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부가 아니라 가정관리사입니다
-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제목 변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9월 6일 12시 목동 SBS 앞. 몇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은 가사일의 전문가인 가정관리사들. SBS에서 9월 23일 방영을 시작하는 [수상한 가정부]의 제목 변경을 요구하러 모인 것이다. 가정부라는 말은 전문적인 직업을 지칭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허드렛일 담당자’, 즉 ‘종’, ‘하인’으로 인식되어 노동자로서 존중 받지 못하는 하층민의 의미가 강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이날 기자회견 전에 두 차례에 걸쳐 SBS 측에 의견서를 전달하여 가정부라는 구시대적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SBS는 첫 번째 의견서에 대해 가정부는 ‘식모들과 같은 부정적 의미에서 격상된 보다 가치 중립적인 의미’이며 ‘원작 계약 조항 및 극적 효과’ 때문에 변경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두 번째 의견서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이에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수상한 가정부]의 제목 변경을 요청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임윤옥 부대표는 개회사를 통해 “직업적 자존감을 짓밟는 가정부라는 용어를 쓰지 말라”는 요구를 했다. 또한 “ILO는 지난 2011년 ‘가사노동자의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해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6월 16일을 ‘국제가사노동자의 날’로 선포한 바 있다”며 “가사노동자를 전문가로 인정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차옥경 사무처장은 “국정원이 민주주의를 거스르듯이 SBS도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면서 “SBS가 답변에서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을 썼다 하는데 가치는 시대마다 달라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는 단어를 쓰는 것이 방송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심옥섭 인천지부장은 현장발언에서 “전국가정관리사협회원인 우리는 전문가로서 교육받고 그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는 가사일을 전문으로 하는 가사노동자다. 우리를 가정관리사라 불러 달라.”며 강하게 요구했다.
이어진 퍼포먼스에서는 가정부라고 씌여진 단어에 물을 끼얹어 닦아내면서 가정부라는 단어 대신 가정관리사라는 말을 사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퍼포먼스에 사용했던 물감이 바닥에 흘러 내리는 순간, 기자회견 참가한 가정관리사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다음 순간 너도나도 가방에서 휴지와 물휴지를 꺼내들고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작은 티끌조차 그냥 보아 넘기지 못 하는 가사노동의 전문가들인만큼 스스로 거리를 더렵혔다는 사실을 참지 못한 것이다.
가사노동자들은 여전히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 해 법적 보호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4대보험의 적용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ILO가 2011년 채택한 ‘가사노동자의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아직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
[기자회견문]
가사노동자를 가정부라 부르지 말라!
우리는 얼마 전 SBS가 [수상한 가정부]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방영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가정부라는 말은 직업을 지칭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허드렛일 담당자’, 즉 ‘종’, ‘하인’으로 인식되어 노동자로서의 존중을 받지 못 했다. 직업을 가리키는 많은 단어들이 그렇듯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정부도 이제는 서서히 다른 말로 바뀌어 가고 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소속의 가사노동자들은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높여가고 있으며 하나의 당당한 직업군으로 인정받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로서 존중받기 원하며 이를 위해 스스로를 ‘가사관리사’나 ‘가정관리사’로 불러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호명하는 말을 바꿈으로써 직업적 자긍심과 자존감을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흐름도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 보장과 양질의 근로환경을 요구하고 있다. ILO는 지난 2011년 ‘가사노동자의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해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였다. 또한 올해부터는 6월 16일을 ‘국제가사노동자의 날’로 선포하여 행사를 진행키도 하였다.
이러한 때에 공중파에서 방송하는 드라마의 제목에 가정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소식에 우리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언론, 특히 공중파는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파괴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말 한마디의 선택이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해야만 한다. 언어는 그 사회의 반영이며, 또 한편 시대를 선도해 나간다. 이런 언론과 언어의 책임과 역할을 무시한 채 SBS는 구시대적 언어의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이는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대한 거부인 동시에 30만 가사노동자에 대한 모욕이고 무시이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두 차례에 걸쳐 SBS 드라마국으로 의견서를 보내어 제목의 변경을 요구하였으나 SBS측은 첫 번째 의견서에는 변경불가를 통보하였고, 이어 보낸 두 번째 의견서에는 응답요청 시한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답이 없는 상황이다. SBS가 계속 가정부라는 단어의 사용을 고집한다면 가사노동자들은 분노할 것이다. 하루속히 [수상한 가정부]라는 드라마의 제목을 바꿀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 가사노동자를 가정부라 부르지 말라!! – SBS는 가사노동자들에게 사과하라!!
2013. 9. 6
전국가정관리사협회・한국여성노동자회・한국여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