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순
1일 ·
사람답게 살아가라
화젯댁은 대답도 않고서, 번개같이 비탈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모두 그의 뒤를 따랐다. 상한이는 망태기를 진 양으로 험한 바위틈에 내리박혀 있었다. 화젯댁은 바구니를 내던지고서, 상한이를 안아 내었다. 숨은 벌써 그쳐 있었다.
얼굴은 알아보지 못하게 부서져서 피투성이가 된 위에, 한쪽 광대뼈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자리에는, 이상하게도 그때까지 지니고 있었던 밑 빠진 고무신이 한 짝 엎어져 있었다.
화젯댁은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러나 우두커니 서 있는 산지기의 얼굴을 노려본 그녀의 눈에는 점점 살기가 떠올랐다.
"당신은 자식이 없소?" 칼로 찌르듯 물었다.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야. 흐—참! 없다면 하나 나 줄 건가?"
산지기는 뻔뻔스럽게, 털에 싸인 입만 비쭉할 뿐이었다.
김정한 소설 『사하촌』에 나오는 장면이다. 절 밑에 사는 아이들이 보광산 아래 절벽에서 버섯을 채취하다가 산직이(산을 지키는 사람)에게 걸렸다. 잡혔다가는 매를 맞을뿐더러 어렵사리 채취한 소캐버섯, 싸리버섯을 모두 빼앗길 판이라 죽기 살기로 도망간 것이다.
그러다가 한 소년이 절벽에 떨어져 죽음에 이르렀는데, 산직이는 ‘같이 있던 소년이 등을 떠밀어 죽였다’고 하며 농담까지 한다. 뒤늦게 온 경찰도 산직이의 손을 들어준다.
김정한(1908년생)은 위 소설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가난한 생활상을 폭로하고 있다. 김정한의 빈궁문학(貧窮文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국문학에서 빈궁문학하면 강경애(1906년생)와 최서해(1901년)를 거론하지만, 김정한은 이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김정한은 1992년 85세로 작고할 때까지 선비같은 정신으로 삶과 문학을 대한다. 그가 쓴 작품의 주요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 1960~70년대이다. 모든 작품에서 농민, 노동자, 도시빈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이들의 삶을 갉아먹는 세력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부산에서 태어난 김정한은 12세의 나이에 3.1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부산 동래고보를 졸업하고 울산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일본인 교사와 조선인 교사와의 차별대우에 분개하여 교원연맹 결성을 고민하다가 피검되어 교사직을 박탈당한다. 21세 때인 1928년도이다.
이후 농조(농민조합) 사건, 신사참배 거부 등으로 피검과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해방 후 자주적 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건국준비위원회, 인민위원회 일을 하다가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한다. 이 일로 인해 그는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간신히 살아났다.
사지(死地)에서 살아난 김정한의 가슴은 여전히 뜨거웠다. 1960년 4.19 혁명, 1960~80년대 주요한 정치·사회적 격변기 때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부산의 대표적인 민주 인사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또한 그의 열정과 양심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 <사하촌> <옥심이> <낙일홍> <축생도> <수라도> <독메> <인간 단지> <삼별초> 등에 녹아나 있다.
그가 남긴 말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국적과 시대를 불문한 인류의 격언이다. 모든 권력, 착취, 차별을 부정한 진정한 휴머니스트, 요산 김정한 선생의 작품 『김정한 전집 1~5』을 접하게 해준 소설가 최용탁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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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최태육 및 외 1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