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쉽고 간결한 언어로 어린이의 속마음을 곡진하게 그려 온 김응 시인의 네 번째 동시집 『마음속 딱 한 글자』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동시가 어린이의 진정한 친구가 되길 염원하며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건넨다. 어린이의 내밀한 마음까지 다정히 어루만지면서도, ‘나다움’을 응원하는 힘찬 메시지를 분명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냈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세상을 기꺼이 만나도록 이끄는 친절한 시편들은 어린이 독자에게 뭉클한 감동을 전할 것이다.
김응 (지은이)
바닷마을 작업실 메리응유에서 시를 쓴다. 동시집 『개떡 똥떡』 『똥개가 잘 사는 법』 『둘이라서 좋아』, 청소년시집 『웃는 버릇』, 산문집 『아직도 같이 삽니다』 등을 펴냈고, 그림책 『우리는 보통 가족입니다』에 글을 썼다.
이주희 (그림)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책 『고민 식당』 『괜찮아, 우리 모두 처음이야!』 『나는 고등어』 『안녕, 오리배』 등을 쓰고 그렸고, 동시집 『팝콘 교실』 『아홉 살은 힘들다』 『동시 유령의 비밀 수업』, 동화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 등에 그림을 그렸다.
“마음속 딱 한 글자를 떠올려 봐!”
오직 어린이를 향한 마음으로 쓴 ‘시’
쉽고 간결한 언어로 담백하고 꾸밈없는 작품 세계를 꾸려 온 김응 시인이 약 8년 만에 새 동시집을 펴냈다. 전작 『둘이서 좋아』에서 시인은 서로의 옷깃을 여미어 주며 외로움을 이겨 내는 한 자매의 모습을 그린 바 있다. 내면 깊숙이 스민 슬픔을 세심히 읽어 내는 그 다정한 시심(詩心)은 여전한 가운데, 신작 『마음속 딱 한 글자』에서는 한껏 유쾌하면서도 진중하게 어린이의 마음속 이야기를 청한다.
김응 시인은 “시를 쓰는 시간”은 “마음을 쓰는 시간과 다름없다” 말한다.(시인의 말 「나의 마음 쓰기」) 각자 챙기기 바쁘고, 관심 어린 말 한마디 건네기 버거운 세상에서 시인은 시간을, 마음을, 시를 쓴다. 물론 20년차 중견 동시인에게도 그 일이 쉽지만은 않다. “닳아질까 봐/아껴” 두고, “달아날까 봐/숨겨” 두고 싶을 때도 있다. 시작(時作)의 여전한 괴로움에도 시인을 다시 쓰도록 북돋우는 원동력은 오직 어린이다. 어린이를 향한 마음을, 시를 “쓰면 쓸수록/또 쓰고 싶어졌”다는 고백은 그래서 더욱 뜻깊고 미덥다(「마음 쓰기」).
오래된 탑과 교회 종도/빌뱅이 언덕도/지붕 낮은 흙집도/방문 아래 디딤돌도/벽지에 핀 곰팡이도/키 작은 밥상도/마요네즈병 호롱불도/누렇게 바랜 원고지도/쥐구멍 속 배고픈 생쥐도/엄마가 보고 싶은 토끼도//작고/외롭고/쓸쓸하지만/함께하면/하루를 살아갈/힘이 된다/날마다 눈 맞추는/친구가 되고/이야기꽃 피우는/가족이 된다_「작고 외롭고 쓸쓸한」 전문
고 권정생 선생을 그리워하며 쓴 시임을 밝힌 위 시편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시인은 “작고/외롭고/쓸쓸”한 것들을 깊이 들여다본다. 자신에게 그랬듯, 시가 어린이에게 힘을 주고, 뜻이 통하는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행간에 담겼다. 어쩌면 이 동시집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함께하”며 “이야기꽃 피우”는 일이다. 해설이자 ‘동시 사용법’이라 할 박미정의 글에서 언급하듯 이 동시집은 “온통 어린이에게 향하는 말”이며 “어린이에게 말 거는 동시로 맞춤”하기 때문이다(해설 「온통 어린이를 향하는 말, 어린이에게 말 거는 동시」). 시 안에서 마음껏 웃고 떠들며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어 나가는 동안, 어린이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품은 ‘딱 한 글자’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가슴 한구석이 찡하고 간질간질한가요?”
어린이 마음을 살뜰하게 돌보는 동시
맑고 투명한 언어로 어린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편들 역시 돋보인다. 『마음속 딱 한 글자』에서 시인은 어린이의 마음에 보다 적극적으로 접속한다.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몰라주니까 눈물이 난다/똑, 똑//딱딱한 책상에 엎드려/애꿎은 샤프심만 부러뜨린다/똑, 똑//마음까지 부러지는 것 같다/마음까지 작아지는 것 같다/마음아, 괜찮니?//내 마음에 노크를 해 본다/똑, 똑_「똑, 똑」 전문
속상한 어린이가 책상 앞에 앉았다. 눌러 쓴 공책 위에서 샤프심은 “똑, 똑” 하고 부러지기 일쑤고, 겨우 적어 내린 “삐뚤빼뚤 글씨도 마음에 안 든다”(「구겨지고 구겨지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친구에게 서운하고, 무신경한 어른들이 미워지기도 한다. 시인은 그런 어린이를 차분하게 기다리다,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마음속 딱 한 글자』에는 어린이의 깊은 속마음을 오래 들여다보고 정중하게, 살뜰하게 마음을 나누는 동시들이 가득하다. 절친한 친구와 헤어졌던 순간 마음에 남은 자국을 어루만지며 위로하기도 하고(「자국」), 긴장하고 겁나서 움츠러든 마음을 여유 있게 달래 주기도 한다(「마음의 힘」). 시편들과 함께 마음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동안, 독자들은 자기 자신도 미처 몰랐던 내면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나’니까
‘나다움’을 발견하는 힘
어린이들은 학교를 비롯한 여러 공간에서 새로운 이들과 쉼 없이 관계를 맺는다. “말 안 해도/아는 사이//눈짓만으로도/통하는 사이”도 있지만(「약속」), “함께 있어도/서로 딴생각//나란히 앉아도/서로 딴짓”하는 관계도 있다(「섬과 섬」). 이렇듯 타인과 같기도, 다르기도 한 ‘나’를 마주하며 어린이는 자연히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호랑이 무늬 옷을 입었다고/힘센 호랑이가 되지 않아//토끼 모자를 썼다고/앙증맞은 토끼가 되지 않아//얼룩말 무늬 스타킹을 신었다고/롱 다리 얼룩말이 되지 않아//호랑이 옷을 벗고/토끼 모자를 벗고/얼룩말 스타킹을 벗고//거울 앞에 서면/나는 나_「나는 나」 전문
‘나다움’이란 무얼까? 시인은 “나는 나”라고 간명하게 답한다. 닮고 싶고, 되고 싶은 모습이 많지만, 진정한 ‘나’는 언제나 “거울 앞”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나’일까? 시인은 이 질문을 시간과 공을 들여 고민해 보자고, 마음을 써서 답을 적어 보자고 제안한다.
너희가 똑같은 브랜드 옷을 입어도/너희가 마구 욕을 해도/너희가 길에 쓰레기를 버려도/너희가 스마트폰만 들여다봐도/너희가 아무 때나 목청껏 소리쳐도/따라 하지 않을 거야//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내게 필요한 물건을 사고/남들 눈치 보지 않고 진실을 말하고/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거야//나는 하나밖에 없으니까/나는 소중하니까/아무나/아무거나/아무렇게나/따라 하지 않을 거야_「내일의 나는」 전문
시인은 이제 중심을 “너희”가 아닌 “나”로 옮긴다. 그 이유 역시 간단하다. “나는 하나밖에 없으니까/나는 소중하니까”. 눈치 보지 않고, 틀렸다는 지적에 기죽지 않으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나’가 비로소 보인다. 쉴 새 없는 평가와 비교를 겪어 내는 오늘날 어린이들의 마음은 『마음속 딱 한 글자』를 따라 읽으며 단단하게 여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