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가 지난 18일 현대차그룹 컨소시엄에 낙찰됐다. 낙찰가는 감정가(3조3000억원)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원을 제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금액을 부지면적 7만9342㎡으로 나누면 3.3㎡당 약 4억3000만원이 넘는다.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에 사옥이 있었던 한전본사는 1983년 6월에 땅을 매입해 1986년 새 사옥을 지어 입주했다. 당시 토지 매입가는 23억원으로 3.3㎡당 9만원 선이었다. 정부는 40여년만에 천문학적인 수익을 남기는 땅장사를 했다.
이 소식을 지켜보는 종단은 심정이 복잡하다. 한국전력이 10조 5500억원을 받고 팔았다는 이 땅은 1970년 초까지 봉은사 소유였다. 봉은사는 한전 부지 외에 그 앞쪽 코엑스, 공항터미널, 무역센터, 아셈타워 등이 자리한 땅과 봉은사 뒤편 경기고와 청담동 대부분, 탄천 부지에서 삼성동 일원까지 강남 일대 20만여 평 및 말죽거리에 논 1만평을 소유하고 있었다. 땅 대부분이 밭과 임야 논 등이었으며 스님들은 여기서 농사를 지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 부지가 천문학적인 가격에 민간기업에 매각됐다. 이 땅은 원래 봉은사 소유였지만 1970년 종단 결의를 거쳐 정부에 매각됐다. 하지만 합법적인 계약관계 이면에는 정부가 조직적으로 종단차원의 매각 결의를 이끌어냈다는 정황이 보인다.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실규명이 필요하다. 사진은 코엑스 등 봉은사 주변 모습. |
지금의 강남은 당시 전형적인 농촌이었으며 봉은사는 뚝섬이나 마포에서 배를 타고 가야할 정도로 교통이 불편한 시골 절이었다. 그 많던 봉은사 땅은 1960년대 경제개발 바람을 타고 지금의 강남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야금야금 팔려나갔다. 봉은사 토지를 판 사람들은 정화 이전 살던 대처승과 그 가족들이었다.
봉은사는 1955년 정화해 주지가 비구승으로 바뀌었지만 실제 비구승이 살게 된 것은 1964년 광덕스님이 처음이었다. 그 사이 10여 년 간 대처승들이 집중적으로 봉은사 토지를 불법 매각한 것이다. 이들은 정화 후 비구승들로 주지가 교체되자 서류를 위조해 불법(不法) 매각했다. 불법 매수한 인사 중에는 강남에 호텔 여러 채를 보유하고 부동산 재벌로 성장한 일가도 있다.
10여 년에 걸쳐 대처승들에 의해 봉은사 토지가 불법으로 유실되기는 했지만 봉은사 앞 지금의 코엑스 일원과 한전 부지 구역 10만여 평은 남아 있어 스님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코엑스 부지는 조선시대 승과고시를 치르던 승평(僧坪)이었다.
이 땅 10만 평(330,578.512㎡)을 종단이 1970년 5억3000만원에 정부에 매각했다. 당시 매매가격은 평당(3.3㎡당) 5300원이었다. 현대차그룹이 낙찰 받은 3.3㎡당 4억3879만원의 8만분의 1이다.
봉은사 소유 10만평이 정부 소유로 넘어가게 된 과정은 겉으로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서류상 하자가 없고 단순히 종단의 판단 잘못인 듯한 매각으로 보이지만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혹이 많다. 정부가 봉은사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 주도했다는 정황이 곳곳에 드러난다.
삼성동 청담동 말죽거리 등
현 강남 대부분 봉은사 땅
1970년 옛 ‘승과평’이었던
코엑스 일원 韓電부지 매각
반면, 종단의 대처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해 못할 정도로 허술하고 급하다. 이 역시 종단의 잘못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 않다. 누군가 스님들을 하나로 움직인 정황이 뚜렷하다. 곳곳에 권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정부가 봉은사 부지를 택하게 된 것은 정부의 ‘제2서울 정책’에 의해서다. 정부는 도시화로 인한 서울 팽창과 김신조 일당 남파, 울진 삼척 무장공비 사건 등으로 북의 남한 침입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한강 이남에 대한 제2서울 건설을 서두른다. 1970년부터 본격화된 남서울 정책은 정부가 추진했지만 정보 관계 때문에 서울시가 맡았다.
시는 봉은사 앞 10만평을 사들이기 위해 비밀 작업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신분을 속이고 종단을 기망한 정황이 보인다. 정부는 봉은사 부지를 사들일 계획을 세워 서울시를 앞세우고, 서울시는 민간사업자로 위장해 종단과 접촉했다. 당시 이 사업의 실무를 맡았던 손정목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실을 알면 조계종에서 땅값을 올려 받을 것을 우려해 민간 사업자로 속였다”고 밝힌 바 있다.
손 씨의 회고에 따르면 처음에 서울시가 나섰지만 돈을 지불하는 단계에서 상공부 고위 관료가 서울시를 믿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상공부가 신분을 드러낸다. 조계종은 그 사실을 알고 평당 1000원씩 더 요구해 최종적으로 평당 5300원씩, 모두 5억3000만원에 넘겼다. 정부가 처음부터 떳떳하게 정부 정책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한 것이 아니라 종단을 속인 것이다.
두 번째는 정부가 종단의 조바심을 부추겨 봉은사 땅을 매각토록 했다는 정황이다. 종단이 봉은사 땅을 팔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지금의 동국대 혜화관 건물 때문이었다. 혜화관은 당시 공무원 연수원이었는데 장충동으로 나가는 길목을 막고 있어서 동국대 경관과 발전에 큰 장애였다.
정부 영동개발 계획수립 후
종단 주변 불안감 조성
정부 부처 이전한다 해놓고
계약 후에는 없던 일로…
1968년께 정부 청사를 대전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에 따라 연수원도 매각물로 나왔다. 종단에는 교회에 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국대를 가로막고 서 있는 건물이 기독교에 넘어간다는 사실에 종단은 큰 혼란에 빠져 이 건물 인수가 종단의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올랐다.
여기에다 종단에서도 현대식 청사를 짓는 계획이 오가던 터라 연수원 인수가 급물살을 타게 되고 건물비용 4억여 원을 충당 할 방도로 봉은사 부지 매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봉은사 부지를 인수한 뒤 이 모든 계획을 없던 일로 돌린다.
봉은사 부지에 짓는다던 신정부 청사는 과천으로 변경되고 연수원의 대전 이전도 없던 일이 됐다. 교회가 혜화관을 인수하려 했는지도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봉은사 땅 10만평만 헐값에 넘겨 받고 타종교 건물 인수니 정부 이전이니 하는 소문과 계획은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이다.
정부가 치밀한 계획 아래 봉은사 땅을 사들인 정황은 또 있다. 종단이 공식적으로 봉은사를 상공부에 매각한 것은 1970년 10월이지만 7월에 정부 승인이 떨어진다. 봉은사는 당시 불교재산관리법상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토지 매각이 가능했다.
정부로부터 매각 승인이 떨어지자 곧바로 영동대교 착공에 들어가고 10월 정식 매매 계약 체결 후 한 달도 안돼 양택식 서울시장은 제2서울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바로 봉은사로부터 사들인 땅 10만평을 중심으로 하는 영동 구획정리 계획이었다. 이처럼 정부는 봉은사 일대 개발 계획을 마친 상태에서 종단에 신분을 속이고 접근해 매각토록 작업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이후락 당시 신도회장
스님들 막후 조정 ‘의문’
봉은사 부지 매각 절차는 서류상 문제가 없다. 당시 봉은사 주지 서운스님이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종단 공식절차와 정부 허가 까지 받았다. 하지만 장막 뒤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있다. 봉은사 부지 매각 사건이 종단 공식 현안으로 부상한 때는 1969년 12월2일 열린 제22회 중앙종회였다.
1970년 예산 편성을 위한 목적으로 열린 이날 종회의 주 목적은 예산 통과와 종단재산 정비였다. 중앙종회 회의록에는 이 중요한 안건에 대해 발언하는 스님은 4명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 4명도 회의진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발언 뿐이다. 설명도 반대 토론도 없다.
의장은 안건을 올리고 담당 부장은 설명하고 나머지는 재청 삼청이다. 사전에 현안 조율 및 설명이 끝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곧바로 고암 종정을 비롯해 청담스님 중앙종회의장 종단 각 단체 기관장 및 신도들이 모여 합의한 후 현지답사를 하고 구획 정리까지 마친다.
그런데 정작 주지 서운스님은 모르게 측량하고 사전 계약한 의혹이 짙다,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는 이유 등을 내세우며 강력 반발한다. 이후 몇 개월간 종단의 원로 중진들이 나서 서운스님을 설득하고 총무원장이 교체되는 진통을 겪는 등 종단은 이 문제로 심한 홍역을 앓는다.
그런데 봉은사 주지 서운스님을 제외한 원로 중진, 심지어 젊은 총무원 집행부 스님들까지 모두 하나가 된 봉은사 매각 합의는 무언가 어색하고 낯설다. 종단이 중요 현안을 놓고 이처럼 위에서부터 아래 심지어 옆까지 하나가 된 적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원로들은 대개 한 발 떨어져 있고 중진들은 거의 절반으로 나뉘어 몇 년 씩 진통을 겪는 게 일반적인 종단의 의사결정 과정임을 볼 때 봉은사 부지 매각 과정에서 보인 종단 관계자들의 일치된 모습은 낯선 정도가 아니라 과연 진심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중요성이나 그 뒤 벌어진 파장, 현재까지 한국불교에 끼친 영향을 고려하면 찬성 일변도는 의아하다.
왜 서둘렀을까?
총무원 청사는 당시 건립 계획을 세우기는 했지만 급한 과제는 아니었다. 현대식 청사를 써야 할 정도로 직원 수가 많은 것도, 업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이나 그 때나 스님들은 땅 파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총무원장 주지 스님들은 재임기간 중에 사찰 토지가 팔려나가는 것을 역사에 죄짓는 것으로 여겨 극도로 꺼린다.
종단은 당시 돈이 많이 필요했지만 땅을 팔지는 않았다. 스님들 교육을 위해 종비생 제도를 만들 때에도 나무 벌목은 허가 했지만 토지 매각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봉은사 땅은 그것도 10만평을 종단 지도부가 일치단결해서 판다고 나섰다. 종단사상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다.
의문은 또 있다. 봉은사를 비롯한 남서울 지역이 개발된다는 사실은 당시 누구나 알고 있었다. 강남 개발은 1966년 한남대교 건설로 시작됐다. 봉은사 옆 지금의 반포 압구정 일대가 이미 개발되고 땅 값도 상승하고 있었다. 가만히 두면 일대가 개발되고 값도 오르리라는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스님들은 왜 그토록 쉽게 그리고 일사분란하게 봉은사 땅 매각에 나섰던 것일까?
스님들이 봉은사 매각을 결의하고 신도대표들과 합의하는 절차를 거치고 함께 봉은사 부지 답사를 가는 장면에서 의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신도 대표는 전국신도회장 이후락이었다.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이후락은 청담스님 등 스님들이 간청을 해서 신도회 간부를 맡았다.
스님들은 대처측과의 소송과 현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산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신도회와 함께 사업을 펼쳤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 돌파구를 찾고자 정부의 지원을 업을 수 있는 이후락 씨를 신도회장으로 모셨다. 그만큼 스님들은 권력과 돈독한 불심을 갖춘 이후락 회장을 신임했다.
그가 사전에 스님들을 설득해 하나로 의견을 모으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 않다면 종단 역사상 없는 토지 매각이 그처럼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질 리 없다. 봉은사 토지 매각과정에서 이후락 씨의 역할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다. 이 과정을 잘 아는 청담스님 역시 생전에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황상 사전에 이후락 신도회장이 나서 정지작업을 했다는 의심은 떨칠 수 없다.
이 모든 사실과 정황은 정부가 당시 과정을 소상히 밝히는 길 밖에 없다. 정부가 봉은사 부지 10만평을 사들이기 위해 종단을 상대로 사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관해 민간에 매각된 이제 사실을 밝혀야한다. 이후 종단 측에 해명하거나 사과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잘못된 거래로 인한 심술이나 딴지가 아니라 정부 정책은 늘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정부가 원래 부지를 사들인 목적이었던 공공기관 이전이 민간 매각으로 목적이 모두 사라지고 천문학적인 이득만 취한 정부의 부도덕성이다. 정보와 권력망을 동원해 자발적으로 매각을 결의하도록 유도한 것을 합법적인 매매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감언이설이나 위협으로 아이가 사탕을 내놓게끔 만든 것과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종단과 원로 스님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진실을 밝혀야한다. 종단 스님들은 이로 인해 많은 오해와 질타를 받았으며 지금도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종단은 그 이후 봉은사 문제로 심각한 홍역을 앓았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했다.
드러난 사실과 정황은 결코 종단의 잘못이 아니며 정부의 철저한 계획과 주도면밀한 연출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종단 역시 지나간 일이라며 손놓을 것이 아니라 당시 매각 과정을 소상히 밝히는데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불교신문3043호/2014년9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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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땅이 갈기갈기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정부가 권력을 동원하여 집요하게 조작하고
속여서 땅을 내놓게 한 사실을 아니 권력을 죈 자들은 마음 먹으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네요.
대처승과 종단의 스님들도 권력과 타협하고 현실에 급급했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절 땅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한 번 팔리면 다시 잡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