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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부패/타락/심판
제목 :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
성경 : 출 32:25~35
찬송 : 279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50119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출 32: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출 32: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출 32: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출 32: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출 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출 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출 32: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출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출 32: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비상계언 선포 이후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면 편이 갈리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찬성파와 반대하는 반대가 있습니다. 그동안 대부분 광화문에서 집회와 시위가 있었는데 이제는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과 공수처 주변까지 그 범위가 넓어져 경찰들만 엄청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편이십니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탄핵을 찬성하자거나 반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되 정의와 공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거룩함을 준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아론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사람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32:1) 1절에 ‘더딤을 보고’라고 했는데 ‘보쉐쉬’라고 합니다. 뜻은 ‘더디다’, ‘수치스럽다’, ‘실망하다’, ‘당황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더디게 내려오는 것을 보고 ‘실망해서’, ‘당황해서’ 혹은 ‘수치스러워서’ 아론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들의 심리 상태를 잘 보여 주는 말입니다.
√백성들의 말을 듣고 아론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은 백성을 진정시키고 설득하여 기다리게 하지 않고 곧 바로 반역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금송아지 형상을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든 것입니다. ‘조각칼로 새겨’ 아론은 조각하는 도구로 금송아지 형상을 새겼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우상을 주조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백성은 집단적으로 행동했고, 아론은 그들의 요구에 따라 적극적으로 우상을 주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으므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속히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속히 타락한 길로 나가게 되었을까요?
출 32: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뻣뻣한’이란 ‘케쉐’라고 하는데 ‘어려운, 무거운, 심각한, 엄한, 완고한, 뻔뻔한’이라는 뜻입니다. ‘목이 뻣뻣한’은 ‘케쉐 오래프’라고 하는데 ‘목이 완고한, 목이 뻔뻔한, 목이 뻣뻣한’이라는 뜻으로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완고하고 고집스런 백성을 봤나!’
아론을 위시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한낱 금덩어리로 대체하는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부패입니다.
출 3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내려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더 이상 언약 관계에 입각한 여호와의 소유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산 언약을 규정하는 토라의 길을 너무나 빨리 떠나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의 위상과 지위를 대체해 버린 것을 정확히 지적하시며 문제를 삼으십니다.
그들은 사실상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 즉 모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3개월 전까지만 해도 400여 년 동안 수많은 우상을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보이지 않자 모세를 대신할 ‘신’즉 우상을 만들라고 아론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아론은 그들을 꾸짖고 모세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론은 금고리를 가져오라고 했고 애굽에서 평상시 늘 보았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신을 아론에게 요구했지만, 사실 그들이 죽느냐 사느냐는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기억’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행하신 일, 홍해를 가르신 일,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시고 인도하신 일,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도 있었기에 죽을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죽이시면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롱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합니다.
√출 32: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출 32: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모세의 진노
이렇게 중보기도를 한 모세가 산에서 내려옵니다. 그 손에는 두 개의 돌판, 즉 증거판이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을 내려오는 그들의 귀에 이스라엘 진영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회중 한 가운데 서 있는 금송아지 형상과 이스라엘 백성이 무절제한 몸 사위로 방탕하게 춤을 추는 모습을 목도합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오기 직전에 여호와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패한 모습을 보자 크게 노합니다. 그래서 시내산 언약의 체결을 증명하는 두 돌판을 던져 깨뜨립니다. 그러나 이 행위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순간적으로 한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체결한 언약이 파기되었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벌인 문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 모세는 먼저 금송아지를 그 진영 안에서 흔적까지 완전히 제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반역을 도모하는 일에 앞장선 아론을 대면합니다. 그러나 아론은 변명으로 일관하며 모든 잘못과 비난의 책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립니다. 언약은 깨어졌고, 백성은 부패했으며, 지도자는 타락했습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에게 희망이 남아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백성과 지도자는 돌이키지 않았지만, 오히려 마음과 뜻을 돌이켜 신실한 사랑과 인애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그들을 향한 언약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시는 여호와가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위해 모세도 계속해서 중재에 나섭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와 사태를 수습하고자 내린 조치는 잠시 효력을 발휘하는 듯했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곧 집단적 반발과 폭동을 일으킵니다. ‘금 신’을 만들고 숭배함으로써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파기한 것에 대한 징벌을 시행해 그들을 처단합니다. 모세는 이 일에 동참한 레위 사람들을 축복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구가해야 할 본연의 정체성과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에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도의 영적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악한 영들, 즉 죄의 세력들입니다. 주님의 재림 전까지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악한 세력과 전쟁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사탄의 세력과 싸워 승리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음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우상숭배의 가증한 죄악을 저지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하나님은 징벌을 내리십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편에 선 자들에게 칼을 차고 우상 숭배자들을 처단할 것을 명합니다.
√출 32: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출 32: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출 32: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그때 레위 사람들이 우상 숭배에 참여했던 삼천 명의 형제, 친구, 이웃을 살육합니다.
√출 32: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레위인들은 그 순간 인간적인 정을 초월해 우상 숭배의 죄로 하나님을 진노케 한 심판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만일 레위인들이 이런 결단을 하지 않고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행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전체가 진멸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진멸하실 계획이었으나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우상 숭배 자들을 처단하는 것으로 대신 했기 때문입니다.
√출 32: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레위 사람들의 행위가 인간적으로는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들은 사적인 감정을 떠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행함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사함 받는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법 앞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들이 바로 레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의 편에 서기보다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복을 받은 헌신자들
√출 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모세는 레위 사람들의 헌신을 칭찬하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레위 자손을 구별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한데 모여 살지 않고 각 지파에 흩어져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살았습니다.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가운데 흩어지게 된 것은 본래 징벌의 차원이었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당했을 때 레위와 시므론이 세겜 성 사람들을 속여 살육한 사건 때문입니다.
√창 49: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창 49: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창 49: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그들의 잔인한 칼로 인해 시므온과 함께 징벌의 예언을 받았지만 레위 지파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오히려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같은 칼이지만 누구를 위해 쓰느냐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복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레위인들과 같이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임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복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매스컴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정말 흉측하게 생겼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겨진 이유를 듣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씩 연습으로 발레신발 150여 켤레를 닳아 떨어뜨린 연습벌레의 발이었습니다. 연습과 공연 때면 그녀의 발가락은 갈라지고, 물집 잡히고, 곪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흘러내린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2ℓ짜리 생수병을 들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뭐가 이토록 그녀를 발레에 미치게 만들었을까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발 모양이 따로 있습니다. 먹거나 희생 제물로 쓸 수 있는 정결한 짐승을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발의 모양에 있었습니다(레11장). 굽이 갈라진 발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의 삶과 구분된 헌신의 발을 뜻합니다. 여호와 앞에 갈라진 발. 갈라지고 물집 잡히도록 전적으로 헌신하며 뛰어다니는 열정이 만든 발, 그런 발을 하나님은 필요로 하십니다.
√성령의 검 말씀으로 싸워 이김
금송아지 사건과 같이 신약 시대에도 칼로 우상 숭배자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범한 형제나 친구나 이웃이 있다면 성령의 검 말씀으로 회개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그 대상에는 자신이 먼저 포함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검은 죄인을 살리는 것이지 죄인을 죽이는 칼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함으로 죄인을 성결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 속에 있는 죄악을 제거하고 교회 공동체를 침범한 죄를 제거해야 합니다. 범죄한 형제에 대해 말씀으로 권면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는 출교시키라고는 예수님의 말씀이 교회 안에서 죄와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마 18:17). 성도는 말씀으로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데 전념해야 합니다.
레위 자손에 의해 범죄자들을 색출되고 죽임을 당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백성이 큰 죄를 저질렀음을 말하며 하나님 앞에 ‘속죄’가 될까하여 산으로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출 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출 32: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런 모세의 기도에도 하나님은 즉시 그들의 죄를 사해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그의 이름이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다는 원칙적인 말씀을 하시며, 모세에게 돌아가서 이스라엘을 이끌라고 하십니다.
√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출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모세는 지금까지 상황을 짧게 요약하면서 하나님이 백성들을 치셨는데,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라고 하면서 아론과 백성의 죄책을 드러냅니다. 아무리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중재한다고 해도 죄로 인해 깨어진 언약이 회복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대로 살다가 죽을 때쯤 회개 하겠다.”는 태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영원한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기를 원하십니까? 레위인들처럼 여호와의 편에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죄인과 함께 하면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 서서 헌신하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여호와의 편에 섰던 레위인들처럼 하나님께 헌신하여 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