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서교회 3년을 돌아보며
1 제1기(태동기)
2007년 12월, 우리들은 거창한 큰 뜻보다는 공동체원들 간 서로의 따듯한 마음을 온기로 느끼면서 조금씩이라도 초창기 사도들을 본받아 성경적인 예배에 충실한 건강한 교회를 만들고자 모였습니다. ‘차별을 넘어서 차이를 인정하는 교회’로서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온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며’ 때로는 내 교회만이 아닌 ‘세상을 섬기고 소통하기 위하여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교회’를 만들자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처음 모임처럼 불편하지만 조그마한 방에서 우리의 예배는 기쁨으로 찬양 드리면서 시작하였습니다.
2 제2기(2008. 3. ~ 2010. 2. 중산고등학교 시절)
기도하며 예배처소를 찾던 중 중산고등학교 음악실을 최초의 예배처소로 마련하여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누구한테 보이고자 하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드리고자 모였습니다. 매주일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며 예배드릴 때마다 기성교회처럼 건물을 소유하지 않아도 이렇게 기쁘게 예배와 찬양 드릴 수 있음을 우리 모두는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너머서 공동체원들은 교제와 나눔을 통하여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진정한 형제자매이며 가족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2 꿈터 1기(백병원 근처)
수요기도회 장소를 찾던 중에 꿈터(교육관)를 백병원 근처에 마련하였습니다. 비록 습기 눅눅한 지하여서 한여름에 춥기까지 하고, 항상 근무하시는 목사님의 콧물 마를 날 없었지만, 수요기도회와 확신반․성장반 교육으로 꿈터는 항상 뜨겁게 달궈졌고, 건강한 교회를 꿈꾸는 우리의 꿈도 알알이 영글어 갔습니다.
2009년도 하반기에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사건이 있었는데, 예배처소인 중산고등학교 책임자가 '방빼' 라고 통보를 한 것입니다. 이에 우리 모두는 기도에 힘쓰며, 새로운 예배처소로 중산초등학교를 만났습니다. 이곳 중산초등학교는 하나님께서 예배처소로 예비하시고 마련해 주신 소중한 기도의 응답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제3기(2010. 3 ~ 현재, 중산초등학교 시절)
중산고등학교 책임자의 교체로 인하여 절박하게 예배처소를 백방으로 찾으며 기도하던 중 중산고등학교와 가까운 중산초등학교를 예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역시 우리 너머서교회의 수준이 이제 막 걸음마 단계였기에 고등학교보다는 초등학교가 예배처소로서 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급박하게 옮기게 되었던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나 봅니다.
현대식 고급스러운 건물의 교회가 즐비한 현대 사회에서, 마치 오래된 시골 교회와 같은 삐걱대는 예배당 바닥을 조심스럽게 걷는 습관을 이곳에서 찾았음에 감사드립니다. 또 예배를 마칠 때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밝은 풍광이 곁들인 온통 초록의 산등성이가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이렇게 좋은 예배처소로 옮기게 해주신 하나님과 중산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이 땅의 희망인 어린 새싹들이 공부하는 이곳에서 더불어 성장하고픈 소망으로 예배드리며 꿈을 키워나갈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3-2 꿈터 2기(호수공원 근처)
중산초등학교로의 이전과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꿈터를 찾기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예배처소의 이전에 대하여 너무 쉽게 생각한 우리의 나태함과 기도 부족을 꾸짖으신 하나님의 꾸중으로 애태우다가 하나님의 준비하심으로 현재의 꿈터를 찾았습니다.
우리의 꿈터는 건강한 교회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산파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모임 장소를 구하기 힘들어하는 단체에게 회합의 장 또는 쉼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곳 꿈터에서 다시 시작된 확신반 과정과 이어질 성장반, 디아스포라 과정이 너머서교회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너머서교회 믿음헬스클럽’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
어린아이와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교회, 처음 시작할 때는 어수선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설교시간에 목사님이 종종 아이들에게 질문할 때, 모두가 함께 예배드리고 있음을 느끼게 할 정도로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앞뒤 뛰어다니던 태환이는 어느덧 초등학생으로 변신하였고, ‘오늘은 오지 않았나?’ 확인할 정도로 의젓해졌습니다. 그리고 엄마뱃속에서부터 우리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10개월생 예서가 그 뒤를 이을 예정으로 예배 찬양시간에 추임새처럼 나름 독특한 화음을 넣어 우리를 미소 짓게 합니다.
지리산 종주를 돌이켜 봅니다. 처음 시작할 때 예비산행으로 북한산 등을 다녀온다고 했을 때 ‘저러다 말겠지’ 하였는데, 이러한 우려를 깨끗이 날려버린 아이들의 굳은 심신이 너무 대견하였습니다. 무덥고 힘든 산행과정에서 험한 산길을 걸으며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새겨본다는 취지를 살리며 한 사람도 낙오 없이 천왕봉에 족적을 남기던 모습들. 너무도 예쁘고 자랑스러운 아이들은 우리 너머서교회가 가진 가장 귀중한 자산이며 미래의 꿈입니다.
초등학생들이 지리산을 종주하며 뜨겁고 힘겨운 호흡을 쏟아놓을 때 청소년부 학생들은 사고의 폭을 보다 넓혀 해외로 향하였습니다.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인도네시아 반다 아체, 중국의 쓰촨 등 환경은 매우 열악하였지만 물설고 낯선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하며 기꺼이 선교, 봉사활동을 마친 후, 훌쭉하게 빠졌지만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온 우리 청소년들. 이들이 있기에 우리 너머서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신 건강한 이 땅의 청년들이 필히 군대에 다녀오듯, 너머서 교인이 되면 꼭 거쳐야하는 성인 교육의 여러 단계 중에서 믿음의 경중을 떠나 참여자 모두가 감동으로 마무리하는 첫 번째 과정이 확신반입니다. 확신반은 신앙심 굳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냥 주일날 교회뜰 밟는 것으로 만족하던 초짜들까지 모두가 깨어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걸음을 떼는 과정이었습니다. 참여한 교우들과 깊게 나눈 친밀감은 잊혀지지 않는 우리 모두의 기억입니다. 이어지는 성장반과 디아스포라과정은 각자의 믿음 건강을 진단하고, 우리의 신앙 지경을 더욱 넓힌 결코 쉽지 않은 단련 과정이었습니다.
이웃과 함께 소통(봉사, 선교)
아이들이 주관하여 다민족 가정 아이들을 돕기 위한 바자회가 매월 한켠 그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비록 규모가 작고 모금되는 금액도 적었지만, 참여하는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대로만 성장해다오!’ 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에 홀트학교의 어린이들과 합동으로 드리는 예배 시간을 우리는 기쁨으로 기다립니다. 비록 1년에 한 번이지만, 주님 오신 날 우리들만의 잔치가 아닌 외롭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행복한 추억입니다.
예배, 교제
너머서 초창기 시절, 모든 교인이 모일 마땅한 장소가 없을 때 모임 장소로 자주 이용하던 목사님 집이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교인 아무라도 꼬리 흔들며 반겨주던 진돗개 혈통의 태순이, 집을 끼고 흐르던 냇물과 이어진 자그마한 산등에 핀 이름 모를 들꽃들. 가끔씩 있었던 고기 굽는 냄새 진동하던 가든파티(?), 모두의 숨겨진 끼를 확인하는 열린 음악회, 대문부터 현관까지 양쪽으로 열병하듯 늘어서서 지난 밤새 까매진 어두움을 하얗게 녹여주며 우리를 반기며 기다리던 자그마한 촛불 행렬과 새벽기도회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예배드리지 않고, 나 자신을 드림으로써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가끔씩 모여서 아직 미개발된 주변 산야의 풍경에 만족해하며 주말농장에서 잠시 땀흘려 채소 가꾼 후에 원두막에서 먹던 야채쌈과 라면 맛, 우리 공동체의 작은 행복이 깃들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교인들이 하루밤을 함께 생활하며 깊은 대화의 시간을 이어갔던 전교인 수련회, 비록 장소가 비좁고 불편해도 활짝 웃으며 함께 할 수 있었음은 우리가 같은 믿음의 공동체임을 확인하였기 때문이겠지요.
현재, 그리고 미래
아직은 3년밖에 되지 않아 여전히 작고 연약하지만, 우리들은 지금 고만고만한 나무들이 차이를 넘어 차별이 없는 너머서 숲에서 몇 개의 뜨락을 이루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각자의 믿음을 키우고, 서로를 사랑하며 푸르름으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처음 시작할 때의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지켜서 너머서 공동체의 숲을 가꾸고, 항상 이웃과 함께하며, 주님과 한 몸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비록 크기가 제각각 다르고 연약한 나무일지라도, 주님 만드신 햇살 따스한 푸른 초장에 뿌리 내리고, 평안함 속에 다툼 없이 예수님 닮는 그리스도인이 되어갈 것입니다. 나아가 세상 끝까지 주님을 증거하라는 말씀을 이행하고자 끊임없이 씨앗을 뿌릴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우리가 지니고 가꿀 숲 규모를 미리 정해 놓았습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겨나는 인간적인 욕심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뜨락 안에 200그루 남짓 나무가 그득하면, 넓은 장소를 확보하는 대신 주님의 숲을 둘로 나눌 것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좋은 공동체이기에 헤어짐이 힘들겠지만, 주님의 뜻이라면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쯤은 참아낼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꿈이 자라서 숲속 시냇가의 작은 돌들에 세월의 이끼가 끼고, 나무들이 자라서 넓은 그늘을 만들 때쯤이면 우리 너머서 숲도 소중한 생명들이 깃들고, 이곳을 지나는 어느 누구도 쉬고 싶어 하고, 쉴 수 있는 넉넉하고 따뜻한 숲마을, 곧 주님의 숲을 이루겠지요. 우리의 진정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이 ‘주님의 숲’을 축복하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