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김혜영, 사비나,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말씀의 이삭 원고 의뢰를 받고 자신은 없었지만, 한빛(프란치스코)을 얘기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같은 신앙의 형제자매님들이 한빛을 기억하고 추모한다면 엄마로서 최고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밝게 쓰고 싶은데 한빛의 죽음을 떠나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일 미사를 드리러 온 교우들의 행복한 마음을 슬프게 할 것 같아 속마음을 감추니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어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그동안 처절한 몸부림을 뜨겁게 안아준 십자가와 저의 안간힘을 그대로 받아주신 하느님의 신비가 생각났습니다. 또 잊었습니다. 매번 오묘함에 놀라 눈물 흘리고 감사하면서도 그때뿐이고 저만의 ‘의식’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4월, 한빛은 세월호 리본을 제 가방에 달아 주며 말했습니다. “기억하기 위한 작은 의식이에요. 기억도 의식을 갖추면 용기가 생겨요. 혼자보다는 함께할 때 소망을 이루기가 쉽고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하며 리본을 다는 것을 불편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의식’은 겉으로 보이기 위한 게 아니고 미사 봉헌처럼 온몸과 마음을 집중해 공감하고 이웃과 함께 할 때 외롭지 않음을 되살리니 비로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한빛은 초등학생 때 복사를 했습니다. 지금은 자녀가 복사로 활동하려면 부모도 매일 미사를 같이 다니고 준비하는 과정이 의식을 치르듯 엄격한데 저는 쉽게 복사 엄마가 됐습니다. 그러니 한빛이 복사하는 날이면 미사보다는 내 아들의 거룩한 모습을 다른 신자들이 알아주기만 은근히 기대했고 복사 엄마라고 우쭐댔습니다. 부끄럽지만 겨울 새벽 미사도 함께 하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전날 자신 있게 말하고도 아침잠이 많아 다음 날 일어나지 못했고 때로는 아픈 척도 했습니다. 혼자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뛰어가는 한빛을 보면서 ‘어이구, 이러고도 엄마냐?’ 하면서 자책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미안하다는 말도 못 했고 대견하다는 칭찬도 못 했는데 한빛은 지금 제 곁에 없습니다.
촛불 앞에서 묵주기도를 드리고, 성지를 찾아 순교자의 삶을 묵상하고 의식을 치르듯 스탬프를 찍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사 전후 기도도, 성호 긋기도 자연스레 한빛과 만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의식은 나의 소망이었던 한빛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켜 늘 함께 있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주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한빛 없는 남은 삶은 행복할 수 없겠지만, 감히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게 한빛이 희망하는 엄마의 의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원히 가시지 않을 슬픔을 주었지만, 누구보다 존중하고 사랑하는 내 아들 한빛 프란치스코!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한빛의 행복했던 시간과 꿈을 기억하며, 매일매일 일상을 ‘의식’으로 봉헌하며 한빛과의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