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45:13]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 이 와 유사한 구절이 단 4:3, 34 등에도 나오는데 아마도 다니엘 저자가 본절을 참조했던 것 같다. 주의 통치는 공간적으로 그 어느 곳에나 미칠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는 영원 무궁토록 계속된다. 공의와 자비로써 통치하는 여호와의 나라는 그 어떤 세력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 7: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26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부분으로 적그리스도의 영원한 소멸과는 달리 신실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주권을 획득하게 된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 - 곧 본장에 나타난 '성도' 카디쉐와 동일한 말이나, 이 '성민'은 특별히 '거룩한 백성'이란 집합적인 의미로 쓰였는 바, 이는 '그의 나라'의 단수형인 '그'가 지극히 높은 자 곧 하나님을 지시한다는 것과 분명한 구분을 짓게 한다.
[마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나라 -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거룩하시듯이 또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시고 영원히 통치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란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reign)가 미치는 영역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더불어 나타났지만 세상 끝날에 비로소 완성되는 이중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임하옵시며 - 사람들이 하나님께 머리숙여 복종하고 또 구원의 종말론적 축복을 미리 누림에 따라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가 계속 확장되게 해달라는 기도이며, 그 나라가 완성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으며, 메시야가 통치할 다윗 왕국을 대망하였었다. 특히 그들은 회당 예배가 끝날 때마다 고대 아람어 기도인 '콰디쉬, 성화를 뜻함. 여기에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소망이 간절히 깃들어 있다)를 암송하기도 했다
그리스도인은 이에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나라가 시작되어 그 나라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 이 말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하늘에서 온전히 성취된 것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여기서 '뜻'에 해당하는 원어 '델레마'는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들과 구속사에서 어떤 사건을 전개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십자가와같은 대속적 죽음이 실현되어야 하고, 동시에 절대적 순종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한편 본문의 '하늘에서'란 하나님과 천사들만이 존재하는 세계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두번째의 간구('나라이 임하시옵시며')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통치와 의가 지금 현재 온전히 성취된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땅에서'란 말은 앞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대상(타락한 이 지상과 역사와 인격들 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뜻은 현재 '하늘'에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거기에는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은 아직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구현되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메시야 왕국의 왕성을 뜻하는 기도라 할 수 있다.
[눅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렇게 하라 -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신다. 본문을 영원 불변의 기도형으로 생각해서 마치 주문을 외듯이 반복하라는 말씀으로 받아서는 안될 것이며, 기도가 담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내용과 그 기도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것을' 기도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도하라 하신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버지여 - 이 호칭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사용했던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가 마치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처럼 다정하고 친밀한 것임을 나타낸다.이제 예수는 제자들도 그런 의미에서 이 칭호를 사용하라고 하신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롭게 갖게되는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준다.한편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로 되어 있어 형식에 있어서 더 세련되고 완벽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이 부분은 마태복음과 일치한다(마 6:9).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표현한 것이니만큼 여기서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뜻한다. 결국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의 기원이자 경외심에서 기인하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기도 하다. 또한 본 구절의 표현이 수동태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높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겠다는 신앙의 표시이자 하나의 서약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 기원은 기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역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범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형편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간구이기도 하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지배하는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어 지는 것에 상응하는 인간에 대한 축복이다.
이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종말론적 성취를 대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사단의 통치의 종식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이 나라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미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말씀도 성도들이 단지 미래에 성취될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개인과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지는 것을 바라며, 또한 실제로 경험하며 살게 해달라는 간구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