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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4 : 22. 예수를 따라감 (2)
2-1) 말씀과 증거 :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본문은 앞에서 언급된 동일한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계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입증되어 나타났음을 나타낸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타내신 증거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낸다.
본문에서 요한 자신이 본 환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동일시됨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신약 시대 사도들과의 연속성을 엿볼 수 있다(Johnson, Plummer).
(1) 하나님의 말씀.
* 히 4: 12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① 사도 선지자들이 받은 하나님의 영(진리)을 말한다.
② 예수님이 자기의 것으로 체화(體化)시켜 이루셨던 하늘나라, 천국을 말한다.
③ 이 땅에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영(진리)을 말한다.
* 눅 8: 11 -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 엡 6: 17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요일 1: 1 -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증언(證言) 또는 증거(證據)란
① 자진 출두하여 사실대로 진술하는 것을 말한다.
② 육하원칙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③ 사실을 사실대로 진상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아버지'만을 증언(證言)하셨다.
* 요 3: 32-34 -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印)쳤느니라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 요 21: 24 - 이 일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 갈 1: 11-12 -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2-2) 자기의 본 것 :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
(1) 자기의 본 것 - 말씀의 증언.
* 행 1: 1-3 -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요일 4: 14 -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사도 요한은 천지를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성육신(成肉身)하신 예수님을 보았다.
충성된 증인으로 하나님 아버지만을 증거(證據)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그 어린양을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것을 보았다.
* 요 3: 11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를 받지 아니하는 도다.
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보았다'라는 말을 73회나 기록하고 있는 것은 사도 요한이 본 것들은 그 종들도 반드시 보아야 하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비밀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넷째, 21절의 거기서 더 가시다가는 교회의 전 역사를 의미한다.
교회의 사명은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교회로부터 모든 시대의 교회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구원의 역사는 모두 한 맥을 갖고 있다.
계 1: 11 아시아의 일곱 교회 -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사도 요한은 그가 보는 내용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주 예수께서 요한이 본 내용을 책에 기록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더 잘 보관하고 전파하고 성도들이 믿음에 더 굳게 서고 더 큰 위로를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성경의 필요성과 목적이 있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온전함을 위해 성경책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주야로 읽고 묵상해야 하며 그 교훈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해야 한다.
1) 요한이 받은 지시 :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써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랖손'(*)은 부정과거 명령형으로 즉각적인 이행을 촉구하는 표현이다.
이는 특별히 히브리 예언 방식으로, 본서에서 12회나 반복되어 사용됨으로 본서의 기록이 하나님의 권위로 되었음을 시사한다(Morris, Robertson).
* 신 31: 19 -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 사 30: 8 -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
* 렘 30: 2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 합 2: 2 -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1) 보는 것 - 실제적인 사실. 증인.
(2) 기록하라 - 불변성과 보전성을 의미한다.
2) 일곱 교회(계 2-3 장) :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본문에 제시된 교회의 명칭은 1: 4에서 언급된 '일곱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각각의 교회에 보내진 특별한 메시지는 2-3 장에서 동일한 순서로 나타난다('일곱 교회'에 대해서는 저자의 계시록 2, 3장의 주석 참조).
특별히 기록된 말씀을 일곱 교회에만 보내라고 한 것은 그 도시들이 소아시아 중서부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며(Zean) 동시에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가 보편적으로 모든 교회에 해당되기 때문이다(Mounce, Lenski).
3) 보내라 - 지시하신 목적 : 보내라. 하시기로,
* 민 13: 2 -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 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 마 10: 16 = 12 제자들의 파송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 눅 10: 20 = 70 제자들의 파송 -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언제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는 주님의 가르침에서 찾아야 한다.
다섯째, 세배대와 그의 자녀 요한 형제는 말세의 종의 표상이다.
주의 종에 대한 특별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세의 종은 신앙의 연조가 깊은 자로부터 생수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인 : 印 Seal [히](chotham) [그] sfragiv"(sphragis)
인재(印材 - 나무, 석재, 보석)에 글자, 그림, 모양을 새겨, 인주를 묻힌 후, 문서 등에 찍어 발행 사실을 명시하고, 후에 증거가 되게 하는 데 쓴다. 인장이라고도 한다. 인장은 고대부터 사용되고(창 38: 18), 권위의 표로서 요셉(창 41: 42), 아합(왕상 21: 8), 다리오(단 6: 17)의 사적에 보이고, 계약의 보증이 된다 (렘 30: 10).
끈을 달아 목에 드리우기도 하고(창 38: 18), 팔에 매거나(아 8: 6), 반지도 있다(에 3: 12). 중요한 증서(렘 32: 10), 내용물의 확보를 위해 봉인하는 일도 있다(단 6: 17. 마 27: 66. 계 20: 3). 난해한 이상(異像)은 봉한 글에 비유되었다(사 29: 11). 하나님의 지배와 구원의 경륜의 극비성은 일곱 인에 의해 봉해져 있다. (계 5: 1-2,5,9)
개봉은 어린 양,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계 5: 5,9). 하나님의 창조의 경이에 대하여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욥 38: 14)로 알려져 있다. 한줌 점토(粘土)의 덩어리도, 인침에 의해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인은 그리스도의 궁극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요 6: 27), 소명의 보증(고후 1: 22),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보증(롬 4: 11), 구원에 대한 성령의 보증(엡 1: 13. 4: 30. 계 7: 2,4)으로 사용했다.
바울은 복음의 보편성에 대한 사도직의 증명이었다 (고전 9: 2). 히브리어는 명사 '호탐'이 일반적이다 (창 38: 18. 도장 출 28: 11. 인 21: 36. 39: 4,30. 왕상 21: 8. 겔 28: 12. 학 2: 23). 이것은 애굽어에서 온 외래어이다.
유다가 소지했던 도장은 원통 인장(圓筒印章. 창 38: 25. [히] 호테메트)으로 메소보다미아,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신약에서는 헬라어 명사 스프라기스가 있다(롬 4: 11. 고전 9: 2. 딤후 2: 19. 계 5: 1-2,5. 6: 1,3,5,7,9,12. 7: 2. 8: 1. 9: 4).
1) 하나님 편에서의 인침의 역사.
(1) 구약 시대 - 할례 인.
* 창 17: 9-14 –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①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 표징이었다.
②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행한다. 할레 받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③ 이런 축복을 받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2) 신약 시대 - 성령 인.
① 예수 복음을 듣고, 믿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마음에 인을 친다.
* 고후 1: 22 -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② 구원을 받았느냐? 라는 질문이 필요 없다. 구원의 확신이 마음에 굳게 선다.
* 고후 5: 5 -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③ 성령의 인침은 국가나 인종, 민족, 언어, 빈부, 남녀, 노소, 신분의 차별이 없이 예수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받는다.
* 요 3: 33 -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 종말 시대 - 하나님의 인.
* 겔 9: 4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① 성령 인은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인치셨고, 하나님의 인은 마지막 환난 중에 택함 받은 주의 종들에게 인을 치신다.
* 요 6: 27 -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② 성령 인을 받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주의 군사 된 자가 받는 것으로 십사만 사천으로 표현되었다.
* 아 8: 6 -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③ 그 날에 스룹바벨을 취하고 너로 인을 삼는다고 하였다.
* 학 2: 23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2) 마귀 편에서의 인치는 역사.
(1) 양심에 화인을 친다.
* 딤전 4: 1-2 –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① 거짓말하며 외식하는 자들에게 양심에 화인을 친다.
② 단번에 지옥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타락하도록 만든다.
③ 잘못하고도 실수를 깨닫지 못하고, 죄를 지어도 회개를 모른다.
④ 한번 화인을 맞으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⑤ 예 - 가롯 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 요일 5: 16-17 –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2) 666 짐승표를 받게 한다.
* 계 13: 16-18 –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 계 14: 9-12 –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받게 된다.
② 이 표가 없으면 매매할 수 없다.
③ 짐승의 이름이나 그 수다.
④ 표를 받으면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게 된다.
⑤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되고,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된다.
⑥ 표를 받게 되면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
3) 인치는 곳
(1) 해 뜨는 곳 동방이다(동방 역사를 말한다)
① 성령으로 인을 치며 시작은 예루살렘에서부터 하나님의 인을 쳐 마치는 역사는 동방에서 한다.
② 동방 바닷가에서 일어나는 역사이다.
* 사 24: 14-16 – 14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15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16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이 크게 배신하였도다.
(2) 동방 땅 끝 땅 모퉁이에서 일어나는 역사이다.
* 사 41: 8-9 –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3) 동해와 서해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역사이다.
* 욜 2: 20 -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4) 셈의 장막에서 일어나는 역사이다.
* 창 9: 26-27 -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5) 동방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역사이다.
* 말 1: 11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 단 11: 44 -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를 번민하게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죽이며 멸망시키고자 할 것이요.
* 사 46: 10-11 – 10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4) 인치는 기간
계 7: 1에 바람을(*) 잡고 있을 때부터 시작하여 십사만 사천의 수가 차기까지 하나님의 인을 친다.
* 계 6: 11 -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 렘 4: 11-13 – 11 그 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12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13 보라. 그가 구름 같이 올라오나니 그의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 사 11: 15 – 여호와께서 애굽 해만을 말리시고, 그의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그 하수를 쳐 일곱 갈래로 나누어 신을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 계 9: 13-16 – 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14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15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16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5) 인 맞은 자
이스라엘 12지파에 인을 친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12지파가 육적 이스라엘인지 영적 이스라엘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증거를 다음과 같다.
(1) 단 지파가 빠졌으므로 영적 이스라엘이다.
* 창 49: 16-17 –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마지막 때에 신령한 영적 축복을 받을 때는 단 지파같이 마귀 계통은 신령한 천년 안식의 축복을 받지 못하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 들어갔다. 육적 이스라엘이라면 당연히 단 지파가 들어가야 했으나 단 지파가 빠졌으니 영적 이스라엘이 틀림없다.
(2) 르우벤이 차자가 된 영적 이스라엘이다.
야곱의 장자 르우벤은 야곱의 처, 빌하 즉 자신의 서모와 간통을 했다.
그 사실을 야곱은 알고 있었지만, 임종 시에 르우벤에게 창 49: 3-4에서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하였다.
(3) 계 7: 5에서 르우벤은 영적 장자의 축복을 상실하고 차자로 밀려나게 된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가 장자가 된 영적 이스라엘이다. 육적 이스라엘이라면 당연히 르우벤이 장자가 되어야 하겠지만 계 7: 5에는 유다 지파가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 계 7: 5 –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민 2: 1-3에 보면 이스라엘 지파는 회막을 중심으로 하여 장막을 칠 때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만 회막의 동방 해 돋는 곳에다가 장막을 치라 하셨다.
* 민 2: 1-3 –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3 동방 해 돋는 쪽에 진 칠 자는 그 진영별로 유다의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라. 유다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그 예언이 계 7: 2-5에 해 뜨는 곳에서 다른 천사가 장자로 나온 유다 지파 일만이천에게 하나님의 인을 치게 했다.
(4) 마 1: 1-3에 예수님이 유다 지파 다윗의 계통으로 나셨다.
* 마 1: 1-3 –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 대상 5: 1-2 – 1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2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
역대상 5: 1-2을 보면 르우벤은 이스라엘의 장자였지만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다.
족보에는 그대로 기록되었지만 르우벤은 자기가 저지른 죄로 인해서 육적 장자의 축복도 상실했으며 영적 장자의 축복도 계 7: 5에 유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5) 계 5: 5에도 유다 지파 다윗의 뿌리가 이기셨다고 했다.
슥 9: 13에도 유다로 당긴 활을 삼으신다고 했다.
* 슥 9: 13 –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슥 8: 23에도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는 역사가 있다고 했다.
* 슥 8: 23 -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6) 인 맞은 종의 역사
(1) 증인 권세로 역사한다.
하나님의 인을 맞고 능력 받은 두 증인의 권세를 말한다.
* 계 11: 3-6 –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 슥 12: 8 -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2) 다시 예언한다.
새로운 예언이 아니다. 이미 계시된 예언을 풀어주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한다.
* 계 10: 9-11 –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3) 척량 받아 나온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를 선택하신다.
* 계 11: 1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4) 황충의 화를 면한다. - 첫째 화
* 계 9: 4 -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 겔 9: 6 -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5) 삼일 반 동안 죽었다가 생기 받아 일어나 들림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 계 11: 11-12 –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 살전 4: 16-17 –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6) 심판 자리까지 따라간다.
* 계 14: 1 -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7) 왕권을 받게 된다.
* 계 20: 4-6 –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 계 21: 24 -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작은 두루마리로 표현된 계시록은 갖다 먹어버려야 할 양식이다. 다른 사람이 먹여주는 말씀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갖다먹어야 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그물 던지는 것이 전도라면 그물을 깁는 것은 교회의 갱신을 의미한다.
우리는 교회사를 통하여 교회의 변천을 보았을 것이다. 구약교회가 그리했듯 신약교회도 복음의 순수성이 타락하고 있다.
* 마 24: 4-8, 10-13 –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이 지적하셨듯 말세에는 사람들이 많은 선생을 두고 많은 사람이 미혹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때에 그물을 깁는 제자가 있어야 한다.
로마 가톨릭이 타락할 때 종교개혁자가 출현했듯 마지막 시대에도 교회의 개혁자가 나타나야 한다.
* 계 11: 1-14 -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 도다.
11장은 두 증인에 관한 장이다. 1-2절은 겔 40-48장을 반영한다. 그러면 두 증인은 누구를 말할까? 두 증인의 정체를 '모세와 엘리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죽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다시 살아서 온다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는 하늘을 향하여 비 오지 못하게 한 것은 엘리야이며,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한 것은 모세이므로 두 사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두 번째로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세 번째 견해는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종말의 종으로 본다. 필자는 이 해석을 따른다. 즉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마지막 대 환란 때 일할 하나님의 종으로 본다. 그러면 왜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하나님의 종으로 보아야 할까? 그 이유는 말라기 4장 5절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말라기서의 특징은 회개가 없다. 회개하라는 말이 없다는 것은 최대의 저주다. 성경을 통해서 회개가 없는 것은 말라기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으나 안타깝게도 다시 타락해버렸다. 그래서 크고 두려운 날에 이를 심판할 터인데 그 전에 마지막으로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 크고 두려운 날은 언제일까? 모든 주석가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날로 본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초림과 재림으로 두 번 오신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큰 무리들을 다 떠나보내고 열두 제자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다고 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는 자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크고 두려운 날'은 심판의 날이다. 초림 때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했다. 과연 크고 두려운 날이었다. 그리고 또 한 번 크고 두려운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스라엘 뿐 만 아니라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 같은 종을 다시 보내겠다고 하셨다.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인가? '마지막 때 추수의 종'이냐가 여기서 밝혀진다. 예수님 당시는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일컬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마태복음 11장 14절은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가복음 9장 13절에도 '엘리야가 왔으되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바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종 세례 요한을 가리켜서 엘리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도 엘리야가 직접 오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오는 세례 요한과 같은 하나님의 종, 바로 '두 증인'들이다.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가 살아서 온다는 것은 성경적, 신앙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떤 역할을 했나?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6개월 전에 미리 등장해서 오실 예수님을 예비했다. 황폐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바리새인들 향하여 부르짖으며 예수님을 예비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도록 길을 닦아 놓았으며 예수님을 널리 알렸다. 이렇게 엘리야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 세례 요한이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 두 증인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예비하는 종들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재림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예비하는 역할을 한다.
왕이 행차하는데 왕이 먼저 가서 '나 왕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먼저 종들을 보내서 준비시킨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데 갑자기 오시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미리 준비시키신다.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에서는 신랑이 올 때 신랑의 친구가 먼저 가 있었다. 신랑의 친구가 신부에게 가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종들이 나타나서 재림하실 예수, 성도의 영원한 신랑 되실 예수님을 맞이할 재림을 준비시킨다. 이것이 마태복음 24장 45절에 언급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종'이다.
우리가 마지막 때 두 증인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길 원한다.
일곱째, 갈릴리 해변에서의 선택은 이 세상의 선택에 대한 그림자였다.
해를 옷 입은 여자와 큰 음녀의 등장은 이 세상의 마지막 징조일 것이다.
* 계 12: 1-6 –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 계 17: 1-18 –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7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11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18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교회의 타락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회개하는 주의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요즈음 우리들의 교회는 세상의 정치에 너무 깊게 간여하는 것 같다. 우리는 오는 세상의 삶이 신앙의 목표점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자.
3] 예수님을 따른 두 제자 ( 마 4: 21-22 )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던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부르신 예수님은 역시 같은 장소이지만 다른 곳에서 고기잡이하던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다. 그들은 부친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는 일을 하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다.
아버지와 두 형제가 함께 일하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가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고기잡이에 부자가 협력하고 있는 모습은 오늘날 다양한 사회에서 야기되는 가정 문제로 골치를 썩이는 우리에게 신선한 의미를 가져다 줄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는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다. 이제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는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를 부르시는 방법과 그에 응답하는 사람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① 그물을 깁는 그들의 행위는 신앙의 양면성을 잘 나타내 준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부르실 때에 그들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는 중이었다. 그러나 본문의 야고보와 요한은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자세는 동적인 면과 정적인 면을 나타낸다.
신앙에도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이 있다.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된 신앙이 바른 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기도는 신앙의 정적인 표현이라 한다면 전도는 동적인 행위다. 성도는 기도는 물론 전도도 열심히 해야 한다.
예수님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다.
* 요 1: 14-17 –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우리는 한쪽으로만 치우친 신앙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말씀만 고집하거나 선행만 고집해도 안 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은혜가 충만하며 말씀과 기도로 충만해야 하겠다.
② 낡은 그물을 깁는 행위는 죄인인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낡아서 구멍이 난 그물을 깁는 그들을 예수님께서 부르셨다. 우리는 누구나 헌것보다 새것을 좋아한다. 낡은 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심리일 것이다. 그래서 새것, 좋은 것, 너 나은 것을 찾다가 급기야는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낡은 그물을 정성스레 수선하였다. 예수님도 죄로 인하여 더 이상 가망이 없는 인간들을 그래도 사랑하셔서 어루만지시고 매만져 주셔서 거듭나게 해주셨다. 그리고 구멍 난 가슴이나 상처 난 부위마다 사랑의 손을 얹어주시어 깨끗이 치유하여 주셨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마 12: 20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싸매고 치료하며 건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만드시는 위대한 의원이 바로 그분이시다.
③ 낡은 그물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천 년의 교회 역사에는 그물과 같은 흔적들이 있다. 때론 흠집이 생겼지만, 그때마다 개혁자가 나타난 새로운 그물처럼 그 사명을 회복하였다.
오늘날의 교회를 살펴보면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초대교회와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러한 때에 야고보와 요한과 같은 종들이 나타나 그물을 수선하는 회복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3)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즉시' 따라야 한다.
먼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이 야고보와 요한 역시 '곧' 예수님을 따랐다.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22절) 인류의 구주가 되시며 모든 인간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찌 주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무슨 일을 하거나 어떤 문제를 앞에 놓고 깊이 심사숙고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부르심과 같은 절대적인 상황 앞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명령에는 주저함이란 있을 수도 없으며 오직 순종만이 필요하다.
성도들은 행동하기 전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는가를 알기 위해 심사숙고하면서 기도를 하겠지만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기다릴 필요가 없이 즉시 시행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는 단 1초라도 지체할 필요가 없다.
(4)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버릴 것이 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로막는 장애 요인을 치워야 한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가족과 직업이 그 장애가 되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장 귀한 것,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야 한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먼저 자신을 버려야 한다. 자기가 집착하는 것들을 버려야 한다. 재물, 명예, 지식을 버려야 한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와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버린다는 말은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린다는 것이다. 집착을 없앤다는 말이다. 이러한 마음들을 버리고 예수를 좇을 때 우리 자신의 구원을 물론 부모와 형제의 구원도 가능할 것이다.
* 행 16: 31 –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