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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Kill a Mockingbird ]
1932년 여름, 미국 남부의 낡고 가난한 마을 메이컴의 일상은 지루했다. “두려움 자체 말고는 두려울 것이 없는” 그곳의 여름은 무덥고 길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홀로 딸과 아들을 키우는 변호사 애디커스 핀치는 강직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가난한 의뢰인에게는 수임료를 받지 않는 그는 마을 주민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변호사이자 자상한 아빠다.
영화는 애디커스가 백인 여성 마엘라를 성추행한 혐의로 공소된 톰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진실과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은 톰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마을 남자들은 톰에게 린치를 가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애디커스는 톰을 보호하고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변론을 준비한다. 피해자 마엘라는 톰을 유혹하다가 아버지에게 들키자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첫 공판에서 애디커스는 완벽한 변호를 하지만 배심원은 유죄 평결을 내린다. 애디커스는 불공정한 결과에 실망하지 않고 항소를 통해 끝까지 싸우려고 결심한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톰이 이송 도중 도주하는 일이 벌어지고 결국 그는 보안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앵무새 죽이기〉는 애디커스의 딸 스카우트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구성되며,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면서 스카우트의 성장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1. 영화적 기법
‘스카우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6살 여자아이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앵무새 죽이기〉는 영화 전체가 과거회상 장면이다. 이제는 성인이 된 스카우트의 내레이션을 통해 영화의 배경이 1932년 미국 남부 작은 마을 메이컴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늘 멜빵바지를 입고 남자아이들과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말괄량이 스카우트는 세상에서 아빠를 가장 존경한다.
이 영화의 뼈대가 되는 사건은 무고하게 기소된 흑인 톰을 스카우트의 아빠인 애디커스가 변호하는 것이지만 영화는 애디커스가 아니라 어린 소녀 스카우트의 시점을 택하고 있다. 스카우트의 시점으로 서술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는 관객도 스카우트와 마찬가지로 정의와 법적 진실에 대해 명확한 개념과 정보를 알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가 진행되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할 여지가 생긴다.
스카우트는 보통 아이들처럼 세상에 대해 무지하고 편견을 갖고 있다. 이웃에 사는 부 래들리가 다람쥐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아이들을 해친다고 믿거나, 자신이 놀림당했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달려들어 주먹질을 한다. 애디커스는 그런 딸에게 폭력은 나쁜 것이고 자신이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차근차근 일러준다.
스카우트가 아이들과 함께 법원 지하실에 들어가는 장면은 아이의 편견을 잘 보여준다. 아이들은 그곳에 부가 갇혔었고 고문도구들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막상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톰의 공판이 열리는 날 아이들도 법원으로 달려가고 아이들이 법정을 훔쳐볼 때 관객도 처음으로 법정을 보게 된다. 스카우트가 아빠의 신념을 이해하고 그의 행동을 지지하게 되는 과정은 바로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고 감동을 얻는 과정과 같다. 스카우트의 시점을 택해 이 영화가 얻은 두 번째는 풍부한 서사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변호사 애디커스가 영화의 주인공이었다면 멋진 법정 드라마는 만들어졌겠지만 아이들의 성장이라는 이야기를 함께 풀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될 때 스카우트는 천방지축 말괄량이 소녀였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이 되면 훨씬 지혜로운 아이로 성장한다. 스카우트가 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와 진정한 친구가 되는 영화의 마무리도 영화 전체가 스카우트의 시점으로 진행되었기에 가능한 결말이다.
2. 영화 제목과 주제
‘앵무새 죽이기’란 제목만 보고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렵다. 영화에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스카우트와 애디커스의 대화를 통해 설명된다. 애디커스는 아버지로부터 총 쏘는 것을 배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라고 설명한다. 그 이유는 앵무새는 농작물을 해치지도 않고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도 않으며 오히려 노래를 들려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해하고 우호적인 것을 해치는 것은 죄라는 의미이다.
이는 무고한 톰을 보호하고 변호해야 하는 이유다.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했던 1930년대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의 인권에 대해 무관심했다. 애디커스의 도움을 받았던 유순한 마을 주민 커닝햄까지 톰을 린치하는 무리에 낄 정도로 흑인에 대한 차별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흑인을 변호하는 애디커스가 외로운 싸움을 벌어야 할 정도로 누구도 진실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미친개가 마을에 나타나고 애디커스가 개를 사살하는 장면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소설에서는 중간 이전에 등장하는 비교적 비중이 적은 에피소드지만 영화에서는 애디커스가 앵무새 죽이기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다음 장면에 배치됐다. 소설에는 마을주민들이 귀여워했던 개라는 설명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러한 세부 내용은 생략했다. 이 장면은 애디커스가 재미를 위해 사냥을 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명사수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비이성적인 마을 주민들과 배심원들이 앵무새를 죽이는 사냥을 한다면, 애디커스는 꼭 필요할 때만 총을 잡고 목표를 설정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인권, 편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앵무새 죽이기〉는 정의는 승리한다는 단순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지는 결과는 이 세상의 취약함을 드러낸다. 이것은 법정에서 해결될 수 없는 잉여의 문제들을 질문한다. 법은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지만 인간의 죄악(sin)을 모두 척결할 수는 없다.
학교에서 핼러윈 파티가 있던 날 밤 스카우트와 젬은 괴한에게 피습당한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아이들을 구하고 그 와중에 괴한이 칼에 맞아 죽는다. 괴한은 마엘라의 아버지 이웰이었고 그를 죽인 의문의 인물은 사라진다. 애디커스는 그 인물이 부 래들리라는 것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자기 아이들을 구해준 은인이지만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고 외면할 수는 없기에 곤혹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보안관은 자살로 처리하겠다고 말하고 스카우트는 아빠에게 부를 처벌하는 것은 앵무새를 죽이는 것이라고 설득한다. 톰을 공격하기 위해 몰려든 무리에서 커닝햄을 발견한 스카우트가 “법을 어기는 것은 나쁜 거예요”라고 말했던 이전 장면을 생각하면 모순되는 발언이다.
그러나 고지식하게 법을 이해했던 스카우트가 보다 복잡한 차원에서 죄와 정의를 사고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의 행동을 눈감아주는 일은 사실만 놓고 본다면 논란이 있겠지만 영화는 세상의 정의가 법정에서만 구현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3. 법정 장면의 구성 방식
〈앵무새 죽이기〉에서 약 3분의 1은 톰에 대한 공판 장면이다. 영화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이 장면은 매우 정교하게 구성된 법정 신의 교본이다. 성추행을 당했다고 거짓말했던 마엘라, 그녀의 아버지, 보안관 등이 차례로 증인석에 앉고 검사와 변호사인 애디커스의 교호신문이 이어진다. 그리고 일층에 앉아 있는 백인 방청객들과 이층에 앉아 있는 흑인 방청객의 모습이 번갈아 등장한다.
스카우트와 아이들은 이층에 앉아서 재판을 지켜보는데 아이들과 애디커스가 어느 편을 지지하는지 자리 배치를 통해 확실히 보여준다. 이 법정 장면에서는 애디커스의 변호 솜씨가 총망라된다. 애디커스는 마엘라에게 얼굴 어느 쪽을 맞았는지 집중적으로 질문한다. 그다음 증인으로 나온 이웰이 증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애디커스는 일부러 그와 어깨를 부딪힌다. 이웰이 심리적으로 동요하도록 의도된 행동이며 기선제압이라고 할 수 있다.
애디커스는 이어지는 이웰에 대한 심문에서 별로 사건과 관련 없어 보이는 질문을 한다. 이웰에게 읽고 쓸 줄 아느냐고 묻고 이름을 써달라고 주문한다. 글을 모르는 이웰은 당황하고 왼손으로 대충 쓴다. 이웰이 글을 모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애디커스는 그 사실을 알려고 질문한 것이 아니라 그가 왼손잡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더불어 느닷없이 톰에게 컵을 던져 그가 오른손으로 컵을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왼손을 전혀 못 쓰는 사실까지 알려 그가 마엘라의 오른뺨을 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런 증명력 배척 기법 등은 이후 법정영화에 단골로 등장하게 된다. 신문을 모두 마친 뒤 애디커스는 최후 변론을 하게 되는데 명료한 논리와 뛰어난 화술로 방청객의 심금을 울린다. 애디커스는 의학적 증거가 없고 합리적 의심을 넘지 못하는 증언만 있는 이 사건은 애초에 공소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밝힌 뒤 사건의 진실을 요약하고 마지막으로 배심원에게 편견 없는 판단을 부탁한다.
배심원들이 퇴장하는 화면 뒤에 초조한 아이들의 모습을 잡은 화면을 이어붙이고 배심원들이 돌아와 유죄 평결을 내리는 화면에 이어 다시 실망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유죄로 마무리되었지만 이층에 있던 흑인들은 전원 기립하여 애디커스에게 존경을 표한다.
진 루이스 핀치(메리 배드햄) : 스카우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여섯살 소녀. 치마보다는 바지를 좋아하는 말괄량이로 입학을 앞두고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빠가 곤경에 처했을 때 당차게 나서기도 한다. 죄와 법에 대해 전혀 무지한 어린 소녀에서 옳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내용 전체가 스카우트의 회상으로 이루어진다.
애디커스 핀치(그레고리 펙) :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변호사다. 반듯한 성품과 부드러운 말솜씨를 갖고 있는데 알고 보면 주관이 뚜렷하고 용기 있는 인물이다. 억울한 누명을 쓴 흑인 톰을 위해 변호를 맞고 마을 전체의 편견과 맞서 싸운다.
톰 로빈슨(브록 피터스) : 착하고 순진한 흑인으로 백인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쓴다. 1차 공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자 불안함과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주한다. 편견과 차별에 의해 희생되는 인물이다.
부 래들리(로버트 듀발) : 정신지체 때문에 거의 집에서만 생활하는 장애인이다.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그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괴물로 알려져 있다. 스카우트와 젬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돕는다.
마엘라 이웰(콜린 윌콕스 팩스틴) : 술주정뱅이에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사는 백인 처녀. 톰을 유혹하다 아버지에게 들키자 자신이 추행당한 거라며 거짓말을 한다.
불쌍해 보였습니다.
- 톰톰은 법정에서 평소에도 마엘라의 부탁으로 사소한 집안일을 도와주었고 사건이 일어난 날에도 마엘라의 부탁으로 집에 들어갔다고 진술한다. 이에 대해 검사는 돈도 안 받고 여러 차례 집안일을 해준다는 게 이상하다고 추궁한다. 이에 톰은 마엘라를 도와준 이유가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껴서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유죄 평결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배심원들은 애디커스의 변론을 듣고 톰이 무죄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백인 여성을 동정했다는 말에 분노한다. 감히 흑인이 백인을 동정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법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나 1930년대에는 흔한 사고방식이다. 흑인에 대한 평등권이 주 법원 판례로 확립된 것이 훨씬 이후라는 것을 기억해야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심판하게 놔두세요.
- 보안관 헥스카우트와 젬을 공격했던 이웰이 칼에 맞고 죽었다는 것을 애디커스에게 알려주러 온 보안관 헥이 하는 말이다. 부 래들리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돕다가 일어난 사고라는 것을 알게 된 애디커스는 정당방위이지만 재판에 회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보안관은 이웰이 칼 위에 쓰러져 자살했다고 보고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말을 덧붙인 것이다. 죽은 톰이 이웰을 심판한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뜻이다. 애디커스는 보안관의 제안에 고뇌하는데 스카우트가 헥 아저씨 말이 맞다고 거들자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보안관은 이웰은 앞으로도 범죄를 저지를 인물로 그를 살해한 것은 범죄를 예방한 행위라고 설명한다. 물론 궤변이지만 보안관의 말을 통해 위법은 과연 무엇인지 문제를 제기한다.
1960년 출판된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 196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1963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그레고리 펙), 각색상, 미술감독상
• 1963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음악상(앨머 번스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