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팔가 해전과 넬슨 제독
영국은 19세기 내내 세계 바다를 장악하다(1805년)
나폴레옹과의 전쟁 중 영국은 육전보다는 해전에 더 몰두했다. 전통적으로 해군이 육군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해군은 전쟁준비가 잘 되어 있었던 데 반해 프랑스 해군은 유례없이 부실한 상태였다. 혁명에 흔히 수반되는 숙청에도 불구하고 육군은 열정과 숫자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해군은 그것만으로 훈련된 선원과 지휘관을 대신할 수 없었다. 쓸 만한 일반 해군병사를 양성하는 데는 최소한 6개월이 소요되고, 기술병사를 양성하는 데는 최소한 4년이 걸린다.
프랑스는 영국의 해상수송을 막아보려 했으나 모든 면에서 역부족이었다. 한편, 우세한 해군력을 가진 영국은 프랑스 해안을 봉쇄함으로써 프랑스 무역의 숨통을 옥죄어, 프랑스 함대로 하여금 항구를 박차고 나와 해전에 뛰어들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1794년부터 1805년 사이에 영국 해군은 여섯 차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약 200년 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후 최대의 승리였다. 군함을 기술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없으나, 영국 해군은 전보다 훨씬 효과적인 전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첫째, 그들은 알기 쉬운 신호체계를 도입하여 지휘관 통제 하에 일사불란하게 해상전술을 펼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둘째, 영국 해군에는 뛰어난 지휘관들이 많았다.
1794년 6월 1일 영국군은 대서양 먼 곳에서 항해하던 프랑스 해군을 발견하고 그들을 공격함으로써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 '영광의 유월 초하루'라고 불리는 이날 영국군은 전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공격을 시도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확보한 다음에 사선진 대형으로 적을 덮쳐 적 전열을 절단했다. 그 후 영국군은 바람을 안고 접근전을 벌였다. 적이 바람을 타고 도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해전술 발전에 있어 하나의 획을 그은 하루였다. 그때까지 일반적인 해전술은 양쪽이 마주보고 나란히 서서 각 선박이 차례로 질서 있게 포를 쏘아대는 것으로서, 어느 쪽도 뚜렷한 큰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때 지휘관들은 적을 격파하기보다는 엄격한 정렬을 유지하는 데 골몰하기 마련이었다.
영국군의 신전술은 1797년 세인트 빈센트 곶 해역에서 영국 제독 존 저비스 경(Sir John Jervis)과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이 스페인 함대를 무찌를 때 다시 그 위력을 입증했다.
저비스 경은 영국 해군력의 기초를 다진 사람으로서 탁월한 전략가이자 행정가였다. 또한 그는 인재를 발굴하는 안목이 뛰어났으며, 넬슨의 비범함을 한눈에 알아보고 발탁한 인물이 바로 그였다.
넬슨은 1758년에 태어나 13세에 해군에 입대했다. 그는 세인트 빈센트 곶 해전에 참전하여 영국 해군이 좋아하는 접근전에서 용맹한 행동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저비스의 계획은 적 전열을 절단한 다음 그들이 합쳐지기 전에 뱃머리를 돌려 다시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 전열 뒤쪽에 위치한 넬슨은 영국군 선두가 시간 내에 뱃머리를 돌릴 수 없음을 깨닫고 신속하게 적 전열 사이에 뛰어들었다. 순간을 포착하고 명령 없이 대열을 이탈하여 독자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배 1척에 74문의 대포를 장착한 넬슨은 적선 7척과 교전했으며, 그동안에 다른 함대가 돌아와 합류함으로써 영국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넬슨은 1798년 나폴레옹이 대군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건너가자 그를 추격했다. 나폴레옹은 운이 좋았다. 이집트로 건너가는 중 폭풍 덕분에 넬슨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리저리 추격한 끝에 넬슨은 아부키르 만에서 프랑스 함대를 발견했다. 프랑스 제독은 그곳을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닻을 내리고 있었다. 어두워질 때를 기다렸다가 넬슨은 프랑스 함대 뒤쪽으로 접근하여 기습공격을 가했다. 좁은 공간에서 프랑스 함대는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고, 13척의 군함 가운데 단 2척만이 탈출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격파되었다. 이후 영국은 지중해를 보다 확실히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육전에서 연전연승하고 있었으나 그의 마음속에 늘 영국 해군은 두려운 존재였다. 영국을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도 해군력 열세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일단 브레스트와 툴롱 두 주요 항구에 대한 해상봉쇄를 돌파하기 위한 작전을 시도했다.
1805년 툴롱에서 프랑스 함대는 해상봉쇄 돌파에서 일시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역으로 넬슨은 프랑스군을 대양으로 끌어내 그가 원하는 해전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넬슨은 프랑스 함대를 추격하여 10월 21일 트라팔가르에서 교전했다. 넬슨은 이 해전에서 영국군의 전형적인 전술을 적용하여 적의 전열을 끊은 다음 뱃머리를 돌려 접근전을 벌였다. 그는 눈부신 작전 지휘로 적선 30척 가운데 18척을 나포하거나 침몰시켰다. 그러나 넬슨은 치열한 접근전을 벌이던 중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날 넬슨은 그를 열렬히 따른 자랑스런 부하들이 대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넬슨은 해전사상 매우 독창적이고 지적인 용맹한 제독이었으며, 탁월한 지휘관이었다. 범선 시대의 최후의 해전 중 하나인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은 프랑스 해군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하여 넬슨은 나폴레옹으로 하여금 지상작전에만 한정시키도록 하여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했으며, 영국은 19세기 내내 세계의 바다를 장악함으로써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Nelson touch - 왜 영국 함대는 2줄인가 ? : http://blog.daum.net/nasica/6862523(클릭)
트라팔가 해전 (1) - 'Close Action !' : http://blog.daum.net/nasica/6862524(클릭)
트라팔가 해전 (2) - Cannon vs. Musket : http://blog.daum.net/nasica/6862525(클릭)
트라팔가 해전 (3) - 테메레르(Temeraire)들의 싸움 : http://blog.daum.net/nasica/6862526(클릭)
트라팔가 해전 - 에필로그 : http://blog.daum.net/nasica/6862527(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