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는 아니지만 그저 눈물이 납니다.
솔향 남상선/수필가
내가 근무하는 한국효문화진흥원 전시관에는 훌륭한 어머니상, 장한 아내의 여인 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코너가 있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남자들을 빛나게 한 여인들이니 그야말로 기림의 대상이요, 존경스러운 분들이라 할 수 있겠다.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님을 훌륭하게 키운 것도 그 어머니 곽낙원 여사요. 안중근 의사를 만고 청사에 빛나게 하신 분도 그 모친 조 마리아 여사였다. 두 어머니 모두 독립운동가이셨다. 한국인 최초시각장애인 박사인 강영우씨를 박사로 만들어 미국백악관에서 근무케 하고, 두 아들을 미국 유명인사로 만든 것도 그의 아내 석은옥 여사였다. 로봇다리 김세진을 세계적인 장애인 수영선수로 육성한 것도 그 양모 양정숙 여사였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을 유명하게 만든 것도, 나폴레옹을 세계적인 영웅이 되게 한 것도 모두 훌륭한 어머니이셨다.
이렇듯 훌륭한 어머니, 장한 아내의 여인상에 취해 있는데, 지인한테서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카톡 자료가 날아왔다. 올림픽 사격 3관왕인 권진호 선수와 그의 장하고도 위대한 어머니에 관한 글이었다.
「우리 엄마의 눈은 한 쪽뿐, 내가 6살 때에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를 사랑했다. 나는 올림픽 사격 3관왕인 권진호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뺑소니 사건이었지만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를 낳고 열심히 일을 하셨다. 내가 집에서 TV를 볼 때 어머니는 나물을 팔러 시내로 나가시곤 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시절 어머니는 내 입학식에 오셨다.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한 쪽 눈 없는 장애인이 내 어머니라는 게 너무 창피해 얼굴을 옷 속에 파묻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알아본 듯 나에게 오셔서‘진호야!’하며 나의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입학하는 애들의 눈은 우리 어머니에게 시선이 쏠렸다. 나는 창피해 도망 나왔다. 집에 와서 어머니는 나물을 다듬고 계셨다, <그래 우리 아들 왔어? 벌써 중학생이네. 우리 멋쟁이 아들!> 나는 순간 욕이 나왔다. <썅 중학생 ? 놀고 있네. 나 엄마 때문에 왕따되게 생겼어! 왜 오고 난리야. 존나 쪽팔리게. 다음부터는 오지 마! 알았어?> 마음에 없던 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내가 정말 미워졌다.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나는 자는 척했다. 엄마가 나에게 가까이 오더니 나의 볼을 만지면서 울고 계셨다. 어머니의 온기에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학교엘 가니 친구들이 제일 먼저 우리 엄마에 관하여 물었다. <야 어제 그 아줌마, 니 엄마냐? 니 엄마 장애인이야?> 처음엔 선빵을 날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놈은 잘 나가는 초등1 짱이어서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나는 또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했다. <아, 그분? 내 엄마 친구이셔 우리 엄마랑 엄청 친해서 우리 집에서 사는데 아주 존나 쪽팔려서 말이지 내가 자기 아들로 아나봐. 유산해서 미쳤다지? 아, 진짜> 친구는 그 말을 듣더니 말했다. <아, 그래? 난 또 뭐라고 그래 우리 잘 지내보자.>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사격반에 들었다. 내 시력은 2.0, 사실 2.0보다 좀 더 높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눈엔 자부심이 생겼다. 역시 시력이 좋아서였을까.내 사격솜씨는 일취월장이었다. 결국 나는 엄청난 사격솜씨에 올림픽 리스트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한 쪽 눈이 안 보였다. 나는 절망했다. 아니, 모든 걸 잃은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모든 걸 포기했다. 어느 새 퍼진 소문(한 쪽 눈 없는 우리 어머니)에 분개하여 친구를 벽돌로 찍어 뇌사상태까지 만들었다. 나는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또 다시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바로 어떤 사람이‘안구 이식’을 해 준다는 게 아닌가? 어느 날부터 내 통장에는 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조금 이상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나는 수술을 받았다. 정말 행복했다. 다시 나의 한 쪽 눈이 보인다는 것에 만족했다.
나는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으러 갔다. 그 곳엔 이상하게 도시락과 편지가 있었다. 편지를 펴보았다. 이럴 수가?
<안 돼! 그건 안 되잖아 엄마 왜 그랬어!> 편지 내용을 본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 편지를 읽고 있으면 초등학교 때, 싸 주던 도시락 생각도 나겠지? 오늘은 계란도 입혔다. 내 아들아. 정말 맛있을 거야. 사랑하는 우리 아들! 엄마의 한 쪽 눈은 괜찮니? 이상하지 않아? 안 이상하면 정말 다행이다. 우리 아들, 사실 엄마는 너 독립하고 나서 2년 후쯤에 내가 뇌종양이라고 하더구나. 엄마는 절망했지. 다시는 우리 아들 못 볼 거 같아서, 죽을 거 같아서. 엄마는 그래서 내 장기와 한 쪽 눈을 기부했단다. 당연히 한 쪽 눈은 우리 아들한테 말이야. 통장에 돈 들어갔을까? 내심 걱정되는구나. 이제 엄마가 숨겨둔 이야기 말해도 되겠지? 우리 아들은 태어났을 때 한 쪽 눈이 없었단다. 왜였을지 몰라도 눈이 없더구나! 그래서 엄마는 엄마의 한 쪽 눈을 너에게 주었어. 엄마처럼 살면 안 되니까. 더 잘 살아야 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엄마는 주저하지 않고 너에게 눈을 줬단다. 언제나 너와 내가 같은 곳을 보는 것 같아 내심 기뻤단다. 그리고 네가 고등학교 때, 집나간다고 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니? 결국 나갔지만 정말 네가 보고 싶었어. 계속 우리 아들 사진보면서 울었지. 그러던 어느 날 머리가 아프더구나. 그래서 뇌종양 말기란 걸 알고 나서 너에게 내 남은 한 쪽 눈을 마저 준거란다. 아들아 울지 마라. 우리는 언제나 같은 곳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할 테니, 우리 아들하고 같이 있으니까 따뜻하구나. 도시락 맛있게 먹고 힘차게 사는 거다! 우리 아들!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엄마가.>」
카톡 자료를 쉬지 않고 읽었다. 얼마나 뭉클했는지 양 볼을 적시며 흐르는 액체는 볼때기를 데워 주고 있었다. 올림픽 사격 3관왕 권진호 선수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라도 된 듯한 심정에 마냥 흐느끼고 있었다. 울 엄마를 본 듯하여 옛날 어머니를 그리고 있었다.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불사하셨던 어머니 모습이 나를 어렵게 하고 있었다.
어머니 당신의 안구를 한 쪽도 아닌, 양 눈을 송두리째 아들한테 주는 헌신적 사랑으로 생을 마치신 권진호 어머니!
‘울 엄마는 아니지만 그저 눈물이 납니다.’
‘설사 자식에게 업신여김을 받아도 부모는 자식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소포클레스의 명언이 가세하여 날 울리고 있었다. 또 랑구랄의‘저울의 한 쪽 편에 세계를 실어 놓고 다른 한 쪽 편에 나의 어머니를 실어 놓는다면, 세계의 편이 훨씬 가벼울 것이다.’의 그 한 마디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위대하게 보였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들의 헌신적 희생적 사랑이 존경스럽고 우러러 보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지 셰익스피어의 명언이 난 데 없이 불쑥 튀어나왔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어머니 아버지들을 모시고 사는 세상 모든 분들이여!
살아계실 때 효의 실천으로 풍수지탄의 무게를 덜어 내어서
떠나신 뒤에 나처럼 넋두리하는 바보는 되지 맙시다.
왕후장상에 씨가 없듯이 효자효녀에도 무슨 씨가 따로 있을까!
‘있을 때 잘해 보세나!’
첫댓글 어머니는 강하지요ㆍ
선생님,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ㆍ
고맙습니다ᆞ ~
가이없는 부모님 의 희생...
가슴이 먹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