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
“나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눈다”
이는, 세계적 석학인 뉴욕시립대 교수 벤자민 바버 (Bnejamin R.Barber)의 말이다.
바버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성공한 사람인지 힘있는 사람인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가 현재 배우거나 배우려는 사람인지 배우기를 멈춘 사람인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먹고 살기 급급한 세상에서 이런 고급(?)스러운 주장들이 일반인들의 가슴에 얼마나 와 닿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선을 살짝 돌려서 생각해보면 전혀 다른 세상속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冒頭)에 적시된 바버 교수의 주장들에 한걸음 들어가 보면 희망과 절망이라는 극단의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
배우려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 공히, 자신들 삶의 시작 단계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두 부류의 차이는 천양지차로 그 간극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결국 바버의 주장에는, 배우려는 자는 희망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국내 장애인계를 바라본다.
비록 장애를 가졌다해도 이에 굴하지 않고 무엇인가 해보려는 노력을 하는 이들과, 자신의 인생을 타의(정부나 기관)에 의해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장애 환경을 불행이라는 관념으로 이해한다면, 이런 경우 삶을 다할 때까지 행복이라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신 앞에 장애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눈, 코, 귀, 신체기능, 마음 가운데 온전한 정신과 육체를 가진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라는 떳떳한 생각을 하는 이들의 삶은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칼럼 지난 호에 거론했던 “핑크대왕 퍼시”처럼 자신의 뜻처럼 온 세상이 핑크빛 세상으로 변하길 바라지 말고 자신이 핑크빛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변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를 깨닫기를 희망한다.
자신에게 처해진 다소 암울한 환경일지라도 자신 스스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상황이 바뀌게 되고, 이와 연계되어 세상이 바뀌고 결국, 자신의 운명까지 함께 바뀐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쓸데없이 고민하는 그 시간에 단 한 줄의 책이라도 읽거나, 신문이라도 읽어 보기를 강권하는 바이다.
희망은 거기서부터 싹트이게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