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이 홍엽으로 물드는 것을 보니 가을이 깊어가고 있나 보다.
음력 10월 보름 전후가 되면 시골 문중 집안들마다 큰행사를 치르곤 했다.
통상 제사는 방안에서 지내지만 음력 10월이 되면 조상님들 묘소 앞에서 햇곡식으로 만든 정갈한 음식을 차려서 제사를 모셨다.
요즘은 편의를 위해 방안에서 또는 여유가 있는 집안들은 제실에서 시제를 지내기도 하지만 그 땐 모든 집안들이 산에 있는 묘소에서 시제사를 지냈다.
시제사가 돌아올 즈음이면 동네 방앗간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벌써 환갑을 훨씬 넘은 듯한 골동품 방앗간 발동기는 검은 연기를 숨차게 연거푸 내 뱉으며 힘겹게 돌아갔다. "타앙~탕, 타앙~ 탕~", 발동기에 연결된 피대줄은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지 끼익~ 끼익~ 거리며 벗겨질 듯 말 듯 위태롭게 위아래로 요동치며 돌아 가곤 했다.
어쩌다 발동기가 멈추기라도 하면 방앗간엔 난리가 났다. 방앗간 주인 아저씨와 동네 힘께나 쓰는 청년이 엄청 큰 발동기 휠 바퀴를 돌려 시동을 걸곤 했다.
발동기 코를 잡고 커다란 쇠로된 "ㄱ" 자 시동기를 있는 힘을 다해 돌렸다. 푸식 ~~푸식 ~~ 퉁 ~ 퉁웅~~ 탕탕~~~~ 타~앙~~탕~~
운좋게 시동이 다시 걸리면 다행이지만 이내 푸식 ~ 푸식 ~~ 푸우~~~ 하고 다시 시동이 꺼지면 방앗간 아저씨는 이리저리 뜯어서 고치려고 안간힘을 쓰며 흰 난닝구와 얼글은 검뎅이 투성이가 되었다.
이내 인내심이 다한 방앗간 주인은 손에 든 몽키스패너를 집어 던지며 꽥꽥 소리친다.
"에이씨 이 똥차같은 발동기를 확 도끼로 깨 부숴야지" ㅆㅂ 개발 뭣같이 하며 욕을 태백이로 해 되며 분을 이기지 못하고 홱 또랑가로 향한다. 또랑에는 하얀 오리 몇마리가 아저씨 기분에 아랑곳 하지 않고 꽥꽥 거리며 자맥질에 여념이 없다. 또랑가에 쪼그려 앉아 담배 한대 피워 물고 화를 가라앉힌 뒤에 땀을 바가지로 흘리며 고장난 발동기를 고치곤 했다.
떡가루가 준비되면 떡시루를 준비해야 했다. 울넘에 있는 새암 맑은물에 먼지 묻은 옹기 시루들을 짚 수세미로 박박 깨끗이 씻고 나서 햇살에 물기를 말렸다. 큰 시루는 시루떡을 만들 놈이고 작은 시루는 인절미 용이다.
시루에 물기가 마르면 마당 평상위에 돗자리를 펴 놓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쌀가루와 떡고물을 번갈아 켭켭히 뿌려 채웠다.
통상 흑임자 떡은 시루 하단에 양대고물 떡은 상단에 채웠는데 이건 울 할머니 방식으로 왜 흑임자 떡이 시루 하단에 채웠는지 울 엄마도 아무도 모른다.
시루에 쌀가루와 고물이 채워지면 무쇠솥에 올려 놓고 밀가루 반죽으로 무쇠솥과 시루 사이를 메웠다.
아궁이에 장작불이 피워지고 이내 시루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며 떡냄새가 담장을 넘어 퍼져나간다. 큰길가에서 놀고 있는 울 형제들 코에까지 와 닫으면
쪼로로 몰려 들어 시루에 붙어 있는 밀가루편을 떼어 먹었다. 유명 빵집의 빵맛이 어디 이맛에 비교할 소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꿀 맛 이었다. 요즘 애들에게 먹어보라고 하면 아마도 소금기도 없이 아무맛 없는 이런 맹탕 밀가루편을 먹기나 할까?
작은 시루에는 인절미용 찹쌀가루가 익어간다. 찹쌀가루가 준비된 해에는 그나마 엄마의 수고가 덜하였다. 참쌀밥을 해서 인절미를 만들라면 절구통에 얼마나 힘들게 절구질을 해야 했을까.
평상위 돗자리위에 기름먹인 문종이를 깔아놓고 할머니와 엄마는 커다란 도마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제비 반죽 같은 인절미를 올려 놓고 손에 물을 적셔가며 떡가래 같이 말아 칼로 자른다. 자른 인절미는 함지박에 담은 포실 포실한 양대 고물에 던져지고 이리저리 뒹굴며 고물옷을 곱게 입는다.
엄마눈을 피해 울 형제들은 아직 김이 몰락 모락 나는 인절미를 재빠르게 손에 쥐고 입으로 가져간다.
엄마는 손등으로 우리들 손을 치며 조상님들께 시제사 지내고 먹어야지 하며 혼내지만 할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 고사리손에 인절미 하나씩 더 쥐어 주며 나가 놀아라 하셨다.
떡이 준비되면 다음을 부침개 전쟁이다. 중시조부터 조상님들 묘소가 어디 한둘이랴~~ 많은 양의 부침개가 요구된다.
먼저 호박돌과 흙을 이겨 화덕을 만든다. 가마솥 뚜껑도 울넘어 새암가로 가져가 짚수세미로 박박 씻어 내어 말린다.
물기가 마르면 들기름으로 닦아내고 화덕위에 뒤집어 올려 놓는다.
이젠 우리형제들의 수고가 빛을 볼 시간이다. 열심히 소나무숲에서 솔방울을 삼태기로 주워 모아 놨기 때문이다.
장작불은 불이 오래 가지만 너무 쌔서 부침개가 타기 쉽고 짚불은 불이 약하거니와 오래가지 못해 계속 짚을 넣어야 하며 무엇보다 재가 많이 날려 음식에 들어간다. 솔방울 불은 새기도 적당하고 오래 타며 재도 안날리니 이보다 좋은 재료가 어디 있었으랴~~
불에 달궈진 솥뚜껑에 들기름을 다시 붙고 무우를 잘라 만든 기름 바르개로 이리저리 치익~ 치익~~ 문질러 주면 드디어 부침개 구울 준비가 된다. 할머니, 엄마는 한나절 동안 허리도 못 펴고 부침개를 만들곤 했다. 제사 지낼 부침개가 다 끝나갈 즈음 엄마는 광으로 향했다. 커다란 고구마를 가져와 씻어서 부엌칼로 툭툭 잘라서 부침개 꾸고 남은 밀가루 반죽에 넣는다. 울 형제들 간식 거리인 것이다. 고구마 부침개 맛은 언급하지 않아도 알것이다.
제사 음식이 다 준비되면 이젠 아버지 차례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떡판에 꼭 맞게 떡을 잘라 아래에는 양대고물 시루떡을, 다음엔 흑임자 시루떡 그리고 절편을 놓고 인절미를 쌓는다. 그리고 나서 쌀가루 부침개를 올려 놓고 쌀가루 부꿈이를 볼록하게 쌓아 올린다. 탑과 같이 무릎 높이로 쌓아올린 떡판을 한지로 각을 잡아 이쁘게 포장하고 짚으로 묶어서 완성하여 시원한 광의 시렁위에 시제날인 다음날 아침까지 올려 놓는다.
저녁이 되면 대처에 나가 살고 있는 일가친척, 먼 이웃 동네에서 살고 계시는 집안 어른들이 사랑방에 도착하신다.
내일 쓸 밤을 치고 호두를 까며, 두런 두런 족보 이야기며 묘소 이장, 사초 등 집안 대소사 대화에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신다. 말씀이 길어질 수록 술상은 몇번이나 새로 차려졌다.
이른 아침 산과 들이 된서리로 온통 하얗게 변했다. 뒤안 감나무에 까치가 반갑기 울어 준다.
아버지는 옆집에서 지게를 하나더 빌려 오셨다. 많은 음식을 어찌 지게하나로 옮길 수 있을까? 사각 피나무 함지박에 제사음식들을 조심스럽게 놓고 지게위에 올린다. 아버지와 가장 젊은 아저씨 한분이 지게를 지고 산 정상에 있는 큰산소로 오르신다. 후손들이 복 받으라고 그 높은 산꼭대기에 산소들을 썼으니 오르는 산길은 녹록치 않다.
이때쯤이면 온동네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손에 보자기를 들고 산에 오른다. 이제 걸음걸이 시작한 어린애, 갓난 막내동생을 포대기로 업은 누나, 제법 어른티가 나는 청소년 등, 온동네 어린애들이 다 모였다.
타성씨 애들도 많으니 시제사에 참석하여 절을 올리기 위해서는 아닌게다. 오로지 젯밥에 관심이 있다.
향이 피어 오르고 이내 시제사가 종료되면 제사에 참석한 집안 어른들은 술 음복을 하시면서 조상님의 덕행에 대해 말씀을 나누신다.
아저씨들 중 한분은 묘소옆 노송 밑에 멍석을 깔아 놓고 제사 음식을 나누어 줄 준비를 한다.
이내 얘들아 떡 받아가라~~라는 아저씨의 외침에 우르르 줄을 서기 시작한다. 떡은 공평히 나누어 진다.
나이에 관계 없이 등에 업힌 간난쟁이도 한몫이다. 뒷집 개똥이는 학교갔다 해찰하느라 아직 오지 않은
형 몫까지 떡을 달라고 하여 받아간다.
이런 시제사 떡나누기 행사가 김씨, 박씨, 이씨 문중을 망라하여 전국에서 진행 됐던 것으로 안다. 아마도 어려웠던 때 서로 돕는 우리 민족의 사랑이 담긴 구휼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생각된다.
받아온 떡들은 비수리 (야관문)대 또는 뎅뎅이 넝쿨로 만는 소쿠리에 담겨 시원한 광의 시렁에 올려진다.
솥에 다시 쪄서 요긴한 간식이 되던지 아니면 점심 대용이 되었다.
먹다가 남은 떡은 햇살에 잘 말려 동네에 뻥튀기 튀밥 장사가 오면 떡 튀밥으로 튀겨 아이들 간식이 되었다.
어린시절 막내를 포대기에 업고 떡을 받으러 왔던 또랑 건너 대추나무집 누나는 어디에 사는지~~
첫댓글 어렸을적 봐온 추억들이 생각 납니다.
요즘은 다 사라져서 없어져갑니다.
다른건 생각안나고 학교갔다오다 묘사지내는곳 보이면 보자기들고 가서 한뭉태기 받아왔지요. 우리동네는 묘사라고하고. 요즘은 모여서 제실서 몃대까지 지내고 바로 윗대 한 4~5대조는 각자 지내는데 저는 동생과 산소에 가서지냅니다. 근데 산소에 가서 산소마다 안하고 제일아래 만들어놓은 제단에서 산소갯수만큼 술치고 한번에 지내고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