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태을도 6월 의통소집훈련 도훈
태을주 명가수
2023. 6. 17 (음 4.29)
노래의 생명력
사람이 살아나려면 첫째는 내가 감동해야 합니다. 생명이라는 거는 감동, 감격해야 돼요. 그러니까 감동하고 감격하지 않는 생명은 생명이 아니에요. 생명이 없다고요. 실망하고 좌절하고 체념하면 생명이 고갈됩니다.
가수들도 희망적인 노래, 꿈을 불어넣는 노래, 의지를 고양시키는 노래들을 주로 하는 가수들은 노래하면서 오히려 더 생명력을 얻어서 그 노래대로 됩니다. 거꾸로 비관하고, 체념하고, 상심하는 쪽의 노래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노래하면 할수록 거기에 세뇌가 돼서 자기 기운을 뺏기고 생명이 고갈되어 그 노래대로 낙엽 따라 가버린다고 합니다. 그런 노래 있잖아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반대로 ‘쨍하고 해뜰 날’ 노래도 있잖아요. ‘쨍하고 해뜰 날’ 노래는 말 그대로 쨍하고 해 뜨는 거예요. 어디 가서 ‘쨍하고 해뜰 날’ 불러보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업되잖아요. 그러니까 말이라고 하는 건 마음이 흘러가고 기운이 흘러가고, 거기에 따라서 생명력이 연결됩니다.
신학 : 하늘과 나의 연결
가수도 그럴진대, 진리의 길을 가는 신학은 더하겠지요. 진리라는 것은 하늘과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걸 학문적으로는 신학이라고 합니다. 하늘을 얘기해 주는 것, 하늘하고 나하고 관련을 맺게 해주는 것, 그게 진리인데, 그걸 설명해주고 가르쳐주고 이해하게 해주는 것을 학문적으로 신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학문의 최고봉은 저세상을 얘기해 주는 신학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희망적인 노래를 주로 부르는 가수는 자기 생명력이 업되고 듣는 사람도 업되지만, 비장하고 체념적인 노래를 주로 부르는 가수는 그런 감정이 전해져서 마침내 생명을 갉아먹게 됩니다. 하늘하고 나하고 관계 설정을 해주는 게 진리인데, 그 진리를 연구하고 전해주는 게 신학이라고 했잖아요. 그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본질
자연이란 크게 보면 선도 악도 아닙니다. 단지 생명 현상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서는 아기가 태어나고 어디에서는 충현도인 집처럼 아기가 자라나고 또 어디에서는 생명이 쓰러져 간단 말이에요, 똑같은 시간이지만. 그러니까 생명이라는 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그냥 생명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이 생명을 어떻게 존재 매김 하느냐에 따라서 생명력이 있게도 되고 생명력이 없게도 됩니다. 의미가 있게도 되고 없게도 되고, 가치가 있게 되기도 없게 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의미 부여
똑같은 죽음이지만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에 조선을 구하고 돌아가실 때는, 그 생명은 온 백성들을 뭉클하게 하잖아요. 반면에 아무리 건강해도 도둑질 많이 하고 나쁜 짓 많이 하는 사람은, 아무리 건강하고 쌩쌩하게 돌아다니더라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흉기지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뭐냐?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갈 건가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입니다.
그런데 의미 부여는 인간만이 하늘과 똑같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동물도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기본적으로 감정이 있기 때문에. 동물도 의미를 부여하고 식물도 의미를 부여합니다. 식물도 텔레비전에 나온 걸 보면, 살기 위해서 사람보다 더 신통하게 가지를 뻗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처럼 신령스럽게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해요.
인간은 오행이 갖춰져 있거든요. 오행이 갖춰져 있다는 건, 천지의 흐름에 온전히 동조할 수 있고 천지 흐름을 내가 돌릴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천지 흐름을 만들 수가 있다는 거예요. 인간은 소천지라고 하잖아요? 인간은 천지의 진액이라고요. 그래서 인간이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서 그 시대의 시간도 의미가 달라지고 공간도 의미가 달라집니다.
시대를 이끌어 가는 사람
사람들이 전 세계로 흩어져 사는 것 같지만, 지금 이 시대 이 공간에서 사는 전 세계 인류한테 우리가 의미가 있을 거 아니에요. 지금 시간이 2023년 6월 17일이잖아요. 2023년 6월 17일 이 시간에, 지구라는 땅덩어리에서 사는 의미가 뭐냐, 이 시공간의 의미가 뭐냐, 이것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이 시대의 중심이고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의 경위, 이 시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인간이 부여하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움직이고 전 신명들이 움직입니다. 인간한테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경위를 심으면 거기에 따라 세상이 움직이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한단 말이에요. 지금 60억 인류가 넘잖아요. 60억 인류가 각기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열심히 삽니다. 근데 그 의미 중에서도 상위 의미가 있고, 상위 가치가 있고, 하위 의미가 있고, 하위 가치가 있고, 주변 의미가 있고, 주변 가치가 있고, 중심 의미가 있고, 중심 가치가 있단 말이에요. 시간과 공간은 그냥 있는 거고 존재하는 거예요. 근데 시간과 공간은 누구를 중심으로 움직여주느냐? 그 시대에 가장 최상의 의미, 최상의 가치, 최상의 경위를 갖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이 움직입니다.
최상의 의미와 가치와 경위를 실현하는 사람, 태을도인
그러면 2023년 6월 27일, 이 지구상에서 현재의 시간과 공간의 최상의 의미와 가치와 경위를 세상에, 신명들에게, 누가 던져주겠어요? 그 사람이 누구겠어요? 충현도인 같은 우리 태을도인이란 말이에요. 우리 태을도인들이, 여기에 몇 명 안 모였지만, 태을도인들이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이 순간에 있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 의미의 끈을 가지고, 가치의 끈을 가지고, 경위의 끈을 가지고, 산단 말이에요.
그런데 미국에 있는 사람이나 영국에 있는 사람이나 러시아에 있는 사람을 우리는 전혀 모르잖아요. 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우리하고 연결됐단 말이지요. 뭘로? 무의식의 끈으로, 영적인 끈으로, 연결돼 있는 거지요. 이 세상 사람들은 여섯 일곱 단계만 넘어가면 다 연결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관점에서 연결해나가다 보면 여섯 일곱 단계에서 다 연결되는데, 외국에 있는 사람들이 그 여섯 일곱 단계로 우리를 실제로 확인하는 거는 어렵지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우리를 중심으로 무의식의 끈을 맺고서 산단 말이에요.
즉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이나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그 사람들한테 생명의 에너지를 주는 사람은 누구냐 하면 우리들, 태을도인입니다. 왜냐? 태을도인이면 태을을 잡고 있고 태을궁과 직통 라인이기 때문에, 천상의 태을궁과 지상의 태을궁과 내 마음속의 태을궁이 삼합으로 연결됐단 말이에요.
그 태을을 용사하는 분이 여기 우리가 모시고 있는 천지부모님입니다. 이분의 마음을 가지고 태을을 용사해서 천지신명과 인간들을 주재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경위, 천지부모님이 용사하는 그 경위를 우리가 대행해서 했기 때문에 천지신명들과 이 지구상에 있는 인간들이 무의식의 중심, 의식의 중심, 그러니까 의식의 가치, 무의식의 가치, 의식의 경위, 무의식의 경위가 우리한테 이렇게 연결됐단 말이예요.
예전 우리 조상들이 가을이면 풍년을 기원하는 줄다리기를 했어요. 어디 지방 가니까 줄다리기할 때 줄을 매다는 큰 고가 전시돼 있는 걸 봤어요. 줄다리기는 청군 홍군 나눠서 해요. 그럼 줄다리기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줄이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 이 시기는 상극이라는 요소와 상생이라는 요소가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때예요. 지금 시간과 공간이 상극에서 상생으로 대전환하는 때인데, 천지부모님은 상생의 태을 세상을 열어가는 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 줄을 우리 태을도인이 갖고 있습니다.
선천 상극의 금수세상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게 편하니까. 그래서 크게 보면 지금 상극 금수세상의 줄을 가진 사람들과 상생 태을세상의 줄, 즉 태을줄을 가진 사람들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지금 이 후천개벽기라는 게, 결국은 천지부모님이 공사 보아놓으신 대로 상생의 태을줄을 가진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선천 5만 년 동안 굴러온 관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잘 끌려오지 않아요. 우리가 태을도를 전해서 태을도인으로 재생신시키려고 해도 잘 안 되잖아요. 마음같이 안 되잖아요.
아까 얘기했다시피 세상 사람들은 인간이든 신명이든 태을과 다 연결되어 있지만, 독기와 살기가 있어서 우리 줄을 못 잡고 반대편 줄을 잡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반대편 줄의 중심인물을 자기 나름대로 설정해서는 끌려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게 나라를 형성하는 나라 중심의 줄일 수도 있고, 민족이라는 집단을 형성하는 민족 중심의 줄일 수도 있어요. 중국의 반고씨라든가 일본의 천조대신이라든가, 이런 민족의 중심인물이 있잖아요. 그런 줄을 잡고서 끌려오지 않으려는 거예요.
그러면 중요한 건 뭐냐? 상제님은 상생의 태을주를 가지고 선천 상극세상을 후천 상생세상으로 옮기도록 공사를 보셔서 다 짜놨는데, 정히나 사람이 없으면 상제님이 원평 말뚝이라도 뽑아서 쓴다고 하셨잖아요, 기운 붙여가지고. 그런데 그 말뚝을 기운 붙여서 쓰려면 힘도 드실 테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러니까 천지부모님을 대행하는 중심적인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들어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태을도인들이 나와야 한다, 이겁니다. 중심이 많아질수록, 중심이 넓어질수록, 중심이 딴딴해질수록 세상은 중심을 닮아갑니다. 원이 있는데, 중심에서 조금씩 커져서 중심이 온 전체를 차지하면 중심이 전체가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 태을도인들이 아직 몇 명이 안되다 보니까, 스스로 많이 지치고 힘들단 말이에요. 또 어떤 면에서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셨는데 이게 진짜 되려나. 가족한테 얘기해도 잘 얘기 안 되고, 친한 친구한테 얘기해도 잘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이게 하다 보면 힘들 때가 많습니다. 과연 이게 될까? 이럴 때 강력한 의지를 가진 사람, 강력한 기운을 가진 사람, 어떻게 보면 백절불굴의 용기를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게 크게 보면 ‘한 사람만 있어도 내 일은 된다’는 것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보시고서 6월 20일 제자들을 전부 모이게 하십니다. 구릿골 약방에 모이게 해서는,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믿습니다.’
‘죽을지라도 믿겠느냐?’
‘예, 죽을지라도 믿습니다.’
‘한 사람만 있어도, 믿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내 일은 된다.’
이런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천지인 삼계의 중심의 가치, 중심의 경위, 이런 것을 딱 해놓으셨는데, 이제 상제님이 육신의 옷을 벗고서 저세상으로 가셨단 말이에요. 그러면 육신을 입고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저 신명계와 연결이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상제님은 제자들한테 ‘내가 죽을지라도 너희들 믿겠냐? 너희들하고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함께 걸었던 내가 천지인 삼계의 중심을 주재하는 사람인데, 그걸 믿겠냐? 너희들이 나하고 손을 놓지 않는 이상은 너희들도 이 세상의 중심이고 신명의 중심이고 온천지의 중심이 된다. 너희들이 하겠냐?’ 이걸 물어봤단 말이에요.
근데 제자들은 그런 것까지는 모르지만 상제님이라는 사람이 신통력도 대단해서 해와 달을 움직이고 하니까 거기에 압도 당해가지고, ‘그래도 믿습니다.’ 한 거지요. 그러니까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학문적으로 정립해서 믿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이 이성적으로, 영성적으로, 감성적으로, 체계적으로 나를 훈련시켜서 믿음을 확고히 하면, 어떤 위기 상황이 오더라도 다 극복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냥 순간에 혹해서 믿음을 가지면, 시간이 흘러가면 그 믿음은 흩어지게 됩니다. 내 스스로 주체적으로 믿음을 확립하지 않은 건, 어느 순간에 외부의 유혹이나 여러 가지 시련이 오면 이게 흩어지기 쉽습니다. 상제님께서 떠나시려니까, 그런 걸 대비해서 제자들한테 ‘너희들 믿겠느냐?’ 다짐하신 거거든요.
그런데, 믿는다고 대답해 놓고 그 뒤에 배신한 사람도 있잖아요. 상제님 제자들 중에 배신하는 사람도 있고, 배신까지는 안 했지만 나름대로 믿음이 옅어져서 방황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상제님 재세 시의 수종 제자들도 그런 과정을 겪었는데, 상제님이 1909년에 돌아가시잖아요. 돌아가신 지 100년이 넘었는데, 세월이 흘러 100년 이후에 상제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은 믿음 갖기가 더 어렵단 말이에요.
내가 천지의 중심이다. 이 지구 60억 인류를 책임지는 최종적인 책임자가 나다. 내가 아니면 지구의 60억 인류를 살릴 사람이 없다. 이런 강력한 믿음을 갖기가 쉽겠냐는거지요. 세상 사람들한테 살아가는 가치를,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내가 궁극적으로 최종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믿음을 내가 갖기가 쉽지 않단 말이죠.
상제님은 그걸 가져라는 거예요. 상제님 당신이 세상에 중심으로 있었던 것과 같이 너희 태을도인들도 세상의 중심으로 있으라는 겁니다. ‘너희가 중심만 잡으면 이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그걸 믿느냐?’ 이거거든요. ‘너희가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이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그걸 믿겠냐?’ ‘너희가 이 세상의 경위를 올바로 닦고 있는 이상, 이 세상은 언젠가는 내가 공사 봐놓은 태을 세상이 열린다. 너희가 그 중심에 확고하게 서 있겠냐?’ 상제님 고수부님이 우리한테 그걸 얘기한단 말이에요. 가치의 중심에, 경위의 중심에 서서 세상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때 노래를 불러줄 수 있냐는 겁니다.
말기암 소녀와 생명의 노래
아까 내가 도담시간에 얘기했듯이, 말기암에 걸린 소녀가 살고 싶어서 이 가수를 불렀을 거잖아요. 말기암 환자가 왜 이 가수 노래를 들었겠어요. 이 가수의 노래를 통해서, 이 노래를 들으면 자기 통증도 좀 덜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을 것도 같기도 하고, 그런 것이 노래에 담겨있기 때문에 이 가수를 좋아한 겁니다. 그러니까 생명의 노래죠, 이 가수의 노래는, 이 말기암에 걸린 소녀에게 생명의 노래죠. 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면서, 흥얼거리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 가수가 현장에서 그걸 봤을 때는 얼마나 감동이겠어요. ‘내 노래를 듣고서 생명을 버티는 사람이 있구나. 내 노래를 듣고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소녀가 있구나.’ 자기가 서울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닐 때는 몰랐을 거 아니에요. 제주도에 있는 말기암 소녀가 생사를 헤매는 중에도 자기 노래를 듣고서 버틴다는 걸 몰랐을 거 아니에요. 10만 명, 20만 명 대중들이 모인데서 노래했을 때는 n분의 1이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그 개별적인 존재들이 느껴진 건 아니지요. 그냥 자기가 인기가 좋다고 생각했지, 생사 투쟁하는 한가운데에 자기 노래가 있다는 거는 몰랐겠지요. 근데 제주도에서 한 소녀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그것을 딱 느끼는 순간은 얼마나 감동이 왔겠어요. ‘내 노래에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구나. 죽어가는 한 소녀를 내가 얼마간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키겠구나. 가수 하기를 참 잘했다.’ 천지부모님은 우리한테 노래를 부르라는 거예요, 생명의 노래를.
급살병에서 살리는 생명의 노래, 태을주
지금 독기와 살기로 인해서 급살병으로 다 죽는다는 거예요, 예외 없이. 자다 죽고, 먹다 죽고, 오다가다 죽고. 쓰나미처럼, 홍수 밀리듯, 그렇게 막 쓰러져서 죽을 때가 온다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독기와 살기를 품어내면서 척을 짓고 살을 써가면서 살고 있다는 거예요, 이끗에만 몰두해서. 상제님이 그러셨지요. ‘아무리 하여도 전부 건져 살리기는 어려우니 참으로 원통하다.’ 벽을 향해 돌아누우셔서 상제님이 우시잖아요.
천지부모님께서는 우리한테 세상의 중심에 서서 태을주라는 노래를 부르라는 거예요. 태을주를 불러서 말기암에 걸린 사람들을 살리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서 너를 환영해서 무대를 마련해줄 때를 기다리지 말고, 하늘만 바라보면서, 하늘을 향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말기암 소녀 같은 사람들이 전 세계 60억 인류인데, 그 사람한테 찾아가서 개인 콘서트를 하라는 겁니다. 거기서 태을주 노래를 감동적으로, 그 소녀가 감복하게 감격의 노래를 불러주라는 겁니다. 그래서 말기암 걸린 사람들을 살려내라는 거예요, 너희가.
그것이 ‘훔치 훔치 태을 천상 원군 훔리 치야 도래 훔리 함리 사바 하.’ 신명과 인간을 살릴 수 있는 최고의 명곡, 그 명곡이 태을주예요. 그리고 우리 충일도인이 차를 몰고 가면서, 충현도인이 일터에서 일하면서 노래하는 것 자체가, 세상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급살병에서 살릴 수 있는 노래를 간절하게 부르는 거지요.
그 노래가 들려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자기 의식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노래를 찾는다는 겁니다. 살려달라고 하는 건 약을 찾는 거예요. 내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말기암에 걸렸는데, 약을 달라는 거예요. 제주도의 말기암 소녀는 약이 없으니까, 조용필 가수의 노래가 약인 겁니다.
육십억 인류는 지금 급살병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급살병에서 살리는 약이 없잖아요. 기존에 선천 5만 년 동안에 개발됐던 모든 의술과 의학으로는 못 살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있는 말기암 소녀가 가수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듯이, 우리가 태을주라는 노래를 온 세상에 퍼뜨리고 그걸 통해서 살려야 합니다. 그 노래를 가장 잘하는 명가수가 되라는 겁니다.
태을주 명가수의 조건은 태을의 깨침과 체화
똑같은 노래도 어떤 가수가 부를 때는 재미가, 감동이 안 와요. 방송에 노래 경연대회 하잖아요. 트로트 경연대회도 하고 뭔 경연대회도 하는데, 거기서도 어떤 가수가 부르면 진짜 감동이 오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그 가사를 잘 해석해내는 겁니다. 작곡가와 작사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해석해서 내가 풀어내는 겁니다. 그랬을 때 감동이 오고 박수가 터져 나오는 거죠.
상제님이 1909년 돌아가신 이후로 꾸준히 태을주를 전해 왔습니다. 상제님이 태을주 가사도 쓰셨고, 태을주에 곡도 붙였단 말이에요. 숱하게 태을주 노래를 부른 겁니다. 그러면 태을주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 가장 감동할 수 있는 태을주 노래는 어떤 사람의 노래겠어요? 태을이 뭔지를 제대로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불러야 의미가 전달될 거 아니에요. 그래야지 상제님의 율조가 나온단 말이에요. 태을의 의미도 모르고서 그냥 개머루 먹듯이 읊으면 전달이 되겠어요?
상제님 말씀하셨듯이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했는데, 태을의 마음을 가지고 태을을 깨쳐서 그걸 가지고 내가 훔치 훔치 해야지 명가수가 되고 명곡이 됩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 TV조선 트로트 경연대회에 송가인도 나오고 임영웅도 나와서, 이 친구들이 얼마나 노래 해석을 잘해서 사람들을 감동시켰잖아요? 우리 태을도인들이 생명의 중심에 서서 급살병이라는 불치병을 고치려면 명가수가 되어야 합니다, 태을주 명가수. 태을주를 정말로 잘 해석해내고 정말로 잘 체화해내서 기가 막힌 노래를 할 수 있는 태을주 가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태을주 수꾸지가 돕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감동하고 감격했을 때 그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감동이 없는데 누가 노래를 따라 부르겠어요? 안 따라 부르지. 재미가 없어서 안 부릅니다. 유행가 가사 중에서 유행되는 거는 가사라든가 곡조가 딱 심금을 울려서 되잖아요. 태을주가 그렇게 심금을 울리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태을주 방방곡곡이 돼요.
태을주 명가수가 되기 위한 노력
충현도인이 태을주를 읽어서 내가 감동되고 뭔가 내가 변화되는 것 같다 했지요? 그거는 지금 태을주 명가수, 태을도인 명가수가 되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태을도인은 세상사람들한테 태을주를 노래해주는 명가수 중의 명가수가 돼야 합니다.
가수도 세상 경험이 많고 공부를 많이 해야 가사를 잘 해석해낼 수가 있습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노래 가사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내가 그 노래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얘기를 해주겠어요?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태을도인들이 교리 공부하는 것 자체도 크게 보면 태을을 이해하고 태을을 깨쳐서 태을주 노래를 부르는 명가수가 되어서, 세상사람들이 태을주 노래를 듣고 급살병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려고 공부하고 수행하고 이렇게 모이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천지부모님은 우리한테 태을주 명가수가 되라는 겁니다. 태을주라는 가사를 제대로 해석하고 태을주 율조를 제대로 소화하는 태을주 명가수가 되어야 급살병을 앞두고 태을주 수꾸지를 돌릴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 태을주 명가수가 되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해봅시다.
첫댓글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말씀에서 받은 감동 그대로 태을을 깨치고 체화해서, 세상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태을주 명가수가 되겠습니다.
녹취하신 충영도인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말씀의 감동을 글로도 다시한번 찬찬히 새길 기회가 되었습니다.
북사도 전란 남군산 병겁에 태을도 방방곡곡 태을주 방방곡곡 태을도인 방방곡곡입니다.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태을도를 닦는 태을도인들에 의해 태을주가 천하 방방곡곡에 울려퍼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