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와 사전을 뒤적거려 한참만에 임포라는 말이 무슨 말의 줄인말인지와 그 의미도 알아냈다.
- 호 ! 세상에는 참 희안한 병도 다 있구나 ...
그런 비밀이 어떻게 새어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새신랑 고추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영아원 안팍으로 온 동네에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신혼부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겼다.
- 쯧 ! 쯧 ! 쯧 ! 어쩌면 좋은고 ?
그런데 결혼 대여섯달이 지난후 신랑과 신부는 몰라보게 얼굴이 수척해지더니 결국 얼마 못가서 신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신랑도 집을 나가고 말았다.
... 임포가 그렇게도 무서운 것이로구나... 이미 사춘기에 훌쩍 접어든 우리 박군은 파경으로 끝이 난 신혼부부의 비극을 보면서,
- 천만다행이구나 ...
잠실 베레모
(22) *** 공 보모와의 사랑싸움 ***
영아원에서는 추운 겨울에는 하루에도 70-80장의 연탄을 사용하는데 매달 연탄 소비량이 2000장을 넘었으니 자연히 원장님께서는 연탄의 절약을 위하여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으니,
- 아니? 박군아 ! 연탄 2000장을 한달도 못가 다 소모했니?
하고 추궁하면 박군인들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 글쎄요..
하면서 뒷 머리나 긁적거릴 수 밖에...
- 박군 ! 안 되겠구나. 연탄창고에 열쇠를 걸어 잠그고 박군이 한 아궁이에 하루 두장씩만 배급을 주거라.
호 !! 연탄을 통제한다? 그것이 보통일이 아닌데...
박군은 내심으로 연탄통제시의 부작용이 눈에 훤하게 보였지만 원장님의 지시를 거부할 명분도 없었다. 겨우 한다는 말이,
- 하루에 연탄 두 장씩 가지고는 불을 꺼트릴텐데요?
하였으나,
- 아니다. 연탄 한장으로 하루를 견딜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연탄이 품질이 좋지 못했고 레일식 화덕은 바람구멍을 아무리 틀어 막아도 통풍이 잘돼서 연탄의 소비가 퍽 잘되었다.
그래서 알뜰한 보모는 아예 아궁이 바닥에 연탄재를 가득 깔아놓아 화덕의 밑부분을 송두리채 연재재로 채워 화덕에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서 때로는 연탄 한장으로 24시간을 견디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러면 아이들 방 바닥이 너무 차가워서 탈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연탄 3장은 태워야지 아이들이 춥지 않게 지낼 수 있으리라고 박군은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 날부터 연탄창고 출입문에는 자물통이 걸렸고 그 때까지 자유롭게 소비하던 연탄을 박군이 통제하게 되니 보모들의 원망이 우리 박군에게로 쏟아졌다.
- 똑 ! 똑 ! 똑! 박군아 ! 우리방 연탄불이 가물 가물 꺼져가고 있어 ! 빨리 연탄 좀 내줘 ! 똑! 똑 ! 똑!
한 밤 중에도 불구하고 박군방 창문을 두드리기 일쑤였으니 박군은 박군대로 연탄배급 시작 후부터 하루도 잠을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 어이구 ! 졸려 ! 왜 자꾸 깨워요? 조금 전에도 임 보모 누나가 나를 깨웠는데...아이 추워라 !
하면서도 연탄을 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보모들의 연탄 더 달라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박군에 대한 원성은 점점 높아졌으니,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라 !
(있잖아요. 암행어사 이몽룡이가 사또 앞에서 읊은 싯귀절. 그런데 내용이 맞아요?)
그러한 원성은 늘 미소짓는 얼굴모습이고 마음씨 착해서 우리 박군에게도 무던하게 잘 대해 주던 공 보모한테서 폭발하고 말았으니...
어느 날 연탄을 배급을 주려고 창고 안으로 박군이 들어가자 마자 공 보모는 갑자기 연탄창고 출입문을 바깥 쪽에서 걸어 잠그고 말았다.
- 야 ! 이제 박군을 감옥에 가두었다 !
- 어 ? 공 보모 누나가 장난을 치네 ?
처음에 잠시 장난으로 알았는데 공 보모는 그것이 아니었다. 매번 연탄불이 꺼지게 되고 연탄사용을 통제하는 박군에게 맺힌 한(?)이 퍽 많았던 모양이다.
- 쿵 ! 쿵 ! 누나 ! 문 좀 열어줘 !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밖에서 지키고 있는 공 보모는 문을 열어 줄 마음을 먹지 않고 있었다.
- 박군 ! 이제 연탄 안 준 죄로 옥에 갇혔으니 적어도 오늘 하루 밤은 창고 속에서 나올 수는 없어 !
어 !? 하루밤이나 ?
박군은 창고문이 부서져라 하고 두드리며 문을 열어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우리 공 보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 흥 ! 안 돼 !
- 공 보모 누나야 ! 내가 이제부터 연탄 많이 줄께, 나 좀 내 보내줘라..
그렇게 통사정을 하다가 한 시간이나 지나가 버렸다.
- 공 보모야 ! 장난 그만하고 어서 문 열어줘 ! 저러다가 박군 진짜 화 낼라 !
나이 많고 생각이 깊어 말 수도 적은 이 보모가 지나가다가 한마디를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 시간 동안이나 연탄창고에서 갇혀서는 속으로 부아가 치미는 판에 그 말은 들은 박군은 은근히 화가 치솟았다.
에라 ! 공 보모 누나야 ! 골탕을 한 번 먹어봐라 !
박군은 작심을 하고는 옆에 있는 삽자루를 손에 들고는 창고 바닥의 연탄가루를 한 삽 가득하게 퍼 담았다. 그리고는 최후 통첩으로,
- 공 보모 누나 ! 정말로 이렇게 하기야 ?
- 그럼 ! 하루 밤동안 창고 안에서 지내봐 !
- 나 지금 화났어 ! 누나 후회 아니할 거야 ?
- 흥 ! 화가 나면 나를 어쩔려고 ? 감옥에 갇힌 몸이?
공 보모는 창고 안에서 박군이 바싹마른 연탄가루를 한 삽 퍼들고 있는 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박군은 잠시 망서리다가는,
- 공 보모 누나 ! 정말 후회 하지마라 !
- 흥 ! 흥 !
공 보모가 밖에서 코방귀를 뀌는 순간...
- 받아라 ! 연탄가루 폭탄을 !
냅다 소리를 지르고는 창고 출입문 위 허술한 구멍을 통하여 연탄가루 한 삽을 공 보모의 머리위에 쏟아 붓고 말았다.
- 어 엇 !! 어머얏 !?
방심을 하고 있는 공 보모는 기겁을 하고는 몸을 피하려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시커먼 연탄 가루가 푸석 먼지가루를 일으키며 공 보모의 몸을 덮치고 말았다.
- 아이 ! 나 몰라 ! 나 몰라 ! 박군 정말 이러기야 !? 이 이잉 잉 잉...
때 마침 흰색 셔츠를 입고 있던 우리 공 보모는 시커먼 연탄가루를 흠뻑 뒤집어 쓰고 그만 아연실색하여 창고문을 덜컥 열어 주고는 잉잉잉 울면서 아이들 목욕탕으로 들어가 버렸다.
- ㅎㅎㅎ ㅎㅎㅎ 거 봐 ! 내 뭐라고 했어? 박군 정말 화낼 거라고 했잖아?
유별나게 다정다감했던 공 보모누나와 우리 박군은 이렇게 사랑싸움을 하곤 했었다.
잠실 베레모
(23) *** 열두 수호천사 ***
박군이 공전에 입학하기전의 일이었던가?
어디를 나갔다 들어오니 영아원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보모들 몇명이 침통하게 모여 있었고 총무 아저씨는,
- 박군 ! 어서 와요 ! 좀 할 일이 있어 !
- ??
박군은 잠자코 안채의 거실 현관에 들어섰다.
거실에는 원장님이 서 계셨고 다마네기 보모와 송 보모 아줌마와 간호원 선생님도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 박군아 ! 아이가 한명 죽었다. 박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총무 아저씨와 같이 이 아이의 시신을 용전동 공동묘지에 묻어주고 오너라 !
- 네. 뭐, 혼자 가는 것도 아닌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총무 아저씨와 박군은 아이의 시신을 담은 하얀천으로 싼 상자와 삽자루 하나를 들고 용전동 공동묘지로 향했다.
영아원에서 용전동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고 걸어서 갔다.
지금은 그곳 용전동이 아파트촌으로 변하여 있지만 당시에는 입구에 화장터가 자리를 잡고 있고 그 뒷산에는 온통 묘지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총무 아저씨였다. 그는 벌써부터 무서워 몸을 떨기 시작하였다.
- 박군아 ! 네가 저위에 가서 적당한 곳에 묻어줘 !
- 예, 총무 아저씨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렇게 해서 실제작업은 박군의 몫이 되었다. 박군은 그래도 좀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여 시신을 묻어줄 자리를 팠다. 그런데 아래편에서 기다리던 총무 아저씨가 안달이었다.
- 야 ! 박군아 ! 빨리 내려와 !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려 !
우리 박군이 제대로 작업을 마치기도 전에 총무 아저씨는 연달아 박군을 재촉하며 빨리 내려오라고 야단이었다.
- 예. 총무님,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
박군이 작업을 하면서 큰 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한 참후 박군은 작업을 모두 마치고는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내려왔으나 총무님은 불만이 많았다.
- 아니 ? 박군 왜 그렇게 늦어 ?
- 얼마나 부지런히 작업을 마치고 내려왔는데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땅을 파고 묻어주어야지요.
영아원에 돌아오면서 박군은 속으로 다짐을 하였다.
... 내 이제 다음부터는 이런 일에 총무님과 동행을 하지 않으리라고...
이렇게 영아원에서는 이런 저런 사유로 아이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었고 박군이 오기 전에는 총무 아저씨가 이를 수습하여 야외의 동산에 묻어주었는데 그 일이 자연스럽게 박군에게 인계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시간이 없었다. 저녁시간밖에는...
아니 낮에 시간이 있더라도 가능하면 남들의 눈을 피해서 저녁 어둘 때에 매장을 해주기를 원했다.
생각을 해보자. 나이도 어린 학생이 (총각은 그런 일 해서는 안 된다지요. 그러나..) 아이의 시신과 삽을 들고 밤중에 야산에 가서 땅을 파고 묻어주고 온다 ?
아마도 어른이라도 등골이 서늘할 일이었다. 박군도 그때마다 정말로 무서웠고 아무리 추운 겨울에라도 온몸이 식은 땀으로 흠뻑 배이곤 했었다.
* 한 아이의 시신위에 파란 도라지 하나를 꺾어 얹어주기도 하고
* 다른 아이에게는 노란 가랑잎 세 개를 마지막 선물로 주기도 하고
* 때로는 겨울철이라서 땅이 얼어 깊게 묻어주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기도 하고...
이런 저런 사연과 함께 박군의 손으로 하늘나라에 보내준 천사들이 5년간 모두,
....12 명 !...
박군은 그들을 열두 천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나 홀로 장례를 치러야 하는 미안한 마음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박군은 그 열두 천사들이 늘 자기와 같이 하고 오히려 박군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들이라고 믿었다.
가능하다면, 지금은 대전시내로 편입되어 동명도 모르지만 당시 회덕면 송촌리 부근에(처음에는 용전동 공동묘지에, 나중에는 송촌리 부근에) 너희들의 조그마한 위령탑이라도 세워줄 수 있다면 ... 하는 것이 지금도 박군의 가슴속에 있는 소망이란다.
잠실 베레모
(24) *** 팬티 엉덩이 쪼아낸 서생원의 신묘한 재주 ? ***
영아원시절에 이런 신묘한 일도 있었으니...
하루는 침모 아주머니가 빨래방에서 박군을 급하게 부르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 박군 ! 이리 좀 와 봐요 !
침모 아주머니는 일명 빨래 아주머니라고도 불렀는데 영아들이 사용한 기저귀와 옷가지들을 빨래하는 일을 맡아 아주 오랫동안 열심으로 일을 하였고 너무나 빨래를 많이 해서 손가락 마디가 온통 불거지고 손바닥에 하얀 피부병이 번져 있었다.
보기에는 험상궂은 인상이지만 마음씨가 착하고 변함이 없었고 또 우리 박군을 사위감으로 점 찍어두고 싶었던지 박군에게는 늘 이제 겨우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는 외동 딸 도화에 대한 자랑을 하고는 했다.
- 박군 ! 이것 좀 봐요 ! 이것이 박군 것 맞지요?
- 네 ?
- 아니, 어쩌면 서생원이 이런 재주를 다 부렸을까 ?
박군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아니하였다.
어제 저녁에 빨아서 빨래방의 줄에 걸쳐놓은 팬티의 엉덩이 부분을 둥그렇게 쪼아서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 아닌가 !
- 와 ! 이건 서생원 짓이 너무 신기한데요.
박군과 빨래 아주머니는 헝겊을 무척 잘게 쪼은 모양이 서생원이 아니고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고 판단을 하였다.
그런데 빨래줄에 팬티가 걸려있는 상태에서 과연 생쥐가 줄을 타고 가서 팬티의 엉덩이 부분만을 둥그렇게 잘라낼수가 있을까 ?
의문도 있었지만 눈앞의 상황이 그랬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아무튼 그날 영아원에서 화재거리는 단연 박군의 팬티를 쪼아낸 서생원의 신묘한 재주에 대한 이야기였다.
- 대체 무엇 때문에 서생원이 박군의 팬티를 쪼았을까 ?
- ㅎㅎㅎ 서생원이 암컷이었던 모양이야 !
- 암튼지 빨래줄 한가운데 널어놓은 팬티를 쪼아대다니 그 생쥐 재주도 좋다 !
- 박군 팬티에서 생쥐가 좋아하는 냄새가 났던 모양이야 !
- 혹시 사람이 그런 것 아니야 ?
- 글쎄... 설마 누가 그럴리가 ...
- 생쥐가 팬티 엉덩이를 떼어가면 재수가 좋대...
- 그래? 그럼 내 팬티 엉덩이좀 떼어가라 !
- ㅎㅎㅎ ㅋㅋㅋ
영아원 가족들은 저마다 한마디씩을 말했고 결론은 이 사건의 범인은 확실하게 생쥐이며(암컷인지는 모르지만...ㅎㅎ)팬티 엉덩이를 떼어 준 박군은 엄청 재수가 있을 것이라는 부러운 시선들이었다.
그래... 누가 알아?
그 생쥐 덕분에 박군이 재수가 좋아 서울까지 와서 지금껏 편하게 살게 되었는지...
그러니 여러분들도 재수 있으려거던 쥐구멍 앞에 팬티를 갖다놓고 엉덩이 쪼아가도록 한번 고사를 지내 보세요 !
ㅎㅎㅎ
ㅋㅋㅋ!
잠실 베레모
(25) *** 승용차 한 대값의 향나무 ***
영아원의 파아란색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가운데 원형으로된 정원의 절반은 차지하고 있는 둥구스름하고 커다란 향나무와 마주친다.
박군은 일년에 두번 정도 화단의 정원수들을 손질해야 했는데 문제는 이 향나무가 너무 커서 골칫거리였다.
아무리 사다리를 세워놓고 손을 뻗어 보아도 향나무 중앙의 윗부분에는 전지가위가 미치지를 못했고 때로는 다른데는 모두 손질을 했어도 중앙에만 뽀족 뽀족 새순이 남아 있어 운치를 망가뜨리고는했다.
한번은 우리 박군이 크게 결심을 하고 향나무 가지사이로 올라가서 가위질을 하다가 그만 몸의 균형을 잃고는 나무 아래로 미끄러져 떠러지고 말았다.
- 앗 ! 향나무 가지가 부러지면 아니 되는데... !
향나무에서 떠러지는 다급한 순간에도 박군은 몸을 다치는 것은 둘째요 향나무 가지가 부러질가봐 걱정을 했었다.
다행이 향나무는 가지가 상한 곳이 없었고 한해 두해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큰 나무로 자라났다.
어떤 사람이 새 승용차 한대를 사줄테니 향나무를 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과 달리 승용차가 매우 귀했던 그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 물가로는 실히 몇 천만원의 가격은 되었으리라...
박군이 영아원을 떠나온지 몇 년 후 다시 영아원을 방문해보니 영아원은 탁아소로 바뀌고 얼굴을 모르는 탁아소 보모들만 아이들과 놀고 있었고,
향나무는 새 주인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으며, 원형의 화단은 간데 없고 텅빈 마당이 되어버린 향나무 터를 기억하며 박군은 속으로,
...우리네 인생살이도 저렇겠지...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에는 그 사람의 향수가 배어 들기도 하겠지... 세월이 지나면 모두 잊어버리고...
잠실 베레모
(26) *** 에취 ! 이천세 형님 미안 하구만유 ! ***
영아원에 박군이 들어가기 전에 이천세라는 신학생이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모두들 그를 이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니 그 대우가 나이어린 박군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장차 목사님이 되실 신학생이었으니 보모들의 생각에도 이 선생님과 연애를 하면 사모님이 되실 터이라...
그러나 어찌보면 영아원에서는 그의 하는 역할이 시원치 않았으니까 우리 박군을 채용했을 것이다.
하기는 박군이 생각하기에도 영아원의 120 명 가족의 바깥 허드렛을 주간 신학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감당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박군은 그런 생활을 무려 5 년이나 계속했지만...
그래, 이 선생님은 박군으로 인해서 영아원을 떠나게 되었으니 그가 보기에 박군의 모습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으리니 한 방에서 생활해야 하는 서로의 고충은 말이 아니었다.
아침식사만 해도 박군이 청소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 밥상이 들어왔는데 이 선생님은 시간이 늦어 허둥댈 수밖에...
- 야 ! 박군아 ! 왜 이렇게 아침밥상이 안들어 오냐 ?
보통 날에 아침밥은 나이 지긋한 송 보모 아주머니가 차려 주었는데 정해놓은 시간이 없었고 어떤때는 8시가 넘어서 밥상이 나오기가 일쑤였다.
박군이 공전에 다닐때에 그런 날에는 한 시간 쯤 지작을 하기가 다반사였다.
그날도 아침밥상이 매우 늦게 나왔고 기다리고 있던 이 선생님과 박군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하는데...
급한 김에 이 선생님이 멋 모르고 뜨거운 된장 국물을 한 숟갈 입에 떠 넣더니 그만,
- 엇 ! 뜨거워라 !
하면서 입안의 국물을 자기 밥그릇에 뱉아 버렸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방정스럽고 우수웠던지 막 밥숟가락을 입에 물었던 우리 박군이 그만 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 에취 !!
재채기를 하는 순간 박군의 입안에서 쏟아져 나온 한 숟가락의 밥알이 온통 밥상을 덮쳐버렸고 난감해진 박군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 중얼... 중얼...
마음씨 착한 이 선생님은 뭐라고 박군을 탓하지도 않고 혼자 몇 마디를 중얼거리다가 밥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그래서 박군도 그 날 아침밥은 죽을 쑨거라...
- 쩝! 쩝!
한 참 퍼 먹을 때에 밥 한끼가 얼마나 소중한데...
박군은 그 때 이 선생님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지금껏 풀지못하고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대전에서 목회를 잘하고 있다는데 언제 만나면 그 때 못 먹게 만든 밥한 그릇은 잘 대접을 해야지....
잠실 베레모
(27) *** 캐럿, 캐럿 ! 비프, 비프 ! 터키, 터키 ! ***
이것이 무슨 소리이냐구요?
당시의 그 영아원에는 대전의 동남쪽이 있는 식장산 봉우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 장병들이 매월 한번씩 영아원을 방문하였었다.
미군들은 10 여명씩 와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또 여러가지 물품들을 선물했는데 그중에서도 병조림이 빠지지를 않았다.
이 병조림들은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아이들 간식으로 먹이기도하고 부식으로 사용하였는데 어느 날 창고에 들어간 원장님께서,
- 당근인 것 같은데요?
- 그럼 이것은 무어고?
- 음... 이것은 쇠고기 병조림...
- 또 이것은 ?
- 칠면조 고기인데요.
사실 그 때에만 해도 칠면조 고기를 누가 먹어보았으랴!
-... 음 칠면조라...! 이것은 귀한 것이구나 !
이렇게 해서 신분이 들통이 난 병조림들은 그 때부터 외부로 반출되기 쉽상이고 아이들 차지는 점점 줄어만갔다.
문제는 원장님께서 이 영어 단어들을 외우는 그것이 쉽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박군을 대동하고 창고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 캐럿, 캐럿! 비프, 비프 ! 터키, 터키 !
를 반복했지만 몇시간 지나면 다시 잊어비리고는 또 다시 박군에게 일일이 병조림 한개씩을 손에 들고는,
- 이것이 무어냐 ? 또 이것은 무어냐 ?
를 되풀이하다가 창고에서 나올때면 열심히 중얼거리시곤 하였는데 그 모습이 지금도 박군의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 캐럿, 캐럿! 비프, 비프 ! 터키, 터키 !
잠실 베레모
(28) *** 한밤중에 폭발물이 꽝 !? ***
한밤중 한 시쯤이나 되었을까 ?
갑짜기,
꽝 !? 꽝 !?
연발의 엄청난 폭발음이 우리 박군을 깜짝 놀라게 했다.
??
아닌 밤중에 무엇이 터졌나 ?
박군은 후다닥 겉옷을 주워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폭발소리에 놀란 원장님과 보모들도 모두 잠에서 깨어 눈이 휘둥글해졌다.
- 이것이 무슨 소리냐 ?
- 글쎄요...?
원장님께서 물었지만 잠결에 뛰쳐나온 박군인들 어찌 영문을 알 수 있으리요.
- 무엇이 터졌는지 좀 찾아 보거라 !
- 네.
대답을 하고는 아무리 영아원 안을 살펴봐도 아무런 흔적이 없었고, 도무지 폭발음의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 히야 ! 참 이상하다... !
모두들 엄청난 폭발소리를 듣고 그 원인을 모르고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너무도 찝찝해서 도저히 그냥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 ??
- ??
서로가 얼굴만 마주하고 멍하니 있다가,
- 아무래도 원장님 방에서 무엇이 터진 것 같아요. 제방에서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거든요.
- 얘는... 우리방에서 터질게 무엇이 있다고...
하시다가 문득 생각이 난듯,
- 아 ! 그거다 !!
하시면서 자기방 - 원장님방으로 들어가서는 박군방 쪽의 옷장아래 붙박이 보관함을 열어제쳤다. 순간 !
- 크 !!
시금털털하니 무엇이 썩은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바로 체리통조림이었다.
전에 이야기한 대전 식장산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이 영아원을 방문할 때마다 각종 통조림을 선물로 가져오곤 했었다.
그중에 벚찌 열매로 된 통조림 큰 것 두개를 보관함에 넣어둔채 시간이 많이 지났던 모양이었고 그 내용물이 부패하면서 가스가 발생하여 부풀어 오르다가 결국 캔 두개가 연쇄적으로 폭발을 한 것이었다.
죄없는 박군은 그 지독한 썩은 냄새를 안 맡으려고 코를 틀어막아가면서 보관함을 닦아내느라고 한 시간 동안 진땀을 흘려야 했다.
... 고놈의 통조림이 터져도 왜 하필 한밤중에 터져서 나를 밤도 못자게 할꼬...
...이왕이면 내가 학교에 가고 없는 동안에 터졌으면 이 지독한 냄새를 맡지 않을 거인데...
지금도 그 고약스런 냄새가 코끝에서 나는 듯하다.
혹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통조림 캔을 보시면 폭발직전이고 위험하니 조심하시라요...
잠실 베레모
(29) *** 그들에게는 소중한 멸치 한 마리! ***
이제 영아들에 간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박군이 있던 영아원에서는,
아주 갖난아기의 경우는 6 ~ 7 명이 한방에서 자고 보모들 2 ~ 3 명이 번갈아 돌봐 주었고,
5 ~ 6 세가 된 큰 아이들은 15 ~ 20 명 정도가 한방에서 보모 한명과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큰 아이들 방에는 기다란 식탁이 두개가 있어서 식사시간에 보모들이 저들의 밥그릇을 담은 커다란 쟁반을 들고 가면 아이들은 협동심을 발휘해서 재빨리 식탁을 펼치고는 그 주변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쭉 둘러앉습니다.
보모가 창문밖에서 밥그릇을 건네주면 아이들은 하나씩 받으며 오늘의 운세(?)를 가늠해 보다가 밥그릇에 멸치 한마리만 들어 있어도 와 ! 하고는 탄성을 지릅니다. 채소 건더기가 많이 들어있어도 무척 좋아했구요.
밥그릇을 모두 받은 후에는 두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합창으로,
-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
하고는 감사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재빠른 친구는 눈을 뜨고 옆 아이의 밥그릇에 있는 멸치를 가져다가 자기 밥그릇위에 올려놓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다고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뜬 멸치 주인은 깜짝 놀라지요.
- 내 멸치 !
그러나 옆 아이의 멸치가 자기 것이라는 증거가 없으니 억울하지요.
그 아이는 슬퍼서 엉엉 웁니다.
작은 멸치 한마리 때문에...
그 당시(1968년 무렵) 정부의 지원은 영아 한명당 하루 3홉의 쌀과 부식비 10원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정부의 지원만으로 고아들을 양육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였고 대부분의 운영비를 외국 선교기관의 도움에 의존하였습니다.
그러니 부식하나 여유롭지 못했고 아이들은 밥이나 죽 한릇에 멀건 국물 한국자 부어서 가져다 주면 그 것이 곧 한끼 식사요 그러니 그들에게는 멸치 한마리를 받으면 그렇게 좋아할수가 없어던 것이지요.
멸치 한마리 ... !!
오늘 점심시간에도 박군은 된장국 뚝배기에 담긴 여러마리(?)의 멸치들을 바라보며 그 당시의 고아들을 생각했습니다.
... 멸치 한마리가 소중했던 아이들을...
지금은 부디 잘 살아야 할텐데...
잠실 베레모
(30) *** 총각 방에 처녀의 빨간 팬티! ***
이 무슨 해괴망칙하고 선정적인 글 제목이냐고요?
그러나 제가 쓰는 영아원시절의 추억들 이야기는 모두 분명한 저의 경험과 사실에 근거하고 단지 읽는 분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재미있는 문장을 표현할 뿐입니다.
총각 방에 처녀의 빨간 팬티라 !
물론 이 아주 선정적인 이 이야기도 사실이지요.
그 영아원에는 갖난아기들의 방인 1호실 2호실에는 보모 한 사람이 24시간 아기들을 돌볼 수가 없으므로 맞교대 또는 3교대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밤을 지새운 보모들이 낮에 조용히 잠을 잘 마땅한 방이 없었고 마침 박군 방은 낮에 하루종일 비어있으니까 밤을 자며 쉬기에는 안성마춤이었지요.
전에 나이 많은 신학생인 이천세 선생님이 사용할 때는 어려워서 그 방에
얼씬도 못했지만 우리 박군은 대하기가 쉬웠고 그래서 한 번, 두 번 비번 보모들이 박군 방을 애용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박군이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도 떡 하니 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 불편함이란....
박군인들 좀 한가할 때는 왜 쉬고 싶은 마음이 없겠으며 한 번쯤 방바닥에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리요...
그런데 말(馬)엉덩이 만큼이나 커다란 히프를 들어내 놓고 박군 방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것도 때로는 두 명씩이나 그 좁은 방에서...
박군도 이미 사춘기를 훌쩍 넘어서서 왜 이성에 대한 욕망이 불같이 일어날 나이인데...
- 어휴 ! 내가 무슨 돌 부처인가.. 대체 나는 어쩌라고 !!
어떤 때는 보모들 옆에 비집고 들어 누우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하였지요.
- 에라 ! 눈 딱 감고 그냥 껴안아 버릴까...
하는 성에 대한 자극이 일어날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 어 ! 내 방에 빨간 팬티가 ?
박군 방에는 세수수건 등을 걸어 두는 작은 빨랫줄이 하나 매어 있었는데 그 줄에 색깔도 짙은 빨간 팬티가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 흠... 이것이 오늘 비번 XX보모 누나 것이로구나...
알면서도 박군은 수줍어서 XX보모한테 저 야한 팬티 좀 치워달라는 말도 못하였는데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요 연거푸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원장님께서 박군 방을 들여다 보셨다가 문제의 그 빨간 팬티를 발견하게 되었다.
- 어랍쇼 ! 이것들 좀 봐라 !
당장에 보모들이 총 집합되었고 원장님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 너희들 ! 여자들이 수치를 알고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
아니 그래 총각이 사용하는 방에 들어가 조용하게 잠 잘 자고 편히 쉬는 것도 뭣해서 팬티를 걸어 놓았어 !
그래 ! 동생같은 박군 홀리게 할 일이 있어 !
이런 못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냐 !
당장에 빨간 팬티 걷어치우고 다시는 그 따위 행위 하지들 말거라 !!
XX보모 한 명 때문에 죄없는 십여명의 다른 보모들까지 혼줄이 나고 얼굴들을 붉혀야 했다.
- 거봐 !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니 ?
항상 생각이 깊은 이 보모가 XX보모를 나무랬다.
박군은 모를 일이다. 왜 XX보모가 하필이면 빨간 팬티를 박군 방에 자꾸 걸어 놓았는지...
다만 지금 생각에는, 그 당시만 해도 빨간색 팬티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선정적이요 일반인에게는 금기시되었을 만한데 그 빨간 팬티를 입고 싶었던 꽤나 관능적인 XX보모가 감히 샛빨간 팬티를 공개적으로 빨래줄에 널어 말리기가 쑥스러워서 생각한 묘안이 그래도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박군 방을 이용한 것이라고...
첫댓글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해봐야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아파보지 못한 사람이 아픈 사람 심정을 어찌 안다 할 수 있겠어요?
그 아이들에게는 조그만 멸치 한 마리가 커다란 희망이었습니다. 꺼꾸리님 ! 지금 어디에 계시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