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왕이 70세에 죽었을때, 그의 아들 솔로몬은 겨우 14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그래서 솔로몬의 성장을 기다리던 다윗왕은 그의 아들들인 압살롬의 반란과 아도니아의 모반을 겪어야했다. 솔로몬은 다윗의 유언에 따라 정적들을 처리한 후, 애굽의 왕 바로의 딸과 결혼하여, 그녀를 다윗성에 데려다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왕상3:1). 이때 솔로몬왕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기브온(Gibeon)산당으로 갔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족속들을 정복할때, 속임수를 써서 멸망을 모면하였고, 그 후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성전에서 일을 하였다. 또한 유대인들이 바빌론포로에서 귀환했을 때도 함께 귀환하여, 느헤미야총독의 지휘아래 예루살렘성벽공사에 참여하였다.
기브온은 히위족속의 땅이었다. 그곳은 예루살렘 북서쪽에 위치하며, 여리고에서 서쪽으로 약 17마일(27.54km),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5마일(8.1km) 거리에 있었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땅을 분배할때 기브온은 베냐민지파의 영역이 되었다. 그곳은 비옥한 고원평야지대로 각종 과일이 풍부하여 살기에 좋았다. 기브온 산당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시대에 사용하던 성막과 번제단이 있었다(대상21:29, 대하1:3). 그래서 솔로몬왕은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성경 「역대하」 1장6절~7절에는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제단에 솔로몬 왕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그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나오고, 성경 「열왕기상」 3장4절~5절에는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 왕이 그 제단에 일천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라는 구절이 있다.
한국의 목사님들은 「열왕기상」의 '일천번제'만을 인용하고, 「역대하」에 나오는 '천 마리 희생번제'를 설교에서 인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역대하」의 '천 마리 희생번제'가 역사적 사실이고, 「열왕기왕」의 '일천번제' 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솔로몬 왕이 온 회중을 데리고 기브온에 가서 1천번제를 드리려면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제사를 드렸다고 해도 2.7년이 걸리는 기간이다. 솔로몬 왕과 그의 신하들이 예루살렘을 그렇게 오랫동안 또는 자주 비워둘수 없었다. 상황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문장의 문맥상으로 보건데 한 번에 드리는 '천 마리 희생번제'가 맞다.
성경 「욥기」 5장7절에는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다윗왕의 아들로 태어난 솔로몬은 달랐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 아기의 이름을 여디디야 즉 '여호와께 사랑을 입은 자'라고 불렀다. 솔로몬은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인생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사람이었다.
솔로몬의 배다른 형들로서, 다윗왕의 헤브론 통치시절에 태어난 왕자들인 암논, 길르압, 압살롬, 아도니야 등은 나이로는 솔로몬보다 훨씬 위였으나 다윗왕의 후계자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예루살렘 통치시절에 태어난 솔로몬이 왕으로 예정되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어렸기 때문에 다윗왕은 후계자 결정을 늦추다가, 먼저는 압살롬의 반란이 일어났고, 말년에는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초청하여 왕이 되려는 모의를 하였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 7년6개월간은 헤브론에서 유대의 왕으로 있었고, 33년간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으로 통치하였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솔로몬을 낳은 시점은, 그의 정복전쟁이 거의 끝나고 이스라엘의 패권이 수립된 그의 나이 50대 중반이었기 때문에, 다윗 왕이 70세에 죽었을때, 솔로몬은 겨우 14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그렇지만 솔로몬은 다윗의 후광을 입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해 갔는데,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모세가 광야시절에 만든 성막과 번제단은 당시에는 기브온 산당에 있었기 때문에, 솔로몬 왕은 그곳으로 가서 일천마리의 소를 번제로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하였더니, 솔로몬이 대답하기를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그러자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었고, 그가 구하지 않은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도 주었다.
성경에는 솔로몬 왕의 통치기간이 40년이라고 적고 있으나, 「열왕기상」 14장21절에는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41세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었더라"라고 되어 있다. 즉 르호보암이 41세에 왕이 되기 위해서는 솔로몬 왕의 통치기간은 40년보다 더 길어야 하는데, 단순히 몇 년간의 오차가 아니다.
솔로몬 왕 4년2월에 예루살렘 성전건축이 착공되어 7년만에 준공되었고, 연이어 13년동안 왕궁을 건축한다. 「역대하」 8장11절에는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와서 다윗 성에 두고, 그녀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 즉 솔로몬 왕은 바로의 딸이 자신의 왕비가 되었어도, 그녀가 이방인 여자임을 구별하였다.
솔로몬 왕은 통치시절 초기에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며 부지런히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굽의 왕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을때, 그녀가 이방인임을 감안하여 따로 궁전을 지어 아내가 살도록 하였다. 그런 그가 통치 초기에 아버지 다윗 왕때부터 이스라엘의 복속하에 있던 암몬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을리가 없다.
그런데 솔로몬 왕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갑자기 생긴것이 아니라 서서히 생겼다. 즉 세상의 부귀영화와 여인들을 사랑한 것이다. 「열왕기상」 11장1절에서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그리고 이방여인들을 통해서 우상들도 들어왔다. 「열왕기상」 11장3절~5절에서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결국, 솔로몬 왕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우상을 섬기고, 백성의 고통을 돌보지 않는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셨다. 그리하여 그의 왕국을 둘로 나누기로 정하셨으나, 「사도행전」 13장22절에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하신 말씀처럼, 그의 아비 다윗을 생각해서 솔로몬 당대에는 그 일을 유예하시다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실행하셨다.
솔로몬왕은 예루살렘성전을 건축하였고, 이스라엘 최대의 영역을 통치하였으며, 성경 「잠언」과 「전도서」를 남긴 지혜로운
왕이었다. 그러나 삼손의 놀라운 힘이 그 자신을 구원해주지 못했던 것처럼, 솔로몬의 지혜도 그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고, 세상의 유혹에 의해서 멸망하였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경 「고린도전서」 13장에서 하나님의 최고의 은사로 힘도 아니고 지혜도 아닌 사랑을 설명했고, 사도요한은 「요한1서」 1장5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그리고 4장8절에서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증언했다.
요세푸스의 「고대유대사」에 따르면 솔로몬 왕의 통치기간은 80년이다. 14세에 왕위에 올라 94세에 죽었다. 그가 죽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호소하였다. 「열왕기상」 12장4절에서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그렇지만 르호보암이 보고 배운 것은 아버지 솔로몬 왕의 타락한 삶이었기 때문에 그의 교만은 대단하였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사실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있었던 주변의 많은 민족들의 고통은 이스라엘 백성이 겪는 고통보다 더 심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 이전에 만 백성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는 이스라엘 왕의 교만과 죄악을 그대로 놔둘 수가 없어서, 이스라엘을 둘로 쪼개서 그 힘을 약하게 만드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