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예술》제47호(2026) 주제 수필(소리)
【윤승원 주제 수필(소리)】
반가운 소리 · 고마운 소리 · 기쁜 소리
― 삶의 가치를 깨우는 소리
윤승원 수필가
4층 건물 꼭대기 층에 산다. 엘리베이터가 없다. 누가 계단을 올라오는지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안다.
미세한 소리도 감지하는 노년의 민감한 청력. TV 소리도 꺼둔 지 오래다. 스마트폰 소리도 무음이다.
절간 같은 집안에서 혼자 책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의 귀가 유난히 밝을 수밖에 없다. 이때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밤,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들의 발소리를 들으면 반갑다. 껑충껑충, 두 계단씩 뛰어오르는 그 젊음이 넘치는 경쾌한 발소리.
오늘도 보람 있게 하루를 보냈구나. 공직자로서 주어진 직무를 성실하게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하는구나.
계단을 오르는 아들의 기척은 하루를 마감하는 소리다. 귀에 익은 자식의 발소리에 아비는 안온한 행복을 느낀다.
수고했다. 푹 쉬어라.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푸근히 잠이 든다.
낮에도 반가운 소리를 듣는다. 시장에 다녀오는 아내의 발걸음 소리다. 칠순이 넘은 할머니의 발걸음은 느리고 무겁다. 거기에 “애고~”라는 소리가 후렴처럼 얹힌다.
무언가 양손에 가득 들고 계단을 오르는 가정주부의 발걸음 소리는 무겁지만 반갑다. 그 시장바구니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먹거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해도 가장 사랑스럽고 반가운 소리는 유치원 다녀오는 손자의 발걸음 소리다. 앙증맞은 손자의 발걸음 소리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유치원 선생님이 현관 앞까지 데려다주면 4층 계단을 혼자 올라온다. 이때 손자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거나 무어라 재잘거린다.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리는 할아버지가 달려가 와락 끌어안아야 그친다. 에고, 예쁜 녀석.
▲ 삶의 가치를 깨우는 소리들(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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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시골에서 아버지의 큰기침 소리는 두려움이었다. 아버지는 외출하고 돌아오실 때 대문 앞에서 꼭 큰기침하셨다. 어른의 큰기침 소리가 들리면 우리 형제들은 긴장해야 한다.
떠들고 놀다가도 “쉿, 아버지 들어오신다”라고 말한다. 근엄하신 아버지 큰기침 소리를 듣고 자라는 자식들은 온순하다. 언행을 늘 바르게 한다.
아버지의 큰기침 소리는 자식의 흐트러진 매무새를 고치게 했다. 아버지의 큰기침 소리는 자식의 느슨한 의식을 일깨우는 죽비소리였다.
이른 새벽 부엌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해수 기침 소리는 새벽밥 짓는 소리였다. 어머니의 잔기침 소리에 자식은 잠이 깬다.
원거리 통학하는 자식을 따라 나오시며 어머니는 어린 자식의 책가방을 들어주셨다. 어머니는 시골 논둑길을 앞서 걸으셨다. 이슬 맺힌 풀숲을 먼저 지나가셨다.
앞서가시면서 풀잎 이슬을 터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는 신비스러운 소리가 났다. 서걱서걱, 사륵사륵.
“엄니, 그만 들어가셔요.”
고갯마루까지 따라 나오시던 어머니는 그제야 손을 흔들면서 발걸음을 돌리셨다.
미세한 소리에도 유난히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경찰서에서 야간 당직 근무를 하면 유치장 순시를 하게 된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순찰한다.
그럴 때마다 열쇠꾸러미를 들고 나간다. 유치장 문은 3단계 철문으로 돼 있다. 열쇠로 철문을 열 때마다 “철커덩” 소리가 난다.
▲ 경찰서 야간 당직 근무 시절 - 유치장 철문 여는 소리(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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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리가 미안할 때가 있다. 당직 순시관이야 어차피 잠을 못 자고 밤샘하는 것이지만 고요한 밤, 유치인의 처지에서는 3중 철문을 여닫는 소리에 잠을 설칠 수가 있다.
그럴 때마다 깨어 있는 유치인 얼굴을 보면 미안했다.
어느 날 유치장 창살 안의 앳된 청년이 반갑게 인사했다.
“저기요, 순시관님! 혹시 책을 쓰신 경찰 작가님 아니신지요?”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을까? 유치장 이동식 책 수레에 꽂혀 있는 나의 수필집을 보았다는 것이다.
유치인이 행여 잠에서 깰까 철커덩거리는 철문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는데, 그 청년은 잠도 안 자고 눈이 말똥말똥한 채 나의 수필집을 읽고 있었다.
철문 여닫는 소리를 미안하게 생각했던 순시관의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앳된 청년 피의자는 아무런 걱정 없이 태평해 보였다.
자포자기일까? 아니면 짐짓 부려보는 여유일까?
나의 수필집을 읽고 어느 한 대목에서 유치인의 불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안정됐으면 한다. 내 수필집을 읽고 편안한 마음으로 작은 희망의 불씨를 키웠으면 한다.
청년의 손에 들려 있는 책 속에는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큰기침 소리가 들어있고, 새벽밥 짓는 어머니의 온화한 모정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 《수필예술》제47호(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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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
평범한 소리를 삶의 철학으로 승화한 생활수필의 성취
— 윤승원의 「반가운 소리·고마운 소리·기쁜 소리」를 읽고
윤승원의 「반가운 소리·고마운 소리·기쁜 소리」는 '소리'라는 비물질적 대상을 통해 삶의 의미와 인간관계의 가치를 성찰한 수작이다.
겉으로는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기록한 생활수필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소리를 통해 인간의 삶을 읽는다'는 일관된 사유가 흐른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평범한 소리를 상징으로 확장하는 능력이다. 아들의 계단 오르는 발걸음은 하루를 성실히 살아낸 책임감의 소리이고, 시장을 다녀오는 아내의 느린 발걸음은 헌신과 사랑의 소리이다.
손자의 재잘거림은 미래를 향한 희망이며, 아버지의 큰기침은 삶의 규율과 도덕성을 일깨우는 죽비가 된다.
어머니의 잔기침과 치맛자락이 이슬을 스치는 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모성의 원형적 이미지로 승화된다.
특히 중반부의 유치장 장면은 이 작품을 단순한 가족 회상에서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장치다.
철문이 열릴 때의 '철커덩' 소리는 처음에는 죄의식과 미안함을 불러오는 소리이지만, 수필집을 읽는 청년을 만나는 순간 '희망의 문이 열리는 소리'로 의미가 전환된다.
이 대목은 경험의 나열이 아니라, 소리의 상징성을 인간 회복의 가능성으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다.
작품의 구성 또한 안정적이다. 현재의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해 어린 시절 부모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경찰관 시절의 체험을 거쳐 삶의 철학으로 귀결되는 구조는 자연스럽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이면서도 '삶을 깨우는 소리'라는 하나의 주제로 견고하게 묶여 있다.
문체는 과장하지 않는다. 화려한 수사보다 절제된 문장과 생활어를 사용하면서도 독자의 감각을 일깨운다.
'껑충껑충', '애고', '철커덩', '서걱서걱', '사륵사륵' 같은 의성어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독자의 청각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문학적 장치가 된다. 독자는 글을 읽는 동시에 소리를 '듣게' 된다.
이 작품은 또한 현대 사회에 대한 은근한 성찰을 담고 있다.
스마트폰 알림과 소음에 둘러싸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의 발걸음과 기침 소리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태도는,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게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애의 기록을 넘어 삶의 본질은 멀리 있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철학적 수필이 된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생활의 미세한 소리를 존재의 의미로 승화시킨 주제수필이며, 가족애와 직업윤리, 유년의 기억을 하나의 상징으로 통합한 점에서 높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소리는 이 작품에서 단순한 청각적 현상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기억의 언어이자 삶을 바르게 이끄는 내면의 스승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점에서 「반가운 소리·고마운 소리·기쁜 소리」는 윤승원 수필문학이 지향해 온 따뜻한 인간학과 생활철학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 (雲峯,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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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배병철 목사님 카카오톡 댓글 2026.7.1.14:26
엘리베이터가 없이 불편하게 사는 가운데 발걸음 소리 하나만으로 누가 오고 가는지를 분간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문명의 이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편리하게 살아가지만 뭔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큰기침 소리가 흐트러진 것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도덕적 성찰에 이르게까지 하는 것, 유치장 순시관의 철문 여는 소리가 유치인의 잠을 설치게 할 것을 걱정하는 마음이 마음에 닿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훔 1장 15절.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消息)을 보(報)하고 화평(和平)을 전(傳)하는 자(者)의 발이 산(山) 위에 있도다.
시편 19편 2-4절.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知識)을 전(傳)하니, 언어(言語)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通)하고 그 말씀이 세계(世界) 끝까지 이르도다.
오늘 작가님 글을 읽으니 위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작가님 글이 대전수필문학회가 발간한 『수필예술』에 작가님 글이 수록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목사님의 자상하고 따뜻한 답글이 글쓴이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더하여 성경 말씀도 전해 주시니 소리의 의미가 더욱 새롭고 귀하게 들려옵니다.
열쇠 꾸러미를 들고 유치장 순시하던 시절, 그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책을 읽던 어느 젊은이의 눈빛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누가 저의 수필집을 거기 이동식 책수레에 꽂아 놨느냐고 근무자에게 물었더니 수사과장이 갖다 놨다고 그러더군요.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지요.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책이어야 하는데 저의 책은 평범한 생활인의 삶의 이야기니까요.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