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창 3:21~24
제목: 하나님이 가죽옷을 통해 신성한 은혜를 보이셨다
● 기독교는 창세기 3장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순간인 원죄 자행의 '타락'의 뼈아픈 불행과 슬픔을 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시작되는 ‘원시 복음’의 현장을 보는 믿음입니다. 비극 후 소망이 있죠.
| 창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garments of skin)을 지어 입히시니라 |
우리는 흔히 하와의 범죄를 아담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담은 수동적으로 아내가 주는 실과를 먹었을 뿐이지만, 하와는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신성의 영역에 도전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의 본문을 정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죄 포함 모든 죄인들의 대표는 아담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 ‘행위 언약’은 하나님과 타락 전의 아담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창3:5에서 뱀이 유혹할 때 제시한 단어는 ‘절대자 하나님(God)’이라기보다 ‘신들(gods)’처럼 된다는 의미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이는 하와가 우주를 통치하는 절대적 주권자(비공유적 속성)가 되려 했다기보다는, 영적인 지혜를 가진 초월적 존재들 중 하나가 되고자 했던 욕망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것 역시 명백한 반역이고 불법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범죄의 양상을 살피시며 인간이 완전히 유기(遺棄)되지 않도록 죄 사함의 길을 여시는 근거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개혁주의에서 강조하는 ‘전적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작동하는 하나님의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서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칼빈주의자의 성경이라 일컬어지는 “제네바 성경”에서 창3:5을 보면 “gods”로 번역돼 있습니다.
Geneva) But God doth know that when ye shall eat thereof,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s”, knowing good and evil. (* 같은 계열의 사본을 번역한 KJV도 “gods”로 번역)
개역개정)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공동번역: 하느님처럼)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제네바 성경과 『칼빈 주석: 창세기』에서 3장5절의 엘로힘(Elohim)을 제가 소박하게 해석한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히브리어 ‘엘로힘’은 유일신 하나님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문맥에 따라 천사들, 통치자들 또는 이방의 신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2.사탄이 하와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본질(비공유적 속성)과 동등하게 된다’는 터무니없는 약속을 했다기보다 ‘하나님 아래에 있는 영적 존재들(천사들, 신적인 존재들)’과 같은 수준으로 격상될 것’이라는 교묘한 유혹을 던진 것이다. 3.인간이 창조주의 통치 아래에서 육체를 가진 피조물의 의존적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천사들처럼 초월적인 상태(gods의 지위)를 얻으려는 교만(Pride)이 발동했고, 이는 큰 반역행위다.
● 인간이 ‘신들’처럼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영물인 ‘신들’처럼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존재가 되려고 한 것은, 피조물이지만 자녀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연약함과 겸손함’을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시편8편에서 노래하듯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한 수혜적 존재입니다. 돌봄을 받는 아기와 같이요.
|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공동번역: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care for him?) |
그러나 스스로 높아지려 한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 자리는 사라지게 됩니다. 앞에서 말했듯,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은 자기 자신을 신적존재로 착각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 하는 교만입니다. 이 교만의 범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으로의 낮아지심과 성육신의 경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만약 죄인 된 인간이 그 상태 그대로 생명나무 실과를 먹고 영생하게 된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불가역의 ‘영원한 저주’가 됩니다. 죄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영생은 사실상 ‘둘째 사망’의 확정이며,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 계획에 치명적인 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 창3:21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에덴에서 추방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죄인을 보호하시기 위한 ‘거룩한 차단’입니다. 생명나무로의 길을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봉쇄하신 것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그 길을 다시 여실 때까지 인간을 죄의 영속성으로부터 격리하신 자비의 조치였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모든 상황에서 자녀를 보호합니다.
●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자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아기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사고를 쳐도, 엄마는 아이를 나무라기 전에 먼저 깨끗이 닦고 옷을 입혀 보호합니다. 돌봄이 우선인 거죠. 이처럼 하나님은 원죄를 범한 인간에게 죄의 책임을 추궁하면서도, 자녀가 받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 창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
|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made garments of skin for Adam and his wife and clothed them) |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핵심을 발견합니다. 죄는 인간이 저질렀지만, 그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죄 없는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어 인간에게 덧입혀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가(Imputation)의 원리’입니다. 우리의 수치와 죄악을 가리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시고, 예수님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옷 입혀 주시는 ‘신성한 은혜 공급’의 모형입니다. 이것이 심화해서 개혁주의 구원론의 핵심인 ‘무조건적 선택’과 ‘제한적 속죄’의 토대와 발판이 됩니다.
●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이 사건은 인류 구원의 전환점을 나누는 분수령이 됩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행위 언약’은 그 조건을 이행할 수 없고, 타락 이후부터는 모두 ‘은혜 언약’ 아래에 있습니다. 칼빈은 구약의 성도들이나 신약의 성도들이나 동일하게 ‘그리스도라는 중보자’를 통해 구원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즉, 양심이나 율법이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그것들이 결국 그리스도라는 은혜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몽학선생)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에서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종교의 씨앗’과 ‘양심’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명문화하여 주시기 전에도 인간의 양심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셨으나(롬2:15), 인간은 그 양심조차 타락하여 스스로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계시는 점진적으로 발전합니다. 하나님은 더 분명한 율법을 주셨고, 결국 율법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우리를 위해 ‘가죽옷’(그리스도의 의)을 예비해 공급하셨습니다. 비록 인간이 양심의 법 아래에서 죄를 깨닫게 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히9:22)는 계시를 이 가죽옷 사건을 통해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무죄한 짐승의 희생 제사는 율법 시대의 어린 양 제사를 거쳐,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로 완성됩니다. 창세기 3장 21절의 가죽옷은 인류가 죄사함을 받는 진정한 은혜의 ‘첫 단추’이자 구속사의 ‘'첫걸음’인 것입니다.
● 이제 우리는 은혜를 받은 성도의 ‘성숙'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갓난아기일 때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가죽옷의 수혜만을 입습니다. 그러나 ‘칭의의 결과인 성화’와 ‘성도의 견인’ 과정에 들어선 참 신자는 달라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마땅히 ‘옳은 행실’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계19:8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 때 신부가 입을 옷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라고 말하며, 이것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선포합니다. 신앙의 초기에서는 아무 노력 없이 가죽옷을 입었지만, 그리스도의 신부로 성숙해가는 성도는 이제 자신의 삶을 통해 거룩한 세마포 예복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죽옷을 입혀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성도의 마땅한 반응이자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입니다. 타락하고 나약한 인간이 배은망덕의 원죄를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즉각적인 심판 대신에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사랑과 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미포 예복을 준비하며 성숙한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영광과 기쁨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즐거운 가정의 달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이 포스팅의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호크마 주석: 창세기>
==3:1
뱀(나하쉬) - 본래 이 단어는 파충류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낱말이나 성경에서는 모두 '뱀'으로 번역된다.(사27:1; 렘8:17; 미7:17). 한편 뱀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사나움을 강조하는 '사라프'(민21:8; 사30:6)와 '용'(욥7:12; 시74:13; 사27:1; 렘 51:34)으로도 번역되며 특히 큰 뱀을 가리키는 '탄닌'(출7:9; 신32:33) 등이 있으나, 여기서 사용된 '나하쉬'는 사람을 꾀며 미혹하는 능력을 지닌 뱀의 교활함을 특히 강조하는 명칭이다.
간교하더라(아롬) - 좋은 의미에서는 '영리하고 신중한 것'(잠12:16; 22:3)을,나쁜 의미에서는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인 것'(욥5:12; 15:5)을 뜻한다. 뱀은 본래 영특하게 피조되었으나 사단의 도구로 사용되자 그 지혜는 사악한 것으로 전락하였다<1-6절 강해 참조>.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 사단이 하와를 유혹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연약하고 또한 쉽게 미혹당할 수 있는 존재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벧전 3:7).
하나님(엘로힘) - 뱀이 '언약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명칭인 '여호와 하나님'<2:4>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지고자'(至?者)를 뜻하는 '엘로힘'<1:1>을 사용한 것은 아담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다.
참으로 - '진실로'(truly), '정녕'(indeed that)이란 뜻으로 어떤 사실에 대한 강한 놀라움을 나타내는 의문사이다.
먹지말라 하시더냐 - 원문의 정확한 번역은 '먹지 말라 한 것이 사실이냐?'. 사단이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몰랐을리 만무한데도 이처럼 물은 것은(1) 하나님의 말씀과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2) 그분에 대한 철저한 불신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1) 하나님께선 사람이 아니시므로 식언하거나 변개(變改)치
않으신다는 점(삼상15:29)과(2)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의무이자 복된 길임(신6:4-9; 28:1-6을 기억해야 한다.
==3:2
말하되(아마르) - '대답하다', '애기하다', '명령하다', '선언하다' 등과 같이 의사 소통의 수단을 포괄하는 다양한 뜻을 지닌다. 한편 뱀과 여자가 서로 의사(意思)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1) 범죄하기 이전 인류는 오늘날과 같은 언어 이상의 언어로 동물과 의사 소통이 가능했다.
(2) 언어는 인간 고유의 기능이므로 당시 뱀이 여자와 의사 소통한 것은 사단이 뱀의 입을 빌어 여자와 얘기한 것이다. 이 중 전자는 언어 분열 현상(11:1-9)이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였다는 점에 부합되며, 후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동물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 존재로 지으셨다는 점에 부합된다. 그렇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입각할 때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먹을 수 있으나(노켈) - '아칼'(먹다, 소비하다, 삼키다)의 미완료형으로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허용적 의미이다. 만일 아담이 범죄치 아니하였더면 오늘날의 인류도 각종 과실과 함께 생명나무 실과를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22절).
==3:3
만지지도 말라 - 하나님의 금지 명령과는 차이가 있는(2:17) 과장된 표현이다. 이는(1) 하나님의 명령이 하와에게 있어선 너무 엄격한 것으로 비쳤다는 점과 (2) 하나님께 대한 그녀의 신뢰와 사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드러내 준다.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 직역하면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앞 구절과는 달리 하나님의 절대 명령(2:7)을 약화시킨 표현이다. 이처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결과 그녀가 악의 유혹에 넘어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마 14:27-32).
==3:4
결코 - 2:17의 '정녕'(surely)과 동일한 말로 불변하는 사실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절대 명령을 절대적인 거짓으로 맞바꾸고 있는 장면에서 우리는 사단의 거짓된 속성을 살펴볼 수 있다(요 8:44).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베욤 아칼르켐) - 여기선 '욤'(날)이 '순간', '때'란 의미로 사용되어 '너희가 그것을 먹자 마자', '너희가 그것을 먹는 순간에'란 뜻이다. 이것은 하와의 욕망을 충동질하는 강한 유혹의 말이다.
너희 눈이 맑아 - 문자적 의미는 '너희 눈이 열려'(your eyes shall be opened). 구약에서 이러한 표현은 대개 이상(異常)을 보거나 진리를 아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21:19; 민22:31; 사35:5). 그런데 여기서는 선악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획득하게 됨을 뜻한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 '지고한 신성'(Supreme Deity)을 획득하여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인 거짓말에 불과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는 오히려
그들의 순전했던 영안(靈眼)이 어두워졌을 뿐이다(7절).
아심이니라(요데아) - '야다'(알다, 이해하다, 탐지하다)의 완료분사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일관되게 알고 계셨다는 의미이다.
==3:6
먹음직도...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 선악과가 원래 이러했다기 보다는 하와와 경계심을 늦추고 탐욕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다.
보암직도 하고 - '눈이 추구하는'이란 의미로 육체의 안목과 정욕(벧전 2:11)에 사로 잡혀 허상을 보고, 느낀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죄악에 빠지는 것을 엄히 경계하셨다(마 5:28, 29).
그도 먹은지라 - 아담은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직접 들은 자로서(2:16,17) 여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토록 이끌 책임이 있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받아 먹은 것은(1) 그의 자의로 여자의 범죄에 동참하였다는 곳과 (2) 죄는 놀라운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증거해 준다(롬 7:11).
==3:7
밝아(파카흐) - 문자적 뜻은 '개안(開眼)되다'. 그러나 이것은 시력이 항상 더 잘 보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혹은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벗은 줄을 알고 - 타락 전과는 달리 수치심을 느낀 까닭은 창조시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던 순수하고 고귀한 영적 순결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치마를 사용해 몸을 가리울 수 없었다<7-13절 강해 참조>.
==3:8
날이 서늘할 때에 - 직역하면 '바람이 부는 때에', 서늘한 이 때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갔던 아담과 하와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들의 행위를 뒤돌아보기에 알맞은 시간이었다. 비록 인간은 하나님 곁을 떠난 범죄 하였지만 하나님께선 그들을 포기할 수 없으셨기에 적절한 시점에 그들을 찾아오셨다.
음성(콜) - 사람의 '목소리'나 일반적인 '소리'를 모두 뜻하나,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동산에 찾아오실 때 난 기척인 듯하다.
낯(파님) - 문자적 뜻은 '얼굴', '앞'이나 여기선 대유법적 표현으로 하나님의'전존재'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뜻한다. 한편 시105:4에선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을 '그의 얼굴을 구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숨은지라 - '스스로를 숨기다'란 뜻이다. 그들은 지은 죄를 깨닫고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한 인간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두려움(10절) 때문에 스스로를 숨겼다
==3:9
네가 어디 있느냐 -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올바로 파악키를 애타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토로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디에 숨었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죄를 자복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 이처럼 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처럼 잃어버린 양을
애타게 찾으신다(눅 15:3-7).
==3:10
듣고(쇠마티) - '솨마'(주의깊게 듣다, 이해하다)의 완료형으로 아담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서 그 같은 부르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때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지 말고 그 즉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어야 했다.
벗었으므로 - '완전 나체인 고로'란 뜻. 그러나 이는(1) 그들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된 근본 원인(8절)이 아니며(2) 또한 그들은 부분적으로나마 치부를 가리우고 있었으므로(7절) 잘못된 답변이다. 이처럼 아담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회개의 기회를 선용치 못하고 도리어 변명하기에 급급하였는데, 그
결과는 가중되는 죄악(12절)과 그에 마땅한 준엄한 형벌일 수밖에 없었다(17-19절; 약1:15). 용서받는 첫 걸음은 지은 죄를 자복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으신다(시34:18; 51:17).
==3:11
누가(미) - '무엇이' 또는 '어떤 자가'란 뜻. 벌거벗은 것을 깨닫게 된 원인이 아담 스스로에게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반어문 이다.
고하였느냐 - 원뜻은 '반대편에 서다.' 여기서부터 '기밀을 누설하다', '죄악을 고발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다(수 2:20; 에 6:2; 렘 20:10). 본절 전체에서 이 말의 의미는 '누가 너의 벗은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더냐'이다.
네가 먹었느냐 - 아담의 잘못이 어떠한 것인지를 지적함과 동시에 아담이 솔직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를 애타게 원하시는 거듭된 반문이다.
==3:12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 '당신이 내 곁에 두신 여자'란 뜻. 하나님께서 하와를 주신 것에 대해 도리어 원망하며 또한 부부간의 한 몸 의식(2:24절)을 팽개쳐 버리는 무책임한 말이다.
==3:13
어찌하여(마) - '어떻게'(how) 또는 '왜'(why)라는 뜻이 아닌 '무엇 때문에'(what)라는 물음이다. 하와의 죄악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사악한 교만과 욕망 때문에 빚어진 것임을 지적해 준다(5, 6절).
꾀므로 - '잘못 인도하다'는 말. 즉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게 막고서 그릇된 길로 이끌다는 뜻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하와는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도 잘못을 시인치 않고 책임 전가에만 급급하였으니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다(16절).
==3:14
모든 짐승보다 - '모든 짐승 가운데서', '모든 짐승들로부터'란 뜻이다. 즉 사단의 도구로 전락한 뱀은 이후 짐승들로부터 조차 경멸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배로 다니고 - 천박하고 미천한 존재로 떨어지고 말았음을 나타내 주는 구체적 사례 중의 하나이다. 후일 모세 율법은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였는데(레 11:41-44) 이제 뱀은 그러한 부정하고 추악한 것의 대명사로 손뽑히게 되었다. 이처럼 뱀이 배로 기어다니게 된 것은 분명
저주의 결과이기 때문에 저주받기 이전의 뱀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동했을 것이다(Luther. Josephus,Lange). 여하튼 사단의 도구가 되어 아담과 하와를 꾄 죄로 저주를 받아 배로 기어다니게 된 뱀은(1)땅(사단)에 속한 모든 멸망의후손들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2)그 머리가 낮은 땅에 있음으로 해서 비록 그리스도의 발꿈치는 상하게 할지언정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머리가
결정적으로 쉽게 상할 필연적인 처지로 전락되고만 것이다(15절; 마 4:1-11).
종신토록(콜 예메 하아카) - 직역하면 '너의 생명의 모든 날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시간, 즉 날과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히브리인들의 시상이 투영되어 있는 관용적 표현이다.
흙을 먹을지니라 - 뱀이 배로 기어다닐 때 그 입으로 흙이 들어간다는 것을 근거로 이 말의 문자적인 뜻을 주장하기도 하나, 실제 뱀은 흙을 식물(植物)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문자적 뜻보다는 '흙으로 핥으리라' 정도의 상징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 징계받은 피조물이 종신토록 멸시와 굴욕 가운데 처하는 것을 종종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시72:9; 사49:23;애 3:29; 미7:17). 한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와는 달리 이처럼 뱀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전혀 허용치 않고 곧 바로 저주를 선포하신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1)인간은 뱀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이 반영된 존재로서(1:27) 하나님의 특별 은총을 입은 존재이다.
존재이다.(2) 사단과 그의 하수인은 하나님께서 달리 구제할
방도가 없을 만큼 이미 완전 타락한 자들이다.
==3:15
원수(에바) - '적대감', '증오감'이란 뜻으로 그리스도와 성도들에 대해 사단과 그의 하수인들이 갖게 될 악감(惡感)을 의미한다(요 15:18, 19).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보다 즐거워해야 하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우리의 상이 커지기 때문이다(마 5:12).
머리(로쉬) - 신체상의 '머리' 뿐 아니라(48:14; 신21:12) 지위나 장소에 있어'최고 높은 것'(대하 13:12; 애 1:5)까지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뱀이 최고귀한신체 부위인 머리를 상하게 된다는 것은 그가 도저히 회복 될 수 없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는 뜻이다.
발꿈치(아케브) - 원뜻은 '끝부분'으로 신체 기능면에서든지, 지위 면에서든지 별로 중요치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이 발꿈치를 상하게 된다는 것은 그가 비록 해(害)를 당할 것이긴 하나 그것이 치명적이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3:16
고통(이차본) - '아찹'(새기다, 각성시키다)에서 온 말로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해산의 고통을 더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일러준다. 즉(1)그 같은 고통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범죄가 얼마나 치욕스럽고도 중대차한 것이었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함이다.(2) 인간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겪으시는 심적 고통 역시 여인이 겪는 해산 고통에 비견할 만한 것임을 주지 시키기 위함이다.
수고하고 - '슬픔 가운데', '고통 중에'란 뜻. 해산 때 당하는 고통이 너무나 크고 힘들 것임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사모하고(테슈카) - '슈크'(...을 쫓다, 원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의뢰하다','기대다'란 뜻. 그러나 이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기 남편의 권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엡 5:22,23).
==3:17
네 아내의 말을 듣고 - 하와를 주관하여 선한 길로 이끌어야 할 아담이 오히려 아내의 장중에서 놀아난 것<6절>을 책망하는 말이다.
수고하여야(에쳅) - '땀흘려 가며 일하는 노동'이나 그에 수반되는 '고생스러움'을 의미한다. 물론 타락 전에도 아담은 노동을 했었다(1:28). 그러나 그것은 자기 성취감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복된 성격의 것이었지 결코 생계유지의 수고스러운 방편은 아니었다.
방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동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가치만은 여전히 존중되어야 하는데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 자체가 신성한 노동이었기 때문이며(2)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1:28)은 이미 인간 타락 전에 주어진 것으로 영원한 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19
얼굴(아프) - '파님'(얼굴, 8절 주석 참조)과는 다른 말로 원뜻은 '코', '콧구멍'(7:22; 사2:22; 겔8:17). 그렇지만 코가 얼굴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안면 부위란 점에서 '얼굴'이란 뜻이 새로 파생되었다(삼상25:41; 대하 7:3; 느8:6).
필경은 - '시발점', ...에 까지, '...을 향하여'란 뜻. 인간의 범죄 결과, 그들의 여생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길에 불과할 뿐임을 교훈해 주는 말이다(2:17).
돌아갈 것이니라(타슈브) - '슈브'(되돌아가다, 물러가다)의 미래 완료형으로 장차 어느 순간에는 이미 한 줌의 흙으로 와해 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은 인간 구성 요소가 흙뿐이므로 필연적으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행위 언약'(2:17(에 대한 재확인일 뿐이며 따라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만 죽음의 방법을 얘기한 것이다.
==3:20
산자 - 본래는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뜻하는 말이다<1:24>. 그러나 여기서는 넓은 의미에서 뱀의 후손과는 구분되는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을 의미한다(15절).
==3:21
지어(아사) - '만들다'는 뜻외에 '지정하다'는 뜻도 지닌다(24:14; 시 104:19) 따라서 이는(1)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실 때처럼 직접 옷을 만드신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2)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시하시고 또한 영감을 주셔 그들이 옷을 만들어 입도록 하신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하나님께서 동물을 잡아 인간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사건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의미가 있다.(1) 이것은 인간 죄를 속하기 위한 첫번째 희생이자 구약 속죄 제사의 원형이다(레 4:13-22). (2)이는 장차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예표하는 원시적 사건이다(롬 3:25).
==3:22
보라(헨) - 기본 불변사로 대개 놀람이나
당혹감을 나타내는 말이나(출 8:26) 여기선 탄식하는 말로 쓰였다.
하나같이 되었으니 -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 하나님 간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좁힐 수 없는 본원적 차이가 있다(사 55:8, 9). 따라서 이 말은(1)인간이 선악을 인식할 수 있는 영악한 도덕적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며(2)인간의 경솔하고도 어리석은 범죄 행위를 한탄하는 풍자적인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시고(펜) - '...하지 않도록', '...하지 않기 위하여'란 뜻. 이 말은 생명 나무 실과를 먹게 함으로 인하여 인간의 영원한 육체적 생존을 가능케 하는 생명력을 제공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는 타락 이전엔 애초부터 죽음이란 것을 알지 못했던 인간과 하나님 간의 정상 관계가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파괴되었음을 선언하는 말이다. 한편 생명나무가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에 대해선 22-24절 강해를 참조하라.
==3:23
내어 보내어 - '내던지다', '포기하다'는 뜻으로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 인간간의 관계 단절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3:24
쫓아내시고 - 강권적인 힘을 사용하여 밖으로 몰아내거나 다른 곳으로 추방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황급히 에덴 동산 밖으로 쫓아내신 것은 단순한 형벌의 의미만이 아니라 심오한 구원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비참한 상태에서 만일 인간이 동산의 생명 과실을 따먹게 된다면 그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죽음 이상의 영벌(永罰)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일단 아담과 하와를 급히 동산으로부터 쫓아내신 후 새로운 구속 사역을 계획하셨던 것이다.
상세한 설명 잘 참고하겠습니다.
가죽옷 한 벌에 담긴 창조주의 눈물겨운 사랑과 원대한 계획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행위 언약의 실패에도 포기치 않으시고 은혜 언약으로 우리를 다시 품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죽옷에서 시작하여 율법과 어린 양을 거쳐 십자가로 완성된 구속의 점진적인 은혜가 놀랍습니다.
우리의 양심과 인격마저 전적으로 타락했을 때, 그리스도의 의라는 가죽옷을 친히 예비해 입혀주신 전적인 은혜를 찬양합니다.
죄 사함과 영생을 위한 이 '거룩한 구원의 길'을 온전한 겸손과 순종으로 걸어가겠습니다.
아멘 🙏
가죽옷이라는 예표가 신약의 십자가로 온전히 성취되는 구조적 완결성이 신학적으로 매우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양심 시대’와 ‘율법 시대’를 지나 그리스도의 ‘은혜 시대’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역사 경륜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피 흘림이 수반된 가죽옷 공급은, 인간의 죄가 심각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이를 덮고도 남음을 보여줍니다.
율법의 기능이 초등교사(몽학선생)임을 재확인하며, 구약의 성도들 역시 오실 메시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깨닫습니다.
단순히 수동적인 은혜의 수혜를 넘어, 성령을 받은 성도로서 ‘옳은 행실(세마포 예복)’에 대한 책임감도 동시에 느낍니다.
네, 공감합니다.
아멘!
본문에,,, 행위 언약에 대한 핵심 내용이 신학적으로 아주 명쾌하고 간결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 깊이 공감합니다.
아담의 실패가 우리 모두의 실패가 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둘째 아담'으로 오셔서 이를 온전히 성취하셨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큰 위로와 은혜를 느낍니다.
행위 언약이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일방적이고도 전적인 '은혜 언약'이 얼마나 극적이고 감동적인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칼빈주의 구원론의 기초가 되는 이 언약 사상을 통해 인간의 전적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다시금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인간이 저지른 수치와 죄악을 덮기 위해 무죄한 짐승이 피를 흘려야 했던 가죽옷 사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의의 전가 원리를 깊이 있게 발견하게 됩니다.
죄인을 먼저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공의를 넘어서는 전적이고 무조건적인 은혜의 주권을 절감합니다.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창조주의 주권적인 돌봄과 사랑이 우선이라는 고백을 통해, 개혁주의 구원론의 핵심인 무조건적 선택과 제한적 속죄의 깊은 신학적 뿌리를 묵상하게 됩니다.
감사한 글입니다!
제네바 성경이 '하나님' 대신 '신들(gods)'로 번역한 이면의 깊은 통찰을 마주하니, 타락의 성격과 사탄의 기만술이 얼마나 정교했는지가 명확히 다가와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인간이 감히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적 신성에 도전했다기보다,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 영적 존재들처럼 독립하려 했던 그 '교만'의 실체를 날카롭게 짚어낸 해석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단어 하나의 번역 차이가 인간의 부패한 욕망과 창조주를 향한 반역의 동기를 이토록 입체적이고 개혁주의적인 관점으로 설명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경이롭습니다.
천사들이 시공의 제약을 덜 받고, 신적인 능력이 더 많은 것 같고 그래서 인간보다 독립적이며 자유롭고 능동적인 것이 하와에게는 더 좋고 높아 보였던 것 같네요. 그런 신적인 존재들에 비하면 인간의 능력과 활동 범위는 제한적이었으니까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제한을 가하는 것이고, 명령을 받들어야 하는 것이어서 신들에 비해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뱀이 인간의 그런 처지를 알고 정콕을 찔렀더니 하와도, 아담도 넘어가고 말았네요.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다기보다 gods를 꿈 꿨다는 제네바성경의 말에 저도 공감합니다.
천사보다 못한 존재로 인간을 지으신 것에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의한 것인데, 오히려 완전해 보이는 천사들보다 더 큰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으시기 위해서였는데, 잠시 낮추시고 최고로 높여주시기 위함이었는데 인간의 무지와 열등감과 교만으로 복을 박차버렸군요.
그리스도와 운명을 같이하는 인간은 연약함과 겸손이 영적으로 사는 길이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필요로 하는 수혜적 존재임을 인식시켜 주셔서 더 잘 이해가 됩니다.
흰 세마포를 입은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내용이 깊은 좋은 댓글애 매우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