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강원문학> 51집 원고
동화
목탁소리 똑딱
사랑의 종소리
전 세 준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드디어 흰 나비 같은 눈이 하늘하늘 춤추며 내리기 시작합니다.
“규호 엄마, 내 옷.”
규호 아빠는 규호 엄마가 내 주는 양복을 바쁘게 받아 입고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서두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흰 눈이 오는 것을 환영하듯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고 새 해를 앞둔 길거리 모습을 내 보내고 있습니다.
“여보, 멋있지?”
아빠는 까만 정복을 입고 구세군 모자를 쓰며 규호 엄마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합니다.
“그래 멋있어요. 빨리 나가보세요. 교대 시간이 되어가잖아요.”
“알아, 알았어. 오늘도 성금이 많이 들어 왔으면 좋을 텐데....”
“요즘 경기가 나쁘다는데....”
“글쎄 말이에요.”
엄마의 얼굴에도 규호 아빠의 얼굴에도 걱정하는 그림자가 지나갑니다.
“그래도 한푼 두푼 모아주면 좋은데...”
“걱정 말아요. 날이 갈수록 기부하는 사람 숫자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새 해가 다가올수록 차츰차츰 많아지겠지요.”
“어서 나가봐요. 교대 헤 드릴 시간이 다 되었어요.”
“응, 알았어요.”
까만 정복으로 갈아입고 구세군 모자를 쓴 아빠는 현관을 나섭니다.
“아빠, 오늘도 가시는 거 에요?”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규호가 나와 아빠를 쳐다봅니다.
“그래, 교대해야 할 시간이 다 되어가는구나.”
“야, 멋있어요. 오늘따라 아빠의 옷이 더 멋져 보여요.”
“그래? 내가 멋져야지 모금도 잘되지 하하하.”
아빠는 규호를 바라봅니다.
“너도 부지런히 한 푼 두 푼 모아라.”
“어이구, 제 걱정하지 마시고 아빠나 많이 모금하세요. 소리도 좀 크게 내고요...”
“소리를 크게 내라고?”
“그래요. 그래야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지요. 저도 학교에서 불우친구 돕기 운동할 때 각반 교실로 다니면서 큰소리로 외쳤어요.”
“그래? 너희들도?”
“네, 어린이날이 가까워오면 학교 어린이 회에서 전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친구 돕기 모금 운동을 결정하고 각 반별로 학용품도 모으고 돈도 모아요.”
“어, 그렇구나. 참 잘하는 일이다.”
“그때 각반 교실로 다니면서 크게 외쳐요. ‘친구들을 도웁시다! 학용품도 좋습니다!’ 크게 외치면 아이들이 모두 잘 도와줘요. 아빠도 크게 외쳐요.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우리 이웃을 도웁시다’ 하고요!”
규호는 방안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아빠를 바라봅니다.
“허허 녀석, 그래서 우리도 사랑의 종을 크게 울리며 ‘이웃을 도웁시다! 가나한 이웃을 도웁시다’ 외친단다.....아, 알았어...나 간다.”
아빠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밖으로 나갑니다.
“아빠! 파이팅!.”
“오케이! 팟 팅!.‘
“두 부자(아버지와 아들)가 잘하네요. 나도 파이팅!”
엄마도 아빠를 바라보며 한쪽 팔을 번쩍 들어 보입니다.
대문을 나선 아빠는 부지런히 아빠가 일 해야 하는 장소로 갑니다. 아빠가 일하는 곳은 시내 중심가 버스 승차장 바로 위쪽 제3장소입니다. 두 사람이 한조가 되어 오전 오후 모금함 옆에서 사랑의 종을 울리며 모금 운동 합니다
“조금 늦었네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어서 가셔서 점심 식사하세요. 옷에 눈도 털어내시고요..”
아빠는 둘이 같은 조가 된 이 씨 어께에 하얗게 덮인 눈을 털어줍니다.
“그럼, 수고 좀 해 주세요.”
이 씨 아저씨는 쥐었던 사랑의 종을 넘겨줍니다. 모금함 위에도 하얀 눈이 앉아 있습니다.
“네.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이 씨 아저씨는 사랑의 종을 넘겨주고 사라집니다.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아빠는 모금함 앞에 서서 사랑의 종을 울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크게 외칩니다.
“감사합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꼬마가 지나다 모금함에 꼬깃꼬깃 접은 오 천 원 한 장을 넣고 갑니다.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내 이웃을 도웁시다!.”
아빠는 다시 사랑의 종을 울립니다.
바로 그 때입니다.
“나무 관세음 나무관세음, 불우한 이웃들을 도웁시다 자비를 베풉시다!”
-또 똑 똑똑똑, 또 똑 똑똑똑-
어디선가 목탁 소리가 들려옵니다.
‘응?,
아빠는 사랑의 종을 계속 흔들며 목탁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조금 전 구세군 이 씨하고 교대할 때 미처 보지 못한 듯 조금 떨어진 곳에 삿갓모를 쓰고 승복을 입은 스님 한분이 서 있었습니다.
목탁 소리는 그 스님이 들고 있는 목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스님 앞에 역시 모금 통이 하얀 눈을 맞고 있습니다.
‘아니, 여기서 같이....’
아빠는 사랑의 종도 울리지 않고 한동안 스님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가깝게 서서 따로따로 모금하면.....’
스님의 목탁소리 속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사랑의 모금함에 사랑의 돈을 넣고 지나갑니다.
‘그래, 우리나 스님이나 많은 사랑을 모으면 되는 거야’
아빠는 다시 사랑의 종을 울립니다.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사랑하는 이웃을 도웁시다!”
아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사랑의 종을 울리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내리던 흰 눈이 멈추자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걸음 두 걸음 늦어지며 앞을 지나갑니다.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사랑하는 이웃을 도웁시다!”
아빠의 모금함에 사랑의 돈을 넣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만 같아 아빠는 사랑의 종을 울리면서도 자꾸자꾸 스님 쪽을 바라봅니다.
스님 앞에 놓인 모금함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자주 멈추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리를 옮겨볼까’
아빠는 힘없이 종을 울립니다.
‘아니야, 다른 곳으로 마음대로 옮길 수 없잖아...’
각 조 마다 자기들 마음대로 자리를 옮길 수 없습니다. 언제나 지정된 장소에서 모금활동을 해야 합니다.
‘어쩌지?’
한동안 힘없이 사랑의 종을 울리던 아빠는 다시 힘을 내어 사랑의 종을 울립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쩐지 모두 스님 앞으로만 가는 것 같습니다.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어느 순간 아빠의 목소리가 차츰차츰 커지기 시작합니다.
-댕그렁 댕그렁!-
아빠의 사랑의 종소리도 커집니다.
아빠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빠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가는가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사랑의 모금함에 성금을 넣고 가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댕그렁 댕그렁!-
바로 그때입니다.
“나무 관세음 나무 관세음,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또 독 똑똑똑. 또 독 똑똑똑!-
위쪽에서 스님의 목탁소리와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옵니다.
아빠의 모금함 앞에 섰던 사람이 멈칫하더니 스님 앞으로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갑자기 아빠는 스님 앞으로가는 행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입니다.
아빠 앞을 지나는 사람들과 스님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더욱 커진 목탁과 사랑의 종소리, 그리고 스님의 목소리와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하며 지나갑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자 스님의 목탁소리도 아빠의 목소리도 모두 조용해집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아빠가 모금함을 정리합니다. 조금 떨어져 모금하던 스님의 목탁소리도 그칩니다.
아빠가 모금함을 접고 막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위쪽에 있던 스님이 모금함을 들고 다가옵니다.
“가시려고요?”
“네. 스님도?”
“오늘 일은 여기서 마쳐야지요. 내일은 제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겠습니다.”
“네?”
“오늘 제가 옆에 있어서.... 자 여기 이것 같이 보태세요.”
스님은 모금함에 있던 돈을 모두 꺼내 아빠의 모금함에 넣습니다.
“아니..이것을....”
“구세군님, 오늘 제가 옆에 있어서 많이 모금 못하셨지요? 내일은 제가 다른 곳으로 옮기겠습니다. 좋은 일 많이 하세요.”
“아니, 스님. 스님이 모금하신 것을...”
아빠는 깜짝 놀라 스님을 바라봅니다.
“어차피 모금한 성금은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게 아닙니까. 불자들만 돕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이웃을 돕는 게 자선냄비의 큰 뜻이지요. 제가 옆자리에 와서 모금액이 적어지면.....자, 그럼... 좋은 새 해 되세요. 둘이둘이 모여서 한 마음 되는 세상이 되어야지요.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은 아빠가 말 할 틈도 주지 않고 어둠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래, 스님 말씀이 맞아! 둘이둘이 모여서 한 마음 되는 좋은 세상이 와야 해.’
스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참 훌륭하신 스님이시구나!’
아빠는 빙그레 혼자 웃으며 구세군 사무실로 발을 옮깁니다.
어쩜 내일은 이웃돕기 사랑 모금이 더 많이 모일 만 같아 아빠는 스님이 사라진 쪽을 한동안 바라봅니다.*
*<아동문학연구> 동화 신인상. <강원일보>.신춘문예 소설 입선 외
*강릉문학상. 관동문학상. 아름다운 글 문학상. 불교동요 대상 외
*저서: 동화집 <선생님의 눈물>외4. 꽁트 집 1 외
*한국문협. 강원문협. 강릉사랑. <솔바람>회원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