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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구룡포가 선명하게 다가오다
당일치기 포항 호미곶 탐방기
포항에 있는 경북기독신문의 울산지면을 담당하는 기자로 1년간 일했고, 굿뉴스울산 편집장의 일을 맡는 동안 포항의 언론인홀리클럽의 회원으로 정기모임에 꾸준히 참석했더랬다. 그래서 포항은 낯익은 도시였는데 포항울산간고속도로가 건설되고는 경주를 거치는 국도보다는 고속도로가 빠르고 편리해 애용하게 됐다. 수년 전 어느 날엔가 그날도 포항에 관련된 일을 보고 되돌아오는 길, 구룡포로 빠졌던 기억이 있다.
초봄에 늦어지는 오후였는데 게서 저녁이나 먹고 오려했다. 그래서 구룡포 표지판을 따라 접어든 길, 하늘은 잿빛이다 못해 시커멓게 변해갔다. 게다가 심술궂은 날씨는 봄이 가까운데도 진눈깨비까지 흩뿌리고 있어 바깥 풍경은 어둠이 짙었다. 겨우 도착한 구룡포읍 큰길가 식당에는 커다란 대게가 걸린 식당이 많았다. 나는 맛집을 검색해서 식당을 찾아가는 족속이 아니다. 대부분 그날 땡기는 음식이나 겉으로 보기에 괜찮겠다는 식당을 찾아가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우리가 시킨 식당의 밥맛은 그저 그랬고, 찌푸린 날씨에 빨리 울산으로 돌아오기에 바빴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 굿뉴스울산 이금희 발행인과 박정관 편집장은 당일치기 구룡포와 호미곶 탐방에 나섰다. 신문의 경영이 어려워져서 예전처럼 신문을 발행하지 못하고 있고, 인터넷 판만 열려있는데 빚을 갚기 위해 발행인은 예전에 명품 옷장사를 했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10월이면 1년이 되는데 그래도 샤론패션 CEO라는 타이틀에 그리 부끄럽지 않은 실적이다.
호시절의 성남프라자는 울산서 제법 알아줬고 장사도 잘됐다. 불경기에다가 옛날보다 시세가 나빠진 지금이지만 발행인은 장사에 열심이고, 단골손님도 제법 확보됐다. 이금희 발행인은 취재현장을 지키던 분망하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바쁘다. ‘생활고로 쉴 틈이 아쉬운 날들이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하면서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었는바 오늘 우리는 하루 휴가삼아 호미곶 탐방에 나서게 된 것이다.
신문사에서 출발해 울산포항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던 자동차는 1시간이 지나자마자 곧 구룡포에 닿았다. 수년 전 흐릿한 구룡포가 오늘은 아주 선명하게 다가왔다. 여름의 끈질긴 더위도 오늘은 나름 기세가 떨어져서 활동하기 편했다. 그럼에도 움직일수록 더웠지만 그만큼 시원한 바람도 같이했다. 우리는 구룡포읍에 도열하듯 늘어선 수많은 식당가에서 오래된 식당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제주도산으로 비행기로 직송되는 제철 갈치조림을 아주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적당하게 칼칼하게 매운 갈치에 간이 배어있지는 않았으나 간간한 국물과 어우러져 고소했다.
잘 익은 호박과 양파는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아 금방 없어졌다. 콩나물무침과 오뎅무침, 호박전 등 정갈한 밑반찬도 맛났다. 한 자리에서 24년을 지켜온 내공이 엿보였다. 상가 맞은편에 200대를 수용하는 널찍한 주차장도 주말과 달리 평일이어서 자리가 많았다. 핫도그 가게가 있어서 주문했는데 일반 핫도그와는 달리 아주 맛났다. ‘쌀 핫도그’라더니 그래선지 짜지 않았고, 모짜렐라 치즈와 잘게 자른 고구마가 핫도그 전체를 감싸고 있어서 씹고 나면 나중의 식감이 더 풍미가 좋았다.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나서도 우리는 맛나게 쌀 핫도그를 먹었다.
마침 그곳에는 100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집들이 남아 있었는데 그 집을 개량해서 직접 장사도 하고 있었고, ‘일본인 가옥(家屋)거리’라는 관광지로 개발이 돼 있었다. 그곳에서 어느 방송국에서 현장 촬영을 진행하는 중이었는데 배우들과 촬영팀과 스텝들 20여명은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이었다. 아쉽지만 그 골목길은 눈요기로만 만족해야 했다. 일본인 가옥거리에는 위쪽으로 긴 계단이 나 있는데,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구룡포 앞바다와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구룡(九龍)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곳에서 구경온 사람들은 용을 올라타고 사진을 찍었고, 덩치 커다란 골리앗 두세 배 크기의 일본인 송덕비앞에서도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는 전망 좋은 그곳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겼다. 바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확 트인 전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기분이 한층 업(up)되고, 일상의 스트레스가 소멸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고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라도 소소하고 다양한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 내일 또 내일 ’을 즐거운 손님처럼 맞을 수 있으리라.
구룡포 읍내에서 10여 분을 달려 도착한 호미곶. ‘이곳은 울산의 간절곶과 쌍벽(雙璧)을 이루는 곳이네’ 하는 느낌을 받았다. 드넓은 주차장을 지나자 새천년기념관과 직선거리로 오가는 광장이 탁 트인 전경에 마음이 시원했다. 마지막 더위를 날리는 바닷바람이 찬물에 샤워를 시켜주듯 청량감을 선사했다. 곳곳에 마련된 조형물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포스코의 철 구조물은 사람들의 환호하는 장면을 담았고, 한반도지형을 호랑이로 표현한 상징물이 인상 깊었다.
이곳 호미곶을 대표하는 것은 사람의 손이다.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사람의 손이 바다물속에서 용트림하듯, 포효(咆哮)하듯 우뚝 선 상징물로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는 갈매기들이 날아와 내려 앉아 항상 다른 표정을 연출하는 것이 이채로웠다. 인상 깊었던 한 가지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호미곶 깡통열차’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청년 사장님의 기개가 놀라웠다.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결국에는 설득하고, 지자체에 찾아가 허락을 맡고 장사를 시작한 그 기개가 보기 좋았다. 인사 잘하고 친절한 사장님은 베스트드라이버로 손색이 없었다. 9분가량 해안가를 달리는데 기분이 좋았고, 스릴이 있었다. 평일이어서 쉽게 탑승할 수 있었지 관광객들이 밀려오는 주말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 분명했다. 이처럼 호미곶의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고속도로 대신 31번 국도를 타고 감포를 지나고, 정자를 지나고, 울산에 무사히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