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도 없이 머물러 있다. 어떤 모양이 될까. 무슨 색깔이 될까. 갈등하진 않는다. 사람의 입맛에 맞추려 특별한 맛이나 향을 가져본 적도 없다. 맹물 주제에 ‘생수’라는 이름으로 도시의 대형 마트에 떡하니 진출한 지금이야말로 내 영예의 절정이 아닌가.
담백한 물이 다양한 상표까지 달았다. 삼다수, 백산수, 이라수, 이이시스, 평창수 등등 브랜드마다 상표를 내걸고 판매에 열을 올리는 상술 덕분에 우리는 합리적인 상품으로 거듭났다. 달짝지근하고 톡 쏘는 탄산음료도 이니며 짜릿하게 취하는 술도 아닌 우리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탓이다.
맹물이 무한 자원인 줄 알았다가 양과 질이 한정되어 있는 유한 자원이라는 사실에 너도 나도 맑은 물을 찾는다. 성스러운 땅과 접촉하며 흐르던 물이 인간과의 자연스러운 연결성을 상실하고 마트의 진열대에 오게 될 줄 짐작이나 했으리, 난데없는 이름표를 달고 마치 입학식에 온 초등생들처럼 줄지어 있으려니 불편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마트라는 곳은 참 별세계다. 누구든 카드 한 장이면 보무도 당당한 고객이 된다. 손톱만 한 전자 칩으로 가치가 파악되며, 필요에 부응하는 상품들이 눈맛 나게 차려졌다. 넓고 쾌적한 실내에서 갖은, 물건들을 선보이는 친절을 베풀면서 호시탐탐 고객의 지갑만을 겨냥한다. 구매욕을 팽팽히 부풀리는 유혹의 바람에 물색없이 펄럭인다면 충동 구매의 위험에 빠지기 십상이다. 얼추 속이 내비치는 상술인데도 사람들은 미끼를 문 물고기인 양 곧잘 낚여 든다. 요모조모 시시비비 따지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무장 해제되는 순간을 볼라치면 요지경이 따로 없다.
대저 사물이든 사람이든 적재적소에 있어야 제대로 조화롭거늘, 우리에게 마트란 혼란스러운 세상을 대하는 생뚱맞은 자리일 따름이다. 통제할 수 없는 욕망으로 법석들인지라 가만히 있어도 눈앞이 어지럽다..
산을 두르고 앉은 옹달샘에서 별빛으로 찰랑대던 새벽은 그윽했다. 잠에서 깨어난 산 식구들이 눈 비비며, 목 축이려, 나오는 발소리는 정답고, 지저귀는 노랫소리는 청아하고, 묵상하는 하늘 아래 바람도 순했다. 동네 우물에서 구름을 띄워 놓은 채 여인네들의 두레박질을 기다리던 시절은 넉넉하고 평화로웠다. 가끔은 지친 걸음을 멈춘 나그네에게 한 바가지의 감로수가 되었던 소박한 낭만을 어찌 잊으리. 세상이나 사람들이 탁해지기 전이었다. 약삭빠른 요즘 사람들은 자기네 깜냥대로 우리를 상품화시킨다. 복잡한 계산과 알수 없는 술수도 깔려 있다.
하지만 맹물은 생명의 영원한 근원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줄이며 뭇 맛 가운데 참맛이다. 탁하지 않고 달지 않고 맵거나 시지도 않다. 목이 타고 땅이 갈라지는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 주는가 하면 주린 배를 채워 주기도 했다. 명징하게 얼었다가 순하게 녹을 줄 알고 유장하게 흐르다가 다감하게 고일 줄도 안다. 무엇보다 맹물은 ‘순수’하다. 세상의 추태들과는 애당초 무관하여, 맹한 것이 아니라 외려 투명하다.
그런 물이라고 마냥 유하다고만 생각지 마시라. 가뭄에 단비 같던 맹물도 분노하면 세상을 쓸어 버리곤 한다. 공중에서 의기투합한 물이 폭우로 돌변하여 후려칠 땐 걷잡을 수 없다. 거대하게 몸집을 불려 동네를 통째로 삼키고 집도 길도 순식간에 지워 버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홍수에 삶의 터전을 잃고 울부짖는 광경을 보았으리라. 기억해 두어야 할 게다. 그지없는 깊이와 품을 가진 자연일지라도 인간의 만행을 언제까지나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생명수가 마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자연을 파괴하며 세워 놓았고 나날이 쌓아 올리는 문명 도시. 휘황하고 풍족하며 편리한 세상을 누리는 사람들의 속내는 어떨까.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절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향수)처럼 다들 마음으론 잃어버린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드높은 하늘, 푸르게 펼쳐진 산야. 청정한 공기,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평화로운 곳은 이제 영 부질없는 바람일지.
이즈음 세상을 너무 알아 버린 맹물도 곧잘 향수에 젖는다. 산허리를 잘라 길을 내고 강물을 끊어 놓으며 논밭에 철심을, 박고 시멘트 빌딩을 올려 대는 바람에 갈 곳을 잃었다. 사람들이 만든 길 끝에서 멍들고 답답한 가슴이 청산을 부른다.
흐르고 굽이쳐야 생생한 물이다. 깔끔하게 포장되어 인기 상품으로 거듭났으나 낯선 공간에서 미동도 없이 지낸다는 건 삶도 평화도 아니다. 부딪치고 깨어질지언정 흐르고 흘러야 하는 것이 타고난 물의 업이다. 꿈틀대는 실개천으로 흘러가다 강이 되어도 좋고, 깊은 땅 고요한 물로 흐르다 작은 샘으로 솟아 맹물 닮은 사람들과 연을 맺어도 스스럼없다. 촉촉하고 무량하며 엄청난 생명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거침없는 자유스러움 역시 물의 본성이다. 좁은 수도관을 타고서라도 콸콸 생명 이동을 해야 살아 있는 물인즉, 그걸 잊었거나 만약 믿지 못하면 그대 몸속을 흐르는 붉은물의 기척을 들어 보시라.
천하에 저만 잘났다는 인간들도 우리가 없다면 목숨이 위태롭다. 그런데도 지금 카트를 끌며 다가오는 손님을 보자 돌연 긴장하는 나, 페트병에 갇힌 수인(囚人)이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