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너무 길어지니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동경호라던가, 영창상의 중급 타차는 붉은색의 탕색이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숙차 제조기술은 1975년에 상용화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보다 한참 전에 나왔던 두 종류의 차는 모두 생차이어야 합니다.
갓 만든 생차에서 붉은색의 탕색이 나왔다면 지금과는
가공방법이 달랐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1953년, 맹해다엽연구소에서 조사한 내용에 운남의 태족은
독특한 방법으로 보이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살청(찻잎 덖기), 유념(찻잎 비비기), 건조 이 세 가지가 아닌,
살청, 유념, 발효, 건조라는 가공법이었습니다.
덖어주고, 비벼주고, 발효시키는 방법은 흑차의 제조법과 같습니다.
운남성과 가까운 사천성에는 티베트로 수출했던 장차라는 흑차가 있습니다.
장차는 살청, 유념, 발효, 건조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것은 다엽연구소에서 조사한 운남 태족의 보이차 제조방법과 같습니다.
장차와 보이차는 차나무 품종은 다르지만, 가공방법이 같습니다.
가공법이 같으므로 기본이 되는 맛은 비슷했을 것이라는 결과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흑차와 비슷한 가공을 거친 보이차가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모든 보이차를 발효시켜서 만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창상 타차의 품질을 보면, 고급 타차는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갓 만든 생차와 같습니다.
녹황색의 이파리, 녹황색의 탕색이 나옵니다.
당시 보이차 가공방법이 다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맹해로 가보겠습니다.
보이차를 만들 때 발효를 시켰다는 기록은 맹해에도 있습니다.
맹해까지 포함되는 의미가 커집니다.
동경호의 이무, 영창상 타차의 보이 그리고 맹해까지 운남에서 차가 생산되는 주요 지역에서
모두 발효법이 있었다는 근거가 됩니다.
맹해에 남은 기록은 <불해다업개황>이라는 것입니다.
<불해다업개황>은 항일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38년, 이불일 선생이 기록한 글입니다.
불해는 맹해의 예전 이름입니다.
예전 맹해의 다업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불일 선생은 맹해차창의 초대 창장인 범화균 선생과 같이 근무를 했던 사람입니다.
항일전쟁 당시 운남성 정부는 이불일 선생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태국과 베트남으로 건너가 일본인의 동향을 살피고 오라고 말이지요.
두 나라를 돌고 이불일 선생은 운남의 성도인 곤명으로 돌아왔습니다.
거기에서 보고서를 작성해서 운남성 정부에 보고합니다.
당시 곤명에서 머물며 보고서를 작성하던 시기에 함께
기록해 두었던 것이 <불해다업개황>입니다.
이 기록에 보면 1930~40년대 긴차를 만드는 방법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했던 흑차 가공법이 아닙니다.
신기하게도 마치 오늘날의 숙차 발효법과 비슷한 가공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어집니다.
첫댓글 그 당시에 숙차 발효법이 있었나 보네요.
솔바람님의 저서에서 차창 기술자(?)들이 광쩌우를 여러번 방문하여 숙차를 완성했다는 옛기록이 있다하여 조금 의아해 했었거든요.
과거에 제조 비법이 있었던거군요.
놀랍습니다.
보이차고의 복원과 같은 거군요.
또 기다려 집니다.
그 전에도 악퇴방법과 흡사한 기술이 있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