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윤리
(牧會倫理)의 구성
이 장에서는 목회윤리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즉 목회윤리 무엇 (what)을 누가 (who) 왜(why) 어떻게(how) 어디서(where) 언제(when) 다루는 것인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무엇에서는 주로 목회윤리의 기반(foundation), 주제(theme), 방향(direction) 등을 다룰 것이고, 누가에서는 주로 인간에 관한 것으로서 성격, 인격, 전문인 등을 다룰 것이고, 왜에 서는 목회의 소명, 사명, 목회를 위한 신앙, 가치, 지식, 목회윤리를 위한 주지(主旨, motif) 를 다룰 것이고, 어떻게에서는 목회윤리의 방법, 기술, 기법, 전략 등을 다룰 것이고, 어디서 에서는 목회윤리의 영역, 문제 등을 다룰 것이고 언제에서는 목회윤리의 문제들을 다룰 시 점과 시간을 포괄하는 미래를 다룰 것이다.
1. 무엇(what) ?
목회윤리에서 무엇이라고 말할 때에는 먼저 그 기반으로서 하나님 중심으로부터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계시고 다음으로 인간이 존재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인간이 행동할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마땅히 하여야 할 것을 말씀 하셨다. 즉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지키라는 명령을 들었다. 이것은 먼저 하나 님을 경외하는 틀 안에서 나온 말씀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틀 안에서 자 연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지키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covenant)을 맺으며 인간과 관계를 가진다. 계약(contract)은 조건을 먼저 세우고 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며 여기서 조건을 위배했을 때 계약을 파기할 수 있 다. 그러나 언약은 파기하는 것이 우선적인 것이 아니고 명령과 같은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양자가 조건보다는 관계 즉 인간적 관계를 중요시하여 관계를 맺고 지탱, 지속할 수 있게 하며 그 근저에는 사랑이 있어서 먼저 사랑하고 그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사랑하는 쪽에서 더 책임적인 태도를 갖는다.
하나님의 언약의 관계는 목회윤리에서 모형으로 수용하며 목회적 관계를 세운다. 그래서 목 회적 관계가 언약의 관계일 경우 선물(gift) 또는 은사 정신이 깔려있어서 명예로 생각하며 그 선물 정신으로부터 과제(task)를 갖고 실천하게 된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인간 존중이 실현되며 따라서 인간의 자유가 존중된다. 이렇게 자유가 존중되기 때문에 착취나 독단이나 독재와 같은 개념이 사라지게 된다. 자유가 존중되면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지속된다.
자유가 존중되면 신뢰가 성립된다. 즉 상대방이 나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되자마자 그를 존중하게 되고 그를 신뢰하게까지 된다. 이렇게 해서 신뢰의 기반이 성 립되기 때문에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러한 행동은 다른 어떤 것을 노리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없애며 인간관계를 갖게 된다. 이 인 간관계는 신뢰가 깔려있기 때문에 신실함을 인정받게 되며 동시에 충성을 강요하지 않아도 미쁜 행동이 나오게 되고 인간관계를 지탱, 지속할 수 있게 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언약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셨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온전하라는 명 령으로 나타난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고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 에 계시는 특별한 관계를 가지심을 표현하셨고, 농부와 포도나무와 가지로서 하나됨을 나타 내신 적이 있다. 온전함은 죄인과 의인이 함께 사는 세상의 조화를 말씀하셨으며 하나되는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다. 즉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하나님 중심의 기반 위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반 대하는 요소는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 중심의 기반을 세우려는 행위이다. 인간중심이라는 말은 인간이 자기를 정당화시켜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며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것을 세워가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행위가 나오며 자기의 욕심 을 채우려는 행위가 나온다. 이것은 인간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성에 대한 도전이며 기본적인 책무마저도 거부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목회윤리는 바로 이러한 것들을 감안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행동을 하게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더 나아가 자연을 사랑하여 사랑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 하며 인위적인 환경으로서의 사회의 분위기를 자연 사랑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을 가능 하게 하려고 한다. 목회윤리는 이렇게 해서 그 기반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모든 도덕적 행위 를 그 기반 위에 세워가게 하려고 한다. 목회윤리는 사람들에게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동 적 책무를 느끼게 하며 그것을 위해 인간 개인 행위의 동기를 갖게 하며 사회의 구조와 환 경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작업을 하게 하려고 한다.
목회윤리는 그 주제로서 생명을 다룬다. 즉 목회윤리는 모든 것이 결국 생명으로 집중되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주제로 삼는다. 여기서 두 가지로 생각한다. 첫째는 생명 자체에 대한 이해로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다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이 살아가면서 이루어지는 삶 에 대한 내용들을 다룰 것이다. 즉 생존, 생명의 지탱, 지속, 움직임, 협력, 함께 살아감, 삶 의 과정 등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내용들이나 문제들을 다룰 것이다.
생명에 대해서는 여러 번 여러 곳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상세하게 말할 필요가 없 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말을 이어가기 위하여 생명을 다루는 것을 생략할 수 없기 때 문에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기로 한다. 생명은 성경에서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생명은 육신의 생명, 목숨, 영혼, 호흡과 같은 생명, 이러한 것과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는 영 원한 생명 등을 포괄하는 의미를 갖는다. 육신의 생명은 삶을 이어가는 생존을 비롯하여 생 활비까지도 포함한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모든 수단까지도 포함한다. 성경은 여기에 추가하여 호흡을 하고 생명을 이어가면서 그 차원을 넘어서는 혼, 정신, 마음 까지도 포괄하는 생명을 고려하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것은 인간이 단순히 물 질적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위 영육합일체라는 의미를 이끌어내게 하는 부분이다. 이 것은 생명을 저해하고 건강을 해치는 요소를 고려할 때에도 단순히 육체적인 요소만 고려하 지 말고 육체를 넘어서 통합적으로 고려할 것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영원한 생명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명이다. 특히 기독교인이 아닌 경우는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천당이니 영혼불멸이니 영생이니 하는 생명에 관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적인 의미 즉 믿음으로 인하여 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주어지는 생명에 대해서는 고려되지도 않고 논의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거나 가볍게 넘 겨버리기 일수이다. 사실, 이 영생은 육신의 생명의 단순히 연장하거나 목숨을 변형하는 정 도의 의미가 아니고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주어지는 것이다.
육신의 생명은 기원이 언제부터인가라는 논의가 많이 되고 있다. 이것은 생명윤리(bioethics) 영역에서 많은 논란이 되고 있지만 기독교에서는 임신시점부터 생명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 고 있다. 현재까지는 뇌파는 6주전에, 심장은 4주전에 시작한 것까지 검증이 되는 것으로 전 해지고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생명으로서의 유추가 가능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점점 생명의 비밀이 벗겨지면서 생명을 조작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심해지고 있으며 그 가능성은 대단히 높아지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역할을 하느니, 하나님 놀이를 하느니 등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생명을 아직 만들어내는 단계는 아니고 생명을 조작하려는 움직임만 나타나 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그렇지만 육신의 생명이 있을 때 예수님을 구주 로 고백하고 믿음으로써 영생이 주어지지만 또 달리 예수님이 전해지기 전 그를 모르고 죽 은 사람들에 대한 문제, 태아로 있는 데 낙태되었거나 죽었을 때의 구원 문제, 육신의 생명 을 가지고 있지만 신앙을 고백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 영생은 믿음으로만 얻어지는 생명이다. 그러기 때문에 영생은 육신의 생명과 이 렇게 관련되면서도 그 질에 있어서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임을 나타낸다.
생명이 이렇게 육신의 생명과 영생까지 포함했을 때 기독교의 생명은 매우 폭넓은 것으로서 목회윤리가 다루어야 할 주제로서 확실하게 자리를 굳힌다. 이 생명은 목회윤리의 기본 요 소가 되고 모든 것이 결국 이 생명으로 귀결될 때 생명은 가장 중요한 목회윤리의 주제가 됨을 확인하게 된다. 이 생명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허락하신 것이며 생명의 하나님 없이 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아무리 인간이 도전을 한다 해도 생명의 오묘함을 완 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시고 그의 생기를 넣어 생명체로 만드시고 그의 형상으로 만 들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허락하셨다. 여기에는 인간에게도 창의력이 상당히 허락되고 있으며 만물의 영장이거나 만물의 척도는 아니지만 자연과 구별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물 론 인간은 생명이 있는 한 자연의 부분은 아니며 자연과 같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협력하 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적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렇지만 자연이 인간에 의해 생명체 로서 지탱, 지속하도록 하나님이 친히 명령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는 부적당한 너무나 큰 죄를 범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 님이 인간에게 생명을 다시 주시기 위하여 친히 육신을 입으시는 사건, 소위 성육신 사건 (成肉身事件)을 일으키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시고 그것을 지키시는 결과이 다. 즉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심으로 인간을 다시 살리고 영생을 얻는 길을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대 사건을 일으키시고 많은 고난을 겪으시면서도 그것을 지키시기 위하여 성육신 사건 가운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하셨다.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고 생명을 다시 주심을 증거하시는 것으로서 확실한 길을 보여주시고 보장하시는 것을 의미하 며, 진리는 단순히 참이라는 말보다는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며 언약을 지키시는 성실하심, 미쁘심, 신뢰성 등을 나타낸다. 이렇게 해서 성육신 사건은 영생을 얻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동시에 목회윤리를 형성하는 본이 되는 것이다. 또 생명 자체에 관하여 논의한 후 논의하기 로 약속한 도덕적 문제들에 대하여는 즉 생명으로 인하여 생존, 삶의 지탱, 지속, 움직임, 과 정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다음에 논의될 것이다.
목회윤리는 방향을 확실하게 설정한다. 목회윤리의 방향은 확실하게 결정되고 보여져야 한 다. 즉 목회윤리는 방향을 복지(human well-being)로 정한다. 이 방향은 복지 대상자, 복지 내용, 복지 결과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복지 대상자는 누구인가? 복지 대상자는 목회 윤리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로서 목회자 자신, 교인들, 교회, 사회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이다.
복지 대상자로서 목회자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목회자 자신의 문제 즉 목회자의 자 질, 지도력, 도덕성, 품위, 목회윤리 실천 이행의 능력과 가능성을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목회자는 목회를 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목회자가 자신의 윤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에 자신의 복지 만이 아니라 항상 다른 목회윤리의 대상자인 교인들의 복지를 고려하고 그것이 교회 전체에 어떻게 관계될 것인가도 살펴야 하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러나 가장 우선적인 고려의 대상은 목회자 자신이기 때문이지만 항상 가능한 한 동시에 고 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복지 대상자로서 교인들은 목회윤리에서 귀중한 구성요소이다. 사실은 교인들은 개별적인 복지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목회자가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복지를 만들 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즉 목회자는 교인들이 복지를 추구하는 방향을 제시 하고 그 복지의 질을 보여주며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추천해야 한다. 목회자는 투명하고도 정확하고 분명하며, 계획과 결단에서 교인들이 확실하게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 다. 교인들은 뚜렷한 특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며 목회윤리를 통해 복지를 형성하는 가운 데 자부심을 갖고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교인 전체의 복지를 추구할 수 있는 데 협력해야 한다.
복지 대상자로서 교회는 교인들의 모임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사실은 교회 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몸은 교인들로 구성되며 전체가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 을 따르는 것이다. 교회는 집단적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개별 적 구성 요소와 통합성을 이루는 공동체성이 동시에 작용하는 생명체이다. 여기에 체계론이 있고 생태학적인 연결이 작용한다. 또 혼돈되고 불규칙적이고 비선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규칙이 있고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의 특성을 드러낸다. 여기에는 고정이 아니고 과정이 중시되며 계속해서 형성되면서도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다. 교회는 바로 이러 한 관계와 삶이 작용하는 모임이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특이한 모임이 다. 그래서 교회는 그것을 기본으로 고려하며 서로 사랑하고 교제를 가지면서 봉사하는 모 임이라고 부른다. 교회는 협력, 보전, 질, 참여와 같은 가치들을 귀중하게 여긴다. 이러한 가 치들을 존중하는 것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만이 아니고 모임을 지탱, 지속하면서 복지를 형성하고 누리기 위해서이다.
복지 대상자로서 사회는 확대된 개념이며 간접적인 수혜자와 결과적 대상자라고 할 수 있 다. 다시 말하면 목회윤리는 사회를 직접 형성하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고 그 형성 과 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치 제공, 윤리적 주지 제시 등과 같은 작용을 통해 사회가 마땅 히 가야할 길을 가게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사회는 다른 복지 대상자들로 말미암아 형 성되는데 영향을 받지만 다른 한편 그들이 복지를 형성하고 누릴 수 있는 환경으로서 작용 한다. 다시 말하면 복지 대상자들이 외화(外化), 객관화(客觀化), 내화(內化) 작용에 사회는 환경으로서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회 없이는 복지 대상자들의 복지를 고려할 수 없을 정도이다.
복지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더 좋은 삶"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질 높은 삶, 더 빠른 삶, 더 새로운 삶, 더 풍요로운 삶, 더 기쁜 삶, 더 행복한 삶 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지의 내용을 획득하기 위하여 내적으로는 그것을 획득할 수 있는 힘을 갖기를 희망할 것이고 그러한 복지가 위협을 받을 때에든지 아니면 그러한 복지를 획 득하는데 방해하는 것들을 막아내고 지탱,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대처능력이나 경쟁력을 갖 기를 원할 것이다. 이것은 내적 훈련을 통해서도 얻어지거나 성장해 가거나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적인 힘은 의미로 요약될 수 있고, 다른 한편 외적으로는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즉 외적으로는 내적인 의미를 지속적으로 갖게 하기 위하여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환경과 관계를 의미한다. 환경은 의미와 관계를 가지면서 복 지를 누리게 하는 연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인위적인 환경이나 자연 환경을 다 포 괄하는 것인데 복지를 누리고 지탱, 지속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은 복지의 내용을 추구하면서 기술의 도움을 얻어 생산성, 효율성, 기능, 능력 등을 우위에 놓고 추진하는데 지혜 있는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경험과 미래를 내다보는 가운데 그 것들이 복지를 지탱, 지속하게 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하는 것을 듣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위에서 말한 생산성, 효율성, 기능, 능력 등을 앞세우기보다는 그것들과 함께 기술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적합성, 자기들만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고유성, 다른 사람들에 게도 숨기지 않고 깨끗하게 운영하려는 투명성, 자기들만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사 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배려와 함께 다른 사람들이 배울 수 있게 하는 정확성, 삶의 자리에 적합하게 맞추고 다른 사람들의 복지를 추구하게 하는 시대성 등을 고려하게 하려고 한다. 사실, 사람들은 개성을 존중하여 생활 양식을 만들게 하며, 정신과 육체 즉 내적인 힘 으로서의 신앙의 힘과 외적인 힘으로서의 몸의 힘이 균형을 유지하면서 온전한 삶으로서 복 지를 가능하게 하며, 개인을 존중하면서도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을 추구하게 하며, 환경 친 화적인 현실성을 수용능력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복지를 지탱,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을 요 구한다. 그렇지만 현재 사람들은 균형을 잃으면서도 편협되게 가고 있다. 즉 이것을 확실하 게 알게 하고 인도할 수 있는 것이 목회윤리라고 판단된다.
2. 누가(who) ?
누가라는 질문에 대해 네 가지로 생각하려고 한다. 첫째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기질 또는 성향, 성격 등 도덕성이 배제되는 인간 형성 부 분을 다루려고 한다. 둘째로 인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인격, 도덕적 행위자, 도덕적 안내자, 제자직 등을 다루려고 한다. 셋째로 전문인이란 무엇인 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전문인 자체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전문인 이 갖추어야 할 내용과 마땅히 하여야 할 일들(당위성)에 대하여 다루려고 한다.
(1) 인간이란 무엇인가 ?
신학적으로 보면 인간이란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형상이며,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 함을 받은 자이다. 이것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시고 그 피조물 들과 함께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지키라고 하셨는데 다른 말로 하 면 관리하라고 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존재가 어떠한 존재이어야 하는지를 알도록 요구받으며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인지를 요구받 으며, 나아가 존재가 살아있다면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 행동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며 그 러한 행동의 기준과 가치는 무엇인가를 알도록 요구받으며, 더 나아가 인간이 하나의 존재 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통합적인 행동을 하기를 요구받으며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며 그 행동이 도덕적인 질(質)을 가지기를 요구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예레미야를 부르 시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인간을 그의 악 때문에 버리셨지만 다시 치료하시고 고치셔서 낫게 하시고 처음과 같이 세우실 것이며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시며 그들이 범한 모든 죄악 을 용서하실 것이며 복과 평강을 주실 것을 보여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인간은 전파하여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 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바로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의 사람(person)이라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이 가지는 성격(personality)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본래부터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바꾸기 어렵다는 말들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이라고 할 때 신학적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하나의 사람이라고 본다면 어떤 존 재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타고난 기질이나 성향이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 면 사람에게 어떤 경우에 분명하게 구별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것을 세 가지 로 나누어 생각한다. 하나는 기질 또는 성향이고 다른 하나는 성격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 격이다. 기질은 사람의 타고난 정신적, 정서적 경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성격이 형 성되기 이전부터 받은 것으로서 성격이 형성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성격은 기질 또는 성향에 도덕성을 제한 성품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성격은 인성(人性)과는 구별된다. 왜냐하면 인성은 기질 또는 성향, 성격, 인격을 합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격은 어떤 경우를 맞아 사람이 자기의 생각, 감정, 행동을 통해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의미 한다. 그렇지만 성격은 완전히 주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 도 아니기 때문에 쉽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성격은 사람이 어려서 형성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확실히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환경에 의해서 형성될 수도 있고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욕구에 의하여 형성될 수도 있다. 또 사람이 종교적으로 변 화를 받아 "새 사람"으로 재창조되었을 때 새로운 성격을 가질 수도 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성격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변화를 받고 새 사람을 입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그것을 성취하려는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바 울은 이것을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 을 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 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인도하셔서 성령이 충만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 되는 것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은 신앙인 으로서 가져야 할 것이며 이러한 성격을 가진 신앙인을 성도라고 부르며 그러한 성격을 반 영하고 또 그러한 성격을 가질 수 있도록 목회를 하고 안내하는 사람을 목회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목회윤리를 이행하는 가운데 기본적이며 기초적이며 반드시 있어야 할 부 분이다.
그러면 인격(人格, character)이란 무엇인가? 인격은 도덕성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것이다. 그 러므로 인격은 성격과 다른 점을 갖는다. 즉 성격에서는 통전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고 공감도 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갖는데 인격에서는 그것과 더불어 사람 됨에서 덕목(德目, virtues)으로 인하여 형성됨을 나타내고 가치(價値, values)에 따라 행동 하며 삶을 위해 비전(vision)을 가지고 목표를 세우고 계획에 따라 전략을 세워 행동하고 삶 을 살아가는 경우도 포함하는데 언약(covenant)도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약의 관계 는 자유와 책임을 요구하며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지탱, 지속하는 것도 요구하기 때문에 단순한 성격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인격을 요구한다. 그래서 인격은 형성한다는 말보다 는 도야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목회윤리에서는 인간의 인격을 도덕적 행위자(moral agent)와 연계하여 생각한다. 이것은 예를 들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 또는 명목상의 기독교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믿으며 그에 상응하는 신앙 행동 이행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다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것과 믿음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이원론적으 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과 행위를 하나로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관계 즉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생명을 존중하고 그 생명을 살리 기 위하여 노력하고 복지를 추구하여 문화를 형성하는 실례는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사 도들, 바울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목회윤리에서 인격을 도덕적 행위자로 표현할 때에 두 가지 내용을 반드시 고려하여야 한다 고 생각한다. 하나는 인격과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인격과 제 자직(弟子職, discipleship)의 관계이다. 성화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실 때 하나님의 권위로 거룩하다고 선언하시며(聖化) 거기에 적합한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신다는 것을 의미 한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중심의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 한다. 바꿔 말하면 이것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성화되지 않으며 거룩하다는 선언을 통 해 감격하고 감사하여 의인(義認)과 함께 평생토록 꾸준히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 다. 이것은 성화 자체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며 인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직은 성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그것만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다. 즉 제자 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를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성경 말씀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 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 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인격이 믿음과 연결될 때 제자직을 고려할 수 있다. 즉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말씀 을 따라 살고 행동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목회를 하는 사람을 제자직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 할 수 있다. 이 제자직은 값비싼 직책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본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까지 버릴 것을 요구받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이 직책은 부름을 받지만 주님 안에서의 신앙적 선택의 직책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택은 값을 치를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제자직은 목회자이며 그러면 전문직 또는 전문인(professional)으로서 목회자 는 목회윤리를 이행하는데 있어서 어느 경우에 그렇게 전문직 또는 전문인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가? 전문직 또는 전문인은 학문의 영역에 있어서 접근 방법이 다르다고 할 수 있 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목회자를 전문직 또는 전문인이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비판에도 불 구하고 목회 윤리학적인 입장에서 분명히 목회자는 전문직 또는 전문인이라고 주장하며 그 이유 또는 근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즉 목회자는 첫째로 확고한 기반을 가져야 하고 둘 째로 자신과 사회를 위한 도덕성을 가져야 하고 셋째로 계속적인 노력을 하여야 한다는 것 이다.
목회자가 확고한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자기가 기반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 것으 로서 하나님 중심의 확고한 기반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앙 기반과 함께 목회윤 리의 방향, 질,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가치 기반을 가져야 하고 나아가 그 내용을 구체화할 수 있는 지식 기반과 기술 기반을 가져야 한다. 다음으로 목회윤리가 윤리인 한 목회자가 그것의 도움을 얻어 개인의 도덕성 확보와 사회를 건설하는 방향을 제시하며 질을 결정하는 정책과 이론을 세우며 비전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구체적인 방법론이 따르게 된다. 동시에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욕구를 위한 서비스를 이행하며 자율적 능력을 나타내야 한다. 이러 한 내용은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한다. 이것은 계속교육 또는 평생교육과 같은 내용으로 추 구될 수 있으며 동시에 전문 잡지에 발표하고 생계를 유지하며 품위 있는 생활을 할 수 있 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회자는 신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에서 전문직 또는 전문인이 되는 훈련을 받는 가운데 소 명을 받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행동을 하는 믿음을 갖고 훈련을 받으며 필요한 가치기 반, 지식기반, 기술기반을 가지며 목회윤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독교윤리학으로 훈련을 받아 도덕성을 가진다. 훈련기간이 끝나면 일정한 시험을 통과하고 일정한 인턴 과정과 같은 훈 련을 거쳐 목사라는 전문인 목회자로 임명된다. 목회자는 이러한 과정에 이어 목회를 하는 가운데 목회윤리를 이행하며 능력 있는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계속적인 노력을 하여 목회를 계속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것은 오늘의 목회자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다. 목회자 는 새로운 자리로 부름을 받더라도 같은 특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목회자는 가치 추동을 받는 지도자, 인격인, 문제 해결자, 전문인, 결단자, 도덕 적 안내자, 도덕적 행위자, 전략가, 계획가, 정책가, 행정가, 평화 만드는 자, 변호자, 카운셀 러 또는 상담자, 브로커, 촉진자, 가능하게 하는 자, 시대 분별자 등 많은 이름을 갖게 된다. 이러한 호칭은 관리자라는 차원도 있지만 지도력을 가진 자라는 의미가 더 많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약화시켜서는 안 되며 필요와 욕구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거기에 적합한 직책의 이름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함을 요구받는다.
3. 왜(why) ?
목회는 소명을 받아야 한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부름(calling)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선 지자들이나 바울과 같은 경우이다. 바울은 회심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회심 사건 자체가 부름을 받은 과정으로서 그 과정의 처음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노상에서 이미 확실 하게 부름을 받고 할 일을 지시받는다.
하나님은 바울을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부르시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확실 하게 밝히시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나타내신다. 즉 그 분은 바울이 핍박한 예수님이 셨다. 그 예수님은 바울을 부르셔서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면 행할 것을 알려줄 자가 있음을 말씀하셨다. 또 같은 예수님은 다메섹의 아나니아를 불러 바울을 찾아 안수하고 다시 보게 하여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해를 받을 것을 알게 하시고 그대로 이행하자 성령으로 충만하 게 하셨다. 바울은 힘을 다시 얻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명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소명에 의한 행위를 빚진 행위로 고백하고 있다. 이 일은 주 안에서 인침을 받은 일이 고 부득불 할 일이다. 이렇게 해서 소명은 선교의 사명으로 변한다. 이것을 분석해 보 면 소명은 목회의 기반을 찾게 하고 확실하게 밝혀준다.
소명은 믿음의 기반을 찾게 해준다. 소명은 하나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할 수 있는 끈을 가져야 한다. 바로 이 끈이 믿음이다. 이 믿음은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여기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다. 이것은 서구의 계몽주의적 사고와는 전혀 다른 체 계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인식 작용과 정서를 통합하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서 하 나님을 중심으로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믿음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끈으로서 사람들 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한다. 즉 지금까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들을 존중하였으 나 하나님 중심으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된다. 그래서 세계를 보는 눈도 달 라지고 세계를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보게 되며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의지를 갖는 사 명을 이행하려고 한다.
소명은 선교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산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선교는 이렇게 특수목적을 가진다. 즉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하는 교육적 목적을 가지며, 내적 요소로서 힘을 규합하게 하는 친교적 목적을 가지며, 외적 요소로서 힘을 표현하는 봉사적 목적을 가지기도 한다. 친교적 목적은 선교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것을 이해하며 그 생명을 보전하고 지탱, 지속하기 위한 것이며 봉사적 목적은 생명의 살아있음을 보이는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 봉사적 목적은 이행 과정에서 선교의 목적을 완성시키는 작용을 한다. 여기서 선교의 망 속에 연결되는 사람들은 정상화와 사회 통합이 가능한 길로 들어서 게 된다. 그래서 처음 교회도 봉사를 반드시 중요한 목적으로 세우고 이행한 흔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봉사를 위해 윤리적 주지들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전통적인 주지들을 따르기보 다는 오히려 새로운 주지가 필요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전환이나 이동이 필요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게 한다.
선교를 위한 소명을 받을 때 구체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주제로 삼아야 하고 생 명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을 따라야 하고 생명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도록 그것을 향하여 가는 가운데 생명 구원과 구원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사실, 행동을 위한 주지 설정은 매우 중요하며 시대와 환경의 변화로 이동을 요구받는다. 왜냐하 면 선교는 생명을 구원하는 작업을 하는 가운데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당위성에로 인도 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선교가 통합적이라는 것을 알 게 되며 윤리적 주지도 통합적 주지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주의 깊게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요구한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4. 어떻게(how) ?
어떻게는 방법을 의미한다. 사실, 윤리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면 별로 빛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두 잘 되어 가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제 즉 윤리 문제가 일어나면 그 문제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방법을 찾게 된다. 동시에 윤리 문제는 단순히 일어난 문제 처리나 해결이 처리나 해결 그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처리나 해결 과장 자체가 도 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으며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이 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받는다.
첫째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 해결 방법은 무엇보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거기서부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해결 방법도 여러 가지 를 가지고 적합한 한 방법을 찾아 이행하여야 하며 그 해결 방법이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를 평가하기 위하여 후속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이것은 대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며 사람과 환경 과 구체적인 사건이나 문제를 접하게 될 때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될 것이고 그 후속조 치도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보았지만 공통적으로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할 것은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사람의 생 명과 관계되며 목회라는 작업을 하는 가운데 일어난 문제들이기 때문에 문제를 정확하게 파 악하는 것이 어렵다. 그렇지만 문제를 파악하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 기법이 필요하 며,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하며, 해결 즉 변화를 가능하게 해야 하며, 변화가 가능하도록 개 방적이어야 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적 도구들(creative tools)을 사용할 수 있다.
둘째로 목회가 "생각의 속도"(The Speed of Thought)에서 일어나는 것을 대비하여야 한 다. 목회가 여기서는 변화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즉 그것은 소극적으로 익숙한 것으로부터 결별을 하거나 떠나야 하는데 그것은 적극적으로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 하면 과거에 어떠한 성공을 했더라도 미래에는 그것이 또 다시 또는 계속해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러한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것은 변화 또는 삶의 패러다임 이동이 필요하다 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패러다임이 생각의 속도를 감지해야 하고 거기에 맞는 것으로 만들 어가고 이행해 가야 한다. 따라서 필요하면 개혁이나 혁신을 해야 한다. 아무도 그 변화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나 혁신의 방법은 무한히 열려져 있다. 왜냐 하면 지금까지의 방법이 생각의 속도에서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을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 이다.
셋째로 통합 방법론이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 목회도 이제는 연결망 또는 네트워킹 형태를 갖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며 일상 도구도 수렴되거나 통합되는 형태를 가진 것처럼 통합 형태를 요구한다. 통합이란 단순히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이론 을 수용하는 통합성을 갖는 것으로서 이론과 실천을 구별할 수 없다. 그래서 목회가 실천만 도 아니고 이론이 포함된 실천으로서 통합성을 갖는다. 이렇게 해서 방법론을 통해 보면 전 문가(specialist)와 통합론자(generalist)를 구별할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즉 문제의 성격 에 따라 적용하되 기본적으로 전문가와 통합론자가 동시에 고려되며 협력하는 것이 요구된 다. 최근 생산성을 강조하면서 효율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동시에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따라서 능력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는 오만이 일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였 다. 그러나 기업에서도 마음의 경영과 같은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지능만 가지고 안된다 는 주장과 함께 정서를 중시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동시에 도덕성을 중시하는 운동도 일어나 게 되었다. 물론 첨단 기술을 위해 지식 경영을 중시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마음, 정 신, 영이 합해지는 경영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는다. 이것은 실천이 통합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로 사회적 선견 능력 개발을 통한 목회가 필요하다. 선견 원칙은 지혜로 알려지고 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의 영감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솔로몬은 모든 것보다 지혜를 구했기 때문에 지혜와 더불어 부와 장수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잠언서 기자는 여 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지혜를 얻은 자는 지식을 가지며 그 지식 이 없는 자는 망한다. 지식이 지배를 하고 부는 지식이 결정한다는 말을 하지만 여호와 를 경외하는 자는 단순히 지혜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부와 명예와 생명까지도 보상으로 얻 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혜를 얻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지혜를 얻고 그것을 근간으로 하여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혜를 필요한 아이 디어, 통찰력, 전략 등도 요구한다. 다만 지혜가 행위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지 혜는 복지를 형성하며 결과적으로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목회윤 리는 윤리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다섯째로 도덕적 안내 방법도 사용될 수 있다. 이 방법은 Rebekah L. Miles가 제안한 것인 데 매우 유익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즉 도덕적 안내를 위한 단계들을 정하여 단계를 따라 안내하도록 한다. 이 경우는 목회 윤리의 실천 이행자와 지도력을 가진 사람 이 도덕성을 정의하고 우선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를 정리하고 그 다음으로 다른 사람 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거나 해결하여야 한다. 이것을 경험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목회를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 자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단순히 그 문제에만 집착하여 고려하지 않고 정서적인 면도 포함하고 환경이나 분위기도 깊이 고려하면서 윤리적인 문제를 이해하려고 한다.
5. 어디서(where) ?
목회윤리는 목회자와 목회 현장을 영역으로 삼는다. 목회 현장은 전통적으로 교회만을 고려 했지만 이제는 다원화되었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영역을 모두 포함하여 고려하여야 한다. 교회도 전문성을 나타내는 교회가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여성 교회, 아동 교회, 다 방 교회, 전원 교회, 청년 교회, 대학 교회, 사랑방 교회, 연예인 교회, 체육인 교회 등 많이 있다. 여기서는 윤리문제가 다양하고 특이하게 나타난다. 또 지금까지는 특수 목회 현장으로 알려져 있는 영역이 있다. 즉 학교, 병원, 노동 장소, 소년원, 교도소, 사회복지법인, 어린이 집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장이 특수라는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에 목회 현장으로 바로 이 해하게 되며 목회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더 넓게 목회에 직접, 간접으로 관련된 장 을 포함하여 거기서 일어난 윤리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또 윤리 문제가 일어나는 새로운 삶 의 영역들을 다 포함한다. 예를 들면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가상 현실 즉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윤리 문제들, 전자 초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윤리 문제들, 각종 경 영에서 일어나는 관리나 지도력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윤리 문제들 등 많이 있다. 사실, 관리 는 복잡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정리하고 운영하며, 지도력은 변화를 목적으로 하여 영향력 을 미치는 것으로서 많은 윤리적인 문제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목회 윤리는 이러한 모든 목 회 영역에서 일어나는 윤리 문제들을 다루게 된다. 그러므로 목회 윤리는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가운데 기술과 기법들을 익혀서 적용하여야 한다.
6. 언제(when) ?
언제는 시간을 의미한다. 목회 윤리는 이 시간 또는 때를 여러 가지로 이해한다. 즉 연대기 적 의미의 시간, 특수한 시점을 의미하는 때로서의 시간, 단순히 한 시간 두 시간 하는 시 간, 종말과 같은 시대를 구분하는 데 정해지는 시간 등 다양하게 이해된다. 하나님께서 시간 을 직접 운영하시기 때문에 특별히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운영하시는 시간을 주의 깊게 파악 하여 활용하려고 한다. 연대기적 의미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생각한다. 물론 사변적인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시간들로 이해한다. 이러한 전제 아래 과거는 교훈을 주고, 기억으로 존재하며, 현재는 과거의 연속일 수도 있고 단절일 수도 있지만 최근에는 연속보다는 단절로 향하는 가운데 새로운 마음을 갖고 새로운 능력을 개발하여 거기에 따라 행동을 하고 특히 결단의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판단된다. 미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시간으로서 예측하며 그 예측된 것을 현실화 또 는 현재화하려고 하며 이 속에서 자기를 표현하려고 한다. 즉 미래는 자기가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미래에는 역사가 형성되는 가운데 사람들의 문화도 형성된다. 여기에는 수많은 도전과 대응이 있으며 문제 해결 과정이 형성되어 있다. 역사를 이어가면서 수많은 영웅들과 이름 모르게 봉사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더 좋은 역사를 형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은 목회의 현장으로 이어지는 한 목회 윤리의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보고 대비하고 해결하고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윤리 적인 문제들은 분명히 다루고 지나가야 한다. 현재는 장소는 이미 거의 극복이 되었고 시간 의 문제만이 남았으나 이것도 윤리적인 문제를 많이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떠한 문제이 든지 그것이 목회를 하는 가운데 윤리적인 문제가 되면 목회윤리가 다루어 처리해야 한다.
맺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목회윤리의 구성 요소들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것을 무엇(what), 누구 (who), 왜(why), 어떻게(how), 어디서(where), 언제(when) 등으로 나누어 각 요소에 대해 일어난 목회윤리 문제들을 다루어 해결하며 윤리 문제들을 분명히 파악하여 정리하여 한다 는 것을 제시하였다. 또 목회윤리가 생명을 기본 주제로 다루며 목회도 생명을 기본 주제로 다루기 때문에 생명을 기본으로 하여 윤리문제로 삼고자 하였다. 여기서 목회윤리를 이행하 는 가운데 누구에 대한 이해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소명에 따라 윤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목회자는 목회윤리를 다루면서 구체적인 방법들 을 필요로 하며 생명을 보전하는데 방해되는 윤리적인 문제들을 야기시키는 잡초들을 제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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