데, 사실 맞아요(웃음). 곽 교육감이 돈을 건넨 것도 (시기가) 부적절했던 것은 맞지만 부정한 일은 아닙니다. 중요한 선거를 앞둔 이 시기에 굳이 자기가 직접 그럴 필요가 있었냐는 거예요.
진중권 씨도 이 일로 이 중요한 시기에 진보진영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 비난에 일일이 화내면 안됩니다. 우리가 그런 조롱에 화를 내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희화하고 놀릴 수 있겠어요? 진중권 씨도 우선 웃음의 혁명성을 믿고 있고, 그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니까요.”
▶일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김어준 총수가 “나는 진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봤어요. 생각해 보면〈나는 꼼수다〉의 네 사람이 상식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어떤 개념으로 굳이 나눠 봤을 때 과연 진보의 틀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 수 있나 싶더군요.
“진보를 거부하는게 아니라 너무 미안해서 사양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저도 진보주의자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지향했던 분들의 역사성, 그 지난한 과정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숟가락만 얹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에요. 그런 맥락이었을 거예요.
김제동씨도 계속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거부하는데 아마 그런 맥락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묻고 싶어요. 우리나라에 정말 보수가 있는지. 진짜 보수의 가치를 실현하는 보수 정치인, 아무도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갈라서 너는 보수해라 나는 진보한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네요.”
그는 얼마 전 기독교계 매체에서 일하고 있는 한 기자와 대화를 나눈 적 있었다. 그에게 기자는 "(전광훈)목사님의 '빤쓰' 발언을 희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다. 목사님은 성희롱을 하신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가 막혔다. 생각해보니 그가 처음 해고된 것도 순복음교회의 비리를 비난하다 생긴 일이었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비리를 파헤치려다 “종교개혁하려면 나가서 하라”는 말을 들으며 해고, 이직한 다른 회사에서도 노조를 만들려다가 또 해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오프닝 멘트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말을 했다가 해고,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던 한양대학교에서도 해고됐는데요. 불의한 일들을 많이 겪은 셈입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 이후 아무도 나를 채용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생계형 시사평론가가 된 겁니다. 해고통보도 아주 이상하게 받았어요. 라디오에서 하차하게 된 것도 게시판에 붙은 인사이동 공고를 보고 안 거예요.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직도 전임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야 알게 됐어요.
“다음학기 수업도 준비할까요?”라 물으니 “안해도 된다”고 했었죠. 아는 PD형이 “놀면 뭐하냐”고 해서 또 라디오에 나갔는데 거기에서도 해고됐지요. 이런 일들을 겪으며 대통령이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반대로 노무현은 정말 자기 권력을 안 썼다는 생각도 들었죠. 정말 이 사람 ‘바보’인건지, 정의로운 건지 모를 정도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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