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친구 김영일씨를 만나러 청담역에갔다. 출발부터 마음은 않좋다. 아트센터 가는걸 포기 하고 영감 을 따라 나섰다. 택시로 부평구청 까지 가자고 한다. 승용차 트렁크 에서 워커를 꺼내어서 밀고 나서는데. 뜬금없이 ᆢ지팡이도 가져갈까?ᆢ 이런다. 안그래도 택시에 워커 구겨넣기 할 걱정중인데 나도모르게 빽 소리를 지른다. :개소리 말고 그냥가 !!: 말하는거 좀 봐. 기죽은 영감이 쭝얼 대면서 따라온다. 최근에 잡기힘든 택시 를 겨우 잡아타고 가는데 작전동 쯤 가니 차가 꽉 막혀서 요지부동 이다. 택시 메타 요금은 자꾸 올라가고 차는 움직일 생각을 않으니 속이 터져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자고 했다. 뒤로 조금 가면 작전역 에스컬 레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영감도 내렸다. 워커를 꺼내서 밀고 100m쯤 걸으니 그때부터 괞히 내렸다고 찡찡 거리기를 무려 5번 이나 말한다. 그냥 참고 가지 이렇게 걷기 힘든데 왜 내리자고 했느냐고 짜증이다. 진퇴양난 이니 따라온다. 지하철을 타고 부평구청 에서 환승 하여 7호선을 탔다. 청담까지 무려 30정거장 이나 된다. 그 먼곳 까지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봉투에 30만원 이나 담아서 준비 한다. 친구 마누라가 허리가 아파서 전주에서 청담 제일정형 외과에 왔기 때 문이다. 영감은 30정거장 을 한정거 갈때 마다 남은 정거장을 손꼽아 세어본다. 한시간도 넘게 지하철로 청담 역에 도착했다. 처음가는곳이니 지하철 에서 화장실을 보고 가자고 화장실을 찾으니 500m를 걸어가야 있단다. 할수없이 나는 걷고 영감은 워커를 밀면서 500m를 걸어가서 볼일을 보고 다시 500m를 걸어서 14번 출구로 왔다. 나중에야 알게 됬지만 14번출구 나가자마자 은행 이 여러곳 있으니 굳이 1km를 걸어서 화장실을 안갔다와도 될일 이었다. 친구는 기다리다가 14번 출구로 아들과 함께 휠체어 를 가지고 왔다. 영감은 봉투 만 주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자고 한다. 또다시 한시간 이상 지하철을 타고 가면 나는 당이떨어져 저혈당이 올수도 있다. 김영일 씨가 식당에 점심을 맞추어 놓았다고 해서 못이기는척 하고 계단은 걸어 올라가서 휠체어를 타고 친구 아들이 밀어주어서 식당으로갔다. 영감이 잘 먹지 못할 낙지볶음 집이다. 추어탕 이나 부드러운 명태조림 이면 좋으련만 형편대로 자리에 앉았다. 며느리 와 영일씨 부인 영감도 잘아는 고향선배도 와있었다. 영일씨 부인을 보고 충격을 받은 나는 잠도 오지 않았다. 82세 라고 하는데 너무나도 힘없이 늙은 할 머니였다. 말도 없고 웃음도 없다. 아픈사람 이다보니 머리 염색도 안하니 백발이다. 아들 에게 어머님 원래 말씀이 없으시냐고 물으니 최근에는 귀가 안들리니 더욱 말씀이 없으시단다. 6남매나 키웠고 딸이 셋이나 있다는데도 어머님 옷이 허연 면티 라고 우리 영감이 무척 걱정 을 한다. 잘산다고 하는 사람들인데도 전주사는 사람이어서 인지 며느리는 앞니 를 고쳐야 할것 같은데도 그냥 사는것 같았다. 며느리는 시어머님 부축하고 화장실 다녀 오느라 반찬 가위로 잘라 드리랴 수고를 한다. 친구와 선배와 얘기를 실컷 하고 나서 환자가족들은 전주로 간단다. 병원 에서 수술 을 지금 하면 근육이 없어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운동 해서 근육을 키우고 6개월 후에 오란단다. 병원에서 돈벌기 위해 무조건 입원 수술 시키는건 아닌것 같았다. 내가 그린 부채두점 주면서 어머님 드릴 꽃부채 라고 하니 그제사 부인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눈맞춤을 한다. 우리는 전주로 떠날 사람들과 작별 하고'지하철로 돌아와 부평구청 밖으로 나와서 조금쉽게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택시에서 여자 운전기사와 입에 침이 튀기도록 선거 얘기를 하는데 고맙게도 운전기사님이 영감 말에 좋게 맞장구를 쳐준다. 영감은 몸살을 몇일 이나 앓았다. 청담 역은 벽이 온통 생화를 키우고 있어서 사진을 찍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