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1-14
나병에서 고침 받은 사람 / 성홍모 목사
나병이란 병명은 Leprosy라고 하는데 보통 레프라(Lepra)라고도 하고, 한센씨병이라는 학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둥병이라고 불렀으나, 나병 또는 한센씨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나병으로 판명되면 무조건 격리시키고 완치될 때까지 정부가 담당하다보니 이제는 거의 사라진 질병입니다. 이 병은 불치병이 아니며, 유전병도 아니며 완치되는 하나의 질병일 뿐입니다. 현재 유럽에서는 거의 사라졌고, 미개한 사회, 그리고 날씨가 더운 지방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남쪽 지방에서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1874년 노르웨이의 한센(Hansen 1841-1912)이란 의사가 나균을 발견하면서 치료의 길이 열렸습니다.
히브리어의 나병이란 말은 "차라아트"라고 하는데 이 말은 매, 징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나병은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았다, 하늘의 벌, 천의 형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병에 들린 사람은 무조건 마을을 떠나서 외딴 동굴에서 살아야 하였고, 옷을 찢어 나환자인 것을 표시하고 그가 먼저 부정한 사람이라고 외치지 않으면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주전 900년 경 아람나라, 곧 시리아는 벤하닷1세라는 사람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에는 구국공신으로 나아만이란 군대장관이 있었습니다. 나아만이란 이름의 뜻은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크다는 말은 위대하고, 크게 보이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존귀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사"라고 하는데 "들어올리다"라는 말로 백성들 위에 높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가 아람나라를 구원하였는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사용하여 나라를 구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간섭하시는 분이 아니라, 주변 나라인 아람나라를 구원하시는데 나아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나병에 들므로 인간으로서는 가장 비참한 곳에 떨어진 것입니다. 이제 나병에 들리고 보니 그가 과거에 나라를 구원하였으면 무엇하며,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고 왕의 신임을 받으면 무얼 한다는 말입니다까? 불치의 나병에 들었으니 최상의 자리에서 최악의 자리로 떨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나아만의 실상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미천함과 나약함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사회에서 인정받고 자신감을 가지고, 남에게 뒤지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모두 쟁쟁한 실력을 갖추고 있고, 물질적으로도 넉넉하게 풍요를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온갖 죄악으로 더럽혀져 있고,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다 망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와 교만, 물질만 숭상하는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오직 성적쾌락을 추구하는 정욕은 나병보다 추한 질병인 것입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원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의종이 되었습니다.
질병이란 것은 사회적으로 명성을 누리던 사람이나,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나 찾아옵니다. 지금 이렇게 건강한 가운데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을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 산다는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나아만이 고침을 받는 과정을 살펴보면 신앙생활이란 이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하는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1-4)
전에 아람이 군대를 일으켜서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갔을 때에 그곳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잡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소녀는 장군 나아만의 집에서 안주인의 시중들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아주 몹쓸 나병에 들린 것입니다. 이 소녀에게는 주인 어른이 아파 고생하다가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는 일입니다. 주인의 질병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아람 나라가 하루 속히 망하고 이 집안도 망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기쁠 것이었습니다. 이 어린 소녀는 멀리 타향에 끌려간 억울한 사람이었지만 장군 집에서 시중들면서도 고향에서 믿고 있었던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눈으로 보니 나병에 걸린 주인이 불쌍한 것입니다. 어린 소녀는 원수인 장군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것은 이 아이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 그 분은 능력이 많으시고, 하나님의 사자이신 엘리사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이 소녀는 하나님이 이 때를 위하여 보내신 하나님의 천사였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이방 땅 한 장군을 고쳐주시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아람 나라에 나타내시려고 붙들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복음은 거창한 사람들이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잡아온 계집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한 사람을 살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우리는 심히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복음은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녀가 여주인에게 말하였습니다.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한 선지자를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분이라면 어른의 나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주인은 그 보다 더 귀한 소식이 어디 있을 것입니까?
그 날로 나아만에게 말씀드렸고, 나아만은 즉시 왕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고 사마리아를 다녀오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나아만은 왕에게 나아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가 한 말을 보고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행복한 소식,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좋
은 소식을 들었으므로 살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주는 그 발걸음이 가장 복된 발걸음인 것입니다. 좋은 소식 하나는 인생을 바꾸어놓는 법입니다. 좋은 소식은 인생의 불행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좋은 소식, 복음인 것입니다.
2. 죄인은 구원의 자리로 나와야 합니다. (5-7)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냥 아람 나라에 있으면 치유될 수 없습니다. 환자는 병원에 가야 합니다. 죄인은 구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살기를 원한다면 교회를 찾아야 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즉시 결심하고 보니, 아람 왕 벤하닷1세가 응원하고 나섰습니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고 적극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람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요, 서로 사이가 좋은 관계는 아니지만 그의 충성스러운 장관을 고칠 수 있다는 말에 지원하는 것입니다. "아람 왕은 이 편지와 함께 나의 신하 나아만을 귀하에게 보냅니다. 부디 그의 병을 고쳐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썼습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에 오면서 은 열 달란트, 금 육천 개와 옷 열 벌을 가지고 갔습니다. 나아만은 물질적으로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병만 나을 수 있다면 그런 돈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 가지고 있으나 나환자입니다. 오늘과 같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시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면 참으로 무능한 죄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자신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때 나아만이 가지고 간 돈을 계산해보았는데 실로 엄청난 돈을 가져 간 것입니다. 금과 은을 합치면 오늘의 가치로 환산해보면 200억대의 가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지고 간 예물 중에 의복이 열 벌이 있었는데, 의복이라면 비싸다기 보다는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엄청난 돈을 가지고 이번에 가서 꼭 고치고 온다는 생각으로 떠났습니다. 수행원들도 대동하였습니다. 말과 병거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병 고치러 가는 사람이 이렇게 거창하게 가는 것은 인간적인 과시욕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하므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도 어떤 공로가 있어야 하고, 이런 불치의 병을 고치려면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돈 가지고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하던 사람입니다. 그동안 물질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선행이나 공로로 구원받겠다는 생각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공로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4)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고 했습니다. 이 엄청난 돈, 누가 가지고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공연히 가지고 오느라고 고생하였고, 도로 가지고 가느라고 고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돈주고 사려고 하였던 사마리아의 시몬이라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돈 받지 않고 거저 고쳐주셨습니다. 돈을 가지고 갔더니 병을 고쳐주었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에게 나아올 때는 돈 없는 사람도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라고 하셨습니다.
나아만은 먼저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갔습니다. 그는 왕의 친서도 있고 하니, 사마리아로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만나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정말 야단이 났습니다. 왕은 나아만이 내민 아람왕의 친서를 보자마자 옷을 찢었습니다.
여호람은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통하여 오늘 무능한 교회와 성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거창한 직분이 있습니다. 믿게 된 세월이 오래되었습니다. 가문도 좋습니다. 그러나 허수아비와 같은 신앙입니다.
아람에 잡혀간 어린 소녀는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앞에 서면 고침 받을 수 있다고 증거하는데, 이스라엘의 왕은 어찌 내가 하나님이라도 되느냐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허울좋은 성도라고 할 것입니다.
3. 구원하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8-14)
이 때 엘리사는 사람을 보내어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자기에게 찾아온 나아만에게 심부름하는 하인을 보내어 "너는 가서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한 사람의 목회자라고 하면 정말 불친절한 목회자였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외국의 귀한 손님인데 나가보지도 않고 사람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목욕이나 잘 하고 가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아만이 화낼 만도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말 속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섭리가 들어 있는 복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씻는다"는 말은 정결예식을 의미합니다. 이 정결 예식이 발전하면서 세례가 되었습니다. 요단강이라고 하면 후에 세례요한이 나와서 회개의 세례를 주는 장소가 되었고, 우리 예수님도 세례요한에게 나아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이때 예수님에게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 말씀을 들으신 주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은 완전히 씻으라, 완전한 회개하고, 죄사함을 얻으라는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나아만에게 자세한 경위와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섭리를 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훗날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만 우리의 죄를 다 정결하게 하시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대조적인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는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나 나아만이란 사람은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소녀나 엘리사나, 그리고 나아만의 부하는 신앙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령한 일을 함에 있어 이성적인 생각을 버리고 믿음으로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방법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합니다. 선지자가 자기에게로 나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들어 나병을 고쳐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자기 나라의 무속인들이 병을 고친다고 할 때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아마나, 바르발강은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고 분노하여 떠나가려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믿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나아만의 종들이 권면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니이까"
이런 종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들도 정말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미천하여 종들이었고, 그래서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하였지만 조연 역할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실 때에 완벽한 치료가 이루어져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된 것입니다. 조금 회복된 정도가 아니라, 어린 아이의 살과 같이 회복된 것입니다. 나아만은 사실 열심히 씻은 것도 아니고 일곱 번 씻으라고 하니 일곱 번 잠긴 것뿐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보시고 깨끗함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소식을 들어야 하고, 구원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더러워진 실상을 낱낱이 고백하면서 씻어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듣고, 나아가고, 회개하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단강은 세계적인 강이 아니지만, 죄악을 씻는 강이요, 우리 주님의 복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리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과대포장하지 말고 진솔하게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존귀하지도 않고, 엄청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물질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우리를 영원히 씻어 정결하게 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나아만의 구원을 보면서 누구든지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은총을 이스라엘로 한정하지 않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놓았습니다. 구약 시대라도 하여도 이방인이라도, 이스라엘과는 원수의 나라인데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자는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아만이 무슨 자격이 있거나 신앙이 있어서 치유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병에서 고침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오직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꼭 기억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나아만이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스라엘로 나아왔다는 것과,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순종은 억지 순종이지만, 그래서 거역하지 않고 물에 들어가서 열심히 씻은 것도 아니고 잠그고 나왔지만 그래도 순종하였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값없이 주는 선물이지만,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실 때는 세상적인 명예와 부와 영광을 다 버리고 나는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요, 치유되어야 할 사람이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말씀을 들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고, 생각하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여야 구원받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이 한 영혼을 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소녀도 잘 했고, 선지자도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다 사라져야 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9)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람 왕이 말한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우리의 영원한 죄와 허물을 씻어주시는 우리 주님 예수님에게 완전히 맡기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한 두 번 시도한 것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다섯 번, 여섯 번도 안됩니다. 완전히 의탁하고, 100% 의존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우리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완전한 의탁과 헌신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치유하심이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