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극(歌劇)이라고도 함.
음악에 따라 전개되는 연극.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와 같이
막 전체를 통하여 음악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고,
음악의 중간에 말에 가까운 레치타티보(서창)나 일반 대사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오페라는
모든 예술, 즉 언어예술·시각예술·음악예술이 이상적으로 혼합된 것이다.
이 3가지가 하나로 어우러져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오페라는 감동과 활력을 준다.
오페라의 기원은
중세 예배극까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전통 형식은 16세기 피렌체에서 그리스 고전비극에 대한 당시의 개념과 결합되었다.
야코포 페리, 야코포 코르시, 프란체스코 카발리,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와 같은
초기 작곡가들은 다프네·율리시스·오르페우스 등 옛 신화에서 소재를 찾았으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식 L'incoronazione di Poppea〉은
로마의 실제 인물 네로와 포페아를 다루었다.
파리의 루이 14세 궁정에서는
장 바티스트 륄리의 호화로운 작품이 오페라의 발달을 촉진시켰고,
빈의 궁정에서는
피에트로 안토니오 체스티의 이탈리아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영국에서는
별로 발전하지 못했지만,
헨리 퍼셀이 여학교에서 공연하려고 작곡한 걸작
〈디도와 아이네아스 Dido and Aeneas〉가 나왔다.
18세기 중엽 런던에서 대중화된 오페라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형식을 독일 태생의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우아하게 다듬은 것이었고,
헨델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형식화한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오페라 양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아리아에서는
행동은 정지되지만 등장인물은 노래로 그 순간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했다.
따라서 주연 가수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고
특히 여자역 대부분을 맡았던
카스트라토(castrato : 거세한 남성 소프라노)에게 특별한 관심이 모아졌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장 필리프 라모가 극적 효과를 위해 대사를 강조하고
형식을 더 유연하게 하고 대규모 발레 막간극을 늘리는 등
오페라를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이와 비슷한 무렵에 보다 세속적인 경향의 희가극이 나타났다.
영국에서 공연된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 The Beggar's Opera〉는
사회와 정치를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이고
함부르크에서는
좀더 평범한 일상의 소재를 다룬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나폴리 역시 대중 오페라의 근원지로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의 〈마님이 된 하녀 La serva padrona〉 같은
작품이 나온 곳이다.
크리스토프 글루크는
음악활동 초기부터 오페라 발전에 이바지했고
후에 기량이 뛰어난 가수의 역에 의존하던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극(劇) 자체를 강조하는 오페라로 개혁하여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다.
그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Orfeo ed Eurydice〉·〈아르미데 Armide〉·
〈알체스테 Alceste〉, 그리고 이피게네이아에 관한 2편의 오페라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는 본보기로 고전적인 효과와 비극적 정서를 나타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첫번째 걸작 〈이도메네오 Idomeneo〉에서 이와 비슷한 경향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뒤에 나온 3편의 걸작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
〈돈 조반니 Don Giovanni〉·
〈코지 판 투테 Cos" fan tutte〉에서는
선배 작곡가들의 특성과 희가극을 결합시켜서,
앙상블 피날레(막이 끝날 즈음 등장인물들이 모두 무대에 나와 부르는 노래)를
극 진행의 중요 수단으로 썼고,
앙상블 피날레에 교향곡 형식을 도입했다.
그의 〈마술피리 Die Zauberflöte〉은 징슈필 을 숭고한 경지로 끌어올렸다.
〈메데아 Médé;e〉를 작곡한 루이지 케루비니와 〈베스타의 무녀 La Vestale〉를
작곡한 가스파레 스폰티니는
앞으로 새로운 정가극(opera seria)이 나올 수 있도록 희망을 불어넣었고
루트비히 판 베토벤에게도 영향을 주어 〈피델리오 Fidelio〉가 탄생되었다.
한편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희가극
〈비밀결혼 Il matrimonio segreto〉은
조아키노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Il barbiere di Siviglia〉·
〈신데렐라 La Cenerentola〉를 비롯한 일련의 성공적인 희가극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로시니의 후기 오페라는 장중하고 낭만적인 양식을 띠며,
자코모 마이어베어에 이르러서는 훨씬 더 웅장해졌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오페라는 국민주의적 성향으로 발전했다.
조반니 벨리니의 영향력있는 작품과, 비극과 희극을 망라해서
60여 편을 작곡한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작품들은 주세페 베르디의 영광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베르디는 초기 작품은 미숙했지만
〈오텔로 Otello〉·
〈팔스타프 Falstaff〉에 이르러서는
극과 음악에 완전히 정통하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낭만적 오페라 〈마탄의 사수 Der Freis-chütz〉와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마르슈너의 오페라가
오페라에 혁명을 일으킨 거장 리하르트 바그너에의 길을 닦았다.
바그너의 대표작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파르치팔 Parsifal〉·
〈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는
오늘날까지 최고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다니엘 프랑수아 에스프리 오베르가
잠시 인기를 얻은 뒤
샤를 구노와 앙브루아즈 토마, 조르주 비제, 쥘 마스네의 시대로 넘어갔는데
이들의 작품에는 그랑 오페라와 오페라 코미크 가 교묘하게 섞여 있다.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한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트로이 사람들 Les Troyens〉이
뛰어난 서사 비극으로 평가받은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오페라의 대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편 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의 오페라는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미하일 이바노비치 글린카의 독창적인 오페라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와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에 이르러
성격이 아주 다른 형태의 오페라로 발전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애국적 작품에 이어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한층 서정적인 오페라가 나타났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레오슈 야나체크의 사실주의 오페라가 점점 주목을 받았다.
헝가리에서는
벨라 바르토크가 〈푸른 수염 공작의 성 A Kékszakállú herce vára〉을 작곡했고,
스페인에서는 마누엘 데 파야가 〈허무한 인생 La vida breve〉을 작곡했는데
이들은 각각 자기 나라의 민속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자코모 푸치니와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이끄는
베리스모(verismo : 현실파로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일어났던 사실주의 운동)
오페라가 번성했다.
독일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살로메 Salome〉·
〈엘렉트라 Elektra〉에서
음악극의 본래 의도를 실현하고자 했으나
그뒤 〈장미의 기사 Der Rosenkavalier〉 등 성공적인 희가극에서는 서사성을 약화시켰다.
프랑스에서는
클로드 드뷔시가 작곡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Pelléas et Mélisande〉는
아주 독창적이긴 하지만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모리스 라벨은 황홀한 단막 오페라 2편을 작곡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 Moses und Aron〉,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Wozzeck〉·〈룰루 Lulu〉,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난봉꾼의 행각 The Rake's Progress〉,
쿠르트 바일의 풍자 오페라, 벤저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 Peter Grimes〉는
모두 훌륭한 현대 오페라라는 찬사를 받았다.
opera의 구성
문학, 연극, 미술, 무용 등이 음악에 따라 전개되는 음악극인 오페라의 구성 요소.
오페라는 대사에 음악을 붙인 것으로
대사가 쓰인 대본과 독창·합창·관현악으로 구성된 음악이 주요 요소가 된다.
오페라의 대본은
희곡과 같이
막과 장으로 나뉘지만
희곡과는 달리
보통 운문으로 쓰이고,
간결한 단어를 사용하며,
구절이 반복되기도 한다.
오페라의 독창자는 등장인물이 되고,
배역에 따라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으로 나뉜다.
또한 독창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아리아와 레시터티브로 나뉜다.
주로 감정의 표현은
서정적 감정의 분출에 적합한 아리아가 맡고,
레시터티브는 등장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체 대사를 전달하고
줄거리를 빠른 속도로 전개시키는 데에 사용된다.
합창은
오페라 가수들이 군중 역으로 등장하여 노래한다.
관현악은
노래의 반주를 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성격·행동 또는 무대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오페라의 형태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의 양식으로 발전한 음악에 따라 전개되는 음악극인 오페라의 형태.
오페라는 크게 오페라 세리아(정가극)와
오페라 부파(희가극)의 두 가지 형태로 발전했다.
오페라 세리아는
18세기에 유럽을 풍미했던 이탈리아의 오페라 양식으로
독창과 화려한 성악 양식을 강조하고,
합창과 관현악은 부수적인 역할만 담당했다.
여성 소프라노와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가수)의 비중이 높았고,
음악과 가사는 성격에 따라
레시터티브와 아리아로 명확히 구분되었으며,
희극적인 에피소드의 사용을 피했다.
18세기 중반 나폴리에서 시작된 오페라 부파는
오페라 세리아의 막 사이에 상연되던 인테르메초(막간극)에서 발전했다.
오페라 부파의 줄거리는
희극적 내용으로
대화체 대사도 노래에 실어 불렀다.
오페라 부파 이외의 다른 희가극 장르인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
독일의 징슈필,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 등에서는
대화체 대사를 노래가 아닌 일상의 말로 부른다.
우라나라의 오페라
한국에 오페라가 처음 시작된 것은
조선 오페라 협회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 La traviata〉를 공연한 1948년 1월부터이다.
이때의 오페라는
서양의 오페라 형식과 같은 것이었고
1950년 현제명의 〈춘향전〉이 최초의 창작 오페라였다.
이후 김대현의 〈콩쥐팥쥐〉,
장일남의 〈왕자호동〉과 같은 창작 오페라가 여러 편 발표되었다.
1962년 4월 창립된 국립 오페라단은
정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과감한 레퍼토리를 선택할 수 있었다.
푸치니의 〈라보엠 La Bōheme〉,
베르디의 〈리골레토 Rigoletto〉,
공석준의 〈결혼〉,
이영조의 〈처용〉 등이 공연되었다.
1968년 5월 창단된 김자경 오페라단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민간 오페라단으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이건용의 〈솔로몬술람미〉 등을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