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4088]창계(滄溪)임영(林泳)선생-詠史[영사]
창계(滄溪) 임영(林泳: 1649~1696)
원문=창계집 제1권 / 시(詩)
滄溪集 卷一 / 詩
詠史
長江天塹方自恃,
北軍飛渡怪底事。
景陽樓下眢井深,
國主藏身喜得地。
塹= 구덩이 참, 낮을 점. 파다. 동자(同字)㟻, 壍.
眢 =소경 완, 소경 원.마른 우물.
역사를 노래하다〔詠史〕
장강의 천참을 바야흐로 믿고 있다가 / 長江天塹方自恃
북군이 날아 건너자 괴이한 일이라며 놀랐지 / 北軍飛渡怪底事
경양루 아래에 원정이 깊으니 / 景陽樓下眢井深
군주가 몸을 숨기고 은신처 얻었다 기뻐하였네 / 國主藏身喜得地
[주-D001] 천참(天塹) : 천험(天險)의 요충지(要衝地)라는 뜻으로,
중국의 장강(長江), 즉 양자강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조(南朝) 진(陳)나라의 공범(孔範)이 “장강이라는 천연의 요새가
옛날부터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으니, 오랑캐 군사가 어떻게 날아
건너올 수 있겠는가.〔長江天塹, 古來限隔, 虜軍豈能飛渡?〕”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77 恩倖列傳 孔範》
[주-D002] 북군(北軍)이 …… 놀랐지 :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북위(北魏, 386~534)ㆍ동위(東魏, 534~550)와 서위(西魏, 535~557)ㆍ
북제(北齊, 550~577)ㆍ북주(北周, 557~581) 등의 북조와 송(宋, 420~479)ㆍ제(齊, 479~502)ㆍ양(梁, 502~557)ㆍ진(陳, 557~589) 등의 남조는
양자강이라는 천험의 요새를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였는데,
남조에서는 이 강을 믿고 방비를 소홀히 했다가 늘 북조의 침입을 받으면 “북군이 날아서 강을 건너왔다.〔北軍飛渡.〕”라고 하며 놀랐다고 한다.
수(隋)나라가 북주를 이어 건국하고 남조의 마지막 왕조인 진(陳)나라를
멸망시켜 남북조 시대는 끝이 났다. 《群書考索 别集 卷23 邊防門 江》
《御定子史精華 卷11 地部六 四瀆 北軍飛渡》
[주-D003] 경양루(景陽樓) : 시의 내용으로 보면 진(陳)나라의
‘경양궁(景陽宫)’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진나라 후주(後主)가
장 귀비(張貴妃), 공 귀빈(孔貴嬪) 등 자신이 총애하는 미희들과
향락을 즐기다가 수(隋)나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경양궁의 우물에
몸을 숨겼다는 고사가 전한다. 경양루는 남제(南齊)의 무제(武帝)가
종을 만들어 걸어 놓았던 누각을 말한다. 무제의 거처가 궁궐 깊은 곳에
있어서 궁루(宮漏)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이 누각에 종을 걸어 두고
시간에 맞추어 치게 했는데, 이 종을 치면 궁녀(宮女)들이 일찍 잠에서
깨어 단장을 하곤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10 陳本紀下》
《南齊書 卷20 皇后列傳》
[주-D004] 원정(眢井) : 물이 말라붙은 폐정(廢井)을 의미한다.
원래는 춘추 시대 소(蕭)나라 선무사(還無社)가 몸을 숨겼다가
초(楚)나라 신숙전(申叔展)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던 우물을 말한다.
《春秋左氏傳 宣公12年》 여기서는 남조(南朝) 진(陳)나라의 후주(後主)가 수(隋)나라의 침공을 피해 몸을 숨겼던 경양궁(景陽宫)의 우물을 가리킨다. 《六朝事迹編類 巻上》 《南史 卷10 陳本紀下》
[주-D005] 군주가 …… 기뻐하였네 : 수(隋)나라의 군사가 쳐들어왔을 때
진나라 후주(後主)는 “창칼 아래 지금은 감당할 수가 없으니,
나에게 묘책이 있다.〔鋒刃之下, 未可及當, 吾自有計.〕”라고 하면서
장 귀비(張貴妃)ㆍ공 귀빈(孔貴嬪)과 함께 우물에 몸을 숨겼다가,
수나라 군사에게 발각되어 사로잡힌 사실이 있다.
유우석(劉禹錫)의 〈삼각사(三閣詞)〉에 보이는
“세 사람이 완정에서 나왔네.〔三人出眢井.〕”나 이백(李白)의
〈금릉가(金陵歌)〉에 보이는 “천자가 경양궁 우물에 빠졌으니,
그 누가 〈옥수후정화〉를 부르랴.〔天子龍沈景陽井, 誰歌玉樹後庭花?〕”
라는 구절은 바로 이 일을 두고 읊은 것이다. 《南史 卷10 陳本紀下》
《全唐詩 卷166》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는 후주가 총애하던
장 귀비와 공 귀빈의 미색을 찬미하는 내용의 노래라고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전백찬 (역)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