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훈의 SK홍보물 관련 사진
12월10일 NBA의 꿈을 가지고 서울SK를 떠났던 방성윤이 복귀하면서 SK는 이전과 전혀 다른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비약했다.그가 보여준 전천후 활약은 대단했다.이전 빈약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이기는 경기든 지는 경기든 하품이 나올 정도의 느린 경기를 운영하던 SK는 방성윤의 플레이에 전원이 힘을 받으며 한단계 성장한 모습으로 올시즌 부진한 모습이라고는 하나 난적으로 꼽히는 삼성을 20점차로 대파하며 기염을 토한 것이다.개인적으로 SK의 팬인 필자로서는 박수를 치며 좋아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과 함께 씁쓸함도 함께 했다.바로 방성윤이 복귀하며 로스터를 정리해야 하는 SK측이 최종훈을 은퇴시킨 것이다.시즌중에 그것도 팀을 이탈했던 선수의 로스터 진입을 위해 기존 선수를 은퇴처리한다는 것은 사상초유의 일로 기억되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프로 3~4시즌 경기를 거의 뛰지 못한 이 선수의 은퇴소식을 매체들이 큰 활자를 통해서 알려주었다.최종훈의 은퇴는 기자들에게는 하나의 기사거리 정도였겠지만 최종훈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도전이라는 날개를 접는 안타까운 순간이기도 했다.
최종훈은 79년생으로 올해 나이 30이며 신일고를 거쳐 중앙대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당시 중대감독이던 某감독이 중용하지 않으면서 운동선수들이 말하는 소위 소풍을 가게 된다.이때 그가 찾아간 곳이 바로 동호회 농구팀인 페가수스였다.당시 중상위권팀으로 평가되던 페가수스는 그의 가세로 대회에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연습경기에서 뚜렷한 성적을 올리며 비상을 준비했고 이후 그의 연한이 풀리면서 페가수스는 상위권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이후 그의 발걸음을 따라 중앙대 안성캠퍼스 체대 동아리인 CAD출신의 동호인들과 선수출신들인 강경두,황주석,송원진등이 페가수스에서 활약하게 되었는데 그의 후배로는 현 최고를 다투는 장민욱등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최종훈은 뛰어난 경기력만큼이나 그의 불같은 성격으로 인해 심판과의 마찰,상대팀 선수와의 마찰,많은 판정항의등으로 해서 매너문제를 계속적으로 지적받았지만 그는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이는 그의 은퇴를 가져온 방성윤의 안하무인격인 행동의 대표적인 예인 KTF당시 50억원 요구설과 이번에 비록 복귀했지만 초반 팀을 위기로 몰아넣는 방식등 방성윤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실로 대단해서 BDR선정 2004년 올해의 선수로 뽑혔으며 이는 김세연과 박희철이전 바로 그가 최고의 선수였슴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그는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당시 전국의 날고긴다는 길거리 팀들이 모두 출전했던 2004년 KBL 3:3 대회에서 맹활약을 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당해년도 NABA주관 가장 큰 두 대회로 꼽히는 대축전과 문광부장관기(현 문체부 장관기)등에서 서울을 우승으로 이끄는 맹활약을 하며 MVP를 수상하는 등 생활체육계에서는 더 이상 이룰 게 없는 한마디로 제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선수였다.
필자가 프로 현역에서 뛰는 선수들과 뛰는 모습을 보고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도 최소한 공격력에 관해서는 밀리지 않았을 정도였고 177의 신장에도 덩크를 가볍게 꽃을 정도로 탄력이 대단했던 선수였다.프로로 가도 성공한다는 평가를 공공연히 들었는데 모두 설마설마 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그 스스로도 더 이상 생활체육 농구계에는 이룰 게 없었고 당시 그가 코치로 있던 신일고 농구부가 폐지되었으며 선수생활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최종훈은 드래프트에 일반인으로 신청을 하게 되었고 결국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는 못했지만 SK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된다.이때 감독이 중앙대 시절 그를 아꼈던 김태환 감독이라 필자는 그가 중용되기를 바랬지만 불행히도 최종훈을 좋은 선수로 만들어 줄것이라 기대했던 김태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나고 그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강양택 감독을 거쳐 現 김진 감독이 팀을 맡게 되면서 그의 앞날은 필자의 예상으로도 험난함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후 노력을 통해서 그는 결국 정식선수로 벤치에 앉게 되었고 이후 간간히 경기에도 출전해 경기를 뛰었지만 대개 경기가 결정난 순간에 뛰는 모습을 보였지만 생활체육 농구계의 최고 스타였던 그가 정식 선수로 프로경기를 뛴다는 것은 필자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던 순간이었다.하지만 그는 거의 경기를 뛰지 못하면서 철저히 무명의 선수로 선수생활을 잇게 된다.
하지만 07~08시즌 경기중 불미스런 사건으로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일약 유명세를 타면서 그의 이름이 매스컴에 올라가게 되었다(당시 정황상 그 사건은 그의 의지가 아닌 벤치의 의지였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결국 그가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거의 경기를 뛰지 않던 그가 올해 프로농구에서 KT&G전에서 스타팅으로 출전해 경기를 뛰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박수를 치고 민망함을 무릎쓰고 소리를 치며 응원했다.하지만 그의 모습은 이전 생활체육 농구계의 왕과도 같은 존재로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팀을 이끌고 상대를 절망으로 몰고 가던 그 대단한 자신감의 소유자가 아닌 대단히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결여된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결국 벤치로 나가고 말았다.그의 대안으로 경기를 뛰었던 某 선수가 그의 전성기 모습보다 수비등에서는 낫지만 공격력면에서는 약점을 보이는 선수였는데 그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는 모습에 오랜 기간 경기를 뛰지 못했고 이로 인해 경기감각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비록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KT&G전에서 스타팅으로 출전했고 많은 시간을 뛰지는 못했지만 상대 포가인 주희정에 비교적 좋은 수비를 했다는 데서 올시즌 그의 반짝 활약을 기대하기도 했었다.하지만 어제 깜짝 발표된 그의 은퇴는 그런 필자의 바램을 한숨으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이번 은퇴는 비록 방성윤의 등장으로 인해서 강제 은퇴의 모습도 보인 바 있지만 이미 그는 계속된 벤치생활에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결국 그는 시즌중 은퇴를 하게 되었고 이로써 생활체육농구계의 최고스타의 프로선수 도전기는 끝을 맺게 되었다.
최종훈.. 2000년대 초중반 동호회 농구 최고의 선수였으며 178의 단신이지만 상대 내외곽을 모두 초토화 시켰고 양대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데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아쉬움없이 프로로 갔던 그가 아름다운 도전을 마치고 이제 쉬게 되었지만 그의 도전은 필자를 비롯한 동호인 모두에게 대단히 강한 긍정적인 모습으로 남았고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와 이전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끝마치려 한다.
수고했습니다.언제가 경기장에서 다시 예전의 그 멋진 플레이를 볼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