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에 뜬 나뭇잎마냥 '환상 숲길' 사뿐히 걸어 배내골 품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의 사회학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 자신의 저서 '걷기예찬'에서 "모든 걷기는 계절을 탄다…"고 설파한 바 있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걷다보면 브르통의 말이 더욱 실감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점점 커져 가는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의 혼성음 만큼이나 둘레꾼 각자가 느끼는 '마음의 소리'도 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나 자연이나 계절을 타기는 마찬가지인데, '걷기'도 계절을 탄다면 걷는 행위 자체가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몸짓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 풍류동 가산마을 다람쥐골 이어 가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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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와 양산시의 경계를 이루는 까치목에서 산중 오지인 가산마을로 향하는 오솔길은 영남알프스 둘레길 전체 코스에서 최고 구간 중 하나라해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순하며 아름다운 길이다. 본지 개척단의 발걸음이 가볍다. |
이번 주 답사한 제17코스인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고례마을~양산시 원동면 선리 구간에서는 한 마디로 "무릇 둘레길이라고 하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는 길이다. 그만큼 곱고 순하면서도 가장 자연을 닮은 아름다운 숲길을 만난다. 특히 까치목에서 가산마을까지 가는 오솔길, 가산마을에서 선리까지 내려서는 '다람쥐골' 계곡길은 한동안 잊기 힘든 걷기의 추억을 선사해 주는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출발지는 밀양댐 아래에 위치한 단장면 고례리 고례마을이다. 마을의 볼거리 몇 곳을 들른 후 제16코스의 종착점이었던 고례리 평리마을을 거쳐 백마산(774m) 중턱의 산골마을인 풍류동, 배꼽목, 까치목, 가산마을을 거쳐 다람쥐골을 따라 배내골의 중심 마을 격인 원동면 선리마을회관(정보화센터)에서 끝난다. 총거리 13㎞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휴식시간까지 포함해도 5시간 정도 걸리니 한나절 걷기에는 적당하다.
2001년 밀양댐이 완공되기 이전까지 고례 평리 덕달 사희동 죽촌 등 5개 행정마을을 아울렀던 고례리는 비록 오지였지만 밀양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마을로 통했다. 백마산과 향로봉(726.8m) 뇌암산 등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구곡천(九曲川)이라고도 불리는 고사천(姑射川)이 관통하며 수많은 기암절벽과 깊은 소, 바위들을 만들어냈다. 밀주구지(密州舊誌)에 '산명수려(山明水麗)하고 계류와 전답이 아름다우며 기암절벽이 마치 옥(玉)기둥을 세워 놓은 듯 깨끗한, 인세(人世)의 진경(眞境)'이라고 기록했을 정도다.
고사천(姑射川) 상류에 있는 농암대(籠岩臺)는 그 대표적인 명승지 였다. 조선 초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이 곳을 자주 찾아 노닐었고 그 승경(勝景)을 읊은 시(詩)도 남겼다. 신선이 살았던 곳이라는 뜻에서 고사리(姑射里), 고사산(姑射山), 고사천(姑射川) 등의 이름도 생겨났다. 하지만 밀양댐의 건설로 사희동과 덕달 죽촌 등의 3개 마을과 김종직 선생이 주유했던 농암대를 비롯한 절경이 모두 수몰되는 아픔을 겪었다. 밀양댐 순환도로 중간 전망대 쉼터공원의 망향정만이 실향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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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단장면 풍류동 앞 공터는 쉴 만한 그늘이라 좋다. |
고례리의 본동마을인 고례마을은 밀양발 새마을버스의 종점이자 1592년 이후 내려온 인동 장씨 문중의 세거지다. 본격적인 답사에 앞서 재실과 고택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일단 버스 종점에서 양지교라는 작은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틀면 댐 앞쪽에 인동 장씨의 재실인 옥봉정이 있다. 단촐하면서도 절제된 균형미를 갖춘 재실인데 한국전쟁 직후에 건립됐다고 한다.
다시 양지교를 건너 하천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1051번 지방도로와 만나는데, 길 건너 맞은편 산 밑에 운치 그윽한 작은 정자가 보인다. 조선 숙종 때 이 마을에 들어와 살았던 낙주(洛洲) 장선흥(張善興)과 그 후손인 농산(聾山) 장영석(張永錫)을 추모하기 위해 1918년 인동 장씨 가문에서 건립한 재실인 낙주정(洛洲亭)이다.
'임경대'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누마루에 올라 낮은 담장 너머로 고사천을 바라보면 일상의 시름이 일순간 사라지는 느낌이다. 낙주정에서 돌아나와 고례교를 지나면 우측에 효자각이 보인다. 이 역시 장씨 문중의 것이다.
고례마을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10분쯤 가면 평리마을이다. 최근 팜스테이체험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원래 평리마을은 '고례산대추' 산지로 더 유명하다. 농촌가꾸기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탔을 정도로 잘 가꿔진 동네이기도 하다. 넓은 들판과 아름다운 하천을 갖춘 평리마을은 강변의 벼락덤이와 진지소, 동북쪽의 백마산 등이 어우러져 풍광이 빼어나다. 또 밀양의 삼대 오지마을 중 두번째로 손꼽히는 바드리(일명 소월리)와 산중 마을인 풍류동(風流洞)까지 포함하고 있어 그 품이 넓고 깊다.
◇ 밀양 양산 경계 까치목 이후 구간 환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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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마을과 향로산이 보이는 전망대에 선 개척단. |
마을회관 앞 운동시설을 지나 마을 안 길로 진행한다. 풍류동 가는 길이다. 3분 후 구씨 재실 앞 갈림길에서 '은하수펜션' 방향 왼쪽 길로 오른다. 완만한 오르막 길. 주변 산자락의 대추밭은 초록빛 일색이다.
25분 정도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산중 마을인 풍류동에 닿는다. '바드리 아랫마'라고도 불리는 풍류동은 말 그대로 풍류를 즐기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다. 둥둥재, 북바위, 퉁소바위, 칭칭이산 등 마을 주변에 풍류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퉁소를 불고 북을 둥둥 치며 '칭칭나네'를 부르고 춤을 추는 풍류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차량은 풍류동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좁은 차로가 끝나는 곳에 마을 공터가 있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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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마을과 배내골을 잇는 다람쥐골의 무명폭포. |
3분쯤 오르면 우측으로 '풍류동→배꼽목 1㎞'라는 안내판을 보고 배꼽목 방향 산길로 들어선다. 초반에는 조금 까다롭다. 그러나 작은 개울을 지나 50m 정도만 가면 길은 금새 편안해진다. 갈 지(之)자 모양이 여러개 이어진 형태로 계속되는 산길은 별로 숨 찰 것도 없이 순하다. 10분 후 중간 갈림길을 만나는데 왼쪽으로 오르막을 좀 더 타야한다.
15분 후 작은 고개마루인 '배꼽목'에 닿으면 다시 왼쪽 오르막 능선길을 탄다. 널찍하고 걷기 편한 길이다. 5분 후 갈림길에서도 능선을 따라 직진하면 잠시 후 임도에 닿는다. 표충사 입구 구천삼거리에서 번데기마을과 바드리를 거쳐 까치목까지 연결된 비포장 임도다. 우측으로 가면서 보면 밀양호반이 눈에 들어오고 그 동남쪽에는 향로봉이 우뚝하다.
900m쯤 가면 임도 종착점인 까치목이다. 밀양시와 양산시 경계선 상에 위치한 까치목은 좌측의 백마산과 우측의 향로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작은 고개다. 정면 멀리 우뚝한 향로산(975m) 방향의 좁다란 오솔길로 직진한다. 해발 550m 산 중턱에 자리잡아 전기 조차 들어오지 않는 가산마을까지 가는 길은 걷기 좋고 아름다운 자연 숲길이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이 유순한 길에는 일체의 걸림이 없다. 걷는 이의 발길은 마치 부드러운 계류를 따라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가볍기만 하다. 이런 길을 언제 또 걸어 봤던가. 언젠가 꿈 속에서나 이런 길을 걸었을까.
◇ 소박한 다람쥐골 폭포 소 즐비한 숨은 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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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산 허리춤을 감싸고 도는 호젓한 비포장 임도. |
3분 후 작은 갈림길에서 우측 길을 택해 만나는 전망대에 서면 움푹한 곳에 민가 4채가 겨우 보일락말락한 가산마을과 그 뒤에 우뚝 솟은 향로산의 풍광이 마치 선계(仙界)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전쟁기 그 많은 빨치산들이 주민들을 약탈하고 토벌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른 비극의 현장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10분쯤 내려서면 어느새 민가에 닿는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외딴집 처마 끝에 도화지 한 장 크기의 작은 태양열 집열판이 보인다. 냉장고가 없다 보니 각종 채소와 과일 김치통 등을 물동이에 담아 놓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다람쥐골의 최상류인 이 지점에서부터 선리마을까지는 줄곧 내리막이다.
다람쥐가 많았다고 해서 다람쥐골이라고 명명된 이 계곡은 화려하지 않지만 결코 왜소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움이 빛나는 청정 계곡이다. 민가 한 채를 더 지나니 크고 작은 폭포와 아담한 물 웅덩이가 이어진다. 높이 3m가량의 중간급 폭포도 나타난다. 숨은 비경이다. 10분 후 오솔길이 끝나는 곳 개활지부터 임도가 이어진다. 20분가량 내려서면 원동면 선리 언곡마을. 예쁘장하게 지은 전원주택과 '배내골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밭이 나그네를 반겨준다. MMF연수원과 선리 당산나무를 지나 양산배내골사과마을로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선리 마을정보센터에 도착, 신발끈을 푼다. 배내골의 중심마을인 선리(善里). '착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의미인가 보다.
# 떠나기 전에
- 고례리 고사천은 절경 갖춘 일명 '구곡천'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앞을 흐르는 하천은 고사천이라고도 불리지만 옛날부터 구곡천(九曲川)으로도 불렸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밀양호에 수몰된 고례리 사회동마을에서 제16코스의 출발지였던 단장면 사연리에 이르는 구간의 하천을 일컫는다. 구곡천이란 '아홉 굽이를 돌아 흐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인데 조선 초기 학자인 채지당(採芝堂) 박구원(朴龜元)이 당시 사희동 마을에 살면서 지은 고사구곡가(姑射九曲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박구원은 하천 유역의 9개 명소를 구곡(九曲)으로 꼽았는데 사연, 정각산(正覺山), 범도리, 승학동(乘鶴洞), 단애(丹崖), 증소(甑沼), 도장연(道藏淵), 농암대(籠岩臺), 선소(船沼)를 가리킨다.
한편 이번 코스에서는 살짝 비켜 갔지만 백마산 중턱의 바드리마을은 밀양의 3대 오지마을에 꼽히는 곳이다. 밀양에서는 옛날부터 '일오치' '이소월' '삼감물'이라는 말로 오지마을들을 표현했는데 '이소월(二所月)'이 바로 바드리를 가리킨다. 소월리라는 말은 아주 오랜 옛날에 백마산에 사태가 나서 반쪽으로 갈라졌는데 그 모습이 반달을 닮았다고 해서 소월산이라고 불렀고 그 아래 마을을 소월리 또는 반달리라고 했던 것에서 나왔다. 반달리가 세월이 지나면서 바드리로 변형됐다는 것이다.
# 교통편
- 밀양터미널서 고례행 버스 하루 4회 운행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 편으로 밀양역까지 간다. 부산역 기준 오전 7시45분, 8시35분, 9시25분 등 여러 편 있다. 해운대역에서 밀양행 무궁화호도 오전 7시45분에 출발한다. 밀양터미널에서 고례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오전 6시40분, 12시 등 하루 4회 운행. 종착지인 배내골 선리에서는 원동역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 3시05분, 3시40분, 5시55분, 8시05분(막차)에 있다. 원동역에서 부산역행 열차는 오후 4시03분, 4시25분, 6시36분, 8시48분에 있다.
자가용은 차량 회수의 어려움으로 인해 권장할 사항이 아니다. 단 두 대 이상이 함께 출발, 종착지인 선리마을에 한 대를 먼저 세워 놓는 방법을 쓴다면 가능하긴 하다.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양산IC에서 내린 후 언양 경주 방향으로 우회전 하자마자 다시 어곡공단 에덴밸리리조트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배내골 표지판을 보면서 에덴밸리리조트를 넘어야 한다. 고점사거리에서 우회전, 7분만 가면 선리에 닿는다. 고점사거리로 돌아가 밀양댐 단장 방향으로 우회전, 15분쯤 가면 고례마을에 닿는다.
# 고례리 '터줏마님' 장복술 할머니
- "전쟁때 빨치산 피해 가산에서 내려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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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백마산 너머 가산마을에서 6·25동란 나던 해에 죽을 고생을 하면서 피난 내려왔지. 빨치산들을 피해서 함께 도망치던 사람들 중에 네 명이나 총에 맞아 죽었어. 끔찍했지. 방년 18세때 였어."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7코스 초입인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평리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장복술(79·사진) 할머니는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현대사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산 증인이다. 인근의 지리 및 인문학적 특성까지 줄줄 꾀고 있다.
본지 개척단에게 60여년 전 기억을 거침없이 풀어낸 장 씨는 "남자들 뿐 아니라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들까지 완장을 차고 빨치산이라면서 밤만 되면 마을로 내려와 설쳐대는 것이 여간 무섭지 않더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장 씨는 또 "평리로 내려와서 전쟁이 끝난 후 시집을 가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애를 등에 업고 저기 둥댕이재를 넘어 국전마을로 가기도 하고 다람쥐골을 따라서 배내골까지 오가기도 했지"라며 주변 지형까지 읊어 준다.
잠시 목이라도 축이고 가라며 한사코 집 안으로 단원들의 손을 끈 장 씨는 아껴 뒀던 음료수를 냉장고에서 꺼내 준다. 당시 장 씨의 등에 엎힌 채 산길을 넘나들었던 그 아들은 장성해서 밀양시민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현재 밀양시의회 손진곤 의장이 바로 장 씨의 장남이다. 총명함이 빛나는 장 씨 할머니를 보면서 개척단원들은 하나같이 "아, 이런 어머니가 계셨기에 아들이 커서 시민대표까지 됐구나"라며 입을 모았다. 장 씨는 "둘째 아들이 고례산대추도 키우고 얼음골에서 사과밭도 하니까 많이 선전 해 주게"라며 당부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비록 나이 들었어도 자식 걱정과 사랑 만큼은 한결같은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서 더 행복한 둘레길이다.
# 원동면 선리 서종수 이장·이월동 총무
- "아삭하고 달콤한 배내골 사과, 최고예요"
제17코스 종착지 마을인 양산시 원동면 선리는 배내골의 중간에 위치한 '배내골사과마을'로 유명하다. 사과 특산 정보화마을로 지정돼 있기도 한 선리 주민들이 사과 재배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께 부터다.
하류에 밀양댐이 건설되면서 배내골 대부분 유역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버려 살길이 막막해 진 주민들이 높은 일교차 등의 기후조건을 이유로 특산물로 사과를 재배키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낙동강환경관리청과 수자원공사 등 유관 기관의 지원과 주민들의 합심으로 시작된 선리마을의 배내골사과 농사는 이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제는 양산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자리잡았다.
약 6만㎡(1만8000여 평)의 공동 경작지에서 주민들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사과나무는 총 5600여 그루. 나무 1그루 당 평균 두 상자 씩, 일년에 총 1만1000여 상자를 출하한다. 물론 개인이 따로 경작하는 사과밭도 있지만 일단 공동 경작한 사과 출하량의 수익은 공평하게 분배한다.
'배내골사과마을' 운영위원장 겸 선리 이장인 서종수(69·사진 왼쪽) 씨와 총무 이월동(67) 씨는 "배내골 사과가 비록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합심된 노력과 일교차가 큰 기후 조건의 혜택을 받아 당도가 17에 이를 정도로 높고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아 '명품 사과'로 거듭났다"며 "11월 첫 토·일요일 열리는 배내골 사과축제때도 방문해 훌륭한 사과도 맛보고 구매도 하기 바란다. 늦게 오면 없다"고 말한다. 마을 사랑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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