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아직 한여름 날씨이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한 가을 날씨여서 계절의 순환을 이루는 싯점인 것같습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 온 추석이어서
햇과일과 햇곡식의 비상이 걸렸습니다.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추석은
풍요를 기리는 각종 세시풍습이 행하여지는데 조상에게 지내는 차례와 성묘,
그리고 각종 놀이를 합니다.
달의 명절이라는 추석은 일월성신 가운데 정월 대보름 달짚태워 풍요를 기원하여
그 풍요를 거두는 팔월 한가위 날 달의 신을 숭배하는 날이기도합니다.
달을 숭배하는 신앙과 조상을 숭배하는 신앙이 혼합된 추석은
추석날 차례와 성묘대신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 범신론을 양산하였습니다.
유불선의 혼합과 기독교의 융합으로 재탄생한 추석은
종교다원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고유한 명절이 되었습니다.
휘영청 밝은 팔월 한가위 보름달을 보지 못하면....
그 해 추석은 마냥 일그러집니다.
그러나 날씨가 맑아 어둠이 짙은 가운데 밝은 보름달이 떠오르면
그 해 추석은 달빛의 축복으로 흥겨움이 더해집니다.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차례와 성묘로 지내고....
달맞이 행사를 하는 추석 한가위는 으뜸 명절로 고유의 전통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 명절 추석은
어린시절 고난과 핍박의 날로 얼룩졌습니다.
해마다 추석때면 시골에서 큰 집과 작은 집을 돌아가면서 지내는 차례를
기독 신앙으로 거부하였기 떄문이었습니다.
우리 고향은 할아버지 4형제와 아버지 3형제와 저희 8남매의 추억이 서린
전형적인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고장입니다.
어린 나이에 모든 집안이 함께 하는 명절날 차례 지내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가혹한 후폭풍을 예고 하였습니다.
집안 어른들의 욕을 먹고 집에서 쫓겨나고 매질을 당하였던 추석 명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연단되었습니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이라고.....
그 엄청난 집안의 욕지거리를 당하면서 복음을 선택하였는지....
지금도 살을에는 것만 같습니다.
어린시절 몸에 밴 인생의 절망스런 벼랑끝을
가혹한 믿음의 시련으로 느꼈습니다.
매년마다 반복되는 명절은......
"자식이라는 존재감"마저 완전 상실되었습니다.
추석날 지내는 차례와 성묘는
피눈물의 댓가를 치르고 복음 신앙으로 영원히 버렸습니다.
명절날 세시풍습과의 신앙 전투는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강력한 내공을 쌓게 하였습니다.
고난과 핍박 가운데
십자가 복음이 무엇인가를 세월을 두고 강도 높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세월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동료 목사님과 만남을 가지다가 저녁에 어느 성도의 가정에 추도 예배를 드려야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 무심코 추도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욕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느냐며 반문하였습니다.
순간... 충돌....엄청난 생각의 충돌이
뚜렷한 믿음의 차이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 대신 추도 예배를 드리는 것은
유교적인 민간 신앙을 기독교 문화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등골에서 소름이 끼쳐 왔습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예배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사로운 예배로 모욕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덧붙여 신본중심의 기독교 신앙이
범신론적 무속신앙으로 변질된 전형이 제사를 대신하는 추도예배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말을 들은 친구는
큰 충격을 받고 몸을 떨고 입술을 떨었습니다.
일반으로 드리는 추도 예배를
복음의 칼날로 단번에 베었습니다.
이어서 개업 예배를 드리고, 칠순 예배를 드리고, 임직 예배를 드리고, 가정 예배를 드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인하여 드리는 예배를 개인의 삶이 목적이 되고 중심이 되어 드리는 것은
현세적 무속신앙이요, 인본주의 민간 신앙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복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성공과 번영의 결과물이 자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 자신의 소원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인본주의 무속 신앙입니다.
임직 예배.....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임직자를 안수하여 세우고 공포하면 되는 것을
임직자가 중심이 되어 주일 예배보다 더 거창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아가 드러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의 정서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성령님마저 보혜사로 독립적인 사역을 하기 보다 복음을 인치는 사역으로
조화로운 하나님의 뜻을 하나되게 하는데
임직이 무엇이라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인하여 드리는 주일 예배보다
더 거창하고 성대하게 드린단 말입니까?
가정 예배.......
가정 예배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가정의 중심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이어서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현세적 무속 신앙으로 기원 드리는 것입니다.
가정의 중심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가정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바로 알지 못하는 왜곡된 변명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인본주의 무속예배가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왜곡되었습니다.
예배의 궤변으로 가득한 한국교회는
말씀 중심의 신본주적 개혁주의 신앙을 버리고 실천적 범신론적 무속 신앙으로
소위 말하는 종교다원주의를 실현하였습니다.
잘못된 예배 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한 종교적 자아실현의 열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보다 가정과 자아가 중심인 예배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아주 거리가 멉니다.
개업 예배....
하나님의 은혜를 고사로 푸닥거리하는 전형적인 민간 신앙입니다.
예배를 기원의 성격으로 드리는 예배는
불교적 민간 신앙에 불과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귀신을 좇아내는 땅 밟기 예배는
더 더욱 샤마니즘의 민간 신앙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무엇을 기원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신앙은
범신론적 주술신앙의 발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위한다며.......
사사로운 감사의 조건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일상적인 감사의 조건인 것입니다.
감사의 조건과 성취적 결과물을 염원하는 예배와 기도는
긍극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위하여 드리는 예배를 인본주의 민간 신앙으로
둔갑시키는 사이비 신앙입니다.
천주교의 성자를 위하여 드리는 미사는
성경의 복음적인 신앙을 역행하는 미신이요, 사이비 신앙입니다.
성자를 위하여 드리는 미사와 같은 미신적이고 무속적인 예배 신앙은
기독교 유사 종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성인의 통공을 위한 미사는
카톨릭 신앙의 핵심입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타협과 혼합 신앙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알로 섬겼던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추석 명절 맞이로
조상의 무덤을 찾아 벌초를 하고 성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기독교 유사 종교인들의 샤마니즘과 혼합된 민간 신앙입니다.
조상의 무덤 찾아 벌초한 것을 자랑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단을 장식하는 것은
유교적 민간 신앙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추석날이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한없이 초라해 지는 것은
일월성신 가운데 달의 신을 숭배하는 기운이 한가위 보름 달빛으로 강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의 추석날은
기독교인이 맞는 석탄일과 같아야 합니다.
석탄일 스님들이 행하는 의식을
기독교인이 예배 형태로 행하는 것은 누구나 잘못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가당치도 않는 석탄일을 위한 예배, 종묘사직을 위한 예배......
그 연장선이 추석날 차례와 성묘로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추석날 차례를 지내는 것 대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유교를 숭상하는 혼합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참 믿는 사람은
석탄일 예배 드리지 않듯....추석날 성묘하고 제사지내는 것을 대신하여 예배 드리지 않습니다.
벌초한 조상의 무덤에서 성묘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기쁘게 받듯 기뻐하시겠습니까?
고난과 핍박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원주의적인 혼합된 의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되게 하지 못합니다.
기브온 산당의 웅장한 바알 신상 앞에 놓인 초라한 성막은
솔로몬의 일천 번제라고 할찌라도 바알에게 드리는 것인지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인지
멀리서 지켜보는 일반 백성은 구분할 수 없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산당 신앙은
결과적으로 바알을 여호와로 섬기는 혼합신앙으로 타락하였습니다.
진리의 혼합은 21세기를 다원주의 물결로 이끌어 가는
강력한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밀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어서
혼합된 의식으로 드리는 거짓을 결코 열납하시지 않습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고난과 핍박으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주의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기쁘게 복음 편지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정말 말씀 중심의 신앙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