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태 오란다는 누가 보냈을까? / 양선례
사흘간 출장 다녀오느라고 학교를 비웠다. 오랜만에 출근하니 책상 위에 우편물이 수북하다. 택배 상자도 하나 보인다. 받는 이는 나인데, 보내는 이엔 물건을 보낸 회사 이름이 적혀 있다. 뜯고 보니 직육면체 오란다에 얇게 감태를 붙인 ‘감태 오란다’다. 누가 보냈지? 상자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승진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있다. 아니 승진한 지 4년이 되었는데 이제야? 궁금증이 더해 간다. 또 살피니, 다른 면에 작은 글씨로 김살구(가명) 님의 선물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그 이름으로 저장된 사람은 두 명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둘 다 내게 선물을 보낼 만큼 가깝지가 않다. 보낸 회사에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찾았다. 이런, 전화기가 꺼져 있다. 이번에는 톡을 보냈다. 사흘이 지났는데 여전히 1로 표시되어 있다. 에라 모르겠다. 주말에 친구들과 먹으려고 포장을 뜯어 몇 개 챙겼다.
김살구, 그녀와는 내가 교감 3년 차일 때 만났다. 도통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딴 세상에 사는 듯 먼 하늘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2학년 체험학습이 있었다. 예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인도도 없는 길을 꽤 오래 걸어야 해서 뒤처지는 아이를 채근하면서 따라갔다. 목적지에 다다랐다. 계단을 내려가서 아치형 홍교를 올려다보며 설명을 듣고, 다시 위에 있는 정자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그런데 김살구 선생님 반 아이가 돌로 쌓은 축대 위를 조심조심 걷는 것이었다. 그는 소문난 개구쟁이라서 나도 이름까지 알던 녀석이었다. 이쪽에서 보면 아이들이 쉽게 오를 정도로 낮지만 반대쪽엔 족히 3미터는 되어 보이는 맨땅이라서 떨어지면 크게 다칠 터였다. 한 녀석이 그러니 그래도 되는 양 남자아이 몇이 뒤따랐다.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행여 내 고함 소리에 놀란 아이들이 급히 내려오다가 다칠 수도 있지 않은가. 담임이 어딨는지 살폈다. 그런데 그녀도 그 아이들에게 시선이 가 있었다.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은 채 무심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얼른 곁으로 가서 귓속말로 말을 건넸더니 그제야 한마디 했다. “야, 얼른 내려와.” 목소리도 억양도 느릿느릿, 평소대로다. 다급한 건 나 혼자다.
매사가 그런 식이다. 뭘 해도 시큰둥하다. 그 선생님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이듬해에는 업무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학년 운영을 잘하는 선생님과 묶었다. 간혹 복도를 지나다 보면 1반과 3반은 아이들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절간인데, 그 가운데 낀 2반은 시장터가 따로 없다.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시나?’ 하고 교실을 기웃거려 보면, 김살구 그녀는 팔짱 끼고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더라. 아이들이 책상을 건너다니며 장난을 칠 정도로 시끄러워도 무심하게.
어쩌다 전 교직원이 다 모이는 회식 날이 되어도 그녀만 안 올 때가 많았다. 나중에 부근 찻집에서 혼자 우아하게 차 마시고 있더라. 스스로 외톨이가 되는 이런 사람을 ‘스따(스스로 왕따)’라고 하던가? 그런데 학기 말이 되니 이제는 아예 교단을 떠나고 싶다면서 사표를 쓴다고 했다. 어렵게 선 자린데, 부모님은 딸의 결단을 알고 계시려나? 다른 지역의 중등 교사로 근무하는 엄마와 통화했다. 교육대학교 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우겨서 보냈더니 휴학을 거듭하여 학교도 겨우 마친 터란다. 야단치고, 말리는 데도 지쳤다며 이제는 원하는 대로 해 달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런데 방학 중에 여행하고 돌아오니 그 사표가 교육청까지 갔다가 반려되어 있었다. 오지랖이 태평양 급인 교무가 극구 말렸단다. 결국 학교 만기인 교무, 건강이 나빠져 조금 더 작은 학교로 옮겨야 하는 내가 김살구, 그녀까지 달고 같은 학교로 옮겼다. 사정 아는 사람이 책임지고 보살피라는 교장 선생님의 엄명을 받고서 말이다. 미리 새 학교 관리자를 만나서 사정을 설명했다. 업무와 학년에서 최대한의 편의를 봐주어서 어찌어찌 1년을 보냈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선 교단이어선지 작년보다는 훨씬 편하고 밝아 보였다.
그런데 학기 말이 되니, 병이 도졌다. 또 사표를 쓴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올해처럼 교과 전담 교사를 하면 그대로 있고, 5학년 담임하면 교단을 떠나겠단다. 작은 학교이다 보니 학년과 업무 분장을 교사들끼리 서로 협의하여 정했다. 올해 특혜를 받은 데다, 나이가 가장 어리니 고학년 담임이 된 모양이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교사가 1학기 마치고 육아 휴직 예정이라, 교담 교사를 희망한 것이다. 무슨 이런 얌체 같은 선생님이 다 있지? 아니 여섯 명 아이의 담임도 못 한다면 어디 가서 한단 말인가. 한바탕 퍼부어 주고 싶은 걸 꾹 참고 휴직 예정 선생님께 양해를 구했지만 그녀 역시 나처럼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였는지 입을 닫아 버렸다. 이야기를 전하는 내 얼굴만 화끈거렸다.
결국 그녀는 사표를 쓰고 전남 교단을 떠났다. 내가 없는 사이 교무는 또 간절히 그녀를 설득하며 말렸다. 냉정해 보이지만, 지금 떠나는 게 그녀가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 죄짓지 않는 거라고 교무에게 말했다. 멀리서 보면 그냥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의 1년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교사는 안다. 교사의 열정은 어느 날 문득 생기는 게 아니다. 내 아이를 맡기기에도 불안한, 교단 부적응 교사는 하루라도 빨리 다른 직업을 찾는 게 나을 것이다. 그녀의 톡에는 별이 많이 보이는 시골 하늘과,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를 비교해 놓은 사진이 올라왔다. 늘 도시를 동경하던 그녀다웠다. 몇 년이 지나 교무에게 소식을 들으니 기대와는 달리 강원도에서 다시 교사로 근무한다 하여 놀랐다.
그때는 할 수 없었던 일이 시간이 지나니 가능해진 것일까? 아니면 벗어나 보니 소중하게 다가왔을까.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에 다시 온 그녀를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런 내 맘과는 달리, 감태 오란다는 촉촉하고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