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도소 ‘공익성’ 인정한 방심위…‘공적 형벌 체계’ 흔들리나
이주형 기자
기사승인 2020. 09. 16. 16:07
전문가들 "무책임한 결정으로 사적 형벌·보복 방치…무고한 피해 발생할 것"
불확실한 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게재해 온 사이트 ‘디지털교도소’가 지난 11일 운영을 재개했다./사진=디지털교도소 사이트 캡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디지털교도소’ 사이트를 전체 차단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사적 보복, 사적 형벌을 내리는 디지털교도소가 ‘공익성’을 인정받을 경우 궁극적으로 ‘공적 형벌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14일 방심위 통신심의소위원회는 디지털교도소 사이트의 17개 게시물 정보에 대한 시정요구(접속차단)를 결정했다. 다만 ‘전체 차단’을 두고는 ‘반대 의견’을 표한 심의위원이 더 많았다. 이 가운데 일부 심의위원은 “사이트를 차단하지 않음으로써 공적인 이익을 얻는 측면이 있다”고 반대 이유를 들었고, 곧바로 비판 여론에 휩싸였다. 최근 디지털교도소가 신상정보를 공개해 피해를 본 이들 가운데 ‘무고함’을 입증한 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16일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심위의 결정으로 ‘사적 형벌’이 방치돼 무고한 피해자가 더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또한 이들은 “가치의 크기를 판단하기 어렵고 애매모호한 ‘공익성’이 아닌 명확한 증거가 결정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방심위는 공공기관으로서 더욱 엄격하고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고 비판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공익성은 법적 체계 내에서 추구돼야 하는데, 디지털교도소는 ‘사적 형벌’을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며 “사적 형벌은 법률 체계가 형성되기 이전인 원시적 시대에나 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기관인 방심위는 ‘공적 형벌’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음에도 국가가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고 있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도 “민간의 오판으로 신상이 공개된 시민은 너무나 막대한 피해를 당하게 된다”며 “잘못된 정보도 확산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범위 또한 상당히 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하게 제재하지 않으면 유사 범행이 발생할 수 있고, 사적 보복을 위한 수단으로써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교도소를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와 같은 시각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의견을 보였다. 법원 판결 등 자료를 토대로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와 달리 디지털교도소의 판단 기준은 단순한 ‘제보’에 그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사이트 운영자의 소재가 확실하지 않은 점도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공 교수는 “배드파더스는 예방적 성격이 강하지만 디지털교도소는 응징적 성격이 강하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결국 사법기관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교수는 “민간인이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위험까지 무릅쓴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이나 범죄 피해자가 사법기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사법 판단을 믿을 수 있도록 형벌 체계가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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