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과 재림교회
새벽을 깨우는 은은한 여명의 발자욱 소리에, 긴긴 겨울밤, 고요에 묻혀있던 작은 숲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고운 연꽃들은 열반(nirvana)으로 입적한 지 오래고, 우아한 백조들 마저도 멀리 날아가버린 텅빈 겨울 호수는 더없이 적적하며, 흰눈으로 산뜻하게 동정을 단 소복차림의 나무들 만이 바람결에 부시시 눈을 뜹니다. 겨울숲에는 사탄의 유혹으로 잃어버린 에덴의 옛 꿈이 아직도 시원의 슬픔으로 남아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 - 그것은 에덴에서 시작하여 줄기차게 이어져온 사탄의 조직적인 유혹이요, 인본주의(humanism)의 은밀한 덫이며, 이성주의(rationalism)의 교묘한 회유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인류역사 6천년 동안 줄기차게 진리 안으로 침투해 들어온 잡다한 이설들의 든든한 숙주(宿主) 노릇을 하면서, 명실공히 온갖 이교적 사상들의 대부(代父)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걸려있는 엄숙한 하늘의 물음에 고작 이 땅의 논리와 타락한 지성의 누적된 오류로 응답하면서, 사막의 신기루를 쫓아가는 우매를 대변할 뿐입니다.
규범에 얽매이기 보다는 자율을 선호하며,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삼는 자유주의(liberalism)는,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맥없이 무너뜨리더니, 불사조처럼 18세기 계몽주의의 터전에서 다시 일어나 19세기의 낭만주의를 배경으로 성숙하여, 참으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사회철학적 이념이되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체험으로 이해하고, 도덕적으로 연역하며, 문화적으로 주석하는 이 자유주의 신학은,
진정한 의미의 올바른 기독교 신학이 아니라, 신학 또는 철학적 신념으로 가장한 사탄의 정교한 유혹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위로 부터의 신학>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와 개념 위에 세워진, 엄밀히 말하자면, <아래로 부터의 인간학>일 따름입니다. 인간이 주어이고 하나님은 술어에 불과한 주객이 전도된, 신학아닌 신학 말입니다.
안타깝지만 재림교회도 이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합니다. 재림교회사를 통해서 그 현상은 꾸준히 지속되어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숙명의 대장정인 재림운동의 도도한 대열에서 잠시 곁눈질을 하다가 자유주의라는 현란한 신기루를 발견하고, 잠깐 바깥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하차한 똑똑이들은, 잠시후 대열을 놓치고 뒤쳐지더니 슬프게도 뒤따라오던 흙먼지와 함께 저멀리 진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뿌리는 그리스도의 인성, 역사성을 처음으로 부정했던 영지주의(Gnosticism)로 거슬러 올라갈 수있으나, 본격적인 물줄기는 19세기 초, 독일의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Über die Religion)의 출판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여집니다. 그것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정통적 복음 이해와 뚜렷이 구별되는 흐름으로서, 가히 전 세계를 쓰나미처럼 훑고 지나간 하나의 거대한 신학사조였습니다. 자유주의라는 이름 그대로, 기존의 사상 체계나 주장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당돌한 입장을 취하면서, 자연히 개인과 자유에 방점을 찍고, 이성과 과학, 개방과 관용 쪽으로 그 운동장이 현저하게 기울어져있었습니다.
헤겔이 정확하게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사상과 철학은 그 시대의 딸이자 산물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다시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 안에 감추어져있는 무서운 함정과 유혹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될 것입니다.
정치에서는 군주제가 후퇴하고 달콤한 민주주의적 이상이 싹터오는 상황에서, 달달한 자본주의가 이윤의 추구와 부의 축적을 부추기고, 산업혁명이 사회적 분위기를 설레이는 기대감으로 부풀리고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편승하여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자유와 지성을 각별히 챙기는 계몽주의의 입장에서, 칸트 철학의 골격인 비평의식으로 무장하고, 기독교 신앙의 재해석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비판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자유라는 개념이 그 이론적 토대가 되었으며, 종교의 윤리적이고 현세적인 측면을 강조하게 만들었습니다.
더우기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으로 이어지는 칸트의 비판철학은 초자연적인 종교의 가능성을 일단 의심하거나 보류하고, 단지 이성의 한계 내에서 가능한 종교 만을 논함으로 종교를 도덕과 문화의 수준으로 축소시켜버렸습니다. 이성의 재발견, 상대주의, 주관주의를 몰고 온 이 비판적 인식론의 우산 아래에서, 종교적 자유주의는 당대의 시대 정신(Zeitgeist)과 맞물려, 지성인들과 젊은 세대에게 외면 당하고있던 기독교 정통신앙을 재해석함으로, 나름 기독교를 변호한다는 가장된 노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합리주의가 온통 판을 휘젓고 다니는 당시의 현실에서 하늘의 계시를 말하고 초월을 진술하는 종교일반이 어떻게 가능하며, 특히 기독교가 어떻게 존립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시대적 응답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를 위해서는 더 큰 희생을 치루어야했던 바, 신학의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Text)이 아닌 인간의 정황(context)에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 중심의 신학이 되어버린 지울 수 없는 얼룩과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리하여 신학은 어느새 울창한 계시의 푸른 숲에서, 회색 빛깔의 공허한 이성의 숲으로 변질되고 있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인간의 종교적 체험과 감정으로만 생각하였으며, 기독교의 전통 진리와 신조들을 절대시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계시, 교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이 자유주의의 태도는 자연히 성경 비평학을 부추기고 고무시켰습니다.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며, 성경의 기록과 과학이 충돌할 때 과학을 선호했습니다. 따라서 창조와 타락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는 더 이상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게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도 믿을 수 없다고 유보되었습니다. 비평주의는 모든 사실과 자료들의 확실성을 일단 의심한 후, 연역적으로 분석 또는 검토해야 한다는 데까르트 철학의 입장을 충실히 따르고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아가 노골적으로 고등비평의 칼날을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성경을 난도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서 비평은 기독교가 계몽시대의 새로운 학문과 이념에 적응해 보려는 나름의 이성적인 몸부림이자 시도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합리주의는 이성의 능력을 분별없이 강조하여 진리의 척도로 추대하고, 판단의 기준으로 까지 격상시켰습니다. 나아가 기독교의 모든 교리들도 역시 비평을 받아야 한다는 대담한 태도를 보이고, 그 결과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기적 등에 대한 교리들이 여지없이 비판의 과녁으로 떠올랐습니다.
20세기에 와서는 자유주의 신학은, 이미 다원주의와 사회복음주의 및 하나님 없이(ohne Gott) 하나님 앞에(vor Gott) 선다는 소위 사신신학(死神神學) 까지를 수용한 바벨론 신학이되어있었습니다.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대신,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기독교와 타종교의 연대성을 주장하고 기독교를 다른 여러 종교들 가운데 하나로 격하시키고 말았습니다.
이성과 과학을 진리의 척도로 간주하는 이 자유주의의 오류는 이렇듯 그릇된 출발점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말이나 체험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입니다. 잘못된 시작은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의 핵심을 상실하고 기독교를 계시종교로 부터 윤리종교로,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초월적 종교로부터 인간 중심의 현세적인 종교로 만들어버렸던 것입니다. 폴 틸리히가 “유럽의 기독교는 죽었다. 기독교 신학의 최근 200년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외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주의 재림 직전에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진리에서 이탈할 것이라고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거짓 이설들이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겠으며, 결국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출현과 온 세계에 파급된 얼룩진 배도의 현상은 성경의 예언이 슬프게도 차곡차곡 성취되고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제1, 2차 세계대전과 경제 대 공황을 실망으로 경험하면서, 인간 이성과 합리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신뢰가 무참하게 깨어짐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다소 그 사상적 기반을 잃게 되었습니다. 죄로 얼룩진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 인식하지 못하고 인간의 능력에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것이 위기의 시대를 겪으면서 입증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하나님 중심주의로의 역전환이 다시 이루어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 절체절명의 시대에 척박한 신학적 풍토에 떨어진 소중한 진리의 밀알, 모진 이성주의의 겨울을 억척같이 이겨내며, 기독교의 새로운 소망으로 솟아오른 재림교회는, 마침내 자유주의 신학으로 얼룩진 영적 어두운 밤을 헤치고 교회사의 지평에 큼지막한 획을 그으며 혜성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구원의 밝은 빛을 다시 보게되었고, 그들의 심장은 <영원한 복음>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으며, 재림의 소망은 아침햇살처럼 붉고 장엄하게 솟아올랐습니다. 복음의 정체성이 유린된 불투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의연히 싹을 틔운 <세 천사의 기별>은 세상을 긴긴 겨울잠에서 깨우는 새로운 희망이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재림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가는 필연의 과정으로, 깊은 예언적 혜안과 역사적 당위성 위에서 태동되었던 것입니다. 신학이라기 보다는 신앙의 대 각성이요, 선풍적인 복음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복음이라함은 인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자유주의적인 것에 반하여 정통적인 것에로, 현란한 철학적 언어유희와 정황 위주에서 계시와 성경 자체로 되돌아감을 의미했습니다.
재림교회는 성경의 궁극적 진리와 권위를 확신하며,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역사성, 신인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 점진적인 계시의 빛과 역사적인 예언의 성취를 누구보다도 굳게 믿습니다. 나아가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고백하며, 땅끝까지 이 복음을 전파하는 마지막 사명의 교회임을 겸허하게 선포합니다. 복음이 개인적으로 체험되고, 성서적으로 정의되며, 열정적으로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 바로 재림성도들입니다.
불행하게도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함으로 재림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칼 바르트도 덩달아서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재림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입니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성육신, 대속, 부활, 재림 등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이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은 남은 교회의 핵심 진리인 주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을 부정함으로, 재림교회의 존재이유(raison d'être) 자체에 도전하는 가장 경계해야할 교묘한 신학이되었습니다.
우리는 계시와 말씀의 백성입니다. 순결한 신앙의 표어들인,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원리가 재림교회의 정체성을 이루고, 그 위에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가 우리의 영원한 신앙고백으로 빛나는 보석처럼 우리의 가슴 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영원토록 변치않는 진리의 말씀 만이 세속주의 신학의 탁류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고, 실체가 없는 신기루, 공허한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하며, 사탄의 유혹으로 잃어버린 에덴의 옛 꿈을 다시 회복해줄 것입니다. 그 감격의 순간까지 좁지만 순결한 진리의 길을 따라, 영원의 지평을 향하여 별처럼 당당하게 걸어가는 주의 백성이 바로 재림성도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