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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 야딩에 다녀오다.
7월 26일 아침 스촨성 청두의 세랑게티 호텔을 나섰다.
스촨성은 우리말 발음으로 사천성이다. 운남성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메콩강에서 올라오는 습한 구름과 티벳트의 더운 바람이 만나는 곳이어서, 강우량이 중국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다. 연간 강우량이 3,000미리이다. 한국의 연간 강우량이 1,200 미리이니 한국의 강우량보다 배도 넘는다. 7,8월이 우기여서 거의 비가 없는 날이 없다. 우리가 여행지로 나서던 날, 날씨가 쾌청했다. 이번 여행의 좋은 조짐이었다.
27인승 리무진에 올랐다. 차에 올라 깜빡 졸았다. 눈을 뜨니 절경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었다.
협곡사이로 강물은 흘렀고, 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을 곱게 수놓고 있었다. 터널이 많은 차로였고, 강물은 잿빛이었다. 수백길이 넘는 협곡을 따라가다 터널로 들어섰다. 터널길이가 협곡을 따라 난 도로보다 훨씬 길었다. 협곡의 좁은 공간에 작물을 제배했다. 옥수수 양배추 등. 엉성했지만 비닐하우스도 있었다. 하늘이 좀 넓어졌다.
제법 큰 마을 와룡진에 도착했다. 중국의 행정구역은 성, 시, 현, 진, 향, 촌으로 되어있다. 하늘이 넓어졌다. 성은 우리로 치면 도였고, 진은 면정도 된다. 해발 2,000미터를 넘었다. 해발 400미터에서부터 올라온 것이다. 산 사태가 나서 흙이 도도를 덮었다. 흙더미를 도로가로 밀어낸 공사 흔적이 있었다. 하늘이 넉넉하게 넓어졌다. 이젠 터널은 없고, 계곡 사이로 굽이굽이 돌아간다. 해발 3,000을 넘었다. 고산증을 조금 느꼈다. 머리가 지근거렸고, 속이 약간 메슥거렸다. 고갯길 정상에서 찻길이 막혔다. 차를 내렸다. 도로공사중이어서 일방통행만 가능했다.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려 고갯길을 넘어갔다. 중국사람들은 이런 기다림에 익숙해 있었다.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해발 3,800미터의 파랑산재를 넘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골짜기로 내려가고 있다. 경관이 좋은 위치에 차를 멈췄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쓰구낭산의 쓰구낭봉 우리말로 번역하면 4자매 산이다.
막내 쓰구낭봉(6,250), 셋째 신구낭봉 (5,664), 둘째 얼구낭봉(5,454), 첫째 따구낭봉(5,038)이다. 흥미로운 것은 높이 순으로 자매의 순서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잘 보이는 산은 쓰구낭봉이다. 사천성은 비가 많아 이런 경관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는 데. 우리들에게는 큰 행운이다.
우리가 가는 길은 차마고도 중의 천장북로다. 천은 사천의 천이고 장은 티벳트의 장족을 의미하는 장이다. 그래서 천장이 되었다. 천장북로에는 중국에거 가장 높은 산 공가산(7,556)이 있다. 천장 남로에는 유명한 아미산이 있다.
일룽이라는 곳에서 차를 멈췄고, 입장권을 사서 셔틀버스를 타고 3,900까지 이동을 했다.
언색호
쓰구낭산의 4자매산
언색호 주위를 돌았다. 언색호는 산사태나 홍수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생긴 자연호수였다. 언색호를 지나 개울물을 따라 3키로를 내려왔다. 가문비나무 숲길이었다. 중간에 보트를 대여해주는 데가 있어 일행 중 몇몇은 보트를 타고 내려왔다. 격류가 아니어서 위험해보이지는 않았지만, 스릴이 있어보였다. 스투파를 한 바퀴돌았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1,200까지 내려왔다.
숙소가 있는 단파에 도착했다. 단파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사과와 약초 그리고 고산인들에게 필수품목 소금을 거래하는 곳이었다. 동티벳의 중심지이다.
7월27일
아침 식사 전에 호텔을 나서 산책을 했다. 우리가 잤던 호텔이 대금하호텔이다. 호텔앞을 흐르는 강물이 대금하이고, 어제 우리가 따라 내려왔던 강물이 소금하이다. 대금하와 소금하가 조금 아래에서 합쳐져 대도하가 된다. 대금하를 따라 올라가 수력발전소가 있는 곳 까지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강건너 산자락 야크의 울음소리가 황소개구리 울음소리와 비슷했다.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나와 RV차량에 옮겨 타고 산책했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 발전소 뒤를 넘어 산길을 올라갔다. 중국에서 아름다운 마을로 지정된 답거장채였다. 티벳트 족인 장족인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대금하를 내려보는 산비탈에 형성된 마을이었다. 옥수수, 자두, 견과류를 장족여인이 팔고 있었다.
호두 한 봉지를 샀고, 장족여인과 사진을 찍었다. 당나라의 경국지색 양귀비가 장족출신이라는 것도 여기 와서 알게 되었다.
답거장채를 내려와 리무진 버스에 옮겨 타고 협곡지대를 따라 올라갔다. 리무진버스 일 인석에 의자를 뒤로 제끼고, 목 베개를 했고, 반은 누운 자세로 절경을 즐기며 올라갔다.
연신 터지는 탄성, 절경 또 절경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것도 있다. 바위 끝 하늘이 닿는 곳에 독수리가 유영하고 있다. 열 마리 스무 마리. 커다란 독수리 였다. 처음에는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협곡을 올라 전망이 좋은 곳에서 버스를 내렸다.
멀리 눈 덮힌 산이 아라 설산이다. 아라는 동방의 흰 야크라는 뜻이 있다. 가져온 수박을 잘라 파티를 했다. 휴게소 화장실 입장료를 받고 사는 장족이 키우는 돼지가 수박껍질로 포식을 했다. 고산지대에 사는 돼지일지라도 토실토실했다.
두 시간여 계곡 길을 따라와 고갯길을 넘어섰다. 해발 4,000였다. 수목한계선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나무가 자라지 않았고, 풀이 평원을 덮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고원지대였다. 진녹색 초원의 구릉지대에 여기 저기 검은 점이 박혀있었다. 야크였다.
초원지대를 내려와 혜원사 마을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인구가 2천여 명되는 절 촌이었다. 한족을 이 마을에 이주시켜 생활수준을 높였다고 하는데 그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인류가 제국이 생겨나면서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에게 상습적으로 써먹었던 말이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차는 초원을 달렸다.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 산세는 여전히 완만했지만 경작지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 평원지대를 가로질러 강물이 흘렀다. 들판에 밀, 보리, 감자들을 심은 경작지와 비닐하우스도 보였다. 토질은 석회암지형에서 진흙 점토질로 바뀌었다. 이런 초원지대에 석회암이 날카롭게 서 있는 석림이 인상적이었다. 해발 4,000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간다.
탑공초원에서 차를 내렸다. 룽따가 휘날리는 스투파에 올랐다. 백여미터 정도를 올라온 고원의 전망대였다. 해발 3,700미터. 사방을 둘러보는 파노라마 뷰가 아주 좋았다. 고산 증에 약간 숨이 찼다. 내려와서 탑공사를 둘러보았다.
평원을 완만하게 흘러왔던 강물은 용틀임을 하면서 협곡을 내려갔다. 석회암지역이라서 물빛이 부했다.
타공진에 차를 내렸다. 바위에 온통 새겨진 글자 옴마니 반메옴( 온 우주에 충만되어 있는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될지어다)이다. 차는 고갯길을 십분이상 올라갔다. 차가 벼랑위를 달리고 있다. 저 아래 계곡물이 아스라이 보인다. 길고 긴 터널에 접어들었다. 터널을 지나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벼랑과 협곡의 시작이었다. 타원형의 링 로드를 만들며 내려간다. 링 로드 세 개를 내려서 아장현 숙소에 도착했다. 해발 2,800
7월 28일
날씨가 쾌청하다. 아장현은 아주 좁은 협곡에 있다. 지진이나 산사태의 위험을 항상 안고 사는 마을이었다. 어젯밤에 산책을 나갔다가 십분만에 돌아왔다. 도로가 좁고 시가지가 옹색해서 돌아다니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그런다고 고산지대라서 다운타운에서 술 한 잔 마시기도 꺼려졌다.
오늘 저녁에 묵을 숙소는 3,900에 있다. 고도 천미터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천장 남로를 따라간다. 사이클 족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저들은 성도에서 라싸까지 가는 사람들이다. 자전거로 한 달 넘게 달려야 라싸까지 도착할 수 있단다.
버스는 해발 3,900의 터널을 통과했다. 카지라산 전망대에 도착했다. 해발 4,718 이다.
수목한계선 까지 가문비나무가 작은 관목으로 영역을 확정지었고, 그 위로는 초원이다. 야크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초원은 끝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산증만 적응이 된다면 천상의 낙원이었다. 초원 위를 걸었다. 저 아래 수목한계선 관목이 자라는 데 까지. 푹신푹신 하늘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가끔 야크의 배설물이 발에 걸렸지만 거북스럽지 않았다. 여름의 유목민 정착촌은 겨울에 따뜻한 곳으로 내려간다. 겨울에 건초와 함께 소금을 넣어준다고 했다. 고산의 동물들도 소금은 꼭 필요한 가 보다. 차는 분지 가운데 유목민 촌을 지나서 능선을 오르내렸다. 언덕의 경사지에 촘촘하게 박혀있는 검은 점들은 야크들이다. 고산지대에서 야크는 버릴 것이 없다. 배설물은 땔감이 되었고, 젖을 짜고, 고기와 가죽을 얻고, 털은 고급 모직물이고, 뿔은 장식용으로 팔려간다.
그 날 네 시간 이상 초원지대를 달렸다. 고원에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평화로웠고, 상상에 그려왔던 낙원의 모습이었다. 중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던 ‘ Home on the Range’( 언덕위의 집)가 절로 흘러나왔다. ‘들소들은 말없이 풀을 뜯고 망아지는 뛰놀던 그 곳’. 이번 여행에서 가장 편안했고, 아름다웠고, 평화로웠던 잊을 수 없는 초원지대였다. 고산지대를 오르락내리락해서 약간 메슥거림은 있었지만, 견딜만했다.
내려보이는 초원이 모야대초원이고, 그 앞에 보이는 마을이 리당이다. 리탕이 해발 4,000이다. 리탕에서 점심을 먹었다.
티벳트 꼬마의 사진을 담았다. 리탕사를 지나사 잠깐 차창 밖으로 우박이 내렸다. 멀리서 번개가 번쩍거렸고. 네 시간 째 초원지대를 달렸다. 삼림지대로 들어섰다. 협곡으로 내려가니 다른 초원이 펼쳐졌다. 이렇게 삼단계로 고원지대를 내려갔다.
여기는 분위기가 다르다. 멀리 높은 산맥들이 병풍처럼 둘려있다. 강폭이 순간 넓어졌고, 해발 3,500의 평원에 내려섰다. 방목지와 대규모 영농단지가 같이 있는 들판이다. 화예 밭에서 꽃을 캐는 여인들이 삼십여명 작업을 하고 있다. 버스가 협곡으로 들어서고 있다. 격류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고도가 높아진다. 초원지대를 지났고, 암석너덜지대에 도착했다. 암석지대에 이르니 마음마져 딱딱해지는 기분이었다. 초원지대를 벗어난 아쉬움이 있었다.
계속 산등성 굽이 길을 올라서 투얼산 즉 토끼산에 올랐다. 해발 4,696.
지질공원에 도착했다. 해자산이라 불렀다. 티벳트 사람들은 바다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작은 호수조차도 바다라 부른다. 여기 해자산은 바다가 많은 지역이다. 가이드가 귀뜸해주었다. 바위산에는 초원지대와 달리 산소가 더 부족하므로 고산증에 조심하라 했다. 아까 토끼산보다 몸이 더 무거웠다. 좀 시간이 걸리는 호수가에 다녀왔다.
내려가는 길에 휴게소가 있어 차를 내렸다. 고원에서 모아진 강물이 격류를 이루며 내려간다. 내려서 보는 곳 마다 비경이었다. 石河강이다. 따오청에 도착했다. 입구에 백탑이 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중에 가장 높은 곳이다. 해발 3,700
7월 29일 야딩 트레킹 첫날
새벽에 잠이 깨어 아침까지 뒤척였다. 고산에 오면 생기는 조급증이다. 항상 잠이 모자라는 강박에 쫓긴다. 네 시간이라도 숙면을 취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밤새 비가 왔다. 오늘 빗속에 여정이 진행될 것이다. 아침 아홉시반에 출발했다. 오늘 일정이 바쁘지는 않은가 보다. 버스는 시와산(4,513)을 넘어 협곡을 내려갔다. 날씨가 차갑다. 버스안에서도 추위를 느낄정도였다. 기사에게 히터를 틀어 달라 했는데 고산이라 가스 배출이 되지 않아 힘들다 했다. 중간에 공령사라는 절에 들려 상그릴라 현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 일정은 앞에 보이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되었다. 야딩 풍경구. 야딩은 티벳트어로 세 개의 성스러운 설산을 뜻한다. 센나이리, 샤눠둬지. 양메이용의 삼대 설산이 있다. 센나이리는 관세음보살을, 샤눠둬지는 금강보살을, 양메이용은 문수보살을 상징한다. 샹그릴라 현에서 야딩을 가려면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한 시간 동안 산을 넘어야 한다. 거리로는 35키로 정도 되었다. 야딩 풍경구에서 셔틀버스를 내렸다. 오늘의 코스는 충고사를 거쳐 진주해까지 다녀오는 것이다. 야딩풍경구 입구가 해발 3,600이고, 진주해가 해발 4,080이었다. 약 600미터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여정이었다. 세 시간 정도 걸렸다. 많이 힘이 들었다.
진주호와 뒤에 보이는 설산 센나이리
다시 셔틀 버스를 타고 한시간 걸려 산을 넘어 샹그릴라현으로 내려와 호텔에 짐을 풀었다. 샹그릴라는 해발 2,800이다. 해발 3,000미터와ㅏ 4,000미터 대를 사흘 째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다. 내일은 4,700의 고도가 기다리고 있다. 컨디션 조절에 유의해서 내일등정을 수월케 해야겠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7월 30일
잠 잘잤고, 컨디션 좋다. 긴장이 밀려온다. 이번 여행의 가장 힘든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어제와 같이 셔틀버스를 타고 한 시간 고개를 넘어와 야딩풍경구에 도착해서 미니버스로 갈아탔다. 이십분 정도를 올라가 출발지점에서 차를 내렸다. 운무가 가득하고 간간이 비가 내렸다. 오늘 좋은 경관은 기대하기가 힘들겠다. 탈 없이 다녀오기만을 기원했다. 물과 우의를 배낭에 넣었고, 점심용 비상식량을 짐에 같이 꾸렸다. 사과, 유우, 젤리가 들어있는 쥬스, 요트밀이 들어있는 캔, 빵이 들어있다. 짐을 최소화했다. 무릎 보호대와 스틱을 여행짐에 꾸려왔는데 오늘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겠다. 목책을 따라 내려가서 개울을 건넜다. 설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거울 같이 맑았고, 평원에 야생화가 반겨주었지만 숨이 약간 찼고, 긴장이 밀려왔다.
낙융목장에 도착했다. 이 목장은 야크가 없었고, 말을 주로 기르고 있었다. 고지에 올라가고자하는 관광객들에게 말을 태워 올려주는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말 빌려 타는데 300위안 우리 돈으로 5만 원정도 말 타는 거리 3,5키로였다.
아홉시 반에 말 빌리는 마굿간을 출발했다. 컨디션이 좋은 편이다. 이대로 오른다면 네 시전에 집결지에 내려올 수 있겠다. 평탄한 길 2키로 정도를 걸어 완경사에 올랐다. 출발 한 지 한 시간정도 지났다. 폭포 앞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직 견딜만하다.
멀리서 보였던 랜드마크, 이동통신 탑을 지났다. 출발해서 한시간 사십분 정도 경과했다. 반환점의 오분의 삼은 온 것이다. 급경사를 올라갔다. 고도가 높아지고 경사가 급할수록 보속을 낮추고, 더 많이 쉬어가고 있다. 두 시간 지나서 우유해와 오색해의 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했다. 열두시가 다 되어간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비상식량 점심을 꺼내 먹었다. 갑자기 비상사태 발생 여기 올라오기 전부터 배가 뒤틀리기 시작했던 것이 급기야 탈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도 삼거리에 간이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고산의 비상사태는 남녀구별도 없었고, 체면도 없었다. 줄줄 흘러내렸다. 나중에 배탈의 원인을 찾아보니 전날 진주해에 올라갈 때 너무 물이 깨끗했다. 빙하에서 내려온 물이 아닌가. 생수병에 담아 마신 적이 있었다. 여행의 금기 사항을 어긴 대가를 톡톡히 치렀고,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배탈에 시달렸다.
이미 도반들은 이미 앞서 갔고, 맥은 빠져 있었다. 비는 뿌려 날씨 기온은 낮아졌고, 우의를 입었는데도 추위는 옷자락 안으로 스며왔다. 유우해에 도착했다. 후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도반 한 사람이 얼굴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고산병 약을 건넸다. 여기서 약을 받아먹은 것이 바로 이상증세로 나타났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가빠졌다. 오색해까지 백미터만 오르면 되었다. 그리고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았다. 세상일 이라는 것이 무엇이든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한 것이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더구나 모든 사람에게 모든 약이 명약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약을 거부하지 않았던 책임이 내 자신에게 책임이 컸다. 조급증이 생겨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오색해 백 미터 아래에서 바로 하산을 결행했다.
하산하면서 일행중 선두를 만났다. 그들은 이미 오색해를 돌아서 내려온 것이다. 평원에 내려왔더니. 오전 내내 비가 뿌렸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던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말들이 굴레를 벗고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었고, 파란 하늘에 구름이 흘렀다. 노란 야생화가 지천에 널려있었고, 멀리 영봉에는 눈이 덮혀 있었다.
배경으로 보이는 설사이샤눠둬지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그렸던 샹그릴라의 모습은 여기까지 였다. 지상에는 더 이상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유토피아는 없었다. 북적이는 저자거리로 내려가야겠다. 매연과 미세먼지에 시달려도, 고산증이 없는 사람들의 세계로 내려가야겠다.
그날 샹그릴라에서 내려와 버스로 두 시간을 이동하여 전전날 묵었던 따오청의 호텔에와서 짐을 풀었다.
첫댓글 서울지역 35도가 넘는 날씨에 바우가 올린 설산 사진만으로도 가슴속에 찬바람이.....
멋진 여행을 하고와서 여행기 올려준 바우님께 박수를 보낸다.
고산 트레킹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수뤌치 않았습니다. 염려덕에 잘 다녀왔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친구들과 같이 하는 즐거움이 제일이었습니다.
대단한 바우님 부럽고 박수를 보냅니다.
오 ! 중연선생 반갑습니다. 좋은 시절에 한번 만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