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여름을 지나 어디로 가는 걸까
이기철
그 큰 걸음걸이로 여름은 어디로 가는 걸까
소다수 아이스박스 길게 줄 선 휴게소와 주유소를 지나 익는 일에만 골똘한 자두 복숭아 오디의 해안도로를 지나
곤줄박이 눈썹새 노랑할미새는 숲으로 날고 물봉숭아꽃 피어 행복해하는 마을을 지나
여름은 큰 팔을 저으며 산을 넘어온다 소란을 떠는 천둥, 군집으로 몰리는 소낙비
나는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두 개의 모롱이를 돌아 우체국으로 간다 여름엔 아프지 말라는 편지를 짐받이에 싣고
슬픔이 없는 풀꽃들이 잎을 반짝인다 풀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
이젠 잊힌 이름들은 그냥 잊어버리려 한다 이젠 초조하게 내일을 기다리지 않으려 한다
조그맣게 사는 삶이 좋아졌다 끝없이 구석으로 몰리는 마음 하나로 견디는 날엔 눈부신 삶 같은 건 죄 내려놓겠다
쑥갓꽃 부추꽃을 지나 유등연지 가득한 연꽃을 지나
여름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저 혼자 어디로 가는 걸까 |
첫댓글 자유시들도 산문시가 아니면 자기들만의 음보와 규칙을 그 시 안에서는 지키려는 것이 읽다보면 느껴집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