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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알리아 에스프리』 발문
-뿌리를 꽃 피우는 육화의 정신으로
오서윤(정순) (시인, 소설가)
詩에세이집 제목이기도 한 「다알리아 에스프리」는 책 한 권의 무게가 오롯이 실린 글이다. 슬프게 번식하는 누대의 아픔을, 다알리아의 보편적 이미지 너머 생애사적 체험을 형상화하여 생명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작가가 천착하는 에스프리, 육화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다알리아를 꽃 피우는 힘은 대상과 자기 일체화를 통한 믿음에서 발원發源한다. 다알리아의 꽃말이기도 한 믿음은 체험이나 간접 경험의 서사가 발아하고 숙고의 시간을 거치면서 획득한다. 다알리아는 한 사람의 일생 중 가장 아프고 슬플 때 피는, 가장 역설적인 삶의 문양이다.
방안은 꽃동산이 펼쳐져 있었다. 휠체어 바퀴 자국 따라 애기똥풀, 산수유꽃이 피었고, 이불 위에는 선홍빛 다알리아와 글라디올러스가 피어 있었다....휠체어 바퀴 자국에서 애 기똥풀이 어느새 다알리아로 변하면서 번져나가고 있었다....뚝, 뚝, 떨어진 붉고 노란 꽃물은 노모의 피눈물이었다.
- 에세이「다알리아 에스프리」부분
다알리아는 찔레꽃, 올비, 찔레꽃, 꽃물, 무쇠솥. 복숭아 등과 더불어 작가의 페르소나를 짐작케 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어머니의 몸을 통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말년의 어머니가 뱉어내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적바림하며 작가는 어머니와 동일시되었다가 마침내 비약의 언어를 직조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시인으로 거듭 났다. 적극적으로 개입한 관찰자를 시인으로 변모하게 하는 그 지극한 모성은 또 한 번 잉태를 하고 산고를 겪으며 해산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흐느낌. 격정, 회한, 모두가 시였다. 얼마나 슬프며 또 아름다운 모습인가. 작가는 직정적直情的인 가시와 옹이를 만지고 토닥이며 사랑으로 승화하고 있다. 열 달 동안 탯줄로 소통하듯 수없이 발화發話하는 고백을 경청한다. 마침내 해산할 때 그 문장들은 힘찬 울음을 통하여 세상에 존재를 신고한다. 작가의 글들은 어머니의 분신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는 위대한 유산을 물려준 것이다. 작가에겐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동기가 되었으며 한편, 그런 상황으로 몰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어머니라는 영원한 이데아를,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은유적 잠언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처럼 서정적 울림과 메숲진 문장의 향연을 이어가고 있다. 친숙하면서도 두름성 있는 언어는 해토머리의 마음이며 영혼의 안식처인 케렌시아를 떠올리게 한다.
詩에세이집『다알리아 에스프리』는 에세이와 시가 번갈아 나온다. 작가는 수필로 문단에 발을 들였으나 시의 매력에 빠지면서 세상이 온통 시로 보였다고 고백한다. 작가가 에세이에서 토로하는 내면의 고백은 격정의 호흡이 여과되면서 맑고 빛나는 시편들을 건져 올린다. 시적 대상과 하나가 되어 몰입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결과물이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서사가 생명과 함께 신비한 힘을 얻는 순간이다. 서로 배경이 되고 배후가 되면서 안과 밖이 풍성해진 삶의 이면들이 교감하고 수렴하며 성찰과 형상화의 미학을 견인한다.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하며 데우는 행위인 토렴이 떠오른다. 작가는 한과 통증을 진술과 묘사의 온도를 높여가면서 스스로는 물론 타인까지 구원과 치유를 담당한다.
흔히 문학을 상처에 핀 꽃이라고 한다. 이 그악한 역설을 설명하려면 사물을 호명하고 환기할 때 아픔의 깊이가 농익은 공명으로 울려야 한다. 작가가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치유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통증은 자생력이나 외부에서 투여하는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듯 글쓰기의 미덕이 치유라면 작가는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한밤중에 잠 깨어』는 다산이 유배지에서 아내와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지은 한 시집이다. 작가는 <부치지 못한 편한 다산의 편지>라는 부제의 시로 시공간을 초월한 감동을 표현한다. 더 나아가 작가는 부모님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며 자신의 진심이 전달되지 못한 현실의 문제를 떠올린다.
세자 책봉 문제로 임금에게 직언하다
남해로 유배당한 충신 김만중 신세나
부모 봉양 문제로 형제에게 직언하다
한밤중에 다섯 번이나 내쫓긴 충직한 내 신세나
- 시「매화가 나에게」부분
마찬가지로 작가는 「토지」를 읽고 등장인물인 용이와 월선이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쉰대부채춤」「그거 다 거짓말이제?」이란 시로 그 절절함을 노래한다.
“자이(滋伊)가 인자 시집보낼 때 다 됐네. 우리 시댁 앞집에 사는 이가 그리 부자고 양반이다. 마당만 빌려 주마 된다 카이 자이도 인자 시집보내라.” 카는기라. ...일찍 시집 보내면 명을 늘인다 캐서 일찍 시집을 안 보냈나. ...너그 아부지 선 보고 시집왔으면 내가 왔겠나? 키도 쪼맨하고 얼굴도 못났는데. 언변은 변호사같이 좋더라만....“아버님, 형님 앞에선 제 칭찬하지 마시이소. 맏며느리 앞에서는 맏며느리 좋다 카고 칭찬하시이소. 그래야 형님이 아버님 좋다 캅니다.”캤다.
- 시 「마당만 빌려주소 」부분
마당은 어머니의 페르소나이자 삶이다. 마당은 어머니 그 자체이며 한 사람의 생이 확장하면서 공동체가 된 장소이고, 지난한 생의 시작점이며 마감하는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일들과 사람이 마당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삶과 삶이 얽히면서 인연은 기구한 멍에를 짊어진 삶 전체가 되고 만다. ‘산 사람이 어른이지 조기 내가 다 묵었다’-(시「찔레꽃조기」 중에서)처럼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과 신랑을 군대에 보낸 신부의 찔레꽃 순정, 손위 동서의 된비알 같은 혹독한 시집살이를, 마당은 신명나고 질펀한 삶의 애환을 목격한 산 증인이다. 시「마당만 빌려주소」 에서‘시건’이라는 낱말이 나온다. 경상도 사투리로 나이에 비해 성숙하며 책임감이 강하다는 뜻이다. 정겹고 돌올한 이 말은 작가 어머니의 성품으로 작가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것은 뿌리의 정신일 것이다.
자고 나면 번지고 자고 나면 커지고
뽑아도 자라고 찍어도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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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뿌리를 잘라 먹으며 가난을 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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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질긴 올비를 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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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비를) 뿌리 하나 뽑는데 한 생애가 지나갔다
- 시「올비」부분
캐면 캘수록 악착같이 올라오는 누대의 슬픈 역사는 올비처럼 계속 번져간다. 그러나 캐도 캐지지 않는 슬픈 번식에 맞서는 어머니 일생 또한 올비처럼 강인하다.
인간의 본질을 겨냥하는 작가의 글엔 진솔함, 예리함, 따스함, 안타까움 등 모든 감정이 녹아있다. 안과 밖, 이면을 우회하면서 외연을 확장한다는 의미이다. 에세이「길동무」만 보더라도 그렇다.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은 노인을 통해 자신이 맹인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대상을 향해 열려있는 작가의 심안이 미덥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안 보일 안내판
맹인은 그녀가 아니고 나였다
눈 뜬 장님이었던 나는
그 안내판을 눈으로 오래 더듬고 있었다
- 시 「맹인」일부
작가는 자신을 발가벗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는 스승의 말씀을 죽비처럼 명심하고 있다. 비록 자신의 치부나 가족사라 해도 낱낱이 밝혀야 하는 고통을 거치면서 문학으로 승화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몸으로 쓰고 꽃을 피우는 작가이다. 그 뜨거운 내면은 작가의 태생적 질료이며 글감이 싹 트고 발화하는 원동력이다.
...이상의 「오감도」와 「날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도 그때 처음 읽었다. 당시 여러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문학의 꿈을 키웠다. 다락방에서 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꽃밭에서 그윽한 꽃향기와 밥 냄새가 코끝을 스치며 들어왔다.
- 에세이「아버지의 집 」부분
자신을 투영하는 페르소나를 볼 때 작가의 출발점은 인간이다. 인간은 피와 살이 있는 대상과 소통하고 교감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에세이「아버지의 집」을 보면 20년을 살았던 집에서 작가는 문학을 향한 감성과 꿈을 키운다. 문학은 곧잘 집을 짓는 행위에 비교된다. 문학의 몸을 세우는 일이다. 글 말미에 아버지는 지붕이었다는 고백이 나온다. 인간에게 충실하다는 것은 결국 삶의 굴곡점과 기울기를 곡진한 사랑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첫 시집 『문에도 멍이 든다, 2021 현대시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님께 헌정한 시집으로 세상의 자식들을 향한 일침까지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그 책무에 관해서는 항상 부족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 연결고리는 유한해서 어느 순간 손닿는 곳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창窓이란 보이지 않는 이면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라 할 것이다. 그 창窓으로 이면의 세계를 넓히는 것이 아닐까. 조금씩 그러한 눈으로 열려가고 있다. 눈은 몸뿐 아니라
정신의 창窓이다. 새로운 발견과 기쁨을 보고 느끼는 하나의 창窓....작가의 창窓은 늘 맑고 밝게 닫혀 있어야 한다.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것을 담을까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고심해야 한다. ...세상과 자연의 소리,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물의 이면까지도 담아내는 그런 작가의 맑은창窓을 만들어야겠다.
- 에세이 「작가의 창窓」부분
에세이 「문학의 안내자」에서 작가는 북한강을 걸으며 어린 시절 감동과 영감을 준 S 소설가를 떠올린다. 개망초꽃 닮은 그녀, 나를 문학의 길로 안내해 준 당신에게 고마움을 올리며..(시 「북한강에서」)라는 시로 그녀를 추모한다. 작가는 S 소설가의 작품 속 삶과 가치관을 통해서 진정성을 느꼈다고 했다.
삼 대에 걸친 증조할아버지의 자손은 모두 30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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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서 증조할아버지가 태어나고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태어나고 내가 태어났다 마을 하나가 태어났다 한 마을이 태어난 것은 대륙 하나가 태어난 것이다
- 시 「대륙」부분
시「대륙」은 성경의 계보를 연상하게 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이 계보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거룩한 사명을 부여하고 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축복의 암시이며 가지가 울타리를 넘는 영역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 광대한 대륙은 작가가 품어 안는 시적 서사의 근원이며 뿌리이다. 작가는 304 중의 한 명이지만 모두의 이름이며 글을 일구고 가꾸는 세계관이다.
첫째를 낳고 상진이 엄마
둘째를 낳고 승표 엄마
셋째를 낳고 광표 엄마
넷째를 낳고 임숙이 엄마
다섯째를 낳고 정표 엄마
팔순 노인이 되자
드디어 요양원에서 찾게 된 이름
오얏 이李, 불을 자滋, 저 이伊,
- 시 「이자이李滋伊」부분
내 머리가 고장 났네/ 내 머리가 고장 났어//
자식 흉을 안 봤는데/ 자꾸 술술 나오니까/
암만해도 내 머리가/ 고장 난 게 틀림없어//
팔십 평생 살아오며/ 자식욕을 안 했는데/
암만 해도 내 머리가/ 고장 난 게 틀림없어
- 시「고장 난 내 머리」전문
이자이 님은 작가의 어머니시다. 두 편의 시엔 아픈 가족사가 배어 나온다. 가족의 이름 중에 시니컬한 독설과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슬픈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아픔을 형상화하려 아픔을 뚫고 나와야 한다. 내 머리가 고장 났다며 모든 탓을 자신에게 돌리는 이 지혜가 가득하고 웅숭깊은 은유는 너무 애틋해서 가슴을 울린다.
작가는 붓의 힘을 철저하게 믿는다. 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문학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진정한 삶의 가치, 올곧은 사고, 정의감이 점차 퇴색해져 가는 세상에 작가는 홀연히 일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거짓이 없이 순수하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작가의 글은 쾌감을 주면서 대리만족을 충족시킨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대신 울어줘야 한다던 작가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한 면을 보여준다.
내면에 있는 억압된 감정과 상처가 치유되고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녀는 시가 그녀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시인은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그녀는 그 시를 쓰기 전부터 완성할 때까지 가슴이 아팠다. 그 후 순덕이는 마음에 무거운 짐을 벗게 되었고 목소리도 밝아졌고 우울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네가 농약 먹고 자살 시도한 내용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져도 괜찮겠어?”
“괜찮아요. 선배, 이제는 시 속에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그 사람이 ‘나’라고 말하러 나갈 수도 있어요.”
- 에세이 「시 한 편이 누군가를 울릴 때」부분
시 「쉰다섯의 순덕이가 열다섯의 순덕에게―‘들춘이’ 순덕이를 위하여」는 쉰다섯의 순덕이와 열다섯의 순덕이가 대화를 통하여 내면의 평정과 자유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작가의 고향 후배이기도 한 순덕은 어릴 적 부모의 무지에서 오는 무관심과 편견, 오빠의 학대로 어둠에 갇혀 있는 인격체이다. 순덕은 작가와 상담을 하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이보다 보람 있고 감격스런 순간은 드물 것이다.
그룹홈을 배경으로 쓴 자전적 소설‘별들의 목소리’는 주목받을 만하다. 그룹홈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노숙자, 장애인, 가출 청소년 등이 자립할 때까지 자활을 도와주고,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든 시설, 또는 그런 봉사 활동이나 제도를 말한다. 원장 J는 소외되고 연약한 아이들을 위해 폭력과 비리에 맞서다가 C그룹홈 대표에게 부당해고를 당한다. 작가는 명예욕, 권력욕, 탐욕에 가득 찬 대표를 동물 농장의 하이에나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양심을 속이는 사회복지사를 대머리수리로 묘사한다. 그곳은 힘이 없으면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나 다름없었다. 별처럼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들은 폭언과 폭행으로 짓밟히며 이름과 목소리를 잃어간다. J는 부당해고 후 그들의 비리와 아이들 학대를 고발하는 글을 카카오스토리에 올린다. 그러나 오히려 C그룹홈 대표는 명예훼손으로 J를 고소한다. J는 타성에 젖은 행정과 강압적인 제도에 고군분투하며 진실을 밝힌다. 이 자전적 소설엔 감동적인 서사와 함께 진실이 승리한다는 메시지가 있다.
미국 여행기를 살펴보면 작가가 얼마나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지 짐작하고 남는다. 일기처럼 세밀하고 치밀하게 일정을 기록하고 자신의 느낀 점을 적고 있다. 발로 직접 뛰는 체험은 글을 쓰기 위한 질료이다. 글과 생활이 일체가 되는 작가의 신념에 박수를 보낸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사는 날까지 시를 쓰고 싶노라고
타자의 아픔과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가 되겠노라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노라고
- 「에필로그」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