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200년·진화론 150년 다윈은 미래다] 3부 <4> 인간의식의 철학자 다니엘 데넷
인간 의식의 본질을 파헤치며 현대 사회에 도발적 문제의식을 던지는 철학자인 다니엘 데넷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미래 인류의 모습에 대해 그는 "인간의 뇌가 기계적 하드웨어 속으로 걸어들어감으로써 인공지능의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니엘 데넷 터프츠대 교수= 먼저 의식의 구조, 그러니까 뇌라는 기계에 대해 알아봅시다. 뇌는 유전자에만 의존해서 발달하는 게 아니라 학습과 문화교류를 통해 모종의 재조합이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한 가지 생각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일단 의식구조가 만들어지고 난 뒤 또 다른 진화과정이 작동한다는 건데, 바로 (신경세포들 사이의) 경쟁이 그것입니다. 일련의 경쟁의 승리가 곧 의식입니다. 경쟁의 승자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패자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의식작용입니다.
▲최= 뇌의 신경세포들도 하나의 수정란에서 기원한 것인데 어떻게 서로 경쟁하고 싸울 수가 있습니까.
▲데넷= 경쟁의 가능성 중 하나가 유전자 각인입니다.신경세포 하나하나는 같은 유전체를 갖지만 어떤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지가 중요합니다.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헤이그 등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유전자 각인에 의해 뇌세포들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발현시킬 것인지, 어머니쪽 유전자를 발현시킬 것인지 분업을 합니다.
한 수정란에서 기원했더라도 부계 유전자를 켜느냐 모계 유전자를 켜느냐에 따라 세포들이 발생에서 다른 역할을 하고, 당연히 뇌의 작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뇌와 마음의 성장이 극도로 달라지는 거죠.
▲최= 다시 의식이란 무엇인지, 견해를 요약한다면.
▲데넷= 움직일 수 없는 제 원칙은 유물론입니다. 의식을 설명하는 데에는 물리학적 혁명이나 양자 마술 같은 미래 기술은 필요 없어요. 단적으로, 의식에는 제2의 변환 같은 것은 없습니다. 외부환경을 인지하는 단계에서는 빛과 소리가 눈과 귀로 들어와서 뇌 신경세포에서 전기신호로 바뀌어 전달됩니다.
반응하는 단계에서는 뇌에서부터 전기신호가 전달돼 손이나 입술을 움직입니다. 이 두 과정 사이에 미지의 제2의 변환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착각입니다. '판단'의 순간이 있다는 생각이 가장 근본적인 오류입니다. 전기신호가 전부예요.
그러면 좀비와 다를 게 뭐냐고 하겠지만, 사실상 좀비에게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특별한 의식과정은 없는 겁니다. 마치 마술의 속임수를 설명하면서 이것이 마술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그건 진짜 마술이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하는데 진짜 마술이란 존재하지 않는 거죠. 의식이 이와 같은 겁니다.
▲최= 어쨌거나 그러한 의식의 뒤에는 다윈의 개념이 있는 거죠.
▲데넷= 아, 그렇죠. 인간 의식은 자연선택이 이뤄낸 최후의 승리입니다. 극히 최근에 일어난, 기이한 진화죠. 생명체는 의식 없이 30억년을 지내왔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개나 침팬지의 마음과도 분명 다릅니다.
▲최= 현재 뇌의 비밀을 파헤치는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고 앞으로 어디로 갈까요.
▲데넷= 뇌에 대한 연구는 비로소 뇌의 내용과 변화를 파헤치는 데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뇌의 어떤 영역이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하나 시험해 보죠. 영어 D자를 반시계방향으로 90도 돌린 뒤 J자 위에 얹어보세요. 뭐가 보입니까?
▲최= 우산인가요?
▲데넷= 그렇죠. 굳이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지 않고도 어떻게 마음 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조작하고 그 결과를 읽어내는 걸까요?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이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거의 가능해졌습니다. 이런 뇌의 모델이 개발되면, 뇌를 읽음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다음 단계로는 뇌전체가 어떻게 하나의 생명을 유지하는지 작동모델이 필요할 겁니다. 가령 바퀴벌레를 생존시키고 바퀴벌레처럼 반응하는 뇌를 설계할 수 있다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최= 인간은 점점 더 기계와 교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나 인간-기계의 결합도 발전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데넷= 분명히 인간과 기계의 상호교류와 상호의존이 높아질 겁니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내 생애에는 절대 인간의 의식을 갖춘 로오?나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술과 보다 밀접하게 결합하면서 신체적 능력뿐 아니라 정신적 능력까지 크게 증진시킬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컴퓨터를 잃어버리면 뇌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과 매한가지 상황이지만 미래에는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마우스나 키보드는 사라지겠죠. 우리의 뇌가 우리 하드웨어 속에 있는지 어떤 기계 속에 있는지 그 경계가 모호해질 겁니다.
정말 의식이 있는 인공지능이 탄생한다면, 그건 지금 유행하는 인간형 로봇의 형태가 아니라 사람이 실리콘세계로 들어가는 식이 될 겁니다.
▲최= 정말 인간과 기계의 하이브리드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데넷= 유전적으로는 아니지만 겉모습은 분명 그렇습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말을 썼었죠? 마치 거미줄 없는 거미나 댐 없는 비버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처럼 기계는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될 겁니다. 이미 그렇죠. 휴대폰이나 지구위치측정시스템(GPS), 컴퓨터 같은 것이 없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느끼겠어요. 옷이나 신발만 없어도 그런데요.
▲최= 2006년에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당신이 각각 종교에 대한 책을 펴내서 흥미로웠습니다. 도킨스와 윌슨은 종교에 대한 태도를 두고 서로 '외교관''전사'라고 하던데요.
▲데넷= 두 사람과 구분은 되지만 저도 '외교관'에 가까울 겁니다. <마법깨기:자연현상으로서의 종교>를 쓸 당시 저는 과학계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자기검열이 심하고 분석적이라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종교는 분명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종교가 아주 뛰어난 발명품이라고 봅니다.
도킨스는 종교를 끝장내고 싶어하죠. 하지만 난 "리처드, 좀더 진화론적으로 생각해야 해. 이 바이러스를 멸종시키는 것보다는 변형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쉬워"라고 말합니다.
▲최= 철학계에서 당신은 분명 별종에 속할 겁니다. 생물학자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식의 비난이나 눈치를 받지는 않습니까.
▲데넷= 그렇긴 하지만 생각만큼 심하진 않아요. 제 연구를 절대 못 참는, 고전적인 철학자들도 있죠. 저는 제너럴리스트(전문분야만이 아닌 다방면의 지식을 가진 사람)인 셈입니다. 문제는 제가 다른 철학자나 또는 그 제자들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질 주제들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이제 심리학, 철학, 생물학자들이 2세대 자연철학자로서 존재합니다.
사실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자연철학자와 과학자는 구분되지 않았어요. 우리 철학자들은 과거의 뿌리를 되찾고 상아탑에서 나와서 현실세계로 들어가는 형국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철학이란, 질문이 뭔지 정확히 모를 때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인지과학이 그런 상황이죠. 여기서 철학자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최= 마지막으로 다윈 진화론이 오늘날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데넷= 다윈 진화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학적 개념입니다. 물리학과 화학을 마음, 의도, 생물, 시, 윤리학과 함께 하도록 합니다. 모든 생명체의 결실들, 인간의 문화와 예술, 열정까지도 포함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기적이 아니라 어떤 물질의 조합으로 구성됐다는 겁니다. 탄소 원자로부터 시가 나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다윈입니다.
● 다니엘 데넷
다니엘 데넷은 의식과 마음의 본질을 파헤치는 철학자로서 철학뿐 아니라 심리학과 인지과학, 인공지능 연구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형이상학적 접근을 철저히 배제하고 신경과학적 방법을 통해 인간 의식은 뇌 신경세포가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과정 이상이 아니며 진화를 통해 형성된 것임을 밝혀왔다.
도발적으로 보일 만큼 자연주의(유물론)적 시각을 고수해 온 그는 2006년 대동맥박리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도 "당신을 위해 기도했다"는 지인들의 말에 "내가 감사해야 할 것은 신보다는 훌륭한 의료진과 의료장비"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전후해 데넷은 하버드대에서 3일 연속 특강을 가졌는데, 다른 연구자들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무자비했던지, 거론된 이들 중 한 명인 스튜어트 카우프만(생명의 창발성 연구로 이름난 복잡계 연구자)은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청중들이 복도까지 들어찬 강의실 문을 나가버리기도 했다.
▲1942년 미국 출생 ▲옥스퍼드대 철학 박사 ▲현 터프츠대 철학과 교수 ▲저서 <다윈의 위험한 생각> <설명된 의식> 등.