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間歇的) 시(詩) ★ 서정시(瑞正詩) 64
느회향
효종대왕릉 재실에 들어서니
화난 기세로 커다란 드럼통을 만든 것 같은
푸르락누르락
금방이라도 뻗어나갈 주먹을 매단 것 같은
세월의 이끼를 담뿍 두른
느티나무 가지 끝은 썰렁하기만 하다
스치듯 지나간 바로 앞에
시선을 잡아당기는 푯말이 있어 보니
300년 회양목 천연기념물이라고
명확한 수령으로 밀려드는 감동이 가식이어도
이끼 풀 돋아난 가지에 고개 디밀고 나서
효종의 영혼이 부엉이 열매에 있을까
이파리 사이사이를 훑어도 음습한 빛줄기만 엿보인다
정말 열매를 본 적이 없다는 관리인의 말
무엇으로 세월을 살아갈까 헛헛해하는데
나무문에 닿을 듯 말 듯 담장에 기댈 듯 말 듯
물결치는 줄기를 공중으로 뻗어 만든 부정형의 수관이
하늘로 오르지 못한 효종의 슬픈 영혼인 듯
곡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덤불 같은 응어리인 듯
헝클어진 머리로 가녀리게 흔들리는 향나무
올려다볼수록 진한 향내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느티나무
회양목
향나무
느회향
(김서정, 金瑞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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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가젤영양의 모가지를 물고 늘어지는 하이에나처럼, 대상의 급소를 찾아내야 해요. 그것이 시의 결정적인 한 행(行)이에요. 그 한 행을 얻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해요. 오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158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는 ‘회전’ ‘반사’ ‘이동’ ‘확장’ ‘축소’ 등이 있어요. 회전은 자기 중심(자전)과 타자 중심(공전)이 있고, 반사는 거울에 비춰보거나 종이접기 하는 것을 생각하면 돼요. 이동은 공간을 달리해 대상의 성질이 변하는지 살펴보는 거예요(대칭). 그리고 확장하면 디테일이 드러나고(현미경), 축소하면 스케일이 나타나지요(망원경).
159
아무리 비현실적인 것이라도, 비현실적인 바탕을 만들어주면 현실적이 돼요.
- <무한화서>(이성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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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는 것은 무엇일까? 낯설다는 말은 흔히 흡족하지 못하고 친숙지 않은 것, 마음을 무겁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낯설다(fremd)는 말의 고대 독일어 fram은 본래 ‘어느 곳을 향하여 앞으로’, ‘~의 도상에’, ‘장래를 위해 간직하여야 할 곳을 향하여’라는 뜻을 가졌었다. 낯선 나그네는 앞으로 앞으로만 여행해 간다. 그렇다고 이것이 어떤 예정도 없고, 쉴 사이도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낯선 나그네는 자신이 나그네로서 머물러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으며, 그곳 가까이에 가고자 한다. 낯선 나그네는 자신에게는 거의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자기 고유의 것에 이르는 길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부름, 즉 소명(召命)을 다만 따르고 있을 뿐이다.]
- <시에 있어서의 언어>(하이데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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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한화서>에서 “확장하면 디테일이 드러나고(현미경), 축소하면 스케일이 나타나지요(망원경).”를 보자.
현미경도 망원경도 가지고 다닌다. 필요할 때 가방에서 꺼내어 쓴다. 더 열심히 써야겠다.
오늘 <시에 있어서의 언어>에서 “낯선 나그네는 자신이 나그네로서 머물러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으며, 그곳 가까이에 가고자 한다.”를 보자.
낯선 나그네라고 해서 방황의 모습만 보여주면 별로다. 우리는 늘 안정을 찾으려고 한다. 이런 마인드를 살리는 표현을 해야겠다.
오늘 시는 어제 본 풍경을 쓴 것이다. 그 장소에서는 어마어마한 느낌이 요동을 쳤는데, 막상 시로 옮기려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