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집어삼킨 듯한 역대급 폭염과 기후 위기, 그리고 그칠 줄 모르는 문명의 소음 속에서 무더운 여름이 깊어가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삼라만상이 열기에 신음하는 이 계절, 현대인들의 마음 역시 경쟁과 비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뜨거운 감옥에 갇혀 지쳐간다. 얼마 전 소쇄원을 찾아 가슴을 씻어 내리는 대숲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이 무더운 여름의 열기를 시원하게 식혀줄 답을 성현들의 웃음 철학에서 얻어 보고자 한다.
동양의 성현들은 일찍이 외적 자산과 인위(人爲)에 집착하는 삶을 경계했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이성을 압도하고 물질문명의 풍요가 극에 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현대인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메마르고 파편화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도의 대성자 라마나 마하르시(Ramana Maharshi)는 끊임없이 문명인들을 향해 “나는 누구인가(Koham)?”라는 궁극의 질문을 던졌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가면, 그리고 디지털 매체가 만들어낸 가상의 욕망에 휘둘려 살아가는 현대인은 참된 자아를 잃어버린 채 집착과 불안의 감옥에 갇혀 있다. 문명이 바깥으로 팽창할수록, 우리는 성자들의 지혜를 통해 내면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인문학적 결단이 필요하다.
『노자(老子)』 11장에는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지만, 그 그릇의 비어있는 수용성(無)이 있기에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라고 했다. 또한 장자(莊子)는 마음을 비워 공간을 만들 때 비로소 순수한 지혜의 빛이 감돈다는 ‘허실생백(虛室生白)’을 설파했다. 마음속에 오만한 권위, 승리 지상주의,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꽉 차 있으면 영혼은 경직되고 타락한다. 가슴속 탐욕과 경쟁의 독소를 호탕하게 터뜨리는 박장대소는 내 안의 묵은 때를 비워내어 우주의 빛을 받아들이는 가장 고결한 ‘비움(虛)’의 실천이다.
『금강경(金剛經)』의 핵심 가르침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집스러운 집착, 즉 ‘아상(我相)’을 비워내는 것이다. 내 안의 아상이 두꺼울수록 타인을 경계하고 조롱하며 짓밟아야 할 ‘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나라는 집착을 깨뜨리는 순간, 나와 타인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무량한 공감대가 열린다. 상대의 노력을 존중하고 함께 어우러져 웃는 상생의 웃음 정신은, 아상을 깨부수고 타자를 내 몸처럼 포용하는 대승적(大乘的) 자비의 다른 이름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킬 수 있는 시대에, 나 자신을 온전히 안아주고 사랑하는 웃음의 인문학적 실천 방법을 통해 무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본다.
첫째, 마음의 파동을 비우는 박장대소(大笑)다.
가식과 오만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단전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호탕한 소리로 웃어보자. 마음의 온갖 집착과 불안의 파동을 순식간에 정지시키고, 나라는 아상(我相)을 깨뜨리는 가장 정직한 비움의 웃음 호흡이다.
둘째, 신체성을 회복하는 상생 박수다.
스마트폰 스크린의 환영에서 벗어나 손바닥을 마주치고 온몸을 울려 정직한 땀방울을 흘려보자. 내 몸의 세포를 깨우는 박수와 움직임은 내가 지금 우주 속에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나아가 세상 모든 것들이 적이 아닌, 나의 한계를 확장해 주는 동반자로 바라보는 거룩한 마음이 피어난다.
셋째, 고요 속에서 마주하는 푸른 미소다.
동양의 지혜는 서둘러 꽃 피우려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움(自然)에 있다. 고요히 멈춰 서서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벗어나, 돋아나는 새싹처럼 맑고 푸른 미소로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너는 이미 그 자체로 완전하다”고 포용해보자. 내면의 진정한 자아(自我)를 온전히 사랑하는 성찰의 미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알고리즘과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대체할지라도, 내 마음속 오만함을 비워내고 타인과 체온을 나누며 호탕하게 웃어보면 우리 영혼의 격조가 달라질 것이다. 내가 먼저 참된 기쁨으로 피어날 때, 나와 내 이웃, 그리고 이 사회는 역대급 무더위도 시원하게 날려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