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분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분 아들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바른 믿음} 정이철 <합동이 박형룡 신학만 영원히 추종하면 구원의 단물이 흘러넘칠까?>
https://archive.ph/uGvci
※ 편의상 아래에서 <구원의 단물>로 적는다.
다음은 <구원의 단물>에서 옮기는 글이다.
능동 순종 교리의 근거를 계시되어 기록된 성경 속에서 한 구절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나는 그 동안 <바른 믿음>에다 작성한 능동 순종 교리를 비판하는 모든 기사들을 내릴 것이다. …(중략)… 성경이 말하지 않는 내용을 신학이 가르치고 있으면, 그 신학은 거짓 신학이다. 특히 구원에 대해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신학은 이단 신학이다.
이것이 능동 순종 교리의 심각성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능동 순종 교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구원의 방식(원리)임을 증거하는 성경의 말씀을 한 줄이라도 제시하면, 나를 <바른 믿음>을 폐쇄할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약속한다.
예장 고신 박영돈 목사님 구원론을 이단시할 때부터 양심에 화인 맞았던 정이철 목사…. 양심에 화인 맞은 정이철 목사 이 약속에 소망을 두고 믿느니,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게 낫겠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믿고 싶다. 이 지푸라기 믿음 때문에 정이철 목사 이름 앞에 Wolf를 쓰지 않고 있다.
{바른 믿음}에서 ‘그리스도 능동(율법준수) 순종을 비판한 모든 글’을 내리는 일을 바라지 않는다. 그 글들은 ‘예장 합동 꼴뚜기파 목사들이 스승 서철원 목사님 좌충우돌 혼미한 신학을 분별하지 못한 채 맹종한 나머지 어떻게 예장 합동을 망신살이 뻗치게 하는 꼴뚜기 짓거리를 했는가?’ 하는, ‘우리나라 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세기의 듣보잡 짓거리를 했는가?’ 하는 역사의 기록물들이기 때문이다. 이 귀중한 역사의 기록물들은 그대로 놔두고, 스승 서철원 목사님을 비롯해 예장 합동 꼴뚜기파 제자 목사들은 총신신대원에서 재교육을 받거나 재교육이 싫으면 목사직에서 내려오면 된다.
정이철 목사가 ‘그리스도께서 능동(율법준수) 순종으로 획득하신 의義’, ‘그리스도께서 율법준수의 경건으로 받으신 칭의(구원)’(딤전 3:16. 히 5:7)를 부정하는 까닭은 <구원의 단물>에서 보는 대로, 생명과 사망의 법으로서 율법, 율법의 두 기능인 ‘지키면, 살리라.’는 율법의 축복과 ‘어기면, 죽으리라.’는 율법의 저주에서 율법의 저주만을 알기 때문이다. 즉, 성경 지식과 신학이 짧은 나머지 ‘지키면, 살리라.’는 율법의 축복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한 구절이 아닌 여러 구절을 제시했음에도, “능동 순종 교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구원의 방식(원리)임을 증거하는 성경의 말씀을 한 줄이라도 제시하면,”??????? <구원의 단물>에서 정이철 목사는 “성경 어디에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생을 위한 공덕을 대신 만들기 위해 모세의 율법을 지키려고 신경 쓰신 흔적이 나오는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지키는 그 사람에게 영생의 자격이 인정된다는 가르침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질문하며 “칼빈과 박윤선과 서철원 박사는 율법으로 영생의 의를 얻는 기능은 기독교 속에 처음부터 없었다고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데서 나온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ㅡ박윤선 목사님은 빼고ㅡ 칼빈 선생님과 서철원 목사님과 관련한 이 새빨간 거짓말을 <왜 예장 합동 이대위 결정은 어리석은 짓인가? ①: 잡설雜說을 주장하는 이단들도 {성경}을 가지고 있다.>1)에서 밝혔다.
다음은 까마귀 고기를 먹은 정이철 목사 혼미한 정신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정이철 목사 글이다. <왜 예장 합동 이대위 결정은 어리석은 짓인가? ①>에서 옮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칼빈은 (단지 이론상으로) 구약의 율법에게 영생을 주는 능력이 있었다고 주해하였다.
…(중략)…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미 칼빈이 율법을 대충 지키지 않고 100% 완벽하게 지킨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적 가능성을 여는 말을 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청교도 능동순종주의자들은 율법에게 구원을 주는 기능을 말한 칼빈을 자기편으로 당기기 좋은 여건을 차지하여 버렸다.
행위언약의 율법은 ‘어기면, 죽으리라.’는 저주를 선언한다. 의義의 율법을 범한 죄인에게 저주를 선언한 율법이 그 어찌 죄인을 살리겠는가. 다음은 <왜 예장 합동 이대위 결정은 어리석은 짓인가? ①>에서 옮기는 내 글이다. 장로교 조직신학 박사로서 ‘율법은 죄인을 살리고 구원하는 기능은 없고 정죄하고 죽이는 기능을 갖는다.’고 명확하게 서술하셔야 했음에도, 혼미하신 서철원 목사님 정신 상태를 논증한 글이다.
주님께서 “옳도다.” 하신 말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주님 말씀은 칼빈 선생님 말씀으로는 “하늘에서는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의義 외에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이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서철원 목사님은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⑤: 구원론} (서울: 쿰란출판사, 2018)’ 121쪽에서는 “본래, 의義는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켜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죄인은 범죄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으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바른 주장, 칼빈 선생님과 똑같은 주장을 하셨다가 ‘서철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서울: 쿰란출판사, 2019)’ 49쪽에서는 “율법은 살리고 구원하는 기능은 없고 정죄하고 죽이는 기능을 갖는다.”는 엉뚱한 주장을 해 버리십니다.
다음은 <구원의 단물>에서 옮기는 글이다.
정승원은 영원 전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구속언약 속에서 성자 하나님의 역할을 능동적 순종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중보자 삼으시고 자기의 백성을 창조하시기로 의논하시고 계획했다는 것을 개혁신학은 구속언약이라고 한다 (마이클 호튼 2017, 109). 그러나 이 언약의 실체적 증거를 성경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그렇게 유추되어지는 진리라고 이해되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능동 순종을 우리가 문제시하는 이유는 율법주의 이단사 상을 교회에 도입시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원래 하나님은 율법을 잘 지키는 자에게 영생의 자격을 인정하시는 분이라는 이단적 전제가 능동 순종 교리에 깔려있다. 단지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것이 강조 사항이라면 우리는 능동 순종 교리에 저항하지 않는다. 사람이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그리스도가 대신 지켜서 얻으신 의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고 하므로 우리는 죽을지라도 거부하는 것이다.
정승원은 박형룡의 말을 인용하여, 영원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신 공덕을 통해 한 백성을 만들어 내자고 하신 하나님의 경륜이 있었다는 주장한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영원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 내부에서 성자께서 사람이 되어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얻으시는 공로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겠다고 의논하셨다는 것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말인가?
<구원의 단물>에서 정이철 목사는 ‘박윤선 {계시 의존 사색} (수원: 영음사, 2015)’ 126쪽 글을 옮겨 “박윤선은 율법으로 영생의 의를 얻는 기능은 기독교 속에 처음부터 없었다고 가르친다.”는 주장을 위한 근거 텍스트로 삼는다. 아쉽게도 {계시 의존 사색}은 내게 없다. 그러므로 1954년에 초판을 펴내고 1962년 3월 6일에 3쇄판(증보판)을 펴낸 ‘박윤선 {성경주석 로마서} (서울: 영음사, 1962)’2)에서 글을 옮긴다.
다음은 ‘박윤선 {성경주석 로마서}’ 172쪽~173쪽이다. ㅡ참고로, 내가 “(히 12:2)”로 고친 증거 성구는 “(히 12:12)”로 적혀 있다.ㅡ ‘우리가 덧입는 칭의와 얽힌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를 부정한 이단 정이철 목사는 확증편향에 따른 ‘박윤선 목사님에 관한 거짓 증거’를 멈추고, 우리말로 번역된 게할더스 보스 목사님 책이 여러 권이니, 이 책들을 빠른 소화력으로 공부함으로써 “종말은 구원을 앞선다.” 하신 진정한 천재 신학자 게할더스 보스 목사님 불후의 명언3)에 담긴 의미를 깨닫기 바란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9절~30절에 담긴 의미를 깨닫기를 바란다. ‘우리가 덧입는 칭의와 얽힌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를 부정한 이단 정이철 목사를 추종한 이단들인 예장 합동 꼴뚜기파 목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본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 의롭다 하심을 위해 살아나셨느니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 우리 중보자가 되셨다. 그것은 영원 전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계약돼 있었던 사실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 계약을 실천하시지 않았다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신실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 영원한 계약대로 중보자 직임을 완성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 되시고 신자들을 대표하셔서 모든 의를 이루셨다. 이 사실이 십자가 위 그분 죽으심에서 절정으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가운데서 살리셨는데, 그것은 의로운 중보자로 의롭다고 일컫는 선언이다. 암만 의로울지라도 심판자가 그를 의롭다고 한 선언이 있기 전에는 상급이 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롭다고 하신 증표는 그분이 몸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신 사실이다(히 12:2).
…(중략)…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함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의를 완수하셨고 몸의 부활을 받으시면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으니, 신자들은 그들 대표이신 그분을 믿을 때 그저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다음은 ‘박윤선 {성경주석 로마서}’ 212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그분은 율법 아래 오셔서 율법을 지키셨으나 실상 자기 자신을 위해 율법 아래 계실 까닭이 도무지 없는 초월자이시다.
다음은 ‘박윤선 {성경주석 로마서}’ 246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❿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됐도다. 자역字譯하면 “계명은 생명을 목표한 것이로되 그것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명을 주신 까닭은 인간이 그것을 바로 받아 순종하면 영생할 수 있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그것을 악용하므로 도리어 사망에 빠졌다. 이런 비운悲運에 대한 책임이 계명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성경주석 로마서}에서 이토록 명명백백하게 ‘생명(영생)을 주는 의義의 율법’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율법 아래 나신 그리스도 능동(율법준수) 순종’ 역시 가르치셨다. 또한 ‘우리가 덧입는 칭의와 얽힌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 역시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확증편향에 사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성경 지식과 신학이 짧은 이단, ‘그리스도께서 율법준수의 경건으로 받으신 칭의’를 부정한 이단 정이철 목사 기준에서는 박형룡 목사님 제자이신 박윤선 목사님은 이단이다. 이 두 분이 이단이면, 칼빈 선생님도 이단이다. 이분들이 이단이면, ‘로마서 2장 13절과 7장 10절과 10장 5절’을 말씀하신 바울 사도 역시 이단이다.
============
1) <왜 예장 합동 이대위 결정은 어리석은 짓인가? ①>
https://cafe.daum.net/reformedcafe/jMaU/168
2)
3) 황영철 <종말론은 구원론에 앞선다.>
https://cafe.daum.net/reformedcafe/jMaU/210
※. 다음에 쓸 글 제목은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정이철 목사는 정신 차리기 바란다. ⑰: “하나님의 아들”(롬 1:4)은 성자 하나님을 뜻한 호칭이 아님을 깨닫기 바란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