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농구 골대
<어느 남성 지인의 글>
전에 상담 하는 걸 잠시 전해 들었는데
ㅇㅇㅇ 이라고 침놓는 사람인데
불경 해석한 책을 두세 권 지은 분이고
성폭력으로 괴로워하는 처녀에게
농구 골대에 공이 들어가고 나가는 거하고 뭐가 다르냐
아래 도리에 뭐가 들어왔고 나갔는 거뿐이지 않느냐
모든 것에 의미를 붙이니 문제가 되는 거지 ᆢ
이 한마디에 행복하게 길이길이 살았다 하더군요
<내 댓글>
의미를 붙이는 것, 생각과 개념 그것이 문제로다 ㅎㅎㅎ
그렇지만
그 생각과 개념을 만들어놓고
그 고통과 괴로움 속으로 밀어넣은 남성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듯 ㅋ
그래서 세상의 변화는 더딜 수밖에요
모지리는 남성이 세상을 지배하고 ㅠ
그 세상의 주류(개념)가 되려고 서로 기를 쓰니
고통이 떠날 날이 없을 듯 ㅎ
<또 다른 여성 지인의 글: 골대이야기를 보고 ....정리해봤어요.>
사유재산의 의미는 신석기 농경생활 이후 꾸준히 인정되어 왔으니 약 7천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나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그냥 알지요. 만약에 누군가가 매일 아니면 습관적으로 내 통장의 화폐를 가져가면 거 그냥 종이일 뿐인데 그게 왜 속상해! 라고 충고 하면 되는 것과 같은 비유입니다.
여성에게 성은 그저 즐기는 것도, 하나의 꼴대 같은 통로일 뿐일 수가 없습니다. 매달 겪는 생리통으로 우리는 그곳의 자궁과 난자와 질을 느낍니다. 아 이건 뭐지? 책임감인가! 예비 엄마로서 늘 자신의 건강과 임신의 가능성에 놓여 있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더 높은 지능을 위해 미성숙하게 태어나서 그 후에 자라납니다. 그 과정을 부모에게 의존하는데 회피할 수 있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10달과 육아의 몇 년 회피할 수가 없지요. 종종 회피하는 여자들도 있는데 사회가 크게 비난합니다.
여성의 문제는 그 경계가 확연하게 인권 안에 들어온 역사가 한 2백년 되었을까요! 100년 되었을까요! 뭐 그래도 집안에선 여자가 큰 소리쳐.. 그러면 그건 일종은 남편의 자비로 발생하는 시혜적인 것입니다.
동물권의 문제도 이런 인간 중심적인 시혜의 관점을 경계합니다.
밤길을 퇴근하는 여자들은 압니다. 누군가 뒤에서 걸어오는 소리가 얼마나 큰 공포인지요.
전쟁에서 2차 피해자로 여성과 아동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압니다. 이런 생각으로 인종청소라는 집단강간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남성이 옷을 벗는 행위는 힘의 과시로서 폭력이 되고 여성이 벗는 것은 수치의 표현으로서 폭력이 됩니다. 그래서 남성이 벗으면 가해자가 되고 여성이 벗으면 피해자가 되는 공식이 일반화 된 것뿐이지요.
중국 서태후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어서 날마다 새 애인을 침소에 들이고 아침이 되면 죽였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그가 여성이라 소문을 경계한 것뿐입니다. 삼천 궁녀 설을 간직한 백제의 의자왕의 전설은 우리에게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선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태후가 삼천 궁남을 거느렸다면 어땠을 까요! ㅋㅋㅋㅋ 그러니 현실적인 그녀는 그 권력을 갖었음에도 삼천궁남 대신 모닝 처형을 선택한 것이지요.
결혼생활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걱정하고 책임지는 것은 역시 여성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양육의 책임은 아버지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걸 압니다. 한 성이 억압 받는다는 것은 다른 성의 일그러진 권위에 더욱더 큰 짐을 올려놓는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모계사회의 여성들은 더 씩씩하고 과도한 노동에 노출 되는 것입니다.
동물권의 문제도 이런 인간 중심적인 시혜의 관점을 경계합니다.
모든 것은 원래 그런 권리가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 생각이 확장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아무런 억악과 착취가 없어집니다. 상처란 단지 개인의 차원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깨닫는다면 성에 어떤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되고 그런 면에서 삼천 궁녀든 삼천 궁남이든 다 똑 같은 거기에 차별이 없습니다.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자기 안의 성적 고정관념과 잘못된 성인지를 인식해나가고 언행을 조심해야합니다. 우리는 거지에게 그 앞에서 “너 거지지?” 라고 묻지 않습니다. 그 말이 갖고 있는 의미 이상의 감정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상처 받은 개인에게 저도 상담 시에는 폭력이란 측면에서 얼굴에 뺨을 맞았든 질에 맞았든 같은 폭력일 뿐이다. 라고 말해 줍니다. 때린 사람이 잘못한 건가 아님 맞은 사람이 잘못한 건가라고요.
근데 골대의 비교는 성인지 감수성 제로의 상담입니다.ㅋㅋㅋ 그 분의 도와주려는 마음 덕에 그게 상쇠된 것뿐이지요 ㅋㅋㅋ 축구 경기는 폭력이 아니기에 그렇지요. 그건 동등한 룰을 갖고 심판도 있는 정정당당한 게임이기에 그렇습니다. 성폭력은 그냥 폭력일 뿐입니다.
물론 깨달음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 아상이라는 면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맞습니다.
참고로 여성 참정권에 관한 자료 첨부할게요.ㅎㅎ
현재 존재하는 독립국 중 처음으로 여성의 참정권이 허용된 국가는 뉴질랜드다. 1894년에 여성들도 참정권(선거권 한정)을 쟁취했다. 이어 호주 의회가 1902년 여성을 포함한 모든 호주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법을 통과시키며 호주에서도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피선거권은 핀란드(당시 러시아 제국 치하 핀란드 대공국)가 1906년 선거법을 제정함으로써 처음 확립되었고 1907년에 19인의 여성 의원이 선출되었다.영국은 1907년, 핀란드보다는 조금 늦게 지방 의회에서의 여성 피선거권을 보장하는 법을 제정했으며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들의 참정권을 허용하였다. 완전한 보통선거는 1928년의 선거법 개정 결과 21세 이상 모든 남녀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며 이뤄졌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여성 참정권 보장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남성들이 대부분 전쟁터로 끌려가면서 여성들이 후방에서 군수 생산이나 보급, 기타 행정 업무를 담당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난 결과로 보기도 한다.미국은 1919년에 여성 보통선거에 관한 법이 통과되어 1920년에 실질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각 주마다 자치권이 인정이 되어 연방법뿐만 아니라 주법도 개정 되어야 했다. 그나마 연방 선거에서는 연방법으로 참정권의 온전한 보장이 가능했지만, 연방 기관들이 개입하기 힘든 주 선거와 관련된 참정권에 대해서는 각 주의 결정이 필요했고, 이 과정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1984년에서야 미시시피 주가 여성 보통선거에 관한 법을 인정하며 마무리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여성의 정치 참여가 노예보다 늦었다.
1870년 흑인 노예에게 참정권을 줬던 미국은 1920년에야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민주주의에 관하여 꽤나 진보적인 프랑스는 의외로 여성 참정권에 대해서는 박한 편이었다. 사실 프랑스 혁명 시기 때부터 여성 참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사회적으로 아직 이를 받아들일 분위기가 아니었고 되레 여성의 집회, 정치참여 등이 금지되거나 하였다. 이후 미국, 영국 등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내에서도 19세기 말엽부터 다시 여성 참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프랑스 법에 남녀가 평등한 참정권을 갖는다고 명시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도 아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인 1946년이었다.유럽에서는 국가 단위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이 1984년에 마지막으로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고, 스위스의 아펜첼이너호덴 주가 1990년에 여성참정권을 마지막으로 인정하였다.이슬람권에서는 구 소련 지역에서 1917년부터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으며, 1920년 알바니아, 1930년 터키가 인정하였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무렵인 1919년 초창기부터 임시헌장에 남녀평등을 표방해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했으며[5],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여성 참정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했다.[6] [7] 한국은 독립 직후 사회, 경제, 문화가 거의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여성 참정권 보장에 대한 유의미한 반발이 없어 꽤 빨리 이루어진 편이다.일본은 일본 제국 시절에는 여성들한테 참정권이 없었으며,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이후인 1946년부터 GHQ에 의해 비로소 여성의 참정권이 주어졌다.식민지배를 당하던 많은 나라가 독립할 무렵에 민주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법률상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였다.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여성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