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거위벌레와 즐거운 지식
뜨거운 여름에도 도토리는 하루가 다르게 굵어갔다. 요즘 숲에는 여기저기 도토리 가지들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소행이다. 참나무들에게는 시련의 시기이지만 도토리거위벌레에게는 가장 풍요로운 시절이다. 신갈나무숲을 걷다가 나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왜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 안에 알을 낳고 나뭇잎이 서너 장 달린 채로 떨궈 낼까? 도토리거위벌레의 직관이 궁금해졌다.
도토리를 감싸고 있는 나뭇잎들을 보면 우선 두 가지를 유추하게 된다. 하나는 싱싱함이다. 도토리가 떨어져도 나뭇잎에서 공급하는 수분에 의해 조금이라도 더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떨어진 잎에 덮여 도토리가 보호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의문이 든다. 그런데 굳이 왜 가지를 힘들게 잘라 떨어뜨려야 했을까? 나무에 매달려 있으면 도토리가 더 신선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알을 낳은 도토리와 낳지 않은 도토리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른 놈들이 같은 도토리를 찾아와 여러 개의 알을 낳을 수도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애벌레의 생존률을 낮추는 일이다. 그래서 도토리거위벌레는 알을 낳은 도토리의 가지를 잘라 땅에 떨궈 놓는다.
그런데 도토리거위벌레가 한 개의 알을 낳기 위해 들이는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꼬박 두세 시간이 걸린다. 최소한 가지를 자르는데 2시간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는데 30분이 걸린다. 생각해보라. 자기 몸통보다 두꺼운 나무를 이로 갉아서 자른다.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알을 20~30개 낳는다고 한다. 알을 하나씩 하나씩 가장 적합한 지점과 시점에 심듯 낳으니 생존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확실한 방법이다.
그렇게 떨어진 도토리 속에서 알은 5~8일면 깨어 도토리 살을 먹고 20여일 후에는 도토리 껍질을 뚫고나와 땅 속으로 들어간 뒤 월동준비를 한다고 한다.
무심코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현상이지만 알아보고 관찰하고 추측해보면 자연은 번번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본능이 결코 인간의 지식에 뒤지지 않는다. 1㎝도 안 되는 벌레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숲에서 이렇게 수많은 주인공이 벌이는 자연의 대향연을 무심코 지나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니체의 즐거운 지식처럼, 자연을 안다는 것은 삶을 무한히 축복하는 즐거운 지식이다. 많이 알 필요도 없다. 그저 시간이 되는 대로 하나하나 알아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