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7-36
기도의 능력 / 은혜목회정보
예배의 4대 기둥은 찬송, 기도, 말씀, 봉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와 찬송과 봉헌은 올려지는 것이고 말씀은 내려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오늘은 기도에 대해서 상고하려 합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그곳에서 기도하는 자에게 그 소원을 들어 줄 것을 요청하는 일종의 기도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답게 그 당시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성전 이해와 사람이 드려야할 기도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왕이었습니다.
I. 솔로몬의 성전이해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세 개의 성전이 있습니다.
첫 번째 것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솔로몬 성전이었고,
두 번째 성전은 바벨론 포로 이 후 스룹바벨과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지어진 성전이고,
세 번째 지어진 것은 예수님 당시 헤롯에 의해 지어진 헤롯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 대한 이해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구약의 성전이해:
그들은 하나님이 성전에만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든 종교 의식이나 생활은 성전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바벨론 포로기에 쓰여진 다니엘서를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서도 하루에 세 번씩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단 6:10).
둘째-예수님의 성전이해: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에서 수가성 우물가에 나온 여인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여인의 잘못된 성전관을 수정해 주었습니다. 여인은 전통적인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성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4:20』. 이러한 성전 이해는 이스라엘인들의 전통적인 성전이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비극의 역사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성전이해에 대해서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임을 이렇게 요약해 주셨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4:21-24』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에 대한 바른 이해로 하나님을 어느 특정 공간에 가두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바울의 성전이해:
신약에 오면 성전은 교회의 개념으로 바뀌고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으로 비유합니다. 또 남편과 아내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몸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교회는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의미와 또 하나는 교회의 모든 지체는 떨어질 수 없다는 사상입니다.
이상의 성전 이해를 종합해 보면 구약에는 제한적으로 하나님을 이해하였으나 예수님이나 바울은 보다 우주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성전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솔로몬은 이미 1000년 뒤에 일어날 교회관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이것은 정말 위대한 성전이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II. 솔로몬의 기도내용
성전 이해든 교회 이해든 이 정도로 살펴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성전에서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도를 듣습니까?
첫째-성전을 향한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30절에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 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무엇을 말합니까?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하나님께 향하고 기도하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무게가 실린 기도가 있고 건성으로 하는 기도가 잇습니다. 갈멜산의 엘리야의 기도,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의 기도처럼 무게 실린 기도를 원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둘째-하나님은 의로운 기도를 들으십니다(32절).
하나님의 하나님 됨은 그가 사랑임과 동시에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 둘은 사실 모순됩니다. 사랑하면서 어떻게 의로우실 수 있는가? 이 둘의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진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이루어진 유일 무이한 장소입니다. 그의 아들을 죄인 된 우리에게 내어 주심으로서 그의 사랑을 보여 주셨고, 죄 범한 자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실증하셨기에 그의 공의를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우군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 때에만 우군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때로 실수도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길을 잘못 들었다고 판단될 때 돌이키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의 세 번째 기도 내용이 그것 아닙니까?
『적국 앞에서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잘못을 했을지라도 인정만 하면 우리를 용납하시고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부분은 탕자의 비유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넷째-자연재해도 우연이 아닙니다(35-36).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내셨습니다. 아합왕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 함으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자연 앞에 인간은 너무나 무기력합니다. 조금 더워도 못 참고, 가뭄이 와도 못 견디고, 비가와도 난리가 납니다. 기근 온역, 황충떼에 무기력증을 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재해가 올 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솔로몬은 역시 지혜의 왕입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무소부재성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특정 공간에 가두어 두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을 솔로몬을 알았습니다. 그는 우주에 계실 뿐만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 분을 향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모으십시다.
그 분은 전능하시고 무소부재 하시고, 우리의 어떤 기도도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응답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고, 하나님은 응답의 준비를 이미 완벽하게 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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