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146] 감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3.11.20. 03:00
감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허영자(許英子 1938~)
일러스트=박상훈
일러스트=박상훈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이웃집 담벼락 위로 뻗은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보며 가을을 느끼곤 했는데, 요즘 도시인들은 감나무를 보기 힘들다. 어디 하나 뺄 곳 없이 순도 높은 시어들로 완성된 시. “떫고 비리던”이라니. 얼마나 생생한 표현인가. 덜 익은 감의 떫은맛에 “비리던”이 들어가 청춘의 아픔과 서투른 우여곡절이 연상되었다. 더 이상 떫고 비리지도 않은 ‘내 피’가 갑자기 약동하면서 빈속에 소주 한 병을 들이부은 듯 가슴이 쓰렸다.
허영자 선생님은 현존하는 한국 시인 중에서 한국어의 맛과 향기를 가장 잘 구사하는 시인 중 한 분이시다. 당신의 시를 읽을 때마다 노래처럼 자연스러운 리듬을 느끼는데, 아마도 시를 쓸 때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말의 전통적인 운율이 몸에 배어 그대로 나오는 것 같다.
어머니는 연시를 좋아하셨다. 작년 봄에 어머니를 잃은 뒤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어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식은 부모가 죽어야 철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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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좀도
2023.11.20 05:40:23
감이 흐드러지게 나오는 계절이다. 싱싱한 감 먹고 계절의 정취 누리자.
답글작성
7
0
세무천재
2023.11.20 07:56:38
철들자마자 노망이라고 했던 가요. 사람이라는 게 그때는 몰라요. 무엇이든 잃고 나면 소중함을 느끼니. 그러니 사람이지요. 오늘도 생각을 하며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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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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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06
2023.11.20 11:41:54
예. 나이들어 아파봐야 젊을때 좋았던것 느끼지요
김재열
2023.11.20 10:18:31
만추! 낙엽도 훨 많이 쭈그러러져 나둥거네요! 차라리 하얀 하얀겨울이 그리워지네요! 그 속 따스함! 그러다 새봄을 놓칠까 걱정도 되는 늙으막 인생! 오늘도 좋은 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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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hamster
2023.11.20 13:34:39
젊어서 떫고 비리던 피가 나이먹으면 그제서야 익어가는 진리를 시인도 아는데, 왜 우리나라 386 운동권 떨거지들은 모르는걸까. 아니 모르는체 하는거겠지. 여태껏 자기 손으로 일해서 먹고 산적이 없으니...돈봉투를 처묵처묵하고도 장관에게 어린놈이라고 욕하는 늙어도 떫기만 한 땡감들. 먹지도 못할 것들은 아낌없이 찍어서 내다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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