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일기
6월 4일
야.....
어제밤에 동네를 안돈 덕에 새벽에서야 잠이든 나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그기서 그기지만 낮 열두시를 넘긴다는건 아무래도 건강에 좋을것 같지 않다.
다음부터는 꼭 12시는 넘기지 말아야 겠다.
하여간 일어나 보니 아무도 없었다.
내 방에 딸랑 쪽지만 남겨두고 엄마는 어딜 가셨나부다.
퇴직한 이후로(울엄마도 초딩샘이었다) 어딜 쏘다니는지 집에 잘 안계신다.
제발 주부 도박단에는 끼지 말아야 할텐데..
쪽지에는 살벌함이 느껴진다.
'엄마 절에 갔다올테니까 집 잘지켜!
숟가락 하나라도 도둑맞으면 뒤지게 맞고 밥도 없을 줄 알어.."
'치.... 밥이나 주고 그러면..'
물론 밥을 차려 놓았을리 없다.
요즘들어 내 요리솜씨가 부쩍 는거 같다.
장가가면 색시한테 사랑받을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침에 식구들이 먹다 남은 걸루 비빔밥이다 복음밥이다 만들기만 하면 예술이다.
오늘도 우리 작은딸은 다이어트한다고 밥을 많이 남겼다.
이럴때는 우리작은딸이 이뻐보인다.
하여간 이거저것 넣어 밥을 볶았다.
계란도 하나 풀어서..
무심결에 냉동실을 열어보니 이게 왠걸 쇠고기 갈아놓은게 있다.
이것도 넣어 말어..?
뒷일이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일은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신념에 따라 조금만 넣었다.
비닐봉지는 남겼으니까..조금이지..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을수가..
다음에 취직안되면 백수많은 동네에다 IMF 복음밥집이나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오늘 오만찬은 오랜만에 단백질을 많이 섭취할수 있었다.
물론 뒷일이 있겠지..
저녁 ..
울 작은 누나가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뭘 찾는다..
"여기 갈아놓은 고기 어디갔어? "
'당연히 내 뱃속에 있쥐..저거 다이어트 한다더니 순전히 뻥이구먼..
밤마다 저거 복아 먹은거 아녀..?'
물론 시선은 나에게로 올게 뻔하다.
이럴때는 빨리 자수하는게 낫다.
" 그래 아나 내가 먹었다.."
" 아이 몰라 엄마....."
도끼가 요즘 밥을 안먹어 밥에다 섞어 줄려고 사놓은 고기 엄마 백수 아들이 다먹었어.."
비참해따..
도끼는 우리집 개이름이다.
진짜 내가 개만도 못하단 말인가...
앞에 이쁘다고 한말 취소다.
오늘부터 하늘에 빌거다.
우리집 작은 딸 30살안에는 시집가게 하지 마옵소서.
노처녀로 팍팍 늙게하옵소서..라고
눈물을 훔치며 딸딸이를 신었다.
저 개새끼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 보고 꼬리를 흔든다.
복날만 되라.
서러븐 마음으로 하늘 보고 동네 한바퀴 돌았다.
퇴교하던 여고생이 날 보더니 도망을 간다.
내일 우리 작은딸 다니는 학교벽에다.....
'이현주 샘 동생은 백수다' 라고 크게 써놓아야 겠다.
졸라 쪽팔리겠지..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풀렸다.
6월 11일
또 야...!
오늘 왠일로 울 아버지가 차를 안가지고 나가셔서 차열쇠 복사한걸로 드라이버를 했다.
물론 이일이 들키면 며칠 집에 못들어오겠지만..
무사히 동네 몇바퀴를 돌고 차를 차고에 넣었다.
'치지직.. '
뭔가 섬찟한 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고 백미러도 봤지만 분명히 벽하고 차하고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또 후진을 했다.
'취지직 ..'
이상하네?....
분명히 긁힌데는 없는데..
차를 완전히 차고에 넣고 엔진을 껐다.
'끼이잉..'
내려서 확인하니 안테나가 기억자로 꺽여 있었다.
오랜만에 차를 몰아서 그런지 레디오를 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까 그소리는 안테나와 차고 천정과의 키스소리였던것이다.
안테나하나에 4만원이고 내가 하루에 만원씩 축낸다 치고 재떨이 두번 맞을
각오는 되있으니까.
한 이틀 집에 못들어갈것 같다.
차안 재떨이에 '아버지 죽을각오는 되 있사오나... 죄송합니다'.
라는 쪽지를 부쳐두고....
바로 그백수 녀석 집으로 갔다.
근데 이녀석이 신창원이 잡으러간다는 말만 주인한테 남겨두고 방을 자물쇠로
꼬옥 잠구어 놓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제정신이여..???!
나는 어쩌라고..흑흑.
그래서 몰래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내방에 있으면 아마 들킬테니까 작은딸 방에 불도 못켜고 숨어 있었다.
오늘따라 작은딸이 11시 가까이 되도록 오지 않아서 오늘은 무사할 것 같다.
'띵동...'
순간 긴장감이 돌았다.
큰누나는 바빠서 병원에서 못올게 뻔하고 분명히 둘째딸일텐데...
'다녀왔습니다.'
분명히 걔목소리다.
얘가 들어와서 안말 안할 애가 아니다.
'엄마 철이 여기 있어..'
분명 이렇게 소리칠게 확실하다.
그래서 문뒤에 숨었다.
그리고 작은딸이 들어와서 불을 켤려는 순간 뒤에서 덮쳤다.
한손으론 입을 막고..
순간 누나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떠는걸 느낄수 있었다.
내가 다 겁이 날정도로..
몇초간 누나는 뭘 생각했을까....궁금하다.
손을 떼고는 귀에다 속삭였다.
" 내다 내.. 놀랬나..?"
그날 밤 우리집 작은딸한테 베개가 터지도록 베개로 맞았다.
누나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본거 같다.
그렇게 놀랐을 줄이야...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다음부터 이런장난은 삼가야겠다.
가족은 가족인가부다.
그래도 아부지 한테는 안들켜 다음날 낮을 무사히 맞이할수 있었다.
6월 24일
야야 야야야야..응원 리듬에 맞춰서..
어제 진짜로 놀이터 벤취에서 잤다.
사람들이 왜 신문지를 덮고 자는지 이제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완전히 이슬에 축 젖었다.
어제 재떨이 하나더 맞더라도 라면만은 챙겼어야 했는데..
호주머니에는 디스한갑과 750원 ..
아침은 먹어 본지 오래지만 그건 자면서 시간을 보낼때의 일이고.
깨있는상태에서 굶는건 고스톱 치면서 세번연속굶는거보다 더 속쓰리다.
어제저녁도 굶었으니.
이돈으로 빵이나 하나 사먹어.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초딩들이 퇴교만 하면 이돈은 금방 만화방에서 짜장면 시켜먹어도 될
정도의 돈으로 불어 난다.
나에겐 짤짤이라는 무기가 있었던것이었다.
그래서 꾹 참았다.
아침은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타면서 그렇게 보냈다.
드디어 초딩들이 하나둘 퇴교를 하기 시작한다.
멤버들 몇명이 보였다.
손에 동전을 쥐고서 걔네들한테 흔들어 보였다.
맨날 꼴아 바치면서도 도박의 유혹은 컸나부다.
놀이터 철봉밑에서 짤짤이를 했다.
코흘리게 돈을 따먹는다는게 마음이 아팠다.
애들은 손이 작아서 몇개를 졌는지 훤히 보이기 때문에 양심에 걸리긴 하지만
당장 닥친 생계문제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애들 돈이 거의 사라져 갈 무렵 .. .
귀야븐 목소리가 들려 왔다.
" 오빠!... 돈 따먹기 하면 엄마한테 혼나.."
여기 멤버중 한녀석의 여동생인가 부다.
"애들은 가라.."
순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봤다.
너무 예뻣다..
한 예닐곱살 정도로 보였는데..
나의 가슴에 뿅이라는 못을 박아버린것이다.
그래서 생계문제도 잊고 그애의 오빠한테 돈을 다몰아 잃어 주었다.
그녀석은 입이 함지박만해져가지고 집으로 갔다.
물론 자기동생을 데리고.
멀리서 그녀석과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
'잘가 처남.. 내일봐..'
내마음은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나이 몇인가... 만으로 25살아닌가..
잊어야지..
오늘밤 놀이터 벤취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은하수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아니지 서울엔 은하수가 안보이지...
오렌쥐주스에 먹물탄듯이 뿌연 수은등하늘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른다..
안돼... 잊어야해...
그녀를 잊기위해 난 맨발인것도 잊은채 쓰린배를 부여잡고 찡그린 얼굴로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그때 그 고딩인것 같은 소녀가 또 놀라 도망을 갔다.
언젠가 한번 붙잡아서 절대 치한은 아니고 단지 백수일뿐이라고 알려주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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