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노동운동 출신 소설가가 쓴 5편의 중편 소설을 묶어 논 것입니다. 80년 광주를 경험하고 독재 정권 타도와 나아가 노동자,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고 있지요.
작가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한 노동자의 삶을 소설로 쓰기 위해 만해 창작촌에 들어 갑니다. 그 곳에서 소설 속 주인공인 노동자의 삶을 궁구하면서 동시에 만해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만해는 외롭게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나라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말입니다. 만해 흉상을 보며 그의 얼굴에 그려져 있는 주름과 고뇌,염원을 읽습니다 또한 노동자의 죽음과 삶의 사이를 만해의 시어 속에서 찾아냅니다.
만해가 묻습니다. "죽음과 삶의 간격을 아느냐?"고. 작가는 시를 읽습니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 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 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공장의 불빛>에서 합판을 만드는 공장에서 공장주의 부당한 행위로 해고된 나이든 기술자가 을씨년한 겨울 새벽에 공장 안 건물에서 목 매달아 자살합니다.
<시인,강이산>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시기 근로기준법 준수와 임금인상을 위해 쟁의에 들어갔던 학생 출신의 노동자 이야기를 합니다. 그의 동료 박 영진은 경찰의 강제 집압에 맞서 분신을 하고 죽습니다. 강이산은 구속되고요. 출소 후 그는 노동운동을 계속 합니다. 결국 수배를 받고 동향 친구네 차취방에 은신합니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검거하고 친구도 데려가 고문합니다. 강이산은 친구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그 친구는 정신이 나가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어머니도 몇 년 지나 홧병으로 돌아가십니다. 이산은 그 사실을 알고 삶이 무너집니다. 술을 먹고 시를 쓰고, 그리고 아직도 세상에 주류가 되어 살아가는 적폐들을 증오합니다. 그들에게 어쩌지 못하는 자신에게 증오를 내립니다. 미안하고 허무하고 자책하고 슬퍼지고..그렇게 그는 죽어갑니다. 죽었습니다.
<그 여자의 세상>에서는 한 여인이 죽습니다. 동네에는 그 녀의 뜬 소문을 며칠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일상에소 그 녀는 영원히 잊혀집니다. 언제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듯이 말입니다. 그 녀는 얼굴에 적색 반점이 크게 있어 사회 생활에 약점을 가지게 됩니다. 버스 차장으로 있다 기사에게 겁탈을 당합니다. 회사는 그녀를 내쫓습니다. 그녀는 술집으로 들어가 몸을 팝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집안에 부칩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나고 아이를 갖고 타지로 이사를 갑니다. 외딴 곳 면 소재지에 통닭집을 운영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남자의 고향 동네로 이사합니다. 그 녀가 죽자 생명보험금이 많이 나옵니다. 생전에 그 녀가 남편과 딸을 위해 준비한 보험이지요. 소문은 보험금 때문에 그녀가 자살한거 아니냐고 합니다. 그러나 근거와 증거가 없으니 소문은 흐지부지 흩어져 버립니다.
<폐허를 보다>에서는 울산의 자동차 노조 운동을 했던 간부의 부인이 공장 안에 우뚝 솟아 있는 굴뚝 위로 올라갑니다. 남편은 98년 투쟁 때 노조위원장의 배신을 목격하고 등을 돌립니다. 그리고 암에 걸려 죽습니다. 그 녀는 핫도그를 만들어 전국 휴게점에 납품하는 공장에 다닙니다. 다들 늙고 갈 데 없는 할머니 비슷한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곳입니다. 공장지배인의 무례한 행동에 집단행동을 하려 하는데 그게 될 듯 잘 안됩니다. 씩씩한 아줌마들의 호쾌한 웃음에 고용 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지요. 그 녀는 남편이 일했던 울산에 내려가 친하게 지낸 언니 동생을 만납니다. 그들도 남편들을 노동운동에 과정에 저 세상으로 보낸 사람들이지요. 그 녀들은 술에 취합니다. 그리고 푸념하고 서럽게 웃고.. 각자 쓰러져 잡니다. 그 녀는 새벽 칼 바람을 받으며 굴뚝 위에 오릅니다. 남편이 등 뒤에서 말하는 듯 합니다. "노동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인휘의 소설에는 반드시 죽음이 나옵니다. 또한 치열한 삶이 나옵니다. 작가는 화자의 입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합니다."인간이 태어나서 존재에 대한 물음에 답해가며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공장에 목매달아 죽은 늙은 노동자를 생각하며 한 사람의 노동자가 꺼이 꺼이 울며 소주잔을 기울입니다. 비록 몸을 팔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온 정성을 다하는 여인이 있고, 그 남자는 그 여인의 손을 꼭 잡아 줍니다. 그 녀가 통닭집에서 일하는 저녁엔 딸아이를 데리고 주변의 산과 강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그들은 언어로 형용되지 않겠지만 존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이인휘의 소설에는 사건이 있으나 주된 시선은 '그 이후'에 있습니다. 살아 남은 자의 존재가 그려져 있습니다. 삶은 모호함 그 자체이지만 나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비굴하고 아니꼽고 분연해지기도 하고 의로워지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게 누구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자기혐오나 자기과잉에 빠지기도 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렇습니다. 나라면? 글쎄요. 가슴이 꽉 막혀 옵니다. 목울대가 아려오는 것 같고요. 나도 저럴 수 밖에 없다 싶습니다. 저렇게 안 된게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네요. 그래도 무식하게 가정을 해 봅니다. 만약 나라면.. 그래! 중심을 잡아야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일을 해야지. 기왕이면 거창하게 할거야. 마당 청소를 해도 지구의 환경을 위해 하는 거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속상하면 술도 마셔야지. 싸게 마실거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세상을 엎었다 뒤쳤다 할거다. 그리고 늙어 가고 죽을 때 죽으면 다가 아니겠는가?
만해의 시에서 삶과 죽음의 간극을 느낀다. 발자취와 향기와 노래와 입김.....그게 바로 사이다. 가슴 속에 아릿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속으로 휘저어 잡아 본다. 그 간극을....내 삶과 죽음도 그 간극에 서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