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文鄕) 강릉(江陵)
<2> 허난설헌(許蘭雪軒)
허난설헌 초상화 /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초당동) / 허난설헌 묘(墓:경기도 廣州)
강릉의 또 하나의 자랑인 천재 여류시인 난설헌(蘭雪軒)은 조선 명종(明宗) 때인 1563년 강릉 초당(草堂)에서 아버지 양천허씨(陽川許氏) 허엽(許曄)과 어머니 강릉 김씨(江陵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사임당(師任堂)보다 60년 후에 태어난 셈이다.
아버지 허엽은 종2품(從二品)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던 분인데 정실부인 한씨(韓氏)와의 사이에서 1남(筬) 2녀를 둔 후 사별하고 강릉으로 부임하여 재취(再娶)로 맞은 김씨 사이에서 3남매를 두었는데 아들 봉(篈), 균(筠) 그리고 딸 난설헌(蘭雪軒)이다. 난설헌은 이름이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이고 당호(堂號)가 난설헌(蘭雪軒)인데 어려서부터 뛰어난 문학적 재질을 보였다.
난설헌뿐만 아니라 오빠들(筬, 篈)과 남동생(筠)도 뛰어난 문인이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洪吉童傳)’은 동생 허균(許筠)의 작품이다.
난설헌의 비범한 재능을 보인 시로 8세 때 지은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이 유명하다.
廣寒殿白玉樓上樑文(광한전백옥루상량문)
抛梁東 曉騎仙鳳入珠宮(포양동 효기선도입주궁)
- 어영차, 동쪽으로 대들보를 올리세. 새벽에 봉황 타고 진주 궁궐에 들어가
平明日出扶桑底 萬縷丹霞射海紅(평명일출부상저 만루단하사해홍)
- 날이 밝자 해가 부상 밑에서 솟아올라 일만 가닥 붉은 노을 바다에 비쳐 붉네.
抛梁南 玉龍無事飮珠池(포양남 옥룡무사음주지)
- 어영차, 남쪽으로 대들보를 올리세. 옥룡이 하염없이 구슬 연못의 물 마시는데
銀床睡起花陰午 笑喚瑤姬脫壁衫(은상수기화음우 소환요희태벽삼)
- 은 평상에 잠자다가 꽃그늘 짙은 한 낮에 일어나 웃으며 아름다운 미녀 불러 푸른 적삼 벗기네.
抛梁西 壁花零落彩鸞啼(포양서벽화영락채난제)
- 어영차, 대들보를 서쪽으로 올리세. 푸른 꽃 시들어 떨어지고 오색 난새 우짖는데
春羅玉字邀王母 鶴馭催歸日已低(춘라옥자요왕모 학어최귀일기저)
- 비단 천에 아름다운 글씨로 서왕모 맞으니 날 저문 뒤 학을 타고 돌아가길 재촉하네.
抛梁北 溟海茫洋浸斗極(포양북명해망양침두극)
- 어영차, 대들보를 북쪽으로 올리세. 북해 아득하여 북극성에 젖어드는데
鳳翼擊天風力掀 九霄雲垂雨氣黑(봉익격천풍력흔 구소운수우기흑)
- 봉황날개 하늘을 치니 바람 힘으로 물 높이 치솟아 구만리 하늘에 구름 드리워 비의 기운 어둡네.
♣ 광한전백옥루(廣寒殿白玉樓)는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달 속에 있는 궁전(廣寒殿) 누각(白玉樓)이다.
건물을 지을 때 가장 큰 절차는 대들보(上樑)를 올릴 때 상량문(上樑文)을 써 붙이는 절차다.
난설헌은 15세 되던 해 안동김씨 성립(誠立)과 결혼하여 두 남매를 낳았으나 어려서 돌림병으로 잃고 뱃속의 아이도 유산하여 자식 복이 없었는데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外道), 아녀자가 시(詩)를 쓴다고 구박하는 시어머니의 시기(猜忌)와 무지(無知)에 끝없이 시달렸다.
난설헌은 23살 먹던 해 꿈속에서 광상산(廣桑山/신선이 사는 곳)을 거니는 꿈을 꾸고 나서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이라는 시를 쓰는데 자신의 임종일(臨終日)을 예견(豫見)한 시다.
夢遊廣桑山(몽유광상산)
碧海浸瑤海(벽해침요해) 靑鸞倚彩鸞(청란기채란)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紅墮月霜寒(홍타월상한)
푸른 바다가 옥 바다에 스며들고/푸른 난새 고운 난새 어울려 있네./부용꽃 3·9 타래/붉은 꽃 떨어지니 달빛만 차갑도다.
♣ 요해(瑤海)는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북두계(北斗界)의 바다로, 신선이 사는 곳<옥의 바다>이고 청란(靑鸞)과 채란(彩鸞)이 어울린다 함은 이승(삶의 세계)과 저승(죽음의 세계)의 만남을 의미하며 三·九타는 ‘삼구의 꽃다발’이라는 의미로 3☓9 즉 27을 의미하며 자신의 죽을 나이이다.
난설헌은 스물일곱 살(27歲) 되던 해 3월, 자신이 쓴 시를 불태우고 목욕재계(沐浴齋戒)한 후 고운 옷으로 갈아입은 후,
今年乃三九之數(금년내삼구지수) 今日霜墮紅(금일상타홍)
금년이 바로 三·九수에 해당되니 / 오늘 서리에 붉은 꽃이 떨어지네.
라 쓰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신기하고 서글프다.
난설헌이 남긴 시로는 채련곡(採蓮曲/연밥 따는 노래), 빈녀음(貧女吟/가난한 처녀의 노래), 규원(閨怨/규방에서 흘리는 원한의 눈물), 감우(感遇/어리석었네), 곡자(哭子/아들을 잃고 통곡함), 규정(閨情/여자의 정), 기부강사독서(寄夫江舍讀書/멀리서 공부하는 남편에게), 야야곡(夜夜曲/깊은 밤의 노래), 산람(山嵐/산 아지랑이), 춘우(春雨/봄비) 등 총 200여 수가 전한다고 한다.
난설헌이 죽은 후 동생 허균(許筠)은 누님의 시를 모아 난설헌집(蘭雪軒集)이라는 시집을 만들었는데 명(明)나라에서 온 사신 주지번(朱之蕃)에게 보여주자 크게 감동하여 중국으로 가져가 중국에서 ‘난설헌집(蘭雪軒集)’을 출간(1606)하여 크게 인기를 얻었고, 후일 일본의 분다이지로(文臺屋次郞)에 의하여 일본에서 출간(1711)되어 또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난설헌의 묘(墓)는 시댁 선산인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있는데 어려서 죽은 두자식들도 옆에 함께 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이 있는 강릉시 초당동(草堂洞)은 아버지 허엽의 호(號)에서 땄고, 강릉의 자랑인 초당두부를 처음 만든 이가 바로 난설헌의 아버지 허엽(許曄)이라고 한다. 초당두부는 너무나 유명한 강릉 음식이다.
일반적으로 두부는 콩가루를 풀어 끓이다가 소금을 넣어 엉키게하여 두부가 되는데 초당두부는 소금 대신 초당앞바다의 바닷물을 길어다 넣어 엉키게 하는데 염도가 너무 낮아 매우 더디게 두부가 되지만 맛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