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총각 면회
군대 생활 29개월여, 내 형제자매는 물론 친구 하나 나를 면회 온 적이 없었다. 엄마는 눈이 어두우시니 엄두 자체를 못 내셨고. 하기야 삼랑진에서 양주까지라면 멀고 먼 거리이기도 하니, 그런 기대는 애당초 접었어야만 했다. 그래도 그게 한(恨)이었까? 글쎄다. 푸념 삼아 몇 줄 적는다.
아들이 공군에 입대했었다. 녀석 자신도 원했고, 나 또한 김해 공군비행단와 깊은 연인이 있어 좋아서 등을 떠밀다시피 했다. 이윽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사천의 전투비행단이었다. 서둘러 면회를 갔다 왔다. 한데 얼마 동안 녀석이 선임들로부터 얼차려를 받는 모양이었다. 아내와 내가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녀석을 제대 후에 잃고 나서, 면회(面會)라는 말 자체가 어쩐지 낯설게 보이고, 생경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제대 반세기 만에, 그 ‘면회’로 인한 몇몇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면회’는 내게 영광과 폐해가 엇갈리는 결말을 안겨 주었는데, 앞으로도 내 여생에서 의미 있는 흔적으로 남게 될 것이다.
3년 전 일이다. 모부대(母部隊) 26사단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어떤 ‘병사 아버지’의 글을 읽게 되었다. 광중에 산다 했다. 아들이 너무 걱정된다는 얘기였다. 난 댓글을 달았다. 나 자신 26사단 출신임을 밝히고 전화번호까지 올리면서, 대신 면회를 가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 노병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 하기야 나와 그는 동성동본 종친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으리라. 연천군 전곡리에 있는 사단 직할 공병중대의 주소를 알았다. 나는 중대장에게 육필 편지를 띄웠다. 그런 연락이 오간 끝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날 전곡리까지 남의 승용차를 타고 중대 본부까지 갔다. 내친김에 이웃 중대까지 포함한 장병들에게 안보강의랍시고 두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녀석은 보초를 서다가 강당으로 총을 들고 멘 채 들어와 ‘할아버지’라 불렀다. 기대 이상으로 군대 생활을 잘해 나갔고, 내 콘서트 장에까지 와서 부사단장과 나란히 서서 사진도 찍었다. 세월이 삽시간처럼 흐르는가 싶더니, 어느 새 녀석은 군복을 벗는다는 게 아닌가. 나는 녀석에게 작은 액수지만 금일봉을 건넸다. 다시 1년이 지났는데 가끔 통화를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상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다시 26사단! 불무리 성당이 사령부 앞에 있다. 그 군종 성당에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학사가 있었다. 나이로 봐서는 내가 할아버지다. 몇 달에 한 번씩 지하철을 타고 부대로 향했다. 불무리 성당에서 사단장과 장병들 사이에 섞여 미사에 참례하거나, 주임신부에게 고해 성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에 버금가는 까닭이 있었으니, 학사 면회(?)였다. 그의 일병 시절부터 병장으로 제대할 때까지 우리 만남은 이어졌다. 그 순간을 묘사할 재주가 없으니, 예사롭게 있었던 이런 장면으로 설명하자. 그는 노병에게 깍듯이 거수경례를 올려붙인다. 난 허리를 굽힌다. 우린 부둥켜안는다. 체취가 내 가슴으로 전해진다. 제대하기 이틀 전에도 그를 면회했다. 머지않아 그를 다시 만날 것이다. 난 그가 훌륭한 사제가 되도록 기도한다.
그러다가 나는 면회 때문에 절망을 맛보기도 했다. 내가 조금은 아는, 착하고 성실한 젊은이가 있었다. 입대했다기에 수소문을 해 봤더니, 26사단과 바로 이웃한 사단(포천)에 배속되었단다. 갑자기 그를 면회하고 싶었다. 아들이며 불무리 성당 학사 생각도 났다. 난 병사들을 사랑하노라고 무턱대고 외쳐대는 노병이 아닌가. 중위며 부사관 등이 총을 들고 검문하는, 그 전방에서의 짜릿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어 난 무릎을 쳤다. 하나 주님은 안타깝게도 내 손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바로 앞집 총각(청년)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궁금했지만, 부모도 몇 달째 얼굴을 마주대하지 못했다. 며칠 전 출근하는 젊은이의 아버지(敎友다)와 승강기를 같이 타게 된 것이다. 아들의 근황을 물었더니 뜻밖에 군에 갔다는 게 아닌가? 25사단에 복무한단다.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다. 면회 한 번 가겠다고. 그 형제가 어리둥절해 한다. 상식으로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이다. 하나 난 간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아내가 내 손에 그냥 쥐어 준 5만원이 있어서, 따로 부담이 없다. 사령주가 다 양주에 있다. 25사단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26사단에 들르면 어찌 금상첨화 아니랴. 물론 주인공들에겐 비밀이다. 탄로(?) 나면 만사휴의니까. 그래 2월말쯤 부모끼리 만나서 한 번 웃기나 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